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646자)
빈 소매를 붙잡다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바우는 사다리를 내려와 비단 주머니를 설백천의 손에 도로 얹었다. 은자 무게가 손바닥에서 빠져나가자 손이 가벼워졌고, 그만큼 속이 쓰렸다.
“수리비는 부순 손한테 받습니다. 방주님은 안 부수셨다면서요.”
설백천은 주머니를 소매에 넣었다. 웃지도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그럼 부순 손을 찾으러 가 보시오. 그 손들은 대개 발이 빠르오.”
설백천은 마당을 나갔다. 바우는 수건을 고쳐 매고 거리 아래쪽으로 뛰었다. 마석공이 눈을 비비며 따라붙었다.
거리 아래 세 집은 지붕이 통째로 꺼져 있었다. 신발 가게는 앞벽이 길 쪽으로 쓰러져 진열대의 짚신이 흙바닥에 흩어졌고, 옆 민가는 안방 들보가 부러져 이불 보따리가 기와 더미 밑에 깔렸다. 맨 끝의 기름집은 그나마 나았다. 지붕 반쪽이 내려앉았지만 기둥 넷 가운데 셋이 섰고, 깨를 짜는 나무 기름틀은 먼지만 뒤집어썼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무너진 흙벽 냄새에 섞여 거리로 흘렀다.
싸운 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길만 보였다.
오길은 신발 가게 주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주인은 쉰 줄의 사내였는데 흩어진 짚신을 내려다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길의 다른 손에는 은자가 들려 있었다.
“열다섯 냥이오. 터만 보면 일곱 냥도 안 쳐 주는데, 방주님이 이웃 사정 딱하다고 얹어 주시는 거요.”
바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사흘이면 다시 세워 드려요.”
신발 가게 주인이 바우를 보았다. 눈가가 벌겠다.
“그 사흘 값은 누가 내? 싸운 놈들 얼굴도 못 봤어. 하나는 복면을 썼고 하나는 지붕으로 날아갔다고.”
“제가 찾아서 받아 올게요.”
“자네가 못 찾으면?”
바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신발 가게 주인은 오길의 손에서 은자를 받았다. 옆 민가의 젊은 부부도 뒤에 줄을 섰다. 오길은 두 집 값을 치르고 나서 손을 털며 기름집 쪽으로 걸었다.
기름집 문간에는 영감과 할멈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영감은 기름 국자를 쥐고 있었고, 할멈은 앞치마에 깨를 한 줌 받쳐 들고 있었다. 오길이 웃으며 은자를 내밀었다.
“영감님, 이 집은 스무 냥 드리리다.”
“이 기름틀이 우리 아버지 때부터 돌았어.”
영감이 국자로 기름틀을 가리켰다.
“이걸 들고 성 안에 방 한 칸 얻어서 어디다 놓으라고?”
오길은 마석공과 눈이 마주쳤다. 마석공이 입을 열려고 하자 오길이 먼저 혀를 찼다.
“견습은 빠지게. 어른들 얘기하는 데서.”
“어른들 얘기에 값이 나오면 저도 어른이에요. 이 집 지붕 반쪽에 기둥 하나, 흙벽 두 칸, 기름틀 먼지 터는 값, 거기에 영감님 놀란 값—”
“놀란 값은 또 뭐야?”
“놀라셨잖아요!”
할멈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길은 은자를 도로 넣었다.
“하루 이틀 더 생각해 보시오. 그 사이 또 무너질지 누가 아오.”
오길이 떠나자 영감이 바우를 보았다. 바우가 말했다.
“고쳐 드릴게요. 값은 부순 사람한테 받아요.”
“부순 사람이 누군지 알아?”
“하나는 알아요.”
*
바우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느티나무는 버들객잔 이층에 올라갔고, 소란이 줄 품삯은 반나절의 두 배라 해도 은자 한 냥이었다. 기름집 기둥 하나와 지붕 반쪽을 다시 얹으려면 소나무 감만 은자 여덟 냥이 들었다. 이 돈은 버들객잔을 부순 외팔 검객의 주머니에 들어 있어야 했다.
소란이 이 검객의 행방을 알았다. 객잔 장사 십 년이면 나루 건너 싸구려 여각 사람들 입도 다 소란 귀로 들어왔다.
“나루 건너 쪽방에 묵었대요. 오늘 정오가 대회 등록 마감이에요. 참가비가 은자 열 냥이고요.”
“열 냥.”
“바우 씨가 받을 돈이 열 냥이죠?”
둘이 서로를 보았다. 소란이 앞치마를 벗어 던졌다.
“나도 가요. 내 집 값이에요.”
소요진 나루에 닿았을 때 나룻배는 벌써 물 한가운데 있었다. 배 꼬리에 외팔 검객이 서 있었다. 빈 소매가 강바람에 깃발처럼 나부꼈다.
마석공이 나루 끝까지 달려가 두 손을 입에 모았다.
“이보시오, 외팔 손님! 버들객잔 대들보 반 값, 은자 열 냥이오! 기와 반 값은 따로요! 도르래 줄 닳은 값은 따로따로요!”
강 건너까지 소리가 굴러갔다. 나룻배에 탄 장사꾼들이 일제히 외팔 검객을 돌아보았다. 검객은 돌아보지 않았다.
바우는 나루에 매인 짐배 사공에게 달려갔다. 사공이 손을 내밀었다.
“건너는 값 셋이면 동전 서른 닢.”
“돈이 없어요.”
“그럼 헤엄쳐.”
바우가 짐배를 훑어보았다. 노를 거는 노걸이가 헐거워 노를 저을 때마다 덜컥거렸다. 허리춤에서 끌을 꺼내 노걸이 밑동의 쐐기를 빼고, 짐배 바닥에 굴러다니던 나뭇조각을 깎아 새 쐐기를 박았다. 손바닥으로 두 번 내리쳤다. 사공이 노를 걸어 흔들어 보았다. 덜컥거리지 않았다.
“타.”
*
대회장은 소요진 거리 위쪽, 오래전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하던 넓은 교장 터에 서 있었다. 소나무로 새로 짠 단상이 사람 키 두 배 높이로 솟았고, 이 앞에 붉은 칠을 한 대문이 섰다. 대문 옆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 앉을 만한 큰 북이 걸려 있었다. 대문 안쪽 차일 아래에서 호연세가 집사가 고수들의 이름을 부르고 은자를 받았다. 줄이 마흔 명쯤 이어졌다.
외팔 검객은 이 줄의 끝에서 다섯 번째에 서 있었다. 바우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렸다.
“열 냥 주세요.”
“대회 끝나고 주겠소.”
“대회가 끝나면 손님은 다 떠나고 없어요.”
검객이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줄이 줄었다. 넷이 남았다. 마석공이 바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형님, 북이요, 북.”
바우는 북 앞으로 걸어갔다. 강남 무림 대회의 법도는 거리 노인들이 술자리마다 꺼내는 이야기였다. 빚을 진 사람은 단상에 오르지 못한다. 빚 받을 사람이 대문 앞 북을 세 번 치고 빚진 사람과 빚을 외치면 된다. 바우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웃었다. 북채를 쥐어 보니 생각보다 무거웠다.
둥, 둥, 둥.
마당이 멈췄다. 줄에 선 고수들이 돌아섰고, 차일 아래 집사가 붓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쉰 줄의 마른 사내였는데 호연세가의 검은 옷깃에 흰 실로 수가 놓여 있었다.
“빚을 외치시오. 빚진 사람과 빚과 증인 셋. 외친 빚에 거짓이 섞이면 거짓 한 가지에 볼기 열 대요. 외친 사람이 맞소.”
마석공이 바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형님, 밤새 안 잔 값도 넣어요.”
“그거 거짓이야.”
“안 잔 건 진짜잖아요!”
“그 사람이 재운 게 아니잖아.”
마석공이 입을 다물었다. 바우는 외팔 검객을 손으로 가리켰다.
“어제 아침 소요진 버들객잔 이층에서 도끼 쓰는 사람과 싸우다 대들보를 칼로 먼저 쳤습니다. 대들보 감과 품삯과 기와를 합해 스무 냥, 그 반 은자 열 냥을 빚졌습니다.”
“증인.”
소란이 앞으로 나왔다.
“버들객잔 주인이오. 내 눈으로 봤네.”
마석공이 손을 들었다. 세 번째가 없었다. 찻집 주인은 거리에 있었다. 바우의 목덜미로 땀이 흘렀다. 집사가 입을 열려는데 외팔 검객이 줄에서 나왔다.
“증인은 됐소. 맞소.”
검객은 집사 앞에 섰다. 그리고 품에서 은자 열 냥을 꺼냈다. 참가비로 내려던 돈이었다. 검객은 이 은자를 집사의 탁자가 아니라 바우의 손바닥에 놓았다. 은자는 아직 검객의 체온으로 따뜻했다.
집사가 붓을 들었다.
“이름은?”
“구담이오.”
“참가비를 내지 않았으니 출전할 수 없소. 등록은 정오에 닫소.”
구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상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소나무 단상의 계단 열두 칸이 햇빛을 받아 노랗게 빛났다. 오래 보지 않았다. 몸을 돌려 대문을 나갔다.
바우가 쫓아가 이 옆에 섰다. 은자 무게가 손에서 무거웠다.
“얼마나 기다리셨어요?”
“십 년.”
“다음 대회는요?”
“십 년 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교장 비탈 아래로 소요진 객잔 거리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버들객잔의 새 대들보가 아직 기와 없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어제 받은 열 냥이었소.”
구담이 먼저 말했다.
“철혈방 거간 오길이 주었소. 버들객잔 이층에서 도끼 든 자와 한판 붙어 주면 열 냥. 부순 값은 방주가 다 문다고 했소.”
“그 말 믿으셨어요?”
“참가비가 없었소.”
바우는 걸음을 멈췄다. 구담도 멈췄다.
“도끼 든 사람은요?”
“쇠도끼라고 부르오. 철혈방 싸움꾼이오. 저 줄에 서서 이름을 냈소. 그자는 참가비를 철혈방이 내 주오.”
뒤에서 집사가 바우를 불렀다. 돌아보니 집사가 단상 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목수라 했소? 저 계단 일곱째 칸이 밟으면 흔들리오. 개막 날 가주께서 오르실 계단이오. 고쳐 놓으시오. 값은 개막 날 가주께서 단상에 오르실 때 직접 치르실 거요.”
바우는 계단 일곱 번째 칸에 발을 올려 보았다. 디딤판 밑의 쐐기가 덜 박혀 반 푼쯤 놀았다. 끌로 쐐기를 빼고, 소나무 자투리를 깎아 한 치 길게 다시 박는 데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걸렸다. 다시 밟아 보았다. 계단이 소리 없이 발을 받쳤다. 바우가 내려오자 구담은 벌써 비탈 아래로 내려가고 없었다.
대문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흰 장포가 들어왔다. 설백천 뒤에 어깨가 문짝만 한 사내가 붙어 있었다. 쇠도끼였다. 집사가 차일 밖까지 나와 허리를 굽혔다.
“심판 어른, 오셨습니까?”
바우는 이 말을 들었다. 설백천은 대회 단상에 오를 심판 다섯 가운데 하나였다. 집사의 탁자에 은자 열 냥을 놓았다. 쇠도끼의 참가비였다. 그러고는 계단 앞의 바우를 보았다.
“목수 양반은 부순 손을 찾았소?”
“하나 찾았어요. 둘째는 방주님 옆에 서 있네요.”
쇠도끼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설백천은 웃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내일부터 예선이오. 빚을 외치려거든 증인 셋을 데려오시오. 목수 양반이 데려온 객잔 주인과 견습은 둘이오.”
마석공이 바우 뒤에서 손가락을 꼽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설백천은 집사에게 쇠도끼의 보증은 철혈방이 선다고 말하고 차일을 나갔다. 쇠도끼가 나가면서 계단 일곱 번째 칸을 발로 한 번 굴렀다. 계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
목재 시장은 해 질 무렵 이미 문을 닫았다. 바우는 목공방에 남아 있던 버팀목 넷을 지고 기름집으로 갔다. 무너진 지붕 반쪽 아래에 버팀목을 받쳐 더 무너지지 않게 하고, 내일 새벽 시장이 열리면 소나무를 사 오기로 했다. 영감과 할멈은 성한 쪽 방에서 이불을 폈다. 마석공은 기름틀 옆에 쪼그려 앉아 졸았다.
자정이 지나서였다. 바우는 버팀목 하나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손바닥으로 먼저 알았다. 누군가 바깥에서 집을 밀고 있었다.
바우는 문간으로 나갔다. 달빛 아래에 사내 넷이 서 있었다. 셋은 횃불을 들었고, 맨 앞의 하나는 낮에 등록처 계단을 발로 구르던 쇠도끼였다. 바우는 도끼날을 기름집 모퉁이 기둥에 대고 있었다. 버들객잔 마당에서 뒷담을 넘어 달아났던 이 도끼였다.
기름집 영감이 맨발로 뛰어나와 기둥 앞을 막아섰다. 손에 기름 국자를 들고 있었다.
“이놈들아, 여긴 남은 기둥이야!”
쇠도끼가 웃었다.
“영감, 무너진 집에 기둥이 남아 있으면 오길 형님이 값을 덜 쳐 줘.”
바우가 영감 앞으로 나섰다. 쇠도끼의 도끼날과 바우 사이에 한 자가 남았다. 바우는 망치를 허리에서 뽑았다. 아버지가 쓰던 쇠망치였다. 자루가 손때로 검게 반들거렸다.
“어제 버들객잔 대들보 반 값, 은자 열 냥. 오늘 이 기둥까지 치면 따로 받습니다.”
쇠도끼가 도끼를 들어 올렸다. 횃불이 도끼날에 번들거렸다.
이때 바우 등 뒤에서 쇠가 칼집을 긁고 나오는 소리가 길게 났다. 바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쇠도끼의 눈이 바우의 어깨 너머로 옮겨 갔다. 달빛 아래, 빈 소매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