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49자)
기름집 기둥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쇠도끼의 도끼가 내려온 곳은 바우의 머리가 아니었다. 구담이었다.
외팔 검객은 반걸음 비켜섰을 뿐이었다. 도끼날이 검객의 빈 소매 끝을 스치고 지나가 기름집 모퉁이 기둥에 박혔다. 나무가 비명처럼 갈라지는 소리를 냈고, 무너지다 만 지붕 반쪽이 기우뚱 내려앉았다. 바우는 이 소리가 귀보다 발바닥으로 먼저 들어왔다. 기둥이 결을 따라 위아래로 쪼개지고 있었다.
“영감님, 비켜요!”
영감은 비키지 않았다. 국자를 내던지고 갈라지는 기둥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바우가 이 옆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기둥이 어깨뼈를 짓눌렀다. 지붕의 무게가 서까래를 타고 내려와 기둥을 지나 두 사람의 어깨로 쏟아졌다. 영감의 마른 어깨가 바우의 팔에 닿았다. 뼈가 만져졌다.
이 사이 마당에서는 칼과 도끼가 세 번 부딪혔다. 구담은 칼을 크게 휘두르지 않았다. 쇠도끼가 도끼를 들 때마다 칼등으로 손목을 쳤고, 세 번째에 도끼가 손에서 빠져 흙에 꽂혔다. 쇠도끼가 맨손으로 덤비자 구담은 몸을 낮춰 쇠도끼의 무릎을 걷어찼다. 덩치가 뒤로 밀려 기름집 뒤편 둑을 넘어갔고, 곧 남비하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횃불을 든 셋은 물소리를 듣자마자 흩어졌다.
“석공아, 버팀목!”
마석공이 낮에 받쳐 둔 버팀목 하나를 뽑아 들고 뛰어왔다. 바우는 한쪽 어깨로 기둥을 받친 채 발로 버팀목 밑동을 땅에 밀어 박았다. 버팀목 머리가 기둥 아래 보아지에 걸리자 어깨의 무게가 반으로 줄었다. 하나를 더 받쳤다. 무게가 빠져나갔다.
영감이 기둥에서 팔을 풀고 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거칠었다.
“우리 아버지가 세운 기둥이야. 내 나이보다 많아.”
바우는 갈라진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내려갔다. 금은 길었지만 기둥을 끝까지 뚫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결이 곧은 소나무라 갈라진 양쪽이 아직 서로를 물고 있었다.
“나비장을 박으면 돼요.”
“나비?”
“나비 모양 나무쪽이요. 갈라진 데를 가로질러 파 넣으면 양쪽을 붙잡아요. 기둥은 안 갈아도 돼요.”
영감이 기둥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멈이 그제야 방에서 나와 영감의 등을 두드렸다. 둑 아래에서 누가 물을 뱉으며 욕을 했다. 쇠도끼였다. 구담은 칼을 칼집에 넣고 기름집 문지방에 앉았다.
*
새벽이 되자 구담은 버들객잔으로 갔다. 바우가 데려갔다. 소란은 이층 계단 밑에서 구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방은 이층 동쪽 끝이에요. 손님이 부순 방이요.”
“돈이 없소.”
“알아요. 밤에 대문 지켜요. 방값은 그걸로 치고, 이불은 따로요.”
“이불도 없소?”
“손님이 부순 방이라니까요. 이불은 기와 밑에 있어요.”
구담은 한참 소란을 보다가 계단을 올라갔다. 마석공이 바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형님, 저 아주머니 저보다 값을 더 잘 불러요.”
“너보다 정직하게 부르지.”
바우는 구담에게 받은 열 냥을 허리에 차고 성 안 목재 시장으로 갔다. 동문 안쪽 공터에는 해마다 가을이면 산에서 내려온 소나무와 삼나무가 산처럼 쌓였다. 바우가 공터에 들어섰을 때 이 산이 없었다. 땅바닥에 나무를 괴던 받침목 자국만 줄줄이 남아 있었다. 목재상 주인이 받침목 하나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었다.
“어디 갔어요?”
“어젯밤에 철혈방이 다 실어 갔어. 썩은 것까지.”
“다요?”
“삼나무 판재 쪼가리 하나 안 남겼어. 값을 두 배로 쳐 주더라고. 나야 좋지.”
목재상이 곰방대로 공터를 휘저어 보였다.
“나무가 필요하면 오길한테 가. 한 그루에 다섯 냥이래.”
바우가 계산해 보았다. 기름집 지붕에 서까래 감이 열은 들었다. 쉰 냥이었다. 허리의 열 냥이 갑자기 가벼웠다.
*
철혈방 창고는 성 안 운하가 끝나는 곳에 있었다. 기와를 올린 긴 창고 세 동이 운하를 따라 늘어섰고, 짐꾼들이 소금 섬을 등에 지고 배에서 창고로 줄지어 오르내렸다. 두 번째 동 앞마당에 어제까지 목재 시장에 있던 소나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송진 냄새가 운하 물비린내를 덮었다.
소금 섬을 진 짐꾼 하나가 바우 앞을 지나다 걸음을 멈췄다. 팔뚝에 불똥 자국이 점점이 박힌 쉰 줄의 사내였다. 바우는 이 얼굴을 알았다. 작년 가을 대장간 거리에서 집이 무너지고 터를 판 대장장이였다. 판 터에 바우가 새집을 올렸다.
“자네가 그 집 지은 목수지.”
“예.”
“반듯하더구먼. 내 풀무 놓던 자리에 철혈방 술도가가 들어앉았어.”
대장장이는 소금 섬을 고쳐 지고 바우의 발치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우는 침이 떨어진 자리를 한참 보았다.
설백천은 첫째 동 처마 밑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탁자 맞은편에 쇠도끼가 머리에 젖은 천을 감고 앉아 있었다. 바우가 마당에 들어서자 짐꾼들이 걸음을 멈췄다. 쇠도끼가 일어나려다 설백천의 손짓에 다시 앉았다.
“목수 양반이 여기까지 웬일이오.”
“수리비 받으러 왔어요.”
바우가 쇠도끼를 가리켰다.
“그저께 아침 버들객잔 대들보 반 값 열 냥. 어젯밤 기름집 모퉁이 기둥 나비장 값 두 냥. 합해서 열두 냥이오.”
“이 사람에게 받으시오. 나는 부수지 않았소.”
“이 사람은 돈이 없잖아요. 참가비도 방주님이 내셨는데요.”
“그러니 못 받겠구려.”
“대회장 문 앞에서 북을 치면 받아요.”
설백천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증인은 셋이오, 목수 양반.”
“다섯이에요. 버들객잔 주인, 기름집 영감님과 할멈, 견습, 그리고 쇠도끼를 물에 빠뜨린 외팔 검객이요.”
마석공이 바우 뒤에서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쇠도끼의 얼굴이 붉어졌다. 예선에 나가지 못하면 철혈방이 낸 참가비 열 냥이 날아갔다. 설백천은 이 셈을 바우보다 빨리 했다.
“열두 냥이라.”
설백천은 소매에서 은자를 꺼내 하나씩 탁자 위에 놓았다. 열둘이었다. 바우가 손을 뻗었는데 마석공이 먼저 끼어들었다.
“방주님, 늦게 낸 이자는 따로—”
바우가 마석공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설백천이 이 모양을 보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견습이 쓸 만하오. 우리 오길보다 낫겠소.”
바우는 은자를 쓸어 담았다. 스물두 냥이 되었다. 설백천이 두 번째 동 앞의 나무 더미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 돈으로 나무를 사 보시오. 오길에게 가면 팔긴 할 거요. 한 그루에 다섯 냥이지만, 목수 양반한테는 열 냥이오.”
바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무 더미 쪽을 보다가 창고 기둥 밑으로 눈을 내렸다. 창고 기둥들은 새 소나무였는데, 이 밑을 받친 주춧돌은 달랐다. 강돌을 다듬은 둥근 주춧돌이었고, 윗면 가장자리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불에 탄 집터에서 주춧돌만 건져 다시 썼다.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 물린 나무 받침의 결이 기둥과 반대로 누워 있었다. 서두른 목수의 솜씨였다.
“이 창고 언제 지으셨어요?”
“그건 왜 묻소?”
“주춧돌이 창고보다 늙어서요.”
설백천의 얼굴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바우에게는 대답처럼 보였다. 설백천이 다시 찻잔을 들었다.
“목수 양반, 수리비를 받았으면 돌아가시오.”
*
이 시각 기름집 앞에는 오길이 와 있었다. 하소란은 객잔 손님 점심상을 차리다 말고 앞치마 바람으로 달려 내려갔다. 마석공이 없으니 오길의 입을 막을 사람이 그녀밖에 없었다.
오길은 할멈에게 은자 스물다섯 냥을 세어 보이고 있었다. 할멈의 손이 앞치마 자락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영감은 버팀목 두 개에 기댄 모퉁이 기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제는 스무 냥이라더니 오늘은 스물다섯이에요?”
소란이 둘 사이로 들어섰다. 오길이 반갑게 웃었다.
“하 사장, 이웃 사정 봐주는 값이 하루에 다섯 냥씩 오르는 거요. 내일이면 기둥이 하나 더 갈 테니 그땐 도로 스무 냥이고.”
“기둥이 하나 더 가는 걸 어떻게 아세요?”
“거리 사정이 그렇잖소. 대회철이라 고수들이 흥이 나서.”
“흥은 오길 씨가 돈 주고 내주시고요.”
오길의 웃음이 잠깐 멎었다가 다시 붙었다. 오길은 은자를 주머니에 넣고 소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 사장, 성 안 전당포에 진 빚 백 냥은 잘 있소? 그 전당포가 이번 달부터 주인이 바뀌었소. 새 주인이 이자 계산을 아주 꼼꼼히 하는 분이라.”
소란의 손에서 행주가 떨어졌다. 두 해 전 물난리 때 객잔 바닥을 다시 깔고 벽을 다시 바르느라 빌린 돈이었다. 거리에서 이 빚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길은 행주를 주워 소란 손에 쥐여 주고 할멈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일 다시 오리다.”
소란은 오길이 거리 위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행주를 쥔 채 서 있었다. 할멈이 소란의 팔을 잡았다.
“하 사장, 우리 안 팔아. 바우 총각이 나무 구해 온다고 했어.”
소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당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목재상이 곰방대를 털며 일러 준 길이 하나 있었다. 소호 남쪽 산에서 벤 나무를 엮은 뗏목이 호수를 건너와 남비하 어귀 나루에 하룻밤 묶였다가, 이튿날 끌배에 끌려 합비로 올라온다. 이번 가을 마지막 뗏목이 오늘 밤 어귀에 닿는다고 했다. 철혈방도 이걸 알 터였다.
바우는 소요진 나루의 짐배 사공을 찾아갔다. 사공은 새 쐐기를 박은 노걸이를 두드려 보이며 웃었다.
“이번엔 무슨 값으로 태워 달래?”
“소호 어귀까지요. 갔다 오면 은자 한 냥이요.”
“돈이 생겼구먼.”
배가 남비하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해가 졌다. 강폭이 넓어지면서 물비린내가 갈대 냄새로 바뀌었다. 마석공은 뱃전에 누워 별을 세다가 잠들었다. 자정이 가까워서 강물이 호수로 열리는 자리에 불빛이 하나 보였다.
뗏목은 집채만 했다. 굵은 소나무 마흔 그루를 칡 밧줄로 엮어 세 겹으로 쌓았고, 가운데에 뗏목꾼이 잠자는 거적 움막이 있었다. 움막 앞 모닥불에 머리가 하얗게 센 뗏목 영감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바우가 뗏목에 올라서자 발밑의 통나무들이 물 위에서 천천히 출렁였다.
“나무 사러 왔어요. 열두 그루요.”
“임자가 있어. 철혈방이 선금을 걸었어. 합비에 닿으면 나머지를 준대.”
“철혈방이 얼마 줬어요?”
“한 그루에 두 냥.”
“저는 두 냥 반 드릴게요.”
영감이 모닥불을 쑤셨다. 불티가 튀어 올랐다.
“값 문제가 아니야. 철혈방이 이 뗏목 지키라고 표사를 붙였어. 그 표사가 칼을 차고 있어서 나는 말 못 해.”
바우가 무슨 표사냐고 묻기도 전에 등 뒤에서 통나무가 한 번 출렁였다. 누군가 뗏목 끝에서 바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돌아섰을 때는 늦었다. 차가운 쇠끝이 목젖 바로 아래에 닿아 있었다. 모닥불 빛 속에 서른 가까운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었고, 소매가 좁은 표사 옷에 먼지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철혈방 표물에 손대는 사람은 물에 넣으라고 했어요.”
“손 안 댔어요. 사러 왔어요.”
“손은 이미 대고 있잖아요.”
바우의 오른손이 뒤로 뻗어 뗏목을 엮은 칡 밧줄 매듭을 쥐고 있었다. 뗏목을 탈 때 저도 모르게 손이 그리로 갔다. 나무를 묶은 매듭은 바우의 손에 익은 매듭이었다. 어디를 당기면 풀리는지도 알았다.
표사의 칼끝이 반 치 더 들어왔다. 목에 따끔한 것이 맺혔다. 뱃전의 마석공이 잠에서 깨어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 손 놔요.”
바우는 매듭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