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36자)
불난 목공방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기름집 문간에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었다. 마석공이 내민 은자 위로 이 빛이 떨어져 은자가 흰 물처럼 번쩍였다. 기름집 영감은 국자를 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바우는 마석공 앞에 섰다. 검푸른 두루마기가 견습의 마른 어깨에서 헐렁하게 흘러내렸다. 철혈방 거간 옷이었다. 오길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웃었다.
“영감님 집은 안 판대.”
“형님한테 물은 거 아닌데요.”
마석공이 영감 쪽으로 돌아섰다. 목소리가 장터 목소리로 바뀌었다.
“영감님, 서른다섯 냥이에요. 어젯밤 염색집 보셨죠? 쪽 항아리 열둘이 하룻밤에 다 깨졌어요. 다음에 이 거리에서 비무가 나면 기름틀이 깨져요. 기름틀 깨지면 영감님 손에 남는 건 국자 하나예요. 국자 값은 안 쳐 드려요.”
영감의 입술이 떨렸다. 마석공은 이 떨림을 보았고,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지금 팔면 서른다섯 냥으로 성 안 동문 시장에 방 두 칸을 얻어요. 거기다 기름틀만 옮기면 돼요. 기름틀 옮기는 수레 값은 제가 오길 씨한테 받아 드릴게요.”
할멈이 영감의 소매를 잡았다. 영감이 할멈을 보았다. 오길의 웃음이 깊어졌다.
바우는 허리춤에서 은자 세 냥을 꺼냈다. 마석공의 손바닥에 놓았다.
“석 달 치야.”
거리가 조용해졌다. 마석공은 손바닥 위의 은자를 내려다보았다. 철혈방 은자 서른다섯 냥 위에 바우의 세 냥이 얹혔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바우의 세 냥만 집어 바우의 손에 도로 쥐여 주었다.
“늦었어요, 형님. 오길 씨가 선금으로 열 냥 줬어요.”
“그 열 냥 돌려주면 돼.”
“이건 소호 영감 갚으세요. 형님 개막 날 해 지면 기둥 뽑혀요.”
마석공은 영감에게 고개를 숙였다.
“영감님, 생각해 보세요. 오늘 해 질 때까지 서른다섯 냥이에요. 내일은 서른이에요.”
마석공은 오길을 따라 거리 위쪽으로 걸어갔다. 두루마기 자락이 흙에 끌렸다. 영감이 국자를 내리고 바우를 보았다.
“석공이가 저렇게 값을 잘 부르는 놈인 줄 몰랐어.”
“저도 몰랐어요.”
*
이날 오후, 바우는 떡집 벽을 바로잡았다. 기울어진 흙벽 머리에 새 도리를 걸어 염색집 쪽 빈 하늘을 막고, 벽 속의 욋가지를 하나씩 손으로 더듬어 끊어진 자리를 새로 엮었다. 구담이 사다리를 붙잡아 주었다.
사다리 위에서 바우는 거리 위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마석공이 거기 있었다. 오길보다 한 걸음 앞에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어젯밤 손을 들지 않은 열하나 가운데 하나인 국숫집 옆 짚신 가게 주인이 마석공과 마주 섰다. 마석공은 손을 크게 휘저으며 말했고, 짚신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가, 결국 은자를 받았다. 이 다음 집도 그랬다. 오길은 뒤에서 주머니만 열었다.
“어제 대청에서 오길이 못 산 집들이오.”
구담이 사다리 밑에서 말했다.
“견습이 판 거요.”
바우는 사다리 위에서 입을 다물었다. 욋가지 매듭 하나를 너무 세게 당겨 끊어 먹었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 이 가시를 이로 빼내는 동안 짚신 가게 주인이 짐 보따리를 지고 거리를 내려가 나루 쪽으로 사라졌다. 철혈방 것이 된 집이 열둘이 되었다.
떡집 일을 마치고 내려오자 소란이 사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앞치마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바우의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도 손수건을 내밀지 않았다.
“석공이 품삯 석 달 밀렸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기름집 할멈이요. 온 거리가 다 알아요.”
바우는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소란이 팔짱을 꼈다.
“바우 씨는 외팔 손님한테는 등록처 북까지 치고 열 냥을 받아 냈어요. 표사한테는 지붕을 타고 쫓아가서 일곱 냥을 받았고요. 그런데 제 사람 품삯은 석 달을 안 줬어요. 거리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보겠어요?”
“나무 값이 먼저였어요.”
“나무 값이 먼저인 사람은 오길이에요. 오길은 나무를 사고, 석공이를 샀어요.”
바우가 입에서 손가락을 뺐다. 피가 다시 맺혔다. 소란은 그제야 손수건을 꺼내 바우의 손가락을 감았다. 감는 손이 거칠었다.
“오길이 내 빚도 알아요.”
바우가 고개를 들었다.
“성 안 전당포에 백 냥이요. 그 전당포 주인이 이번 달에 바뀌었대요. 누구로 바뀌었는지는 바우 씨도 알겠죠.”
“왜 말 안 했어요?”
“바우 씨는 석공이한테 왜 말 안 했어요?”
소란은 손수건 끝을 단단히 묶고 객잔으로 돌아갔다. 바우는 감긴 손가락을 오래 보았다.
*
해가 진 뒤 마석공은 운하 끝 철혈방 창고 첫째 동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오늘 산 두 집 값을 치르고 남은 은자가 놓여 있었다. 오길이 이것을 세다가 마석공에게 한 냥을 밀어 주었다.
“오늘 품삯이야. 둘을 사면 한 냥, 셋을 사면 한 냥 반.”
마석공은 이 한 냥을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바우 집에서 석 달을 일해 받을 돈의 삼분의 일이 하루에 들어왔다. 은자는 차갑고 가벼웠다.
설백천이 두 번째 동에서 걸어 나왔다. 마석공 앞에 서서 은자를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견습, 하나 불러 보게. 소요진 거리 끝 목수 집 터. 얼마요?”
마석공이 고개를 들었다.
“목공방이요?”
“집이 서 있을 때 값, 무너졌을 때 값, 타 버렸을 때 값.”
마석공의 손 안에서 은자가 미끄러졌다. 마석공은 이것을 다시 쥐었다.
“목공방은 안 팔아요. 형님 아버지가 지은 데예요.”
“팔지 않아도 값은 있소.”
설백천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오길을 데리고 처마 끝으로 갔다. 둘의 목소리가 낮아졌지만 창고 처마는 소리를 모았다. 지붕이 낮고 서까래가 촘촘해서, 마석공은 이 처마 구조를 알아서 목소리가 어디로 흘러올지를 알았다. 은자를 세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주께 대회 전까지 서른 채는 넘겨야 하오. 지금 열둘이오.”
“목수가 하룻밤에 세우는 통에 값이 안 떨어집니다, 방주님.”
“그 손을 묶으시오. 나무가 있는 데를.”
“뗏목 나무가 아직 아홉 그루 목공방 처마 밑에 있습니다. 기름 두 동이면 됩니다. 쇠도끼를 보내지요.”
“사람은 다치지 않게 하시오. 단상에서 피 냄새가 나면 가주께서 싫어하시오.”
마석공은 손에 쥔 한 냥을 탁자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일어나 뒷간 쪽으로 걸었다. 뒷간 담을 넘었다. 이 다음부터는 뛰었다.
*
목공방은 성 안에서 소요진 거리 끝까지 반 시진 거리였다. 마석공은 이 길을 숨이 찢어지게 달렸다. 두루마기 자락이 다리에 감겨 두 번 넘어졌고, 세 번째에 두루마기를 벗어 던졌다.
거리 어귀에 닿았을 때 목공방 쪽 하늘이 붉었다.
“불이야! 목공방에 불이야!”
이 소리가 거리를 깨웠다. 버들객잔 대문을 지키던 구담이 먼저 뛰었고, 떡집 벽 밑에서 잠들었던 바우가 눈을 떴다. 처마 밑 통나무 더미에 붙은 불이 목공방 지붕으로 옮겨붙고 있었다. 송진 먹은 소나무는 불이 붙으면 기름처럼 탔다. 불길이 탁탁 소리를 내며 서까래를 타고 올랐다.
소란이 물동이를 들고 뛰어나왔다. 기름집 영감과 할멈이, 찻집 주인이, 떡집 주인이 따라 나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남비하 둑에서 목공방까지 사람이 줄을 섰다. 물동이가 손에서 손으로 건너왔다. 물이 불에 끼얹어질 때마다 흰 김이 치솟았다.
거리 어귀 쪽 어둠 속에 오길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오길의 발치에 마석공이 벗어 던진 검푸른 두루마기가 떨어져 있었다. 오길은 이것을 내려다보고, 불을 보고, 물동이 줄을 보았다. 줄이 생각보다 길었다. 두루마기를 발로 밀어 놓고 성 안 쪽으로 걸어갔다.
마석공은 줄에 서지 않았다. 목공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석공아!”
바우가 문간까지 따라갔다. 연기가 눈을 찔렀다. 안쪽 벽에 걸린 연장 선반이 불빛에 흔들렸다. 마석공이 선반 앞에 서서 무언가를 끌어 내리고 있었다. 대패였다. 바우 아버지가 쓰던 느티나무 대패, 손잡이가 아버지의 엄지 모양으로 패인 이것. 이 옆의 먹통도. 선반 위 서까래 하나가 불붙은 채 내려앉았다.
마석공은 대패와 먹통을 가슴에 안고 엎드렸다. 불붙은 서까래가 마석공의 등 옆으로 떨어졌다. 바우가 뛰어들어 마석공의 허리를 끌었다. 둘이 문간으로 굴러 나왔다. 마석공의 오른손 등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대패 손잡이를 쥐었던 손이었다.
“형님, 대패요.”
“알아.”
“먹통도요.”
“알아, 이놈아.”
목공방 지붕이 무너졌다. 불티가 하늘로 솟구쳤다. 물동이 줄은 멈추지 않았다. 동이 틀 무렵 불이 꺼졌다. 목공방 기둥 넷 가운데 셋이 숯이 되었고, 처마 밑 통나무 열두 그루 가운데 아홉 그루가 재가 되었다. 타다 만 셋이 검게 그을린 채 누워 있었다.
소란이 마석공의 손에 찬물을 부었다. 마석공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바우를 올려다보았다.
“형님, 들은 거 있어요. 방주가 호연세가 가주한테 거리를 넘긴대요. 대회 전까지 서른 채. 지금 열둘이고요.”
바우는 마석공을 보았다. 그을음이 묻은 견습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두 줄 그어져 있었다. 연기 탓인지 아닌지 바우는 묻지 않았다.
“호연세가가 왜 객잔 거리를 사?”
“그건 못 들었어요. 근데 단상에서 피 냄새 나면 가주가 싫어한대요.”
소란이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기름집 영감이 할멈과 눈을 마주쳤다. 서른 채라는 말이 물동이 줄을 따라 뒤로 건너갔다.
*
구담은 불길이 처음 치솟던 순간에 목공방 뒤쪽을 보았다. 둑길로 덩치 하나가 달아나고 있었다. 물동이 대신 이 덩치를 쫓았다.
둑길은 남비하를 따라 갈대밭으로 이어졌다. 덩치는 갈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갈대가 사람 키보다 높았고, 밤이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구담은 칼을 뽑지 않았다. 한 팔로 칼을 뽑으면 갈대를 헤칠 손이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갈대가 바람에 눕는 소리와 사람이 헤치고 지나가는 소리는 달랐다. 왼쪽으로 열 걸음, 무언가 철벅 물을 밟았다. 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왔다.
구담은 이 냄새 쪽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덩치가 뻘에 발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구담이 덩치의 뒷덜미를 잡았다. 덩치가 팔꿈치를 휘둘렀고, 구담은 이 팔꿈치를 어깨로 받아 낸 다음 무릎으로 덩치의 오금을 찍었다. 덩치가 뻘에 무릎을 꿇었다. 쇠도끼였다. 도끼는 없었다. 불을 놓으러 오면서 도끼는 두고 왔다.
해가 다 떠올랐을 때 구담이 돌아왔다. 한 손으로 쇠도끼의 뒷덜미를 잡아 끌고 있었다. 쇠도끼의 옷자락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구담이 이 사람을 재 더미 앞에 내던졌다. 쇠도끼가 무릎을 꿇은 채 재를 한 줌 집어 들었다가 털었다.
바우가 이 앞에 섰다. 손에 아버지의 대패를 들고 있었다. 망치는 허리에 있었다.
“목공방 기둥 셋, 지붕, 통나무 아홉 그루. 그리고 견습 손 데인 값.”
“그건 형님이 받아요?”
마석공이 소란 뒤에서 물었다. 바우는 못 들은 척했다. 쇠도끼가 웃었다. 이가 그을음에 검었다.
“불값? 목수, 나도 받을 돈이 있어. 그거부터 받고 내야지.”
“누구한테요?”
쇠도끼의 눈이 바우를 지나 구담에게 갔다. 이 눈이 구담의 빈 왼쪽 소매에 머물렀다.
“십 년 전 대회 전야, 소요진 나루 옆 객잔 하나가 무너졌지. 그 객잔 값을 방주가 나한테 아직 반밖에 안 줬어.”
구담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구담의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