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14자)
열아홉 집의 손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연옥의 칼끝이 오길의 목울대 위에서 떨렸다. 떨린 것은 칼이 아니라 오길의 목이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울대가 칼끝에 닿았다 떨어졌다.
설백천은 탁자 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찻주전자를 들어 빈 잔 하나에 차를 따르고 탁자 건너편으로 밀었다.
“앉으시오. 칼은 들고 앉아도 되오.”
“도둑이 철혈방 짐꾼이었어요.”
“알고 있소.”
연옥이 설백천을 보았다. 바우도 보았다. 설백천은 숨기지 않았다. 숨길 것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오길이 표사 양반을 속였소. 그건 오길의 잘못이오.”
오길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백천은 오길을 보지 않고 소매에서 은자 열 냥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뗏목 품삯이오. 지키지 못한 건 표사 양반 탓이 아니라 표사를 물 위에 세운 우리 탓이오.”
설백천은 은자 옆에 다시 한 무더기를 놓았다. 스물다섯 냥이었다.
“그리고 일거리가 하나 있소. 호연세가가 대회 상금으로 걸 은괴를 금릉에서 합비까지 실어 와야 하오. 호송을 맡아 줄 표국을 찾고 있소. 쉰 냥이오. 반은 지금, 반은 닿으면.”
연옥의 칼끝이 반 치 내려갔다. 쉰 냥이면 남창 표국 마당의 마른 말 세 필이 겨울을 넘기고, 말 시장 빚을 갚고도 남았다. 호연세가 상금을 실어 나른 표국이라면 강남 어느 상단이든 짐을 맡긴다.
바우가 탁자 앞으로 나섰다.
“그 전에 수리비요.”
설백천이 바우를 보았다. 연옥도 보았다. 바우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찻집 서까래 둘에 기와 열둘, 세 냥. 버들객잔 부엌 서까래 하나에 기와, 두 냥. 쌀 한 섬, 한 냥 반. 쌀독 금 간 것, 반 냥. 합해서 일곱 냥이오.”
마석공이 끼어들었다.
“쌀알 줍는 값은—”
“쌀알은 할멈이 다 주웠어.”
연옥이 칼을 칼집에 넣었다. 탁자 위의 스물다섯 냥에서 일곱 냥을 덜어 바우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남은 은자와 뗏목 품삯 열 냥을 쓸어 품에 넣었다.
“빚은 빚이에요.”
“이건 철혈방 돈인데요.”
“이제 내 돈이에요. 내 돈으로 내 빚 갚은 거예요.”
연옥은 바우를 똑바로 보았다.
“당신 편 든 거 아니에요. 나흘 뒤에 금릉에서 은괴 싣고 올 거예요.”
연옥은 차양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설백천은 거리 위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오길이 목을 문지르며 설백천 옆으로 비켜섰다. 오길의 목울대에 칼끝이 남긴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목수 양반은 수리비를 다 받았구려.”
“찻집 지붕은 받았어요. 방주님이 사신 표사가 낸 걸로요.”
“표사를 산 게 아니오. 일을 맡긴 거요.”
바우는 은자를 허리춤에 넣었다. 남은 한 냥과 합쳐 여덟 냥이었다. 소호 뗏목 영감에게 갚을 외상이 열 냥이었다.
*
찻집 지붕은 이날 해 지기 전에 다시 덮였다. 첫날 아침 고치다 만 것을 오늘 아침 마저 덮었다가, 표사에게 뚫리고 다시 고친 지붕이었다. 찻집 주인은 바우가 사다리를 내려오자 뜨거운 차를 한 사발 내밀었다.
“총각, 이제부터 우리 찻집 차는 평생 공짜야.”
“평생은 너무 길어요.”
“그럼 대회 끝날 때까지.”
“그건 너무 짧고요.”
마석공이 사발을 가로채 마셨다.
“그럼 형님 장가갈 때까지로 해요. 그게 평생이니까.”
찻집 주인이 웃다가 차를 쏟았다. 버들객잔, 기름집에 이어 세 번째 집이었다.
*
짐꾼이 골목에서 한 말은 해 지기 전에 거리 끝까지 퍼졌다. 지붕으로만 뛰라고 했다. 어느 지붕인지는 오길이 정했다. 무너지면 오길이 샀다.
소란은 저녁 장사를 접고 대청에 탁자를 붙였다. 술 대신 보리차를 내고, 거리 마흔 채의 주인들을 불렀다. 철혈방에 이미 팔린 집 여덟 채를 빼면 서른두 채였다. 서른두 집에서 모두 사람이 왔다. 대청이 꽉 찼고, 대들보 아래 등잔 불이 사람들 숨에 흔들렸다.
“걱정은 다음 차례예요.”
소란이 대청 한가운데 섰다.
“다음 비무가 어느 지붕에서 날지 우리는 몰라요. 근데 오길은 알아요.”
염색집 주인이 손을 들었다. 손톱 밑이 쪽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럼 미리 팔면 제값이라도 받지 않소?”
“제값이 얼마예요?”
대답은 대문 쪽에서 왔다.
“그걸 내가 부르러 왔소.”
오길이 은자 주머니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대청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길을 텄다. 대청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소란 옆에 섰다. 목울대의 붉은 점은 천으로 가렸다.
“오늘 팔면 서 있는 값을 쳐 드리오. 염색집 서른 냥, 국숫집 스물여덟 냥, 찻집 서른다섯 냥, 기름집은 서른. 무너진 다음에 팔면 일곱 냥이오. 고르시오.”
대청이 술렁였다. 염색집 주인이 손가락을 꼽았다. 이때 대청 구석에서 누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마석공이었다.
“염색집 서른 냥이요? 염색집 마당에 쪽 항아리가 열둘이에요. 항아리 하나에 쪽물 들인 지 삼 년이면 그 항아리만 두 냥이에요. 열둘이면 스물넷. 집은 따로요.”
오길이 마석공을 보았다. 웃었다.
“견습, 무너지면 항아리도 깨지네.”
“안 무너지면요? 안 무너지면 삼백 냥이에요. 무너져도 형님이 하룻밤에 세우면 또 삼백 냥이에요. 그러니까 일곱 냥은 하룻밤 값도 안 되고, 서른 냥은 하루 낮 값이에요. 철혈방은 하룻밤 값에 삼백 냥짜리를 사겠다는 거예요.”
“형님이 하룻밤에 세울 나무가 어디 있나? 목재 시장은 비었네.”
“소호 뗏목에서 왔잖아요. 오길 씨가 지키라고 세운 표사가 물에 빠지는 바람에요.”
대청 뒤쪽에서 누가 키득거렸다. 오길의 귀가 붉어졌다.
“국숫집 스물여덟.”
“국숫집 솥이 세 개예요. 아저씨네 국수 먹으려고 나루에서 줄 서는 뱃사람이 하루 쉰이에요. 쉰 그릇 열흘이면—”
“국수 값까지 왜 자네가 세나?”
“오길 씨는 국숫집을 사는 게 아니라 쉰 그릇을 사는 거니까요.”
국숫집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길이 은자 주머니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짤랑 소리가 컸다.
“말은 견습이 잘하네. 그런데 은자는 내가 들고 있지.”
이 말에 대청이 다시 조용해졌다. 은자 소리는 마석공의 입보다 무거웠다. 오길은 마석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자네 그 입이면 철혈방에서 하루에 은자 한 냥이야. 목수 집에서 얼마 받나?”
마석공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바우는 이 얼굴을 대청 기둥 옆에서 보았다.
소란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쳤다.
“하나만 합시다. 오늘부터 이 거리 어느 집이든 부서지면, 그 수리비를 받으러 가는 일을 바우 씨한테 맡겨요. 부순 놈이 누구든, 어디로 도망가든. 바우 씨가 받아 오면 그걸로 고치고요. 대회장 문 앞 북을 쳐야 하면 우리가 증인으로 같이 가요. 맡길 사람 손 드세요.”
소란이 먼저 손을 들었다. 기름집 영감이 할멈의 손까지 붙잡아 같이 들었다. 찻집 주인이 들었다. 하나, 둘, 손이 올라갔다. 바우는 이 손들을 세다가 목이 메었다. 열아홉이었다.
염색집 주인은 손을 들지 않았다. 오길 앞으로 가서 은자 서른 냥을 받았다. 국숫집 주인이 뒤를 따랐다. 오길은 두 집 값을 치르고 은자 주머니를 들었다.
“열아홉이라. 그래도 열하나는 남았구려.”
오길은 대청을 나가다가 문간에서 마석공을 돌아보았다.
“하루 한 냥이야, 견습. 생각나면 운하 끝으로 오게.”
*
자정 무렵 거리 아래쪽에서 기와 깨지는 소리가 줄줄이 났다. 비무가 아니었다. 칼 소리도 고함도 없이 기와만 깨졌다.
바우가 달려갔을 때 염색집 지붕은 이미 반이 벗겨져 있었다. 철혈방 짐꾼 여남은이 사다리를 걸고 기와를 아래로 내던졌고, 마당에서는 쇠도끼가 도끼 등으로 쪽 항아리를 하나씩 깨고 있었다. 항아리가 깨질 때마다 쪽물이 쏟아져 마당을 넘어 거리로 흘렀다. 달빛 아래 흙길이 검푸르게 물들었다. 바우의 짚신이 이 물에 젖어 발가락까지 파랗게 배었다.
“팔린 집이오. 우리 집 우리가 허는데 무슨 상관이오.”
쇠도끼가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바우는 대답 대신 염색집과 이 옆 떡집 사이의 벽을 보았다. 두 집이 벽 하나를 같이 썼다. 염색집 지붕을 벗기면서 이 벽 머리를 누르던 도리가 빠졌고, 벽이 떡집 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만큼 기울어 있었다. 떡집 주인은 오늘 저녁 대청에서 손을 든 열아홉 가운데 하나였다.
바우는 벽에 손바닥을 댔다. 흙벽 속의 욋가지가 우는 것이 손에 전해졌다.
“이 벽 반은 떡집 거예요.”
“반이든 온이든.”
“벽을 받치는 저 기둥은 떡집 기둥이에요. 저 기둥 하나라도 건드리면 떡집 수리비를 받으러 대회장 문 앞 북을 칩니다. 쇠도끼 씨 이름으로요. 예선 둘째 판이 모레죠?”
쇠도끼의 도끼가 어깨에서 내려왔다. 쇠도끼는 바우를 노려보다가 짐꾼들에게 소리쳤다.
“벽 쪽은 놔둬!”
짐꾼들이 사다리를 옮겼다. 바우는 떡집 주인을 깨워 버팀목 둘을 받쳤다. 염색집은 새벽까지 지붕이 다 벗겨졌고 쪽 항아리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열아홉 집이 손을 든 이 밤, 거리에 처음으로 빈 하늘이 뚫렸다. 떡집 벽은 서 있었다.
*
밤이 깊어 목공방에는 바우와 마석공만 남았다. 바우는 내일 쓸 서까래 감을 손바닥으로 훑고 있었다. 마석공은 대팻밥을 쓸다가 빗자루를 세워 놓았다.
“형님.”
“응.”
“석 달이에요.”
바우의 손이 멈췄다.
“석 달 치 품삯이요. 한 달에 한 냥, 세 냥. 첫 달은 형님이 목공방 지붕 이느라 못 준댔고, 둘째 달은 장마에 일이 끊겼다고 못 준댔고, 이번 달은요?”
“뗏목 영감 외상이 열 냥이야. 그거 먼저 갚고.”
“그럼 제 세 냥은 언제요? 오늘 대청에서 제가 값 부를 때 다들 웃었죠. 오길 씨도 웃었어요. 근데 오길 씨는 웃으면서 하루 한 냥을 불렀어요. 형님은 기둥 옆에서 웃기만 했고요.”
바우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허리춤의 여덟 냥이 묵직했다. 그중 세 냥을 꺼내 주면 소호 영감에게 갚을 돈이 다섯 냥 남았다. 개막 날까지 이레였다. 이 사이 집이 또 무너지면 나무를 또 사야 했다.
“조금만 기다려.”
마석공이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형님은 남의 집 값은 끝까지 쫓아가서 받으면서 제 값은 안 쳐 줘요. 외팔 손님한테 등록처 북까지 쳤잖아요. 저는 북 치면 누구 이름 외쳐요? 형님 이름이요?”
바우는 대팻밥 한 줌을 쥐었다 놓았다. 대팻밥이 손바닥에서 바스러졌다.
마석공은 빗자루를 벽에 기대 놓고 목공방을 나갔다. 바우는 따라 나가지 않았다.
*
새벽이었다. 기름집 영감의 고함에 바우가 눈을 떴다. 대팻밥 더미에서 잠이 든 채였다. 망치를 집어 들고 거리 아래로 뛰었다.
기름집 문간에 오길이 서 있었다. 이 옆에 하나가 더 있었다. 철혈방 거간들이 입는 검푸른 두루마기를 입었고, 두루마기 소매가 길어 손등을 덮었다. 이 손에 은자가 한 줌 들려 있었다.
마석공이었다.
마석공은 영감 앞에 은자를 내밀고 있었다. 영감은 국자를 쥔 채 마석공을 노려보았다. 할멈이 문지방을 짚고 나와 마석공의 소매를 잡아 보았다가 놓았다.
“석공아, 너 지난겨울에 우리 집 참기름에 밥 비벼 먹고 살았다.”
마석공의 손이 은자를 쥔 채 잠깐 굳었다. 마석공이 바우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마석공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형님, 기름집 서른다섯 냥이요. 어제 오길 씨가 서른 부른 거 제가 다섯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