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74자)

십 년 전 객잔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구담의 칼은 칼집에서 반쯤 나와 있었다⁠. 아침 해가 이 반쪽 칼날에 걸려 재 더미 위로 흰 줄을 그었다⁠. 쇠도끼는 무릎을 꿇은 채 이 칼날을 올려다보았다⁠.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 참았던 말을 꺼내는 얼굴이었다⁠.

“⁠칼 넣어⁠. 나 베면 아무도 말 못 해 줘⁠.⁠”

바우가 구담의 칼 쥔 손목에 손을 얹었다⁠. 구담의 손목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바우는 손을 떼지 않았다⁠. 한참 뒤에 칼이 칼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쇠도끼가 재 묻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때 방주는 방주가 아니었어⁠. 운하 짐꾼 패 우두머리였지⁠. 대회 전야에 나하고 셋을 불러 은자 다섯 냥씩 쥐여 줬어⁠. 나루 옆 이층 객잔에서 한판 크게 붙으라고⁠. 대회에 나갈 놈들이 그 객잔에 많이 묵었거든⁠. 그중에 칼 잘 쓰는 젊은 놈이 하나 있었고⁠.⁠”

쇠도끼는 구담을 보았다⁠.

“⁠그 젊은 놈 방이 이층 끝이었어⁠. 우리가 아래층에서 상을 엎고 칼을 뽑으니까 그 젊은 놈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지⁠. 말리려고⁠. 우리가 계단 밑에서 붙잡고 엉겨 붙어 있는데 뒤에서 누가 지나갔어⁠.⁠”

“⁠누가⁠?⁠”

구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흰 옷⁠. 손에 쇠부채⁠. 부채 살 끝에 날을 벼린 거⁠. 방주는 그때도 그걸 들고 다녔어⁠. 그 부채가 한 번 펴졌다 접혔고⁠, 그 젊은 놈 왼팔이 계단에 떨어졌어⁠. 등잔이 넘어가서 불이 붙었고⁠, 객잔은 그 밤에 다 탔어⁠.⁠”

재 더미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마석공이 데인 손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소란이 행주를 쥔 채 구담을 보았다⁠. 구담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우는 이 얼굴이 무서웠다⁠.

“⁠객잔 터는요⁠?⁠”

바우가 물었다⁠.

“⁠방주가 샀지⁠. 불탄 터라 은자 몇 냥에⁠. 거기에 첫 창고를 세웠어⁠. 그게 철혈방의 시작이야⁠.⁠”

바우는 나흘 전 창고 마당에서 손바닥으로 쓸었던 주춧돌을 떠올렸다⁠. 강돌을 다듬은 둥근 돌⁠, 가장자리가 검게 그을린 돌⁠. 기둥 결과 반대로 누운 받침⁠.

“⁠방주가 우리한테 다섯 냥씩 준다 해 놓고 두 냥 반씩만 줬어⁠. 반은 나중에 준다고⁠. 십 년이야⁠. 그래서 이번에도 따라다녔지⁠. 이번엔 주려나 하고⁠.⁠”

쇠도끼가 바우를 올려다보았다⁠.

“⁠목수⁠, 불값 못 내⁠. 예선은 둘째 판에 떨어졌어⁠. 어제 머리를 싸맨 채 나갔다가 한 대 맞고 끝났지⁠. 그러니 북을 쳐도 소용없어⁠. 대신 이거 가져가⁠.⁠”

“⁠뭘요⁠?⁠”

“⁠방주가 나한테 안 준 두 냥 반⁠. 십 년 묵은 거⁠. 그 돈 받을 자리를 자네한테 넘긴다고⁠. 여기 다들 들었지⁠?⁠”

쇠도끼는 둘러선 사람들을 보았다⁠. 소란이⁠, 기름집 영감이⁠, 찻집 주인이⁠, 마석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넷이었다⁠. 바우는 이 빚이 어떤 무게인지 손바닥으로 잴 수가 없었다⁠. 두 냥 반은 목공방 기둥 하나 값도 안 되었다⁠. 그런데 이 두 냥 반에는 설백천의 쇠부채가 묶여 있었다⁠.

“⁠받을게요⁠.⁠”

바우가 고개를 돌렸을 때 구담이 없었다⁠.

*

“⁠외팔 손님 어디 갔어요⁠?⁠”

마석공이 재 더미를 한 바퀴 돌며 외쳤다⁠. 버들객잔 이층 동쪽 끝 방은 비어 있었다⁠. 대문 기둥에 기대 두던 칼도 없었다⁠. 소란이 대문 밖 흙길을 보았다⁠. 성 안 쪽으로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었다⁠. 보폭이 넓었다⁠.

바우는 아버지의 대패를 소란에게 맡기고 뛰었다⁠. 마석공이 데인 손을 감싼 채 따라붙었다⁠.

“⁠너는 오지 마⁠.⁠”

“⁠제가 창고 뒷담 넘는 데 알아요⁠. 어젯밤에 넘어 봤거든요⁠.⁠”

*

운하 끝 철혈방 창고 첫째 동 마당에는 짐꾼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마당 가장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구담은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설백천은 처마 밑 탁자 앞에 서서 쇠부채를 접어 쥐고 있었다⁠. 흰 장포 자락에 먼지 하나 없었다⁠.

“⁠십 년 만이오⁠, 구 대협⁠.⁠”

설백천이 먼저 말했다⁠. 구담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 밤 계단 밑에서 날 봤소⁠?⁠”

구담의 목소리는 낮았다⁠.

“⁠못 봤소⁠. 그래서 이 대회에 다시 나오려 했소⁠. 누가 그랬는지 모르면 단상에 서서 강남 무림을 다 내려다보면 된다고 생각했소⁠. 그 자리에 있으면 언젠가 그놈이 나를 올려다볼 테니⁠.⁠”

“⁠그런데 내 돈을 받고 버들객잔에서 싸웠소⁠.⁠”

“⁠그때는 참가비가 없었소⁠.⁠”

설백천이 부채를 폈다⁠. 쇠 살이 차르륵 펼쳐지면서 살 끝의 날이 햇빛을 받았다⁠.

“⁠참가비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았구려⁠. 그 열 냥을 받던 날 구 대협은 십 년 전 그 밤에 한 번 더 진 거요⁠.⁠”

구담이 뛰었다⁠.

한 팔의 칼은 두 팔의 칼보다 짧게 움직였다⁠. 몸 전체가 칼을 따라가야 했다⁠. 구담은 칼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고⁠, 설백천은 반걸음 물러서며 부채로 칼날을 받았다⁠. 쇠와 쇠가 긁히는 소리가 마당에 길게 울렸다⁠. 구담이 칼을 돌려 다시 찔렀다⁠. 설백천은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고 부채를 접었다가 폈다⁠.

구담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하나 남은 팔의 어깨였다⁠. 칼끝이 흙으로 처졌다⁠. 구담이 이를 악물고 칼을 다시 들어 올렸지만 팔이 반쯤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설백천이 부채를 접고 한 걸음 다가섰다⁠.

“⁠이번엔 그 팔은 붙여 두고 돌아가시오⁠, 구 대협⁠. 칼은 못 쥐어도 밥은 먹게⁠.⁠”

바우가 이때 창고 마당에 들어섰다⁠. 구담에게 가지 않았다⁠. 처마 밑 기둥으로 갔다⁠.

첫째 동 기둥 가운데 운하 쪽 두 번째 기둥⁠, 나흘 전 손바닥으로 쓸었던 이 기둥이었다⁠. 그을린 강돌 주춧돌 위에 받침이 결을 거슬러 누워 있었고⁠, 받침과 기둥 사이에는 높이를 맞추느라 쐐기 둘이 박혀 있었다⁠. 십 년 전 서두른 이 손의 솜씨 그대로였다⁠. 바우는 허리에서 끌을 뽑아 쐐기 하나의 머리에 대고 망치로 옆을 쳤다⁠.

쐐기가 튀어나왔다⁠.

창고 지붕이 신음했다⁠. 기둥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주저앉았고⁠, 기둥 머리가 받치던 대들보가 운하 쪽으로 기울었다⁠. 대들보 위 다락에 쌓인 소금 섬들이 한꺼번에 미끄러지는 소리가 지붕 속에서 났다⁠. 짐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당 밖으로 달아났다⁠. 다락 끝에서 소금 섬 하나가 떨어져 운하에 빠졌다⁠. 첨벙 소리가 컸다⁠.

설백천이 돌아보았다⁠.

바우는 끌을 두 번째 쐐기에 대고 있었다⁠. 망치를 쥔 손이 떨리지 않았다⁠.

“⁠이것까지 빼면 다락의 소금 삼백 섬이 운하로 갑니다⁠. 기둥 셋이 같이 넘어가고요⁠.⁠”

“⁠목수 양반⁠.⁠”

“⁠구 대협 데리고 나갈게요⁠. 방주님은 거기 계세요⁠.⁠”

설백천은 부채를 쥔 채 바우를 보았다⁠. 그리고 기울어진 대들보를 보았다⁠. 다락 끝에서 소금 섬 하나가 또 비죽이 밀려 나왔다⁠. 부채를 접었다⁠.

“⁠가시오⁠.⁠”

마석공이 구담의 왼쪽⁠, 빈 소매 쪽으로 파고들어 구담을 부축했다⁠. 바우는 끌을 쐐기에 댄 채 뒷걸음질로 기둥에서 물러났다⁠. 마당 문을 나서기 직전에 말했다⁠.

“⁠이 창고⁠, 십 년 전 객잔 주춧돌 위에 서 있죠⁠. 주춧돌이 다 그을렸어요⁠.⁠”

설백천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무언가 움직였다⁠. 설백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

목수와 외팔 검객이 마당을 나가고 나서야 짐꾼들이 돌아왔다⁠. 설백천은 이들에게 다락의 소금 섬을 반쯤 내려 마당에 쌓게 했다⁠. 기울어진 대들보가 무게를 덜자 끙 소리를 내며 조금 돌아왔다⁠. 짐꾼 둘이 빠진 쐐기를 주워 와 다시 박으려 했다⁠. 설백천이 손을 들어 말렸다⁠.

“⁠성 안 목수를 부르시오⁠. 철혈방 목수 말고⁠.⁠”

설백천은 기둥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을린 주춧돌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으로 검은 가장자리를 문질렀다⁠. 십 년 동안 아무도 이 돌을 보지 않았다⁠. 짐꾼은 소금 섬만 보고⁠, 손님은 창고 문만 본다⁠. 목수만 돌을 보았다⁠.

오길이 목에 감은 천을 만지며 다가왔다⁠.

“⁠방주님⁠, 목수 놈이 저렇게 나오면 거리 일이 늦어집니다⁠. 가주께 대회 전까지 서른 채는⁠—⁠”

“⁠알고 있소⁠.⁠”

설백천이 일어나 장포 자락을 털었다⁠.

“⁠목수의 손을 막으려면 나무가 아니라 망치를 막아야 하오⁠. 세가 집사에게 가시오⁠. 예선 치르는 고수들 귀가 시끄럽다고 말씀드리시오⁠. 집사는 가주의 귀를 아끼는 사람이오⁠.⁠”

오길이 고개를 숙였다⁠. 설백천은 빠진 쐐기를 발끝으로 밀어 운하 쪽으로 굴렸다⁠. 쐐기는 물에 떨어져 떠내려갔다⁠.

*

소란이 구담의 어깨를 무명으로 감았다⁠. 상처는 깊었지만 힘줄은 피해 갔다⁠. 구담은 이를 악물고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 감고 나서 소란이 실을 이로 끊었다⁠. 구담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부채였소⁠.⁠”

구담은 이 말만 했다⁠. 소란은 대답하지 않고 구담의 칼을 닦아 칼집에 넣어 주었다⁠. 구담은 칼집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이 위에 얹었다⁠. 손가락이 칼집을 쥐려다 반쯤 쥐고 멈췄다⁠.

*

목공방 재 더미 옆에 바우와 마석공이 앉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바우가 허리춤에서 은자를 꺼냈다⁠. 여덟 냥이 남아 있었다⁠. 그중 세 냥을 마석공의 데지 않은 손에 올렸다⁠.

“⁠석 달 치⁠.⁠”

마석공은 이번에는 돌려주지 않았다⁠. 은자를 쥐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오길 씨 선금 열 냥이랑 하루 품삯 한 냥은 어젯밤 창고 탁자에 두고 왔어요⁠.⁠”

“⁠잘했어⁠.⁠”

“⁠그리고 형님⁠, 불 속에 들어간 값은요⁠?⁠”

“⁠그건 따로 줄게⁠.⁠”

“⁠놀란 값은요⁠?⁠”

“⁠그건 거짓이야⁠.⁠”

마석공이 웃었다⁠. 데인 손이 아파 웃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바우는 타다 남은 통나무 셋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겉은 숯이었지만 속은 살아 있었다⁠. 숯을 깎아 내면 서까래 감 열은 나왔다⁠.

*

이튿날 아침이었다⁠. 바우는 버들객잔 이층에 남은 기와 줄을 마저 고르고 있었다⁠. 첫날 밤 올린 대들보 위로 기와가 마지막 한 줄만 남아 있었다⁠. 동쪽 끝 서까래를 도리에 물리는 나무못 하나를 구멍에 세우고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만⁠.⁠”

아래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바우가 내려다보았다⁠. 버들객잔 대문 앞에 검은 옷의 사내 다섯이 서 있었다⁠. 맨 앞에 선 사람은 쉰 줄의 마른 사내였다⁠. 등록처 차일 아래에서 은자를 받던 호연세가 집사였다⁠. 뒤의 넷은 허리에 같은 모양의 칼을 찼다⁠. 세가 무사들이었다⁠. 이 무사들 뒤에 오길이 목에 천을 감고 서 있었다⁠.

집사가 손에 든 목패를 들어 보였다⁠. 호연세가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합비 지현께서 대회 기간 성 밖 대회장 둘레의 질서를 호연세가에 맡기셨소⁠. 오늘부터 예선이 끝날 때까지 교장 아래 이 거리에서는 망치 소리를 낼 수 없소⁠. 예선을 치르는 고수들의 귀를 어지럽히오⁠.⁠”

거리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 소란이 앞치마를 쥐고 대문간에 섰다⁠.

“⁠우리 집 지붕이 아직 다 안 덮였어요⁠!⁠”

“⁠그건 세가가 알 바 아니오⁠.⁠”

기름집 영감이 국자를 든 채 거리 아래쪽에서 올라왔다⁠.

“⁠망치 소리가 시끄러우면 칼 소리는 안 시끄럽소⁠? 그 칼 소리에 우리 집이 무너졌는데⁠.⁠”

“⁠칼 소리는 대회의 소리요⁠. 비무는 막지 않소⁠.⁠”

집사가 바우를 올려다보았다⁠. 바우의 망치는 나무못 머리 위 한 뼘 높이에 떠 있었다⁠.

“⁠목수⁠, 그 망치를 한 번만 더 내리치면 그 집은 세가 무사들이 헐겠소⁠. 대회장의 법도를 어긴 집은 대회장 둘레에 둘 수 없소⁠.⁠”

오길이 집사 뒤에서 웃음을 참았다⁠. 무사 넷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바우는 망치를 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무못이 구멍 위에서 반 치쯤 비스듬히 서 있었다⁠. 이대로 두면 서까래가 도리에 물리지 않았다⁠. 바람이 한 번 불면 마지막 기와 줄이 미끄러질 자리였다⁠.

바우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망치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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