8화(5,490자)
망치 없는 밤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망치가 손에서 무거워질수록 바우는 나무못을 오래 보았다. 비스듬히 선 나무못은 구멍에 반 치쯤 물려 있었다. 서까래 구멍과 도리 구멍이 어긋나지 않게 처음 내리칠 때 바로 세웠더라면 지금쯤 손바닥으로 밀어도 들어갈 자리였다.
손바닥으로.
바우는 망치를 기와 위에 내려놓았다. 기와가 낮게 달그락 소리를 냈다. 집사의 눈이 이 소리를 따라왔다. 바우는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나무못 머리를 왼손 엄지로 바로 세우고, 이 위에 오른 손바닥을 겹쳐 얹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어깨와 등의 무게를 손바닥에 실었다.
나무못이 구멍 속으로 조금씩 밀려 들어갔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마른 나무가 나무를 비비며 들어가는 아주 가는 끽 소리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올 뿐이었다. 바우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 기와 위에 떨어졌다. 나무못 머리가 서까래 면과 나란해졌다. 바우는 손을 떼고 서까래를 흔들어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대문 앞에서 집사가 바우를 올려다보았다.
“망치를 쳤소?”
“안 쳤어요. 밀었어요.”
집사의 입가가 한쪽으로 당겨졌다. 웃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세가가 막은 것은 망치 소리요. 소리 없이 박는 것은 막지 않았소.”
뒤에서 오길이 집사의 소매를 잡았다.
“집사 어른, 그러면 저놈이—”
“나는 가주의 귀를 지키러 왔소, 거간. 목수의 손을 묶으러 온 게 아니오.”
집사는 무사들을 데리고 거리 위쪽으로 걸어갔다. 오길은 혼자 남아 버들객잔 이층을 올려다보다가 목에 감은 천을 쥐어뜯었다.
*
정오가 지나 쌍칼 형제가 거리에 들어왔다.
마흔 줄의 형과 서른 줄의 아우가 똑같이 생긴 칼 두 자루씩을 등에 엇갈려 메었다. 강남 예선에서 이틀 동안 다섯 판을 이겼다는 말이 거리에 먼저 돌았다. 형제는 거리 한복판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형이 크게 외쳤다.
“아우야, 어제 판은 네가 졌다고 들었다!”
“형님, 어제 판은 형님이 졌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자루 칼이 한꺼번에 뽑혔다. 형제는 서로 칼을 부딪치며 떡집 처마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형의 칼이 떡집 기둥을 비스듬히 베었고, 아우가 이 기둥을 발로 차고 공중으로 솟아 옹기전 처마를 밟고 찻집 지붕에 내려섰다. 옹기전 처마 끝이 꺾이며 독 둘이 길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찻집 서까래가 다시 부러졌다. 떡집 벽이 바우가 받쳐 놓은 버팀목째 안쪽으로 무너졌다. 찻집 주인이 마당에서 주저앉았다.
“이번이 세 번째요! 세 번째!”
거리 위쪽에서 세가 무사 둘이 팔짱을 끼고 이 비무를 구경했다. 막지 않았다. 칼 소리는 대회의 소리였다.
형제는 차 한 잔 마실 시간쯤 싸우다가 똑같이 칼을 거두었다. 형이 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승부다.”
“무승부요.”
둘은 나란히 거리 위쪽으로 걸어갔다. 바우가 떡집 무너진 벽 앞에서 뒤를 쫓아갔다.
“수리비요!”
형이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저었다.
“비무에서 부순 건 비무의 일이오, 목수.”
“비무는 형제끼리도 하는 거였어요?”
아우가 웃었다.
“형제끼리가 제일 재밌소.”
*
이 밤 소요진 객잔 거리에는 망치 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소리들이었다.
바우는 해 지기 전에 소란에게 솜을 얻었다. 첫날 이층에서 무너진 기와 밑에 깔렸던 새 이불이었다. 소란은 이불 홑청을 뜯어 솜을 꺼내 주면서 바우를 노려보았다.
“이 이불, 대회 손님 덮으려고 새로 넣은 거예요.”
“손님이 덮을 지붕을 지으려고요.”
“솜 값은 따로예요.”
“쌍칼 형제한테 받을게요.”
바우는 나무메 머리에 솜을 두 겹 감고 무명으로 단단히 묶었다. 메로 쳐 보았다. 퍽 하고 둔한 소리가 났다. 망치 소리는 아니었다. 나무못은 마른 것을 골라 일부러 구멍보다 아주 조금 가늘게 깎았다. 가는 나무못은 손으로 밀어도 들어갔다. 들어간 다음 물을 한 국자 부으면 나무가 물을 먹고 부풀어 구멍 벽을 꽉 물었다. 아버지가 비 오는 날 지붕을 고칠 때 쓰던 수였다.
자정이 되자 거리 사람들이 떡집과 찻집 앞에 모였다. 누가 부르지 않았다. 기름집 영감과 할멈이 물동이를 들고 왔고, 떡집 주인과 찻집 주인이 등을 하나씩 들었다. 처마 끝이 꺾인 옹기전 주인이 사다리를 메고 왔다. 구담은 무명을 감은 어깨로 거리 위쪽 어귀에 서서 세가 무사들이 순찰 도는 쪽을 지켰다.
마석공은 입을 막혔다.
“너는 말하지 마.”
바우가 말했다. 마석공이 입을 열려고 하자 소란이 행주로 마석공의 입을 막았다. 마석공은 행주를 문 채 눈을 굴리다가, 손짓을 시작했다. 손가락 셋을 펴서 서까래를 가리키고, 주먹을 쥐었다 펴서 기와 더미를 가리키고, 엄지로 쌍칼 형제가 걸어간 거리 위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하늘에 대고 비볐다.
“저건 또 뭐야?”
떡집 주인이 속삭였다. 소란이 대신 속삭였다.
“놀란 값이요.”
찻집 주인이 웃음을 참다가 등잔을 흔들었다. 바우가 찻집 주인을 노려보았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 밤 거리는 낮은 소리로만 일했다. 솜 감은 메가 나무못 머리를 퍽, 퍽 두드렸고, 물 국자가 나무못 위로 쪼르르 물을 부었다. 기와는 손에서 손으로 건너갔고, 내려놓을 때마다 기와 밑에 지푸라기 한 줌을 깔았다. 바우는 떡집의 베인 기둥에 나비장 둘을 파 넣었다. 끌을 망치로 칠 수 없어서 끌 등에 손바닥을 대고 체중을 실어 조금씩 밀었다. 손바닥 한가운데에 끌 자루 자국이 붉게 패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떡집 벽이 다시 섰고, 찻집 지붕이 다시 덮였고, 옹기전 처마가 제자리를 찾았다. 찻집 주인은 새 기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바우가 고친 집이 다섯으로 늘었다. 버들객잔, 기름집, 찻집, 떡집, 그리고 옹기전이었다.
*
아침에 세가 무사 둘이 순찰을 돌다가 떡집 앞에서 멈췄다. 어제 무너진 벽이 서 있었다. 무사 하나가 벽을 손으로 밀어 보았다. 꿈쩍하지 않았다. 다른 무사가 동료를 보았다.
“밤새 무슨 소리 들었나?”
“못 들었네.”
둘은 고개를 갸웃하며 지나갔다. 이 모습을 오길이 거리 어귀에서 보았다. 성 안 쪽으로 달려갔다.
*
교장 터 예선장 문 앞에는 이날 아침에도 고수들이 줄을 섰다. 문 옆의 큰 북은 첫날 이후 아무도 치지 않았다. 바우가 북채를 들었다.
둥, 둥, 둥.
이번에는 예선장 안까지 소리가 들어갔다. 비무대 위에서 칼을 맞대던 고수 둘이 손을 멈췄다. 집사가 차일 밖으로 나왔다. 바우를 보자 한숨을 쉬었다.
“또 목수요.”
“쌍칼 형제요.”
형제는 줄의 앞쪽에 서 있었다. 다음 판이 형제의 판이었다. 형이 바우를 보고 혀를 찼다.
“비무에서 부순 건 비무의 일이라 하지 않았소.”
“어제 떡집 기둥을 칼로 베셨어요. 아우님은 찻집 지붕을 밟아 서까래 둘을 부러뜨리셨고요. 떡집 기둥 나비장 값, 벽 다시 세운 값, 찻집 서까래와 기와, 옹기전 처마와 독 둘, 이불 솜 값까지 합해서 은자 열여섯 냥이오.”
“이불 솜?”
아우가 되물었다. 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에 썼어요. 형님들 때문에요.”
“증인.”
집사가 말했다. 바우는 대답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예선장 문 앞 비탈길에 거리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소란이 맨 앞이었고, 기름집 영감과 할멈, 찻집 주인, 떡집 주인, 옹기전 주인, 짐배 사공이 뒤였다. 뒤로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거리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마석공이 줄 옆을 걸어 내려가며 손가락을 접었다. 서른이었다. 줄 맨 끝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서른이요! 서른 다 봤어요!”
예선장 안의 고수들이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집사가 비탈길의 서른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형제를 돌아보았다.
“세 사람이면 되오. 서른이면 더 할 말 없소.”
형의 얼굴이 붉어졌다. 집사는 품을 뒤져 은자를 꺼냈다. 여덟 냥이었다. 아우가 제 품을 뒤집어 보였다. 동전 몇 닢이 떨어졌다.
“오길이 열 냥씩 줬소. 그 돈은 어젯밤 술값으로 나갔소.”
형이 바우를 보았다.
“오길이 그랬소. 부순 값은 방주가 다 문다고. 그러니 마음껏 부수라고.”
“그럼 나머지 여덟 냥은 방주한테 받을 돈이네요.”
“그렇소.”
“그 받을 자리를 저한테 넘기세요. 서른 사람 앞에서요.”
형이 아우를 보았다. 아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이 크게 말했다.
“쌍칼 형제가 철혈방 방주에게 받을 여덟 냥, 이 목수에게 넘기오!”
서른 사람이 들었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는 줄로 돌아가 비무대에 올랐다. 바우는 여덟 냥을 쥐고 비탈길을 내려왔다. 소란이 이 옆에 붙었다.
“그 여덟 냥, 정말 받을 수 있어요?”
“쇠도끼 두 냥 반, 쌍칼 여덟 냥. 열 냥 반이에요. 아직은 북 칠 만큼이 안 돼요.”
“북 칠 만큼이 얼마인데요?”
바우는 대꾸 없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철혈방이 산 집 열둘 가운데 다섯은 지붕이 벗겨진 채 빈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 시각 운하 끝 창고에서 오길은 설백천 앞에 서 있었다. 떡집 벽이 밤새 다시 섰고, 세가 무사들이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했다. 쌍칼 형제는 예선장 문 앞에서 서른 사람에게 둘러싸여 빚을 냈다고 했다.
설백천은 붓을 씻고 있었다. 붓끝의 먹물이 물에 다 풀릴 때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망치를 막으니 손으로 박는구려.”
“방주님, 개막이 사흘 남았습니다. 열두 채로는 가주께—”
“목수는 집을 세우오. 집은 흔들어도 다시 서오. 그러니 이제 집 말고 집주인을 흔드시오.”
설백천이 붓을 걸었다.
“전당포에 가서 버들객잔 빚 갚는 날을 당기시오. 해 지기 전까지 백 냥. 그 객잔이 거리의 입이오. 입이 닫히면 서른 사람도 증인 줄에 안 서오.”
오길의 얼굴이 밝아졌다. 설백천은 허리를 굽히고 창고를 나갔다.
*
해 질 무렵 성 안 쪽 길로 수레 넷이 들어왔다. 수레마다 쇠테를 두른 궤짝이 실렸고, 앞뒤로 표사들이 말을 탔다. 맨 앞의 말 위에 연옥이 있었다. 호연세가 대회 상금이었다. 수레는 소요진 거리를 지나 교장 터로 올라갔다. 거리 사람들이 처마 밑에서 이 궤짝을 구경했다. 궤짝 하나에 은괴가 몇 개 들었는지를 두고 찻집 주인과 옹기전 주인이 내기를 걸었다.
밤이 깊어서 연옥이 목공방 재 더미로 왔다. 바우는 타다 남은 통나무 셋의 숯을 대패로 깎아 내고 있었다. 연옥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고삐를 쥔 채 바우를 내려다보았다. 표사 옷에 먼 길 먼지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은괴 궤짝이 넷이었어요.”
“봤어요.”
“대회장 금고에 들어간 건 하나예요.”
바우가 대패를 멈췄다.
“나머지 셋은 집사가 다시 수레에 실어서 성 안으로 보냈어요. 운하 끝 철혈방 창고로. 내가 창고 마당까지 호송했어요. 받은 사람은 오길이에요. 오길이 궤짝마다 손바닥을 대고 웃었어요.”
연옥은 고삐를 손에 감았다.
“호연세가 상금이 철혈방 창고로 갔어요. 방주가 거리를 사는 돈이 어디서 나는지 이제 알겠죠.”
바우는 대패를 내려놓았다. 대팻날에 숯가루가 검게 묻어 있었다.
“내가 이걸 대회장 문 앞에서 말하면 남창 표국은 끝나요. 호연세가 일을 맡아 놓고 세가 속을 판 표국이 되니까요. 다시는 강남 어느 상단도 우리한테 짐을 안 맡겨요.”
말이 콧김을 뿜었다. 연옥이 바우를 똑바로 보았다.
“목수, 터뜨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