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93자)
지붕 위의 추격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칡 밧줄 매듭은 뗏목꾼의 손이 묶은 대로 풀린다. 바우는 맨 바깥 겹을 붙든 매듭의 꼬리를 찾아 손목을 꺾었다. 밧줄이 손바닥을 쓸며 미끄러졌고, 발밑의 통나무 넷이 한꺼번에 물 쪽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표사가 디딘 통나무가 이 넷 가운데 하나였다.
소란의 칼끝이 바우의 목에서 떨어져 허공을 그었다. 몸이 뒤로 기울었고, 버티려고 내디딘 발이 구르는 통나무 위에서 헛돌았다. 첨벙 소리와 함께 소란이 호수에 빠졌다. 밤물은 검었고, 차가웠다.
바우는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물 위로 손이 하나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다시 올라왔을 때 칼을 쥔 손이었다. 소란은 물에 빠져서도 칼을 놓지 않았다.
“칼 놔요! 칼 놓고 손 줘요!”
“못 놔요!”
물을 먹으면서도 대답은 했다. 바우는 이 손목을 칼째 붙잡고 뒤로 몸을 젖혔다. 마석공이 뱃전에서 뛰어와 바우의 허리띠를 잡았다. 셋이 한 덩어리로 통나무 위에 나동그라졌다. 표사는 엎드린 채 물을 토했고, 칼은 여전히 소란 손에 있었다. 칼자루에 감은 가죽이 닳아 반들거렸다.
“표사가 헤엄을 못 쳐요?”
“우리 표국은 말을 타요.”
소란이 기침 사이로 말했다. 마석공이 혀를 찼다.
“말 타는 표사를 뗏목에 세운 철혈방이 잘못했네.”
뗏목 영감이 모닥불 옆에서 일어나 욕을 퍼부었다. 풀려난 통나무 넷이 어둠 속으로 느릿느릿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놈아, 저걸 언제 다 건져!”
“건질게요.”
바우는 짐배 사공을 불렀다. 사공이 배를 몰고, 바우와 마석공이 갈고리로 통나무를 하나씩 끌어 왔다. 끌어 온 통나무를 다시 겹에 맞춰 눕히고, 칡 밧줄을 물에 적셔 다시 감았다. 젖은 칡은 마르면서 조여든다. 바우는 매듭마다 무릎으로 밧줄을 누르고 두 손으로 당겨 마지막 한 바퀴를 감았다. 뗏목 영감은 처음엔 옆에서 욕만 하다가, 세 번째 매듭부터는 입을 다물고 바우의 손을 보았다.
동이 틀 무렵 뗏목은 처음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영감이 맨발로 통나무를 굴러 보았다. 출렁임이 줄었다.
“누구한테 배웠어?”
“아버지요. 아버지가 젊을 때 뗏목을 탔어요.”
영감이 모닥불에 침을 뱉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열두 그루 가져가. 한 그루 두 냥 반, 서른 냥이야.”
“지금 스무 냥 있어요.”
“나머지 열 냥은 개막 날까지. 개막 날 해 질 때까지 안 가져오면 내가 소요진까지 올라가서 자네 집 기둥을 뽑아 올 거야.”
“제 집 기둥은 남의 집에 가 있어요.”
“그럼 그 집 기둥을 뽑지.”
바우는 은자 스무 냥을 영감 손에 쥐여 주었다. 허리가 텅 비었다. 표사는 거적 움막 앞에서 젖은 머리를 짜고 있었다. 바우가 다가가자 소란이 고개를 들었다.
“연옥이에요. 남창 쪽에서 아버지 표국을 혼자 꾸려요. 철혈방이 이 뗏목 합비까지 지키면 열 냥 준다고 했어요.”
“그 열 냥은 못 받겠네요.”
“당신 때문에요.”
“매듭은 제가 풀었지만 표사를 물 위에 세운 건 철혈방이에요. 품삯은 철혈방이 물어야죠.”
연옥이 칼을 칼집에 넣으며 일어섰다. 키가 바우와 엇비슷했다.
“그 말, 기억해 둘게요.”
연옥은 지나가는 고깃배를 불러 세워 타고 떠났다.
*
통나무 열두 그루가 짐배 뒤에 매달려 남비하를 거슬러 올라왔다. 소요진 나루에 닿은 것은 한낮이었다. 기름집 영감이 할멈과 나루까지 나와 통나무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바우는 이날 오후 내내 기름집에 매달렸다. 갈라진 모퉁이 기둥에 나비장 셋을 파 넣고, 무너진 지붕 반쪽의 부러진 서까래를 걷어 내고, 새 소나무를 켜서 서까래 열을 얹었다. 구담이 버들객잔 대문 지키기를 마치고 내려와 일손을 보탰다. 한 팔로 대패를 미는 일은 쉽지 않았다. 판재가 자꾸 밀려났다. 구담은 한참 보더니 판재 끝을 발로 밟아 고정하고 대패를 밀었다. 대팻밥이 얇게 말려 나왔다.
마석공이 박수를 쳤다.
“외팔 손님, 품삯 드려야겠네요.”
“얼마요?”
“발 하나 값이요. 손은 하나니까 반 값.”
구담이 대패를 내려놓고 마석공을 보았다. 마석공은 이 눈을 보고 기와를 나르러 지붕으로 올라갔다.
해가 기울 무렵 기름집 지붕에 마지막 기와가 얹혔다. 영감이 기름틀을 한 바퀴 돌렸다. 나무 축이 삐걱 소리를 내며 깨를 눌렀고, 홈을 따라 첫 참기름이 실처럼 흘러 사발에 떨어졌다. 고소한 냄새가 거리 아래쪽을 덮었다. 할멈이 이 사발을 바우에게 내밀었다.
“수리비는 우리가 못 내. 이거라도.”
“수리비는 부순 사람한테 받았어요.”
바우는 사발을 받아 냄새만 맡고 할멈에게 돌려주었다. 할멈은 이 사발을 기름집 문간에 놓고, 지나가는 거리 사람마다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게 했다.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기름집이 다시 섰다는 말이 저녁 짓는 연기보다 빨리 거리에 돌았다. 버들객잔에 이어 두 번째였다.
*
같은 저녁, 연옥은 운하 끝 철혈방 창고 마당에 서 있었다. 하룻밤 사이 젖었다 마른 표사 옷이 몸에 뻣뻣하게 붙었다. 처마 밑 탁자에서 오길이 주판알을 튀기다가 연옥을 올려다보았다.
“뗏목은 목수가 가져갔다고 들었소. 지키라고 붙인 표사가 물에 빠져서.”
“품삯 받으러 왔어요.”
“지키지 못한 표물에 품삯은 없소. 선금으로 준 두 냥도 도로 내놓으시오.”
“물에 빠뜨린 건 목수예요.”
“그럼 목수한테 받으시오.”
오길이 주판을 밀어 놓았다. 탁자 옆에서 쇠도끼가 머리에 감은 천을 만지며 키득거렸다.
“물에 빠진 표사래.”
연옥은 쇠도끼를 보지도 않고 칼집 끝으로 오길의 이마에 감은 천을 툭 쳤다. 쇠도끼가 비명을 삼켰다. 오길이 손을 들어 둘을 말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바꿨다.
“표사 양반, 남창 표국 사정은 내가 좀 아오. 표사가 둘 남았고, 말 시장에 말 값 빚이 있다지. 그래서 이 먼 데까지 뗏목을 지키러 오셨고.”
연옥의 손이 칼자루에서 멈췄다.
“일거리가 하나 있소. 요즘 강남 표국들이 표물을 많이 잃어버렸소. 그 표물 훔친 도둑 하나가 소요진 객잔 거리 찻집에 숨어 있다는 말이 들어왔소. 잡아 오면 뗏목 품삯 열 냥을 내가 대신 내드리리다.”
“무슨 표물이요?”
“잡아 오면 알게 되오.”
연옥은 한참 서 있었다. 남창의 표국 마당에는 여물 값을 못 내 마른 말 세 필이 서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길이 다시 주판을 끌어당겼다.
*
이튿날 오전이었다. 바우는 찻집 지붕에 마지막으로 남은 기와 줄을 고르고 있었다. 첫날 아침 고치다 만 이 지붕이었다. 찻집 주인이 마당에서 올려다보며 흡족해했다.
이때 거리 위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터졌다.
“서!”
지붕 셋 너머로 사내 하나가 기와를 밟고 뛰어오고 있었다. 짐꾼 옷을 입었고 등에 보따리를 졌다. 뒤를 연옥이 쫓았다. 사내는 찻집 지붕으로 건너뛰었다. 바우가 막 고른 기와가 이 사람의 발밑에서 와장창 깨졌다. 연옥이 따라 뛰어내렸다. 연옥의 발이 용마루 바로 옆에 떨어졌고, 바우가 새로 얹은 서까래 둘이 한꺼번에 부러졌다. 지붕에 사람 하나 빠질 만한 구멍이 뚫렸다. 찻집 주인이 비명을 질렀다.
“내 지붕!”
연옥은 구멍을 내려다보지도 않고 사내를 쫓아 다음 지붕으로 건너갔다. 바우는 망치를 허리에 꽂고 뒤를 따라 뛰었다.
지붕 위를 달리는 일은 고수만 하는 게 아니었다. 목수는 고수보다 지붕을 잘 알았다. 바우는 어느 집 서까래가 소나무고 어느 집이 삼나무인지, 어느 처마가 작년에 갈아 단단하고 어느 처마가 썩어 가는지를 다 알았다. 용마루를 따라 달리지 않고, 기둥이 받치는 자리만 골라 밟았다. 연옥은 빨랐지만 아무 데나 밟았다.
도둑은 버들객잔 이층으로 건너갔다. 기와를 아직 덮지 않은 이층이라 서까래 사이가 숭숭 뚫려 있었다. 도둑은 서까래 위를 건너뛰었고, 연옥은 서까래 대신 한가운데의 느티나무 대들보에 발을 올려 이 위를 내달렸다. 대들보가 연옥의 무게를 받고 아주 조금 휘었다가 돌아왔다. 바우는 발바닥으로 이 휨을 느꼈다. 나무못 일곱 개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건 밟아도 돼요! 그건 버텨요!”
연옥이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누가 물어봤어요?”
“연옥 씨! 찻집 지붕 값이요!”
“도둑부터 잡고요!”
“그 다음 지붕 서까래 썩었어요!”
“뭐요?”
연옥이 버들객잔 부엌 지붕에 발을 디뎠다. 우지끈 소리가 났다. 지붕을 뚫고 아래로 사라졌다. 아래에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와 소란의 고함이 동시에 터졌다.
“내 쌀독!”
바우는 부엌 지붕을 건너뛰어 옆집 담장으로 내려섰다. 도둑이 담을 타고 골목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우는 이 사람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사내가 골목 바닥에 굴렀다. 보따리가 터지며 안에서 낡은 이불이 쏟아졌다. 표물이라기엔 초라했다. 바우는 사내의 손목을 붙잡아 뒤로 꺾었다.
손목 안쪽에 검붉은 쇠도장 자국이 있었다. 둥근 테 안에 피 혈 자를 박은 모양이었다. 운하 끝 창고에서 소금 섬을 지던 짐꾼들의 손목에 하나같이 찍혀 있던 철혈방 낙인이었다.
부엌 뒷문이 벌컥 열렸다. 연옥이 쌀을 뒤집어쓴 채 나왔다. 머리카락과 어깨에서 흰 쌀알이 후드득 떨어졌다. 소란이 뒤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따라 나왔다.
“이 쌀 한 섬 값은 누가 내요!”
연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우가 붙잡은 사내의 손목을 보았다. 낙인을 보았다. 연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오길이 그랬어요. 표국에서 잃어버린 표물을 훔친 도둑이 이 거리 찻집에 숨었다고. 잡아 오면 뗏목 품삯 열 냥을 대신 주겠다고.”
“표국에서 뭘 잃어버리셨는데요?”
“아무것도요.”
연옥이 이를 악물었다.
“뭘 잃어버렸는지는 오길이 안다고 했어요.”
바우는 짐꾼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
“이런 일 몇 번 하셨어요?”
짐꾼이 바닥에 흩어진 낡은 이불을 내려다보았다. 손목의 낙인이 땀에 번들거렸다.
“이번 달에만 지붕 넷이오. 한 번 뛰면 동전 백 닢. 고수가 쫓아오게 지붕으로만 뛰라고 했소. 어느 지붕인지는 오길 형님이 정해 주고.”
“고수가 지붕을 밟으면 집이 무너지고요.”
“무너지면 형님이 사지.”
짐꾼은 이 말을 하고 나서야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마석공이 골목 입구에서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찻집 서까래 둘, 기와 열둘, 객잔 부엌 서까래 하나, 쌀 한 섬, 쌀독 금 간 거—”
연옥은 이 소리를 듣지 않았다. 바우의 손에서 짐꾼을 넘겨받아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오길 어디 있어?”
짐꾼이 거리 아래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길은 사흘 전 사들인 신발 가게 자리에 차양을 치고 탁자를 놓아 거간 방을 차렸다. 연옥이 멱살을 놓자 짐꾼은 이불도 버려둔 채 골목 끝으로 달아났다. 아무도 쫓지 않았다. 연옥은 칼을 뽑으며 걸었다. 바우가 뒤따랐다. 소란도 부지깽이를 든 채 따라붙었다. 마석공은 손가락을 꼽으며 따라왔다.
신발 가게 자리 차양 아래에 탁자가 하나 있었다. 오길은 탁자 옆에 서 있었다. 탁자 뒤에는 흰 장포를 입은 사내가 앉아 찻잔을 들고 있었다.
연옥의 칼끝이 오길의 목에 닿았다. 오길이 두 손을 들고 탁자 뒤를 돌아보았다.
설백천이 찻잔을 탁자에 놓았다.
“표사 양반, 그 칼값은 얼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