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54자)
첫 대들보가 버틴다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두 번째 발길질이 대문 기둥에 꽂혔다. 바우는 이층 대들보 아래에서 손바닥을 나무에 댄 채 이 무게를 받았다. 대들보가 휘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숨 한 번 들이쉴 만큼 휘었다가, 나무못 일곱 개가 제 구멍을 꽉 문 채로 천천히 돌아왔다. 기와 한 장 미끄러지지 않았다.
“버텨요.”
소란이 바우의 손등 위에 제 손을 얹은 채 말했다. 바우는 대답 대신 창으로 뛰었다.
거리는 횃불로 대낮 같았다. 스물이 거리 위쪽 어귀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예선에서 진 칼잡이, 창잡이, 쇠사슬을 돌리는 자, 맨주먹에 쇠고리를 낀 자. 다들 술 냄새를 풍겼다. 진 날 밤의 술은 화를 키웠고, 화는 다섯 냥을 받았다. 이들은 비무를 한다며 서로에게 칼을 대충 휘두르다가, 칼이 지붕 처마를 스치면 처마를 마저 쳤다.
버들객잔 대문 앞에서 구담이 일어섰다.
구담은 칼을 뽑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의 무명에 피가 배어 있었다. 칼을 들어 올리면 상처가 벌어질 터였다. 대문 기둥을 걷어찬 사내가 다시 발을 들자, 구담은 칼집째 이 발목을 쳤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구담은 대문 한가운데로 한 걸음 옮겨 섰다. 거기서 더 움직이지 않았다.
“외팔이 혼자 대문을 지키오?”
창잡이가 비웃으며 창끝을 내밀었다. 구담은 창끝을 칼집으로 옆으로 밀고, 밀린 창대를 따라 반걸음 들어가 칼자루 끝으로 창잡이의 명치를 찍었다. 창잡이가 무릎을 꿇었다. 구담은 다시 대문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어깨의 무명에 피가 조금 더 번졌다.
*
이층 창으로 손이 하나 올라왔다. 쇠사슬을 허리에 감은 사내가 처마를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소란은 부엌에서 들고 올라온 부지깽이를 쥐었다. 사내가 창틀에 팔꿈치를 걸치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주인장, 이 방 비었소?”
“예약 찼어요.”
부지깽이가 사내의 손등을 내리쳤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가 다시 창틀을 잡았다. 소란은 두 번째로 내리치지 않았다. 대신 창틀 옆에 세워 둔 물동이를 들어 사내 머리 위에 통째로 쏟았다. 바우가 저녁에 나무못에 붓고 남은 물이었다. 사내가 미끄러져 처마 아래 거름 더미에 떨어졌다.
“방값은 따로예요!”
소란이 창 밖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대들보를 올려다보았다. 대들보는 그대로였다.
거리 위쪽 어귀에는 호연세가 무사 둘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이들은 횃불과 칼을 구경했다. 비무였다. 막을 일이 아니었다.
*
거리 위쪽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네 자루 칼이 한꺼번에 뽑히는 소리였다.
쌍칼 형제가 횃불 줄 맨 뒤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길이 이 옆에 붙어 떠들었다.
“형님들, 오늘 밤 제일 큰 집을 맡아 주시오. 버들객잔이오. 부순 값은 방주가 다 문다니까!”
형이 걸음을 멈췄다. 아우도 멈췄다. 형이 오길을 내려다보았다.
“그 말, 그저께도 들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저께 그 말 듣고 떡집을 부쉈다가, 이튿날 예선장 문 앞에서 서른 사람한테 둘러싸여 빚을 냈다. 그 서른 중에 떡집 주인이 맨 앞에 서 있었다.”
형이 몸을 돌려 칼끝을 거리 아래로 내렸다. 횃불을 든 고수들 쪽이었다.
“아우야, 오늘은 같은 편이다.”
“형님, 그게 더 어렵소.”
“왜?”
“형님하고 같은 편은 해 본 적이 없소.”
둘은 동시에 뛰었다. 형제의 칼 넷이 횃불 줄 한가운데를 갈랐다. 늘 서로를 향하던 칼이 처음으로 같은 쪽을 향하자, 형의 칼이 막으면 아우의 칼이 들어가고 아우의 칼이 막히면 형의 칼이 들어갔다. 쇠사슬을 돌리던 자가 사슬째 넘어졌다. 오길이 뒷걸음질로 거리 아래쪽으로 달아났다.
기름집 앞에는 쇠도끼가 서 있었다. 오길은 도끼를 어깨에 메고 기름집 문간을 막았다. 맨주먹에 쇠고리를 낀 자가 기름집 덧문을 치러 오자 쇠도끼가 도끼 등으로 오길의 쇠고리를 내려쳤다.
“여긴 내가 불값 갚는 집이야. 딴 데 가.”
*
불은 거리 아래쪽에서 났다.
기름집 옆 민가는 첫날 무너진 뒤 철혈방이 사들이고 고치지 않은 채 비어 있었다. 지붕만 대충 덮어 놓은 집이었다. 오길이 데려온 철혈방 짐꾼 셋이 이 빈집 처마에 기름을 붓고 횃불을 던졌다. 마른 짚이 쌓인 빈집은 순식간에 탔다. 불길이 처마를 타고 지붕으로 올랐고, 바람이 거리 아래로 불었다. 불티가 기름집 지붕에 떨어졌다. 기름집 안에는 참기름 단지가 마흔 개 있었다.
바우가 이층에서 뛰어내려 거리 아래로 달렸다. 마석공이 물동이를 들고 따라 달렸다. 기름집 앞에서 쇠도끼가 덧문을 등으로 막은 채 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목수, 물로는 안 돼! 기름집에 붙으면 다 날아가!”
바우는 이 민가를 보았다. 불길이 지붕을 다 삼키고 기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민가는 기름집과 벽 하나 사이였다. 저 집이 기름집 쪽으로 무너지면 기름집도 탄다. 길 쪽으로 무너지면 불이 길에서 끝난다.
바우는 이 집을 알았다. 스무 해 전 아버지가 지은 집이었다. 일곱 살 바우가 아버지 옆에서 쐐기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집을 지을 때마다 길 쪽 앞기둥 밑동 하나에 쐐기를 하나 더 박았다. 집이 기울면 이 쐐기를 빼서 바로잡으라고. 이 쐐기를 빼면 집은 길 쪽으로 기운다.
“석공아, 지렛대!”
바우는 불길 아래로 뛰어들었다.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눈썹이 그을리는 냄새가 났다. 길 쪽 앞기둥 밑동, 주춧돌 바로 위에 손바닥만 한 쐐기 머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스무 해 묵어 검게 변한 쐐기였다. 바우는 끌을 쐐기 머리 밑에 박았다. 망치로 쳤다. 세가가 금지한 망치 소리가 불 소리를 뚫고 거리에 울렸다. 거리 위쪽 어귀의 세가 무사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이 소리를 막으러 오지 않았다.
쐐기가 반쯤 빠졌다. 마석공이 지렛대를 들고 달려왔다. 데인 손에 감은 천이 땀에 젖어 있었다. 둘이 지렛대 끝에 매달렸다.
쐐기가 빠져 날아갔다.
민가가 길 쪽으로 기울었다. 불붙은 지붕이 통째로 미끄러져 거리 한복판에 쏟아졌다. 불티가 하늘로 솟았고, 불붙은 들보와 서까래가 거리를 가로질러 산처럼 쌓였다. 기름집 벽은 그을렸지만 서 있었다. 불은 길 위에서 탔다. 거리 위쪽에서 내려오던 고수 몇이 불 더미 앞에서 멈춰 섰다. 길이 막혔다.
거리 사람들이 덧문을 열고 물동이를 들고 나왔다. 길 위의 불은 물로 잡혔다.
바우는 무너진 민가를 보았다. 아버지가 지은 집이 길바닥에서 타고 있었다. 철혈방 집이었다. 철혈방이 이 집을 산 값보다 바우가 지금 무너뜨린 값이 컸다. 이 값은 바우가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
*
교장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거리로 쏟아져 내려왔다.
연옥이었다. 연옥은 고삐를 왼손에 감고 오른손에 칼을 뽑아 든 채 말을 몰았다. 대회장 금고 앞을 지키던 자리를 비우고 왔다. 말은 불 더미를 피해 거리 위쪽 어귀에서 몸을 틀었다. 횃불을 든 고수 셋이 말 앞을 막았다. 연옥은 말을 세우지 않았다. 말 가슴이 고수 하나를 밀어 넘겼고, 연옥의 칼등이 다른 하나의 손목을 쳐 횃불을 떨어뜨렸다.
“헤엄만 못 쳐요!”
연옥이 소리쳤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우는 알았다.
다섯 냥을 받은 고수들은 다섯 냥만큼만 싸웠다. 외팔 검객이 대문을 지키고, 쌍칼 형제가 한복판을 가르고, 쇠도끼가 기름집을 막고, 말 탄 표사가 거리 위쪽을 휩쓸고, 길 아래는 불 더미가 막았다. 스물은 하나둘 횃불을 버리고 교장 쪽 비탈로 흩어졌다.
연옥이 말을 몰아 불 더미 앞까지 내려왔다. 말의 옆구리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바우가 올려다보자 먼저 말했다.
“금고 앞 자리를 비웠어요. 은괴 닿으면 받기로 한 나머지 스물다섯 냥은 이제 없어요. 호연세가 일을 맡아 놓고 도망친 표사가 됐고요.”
“왜 왔어요?”
“가운데 서 있다가 거리 다 타면, 그다음엔 어디 서요?”
연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 머리를 돌려 거리 위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흩어진 고수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어귀를 지킬 생각이었다.
*
불 더미 너머에서 누가 비명을 질렀다.
오길이었다. 무너진 민가의 들보 하나가 오길의 다리 위에 걸쳐 있었다. 짐꾼들에게 불을 놓으라 일러 두고 거리 아래쪽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집이 길 쪽으로 무너질 때 미처 피하지 못했다. 들보 위에서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불이 들보를 타고 오길의 다리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마석공이 먼저 보았다.
“형님, 오길이요!”
바우는 지렛대를 들고 불 더미를 돌아 뛰었다. 들보 끝에 물동이를 끼얹었다. 김이 치솟았다. 지렛대를 들보 밑에 쑤셔 넣고 주춧돌 하나를 받침 삼아 몸무게를 실었다. 들보가 한 치 떴다. 마석공이 오길의 겨드랑이를 잡아 끌었다. 오길의 다리가 들보 밑에서 빠져나왔다. 바지 자락이 그을렸고, 정강이가 시퍼렇게 부었다.
오길은 흙바닥에 누워 바우를 올려다보았다. 숨이 가빴다.
“왜 꺼냈소?”
“수리비 받을 사람이 죽으면 안 되잖아요.”
“내가 무슨 수리비를—”
“옆집에 불 놓으라고 하셨잖아요. 짐꾼들한테. 그럼 그 불값은 오길 씨 거예요.”
오길이 웃으려다 기침을 했다. 마석공이 이 옆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을 꼽았다.
“오길 씨, 다리 깔린 값은 빼 드릴게요. 그건 형님이 무너뜨린 거라서요.”
*
새벽이 거리 위로 번질 무렵, 불 더미는 검은 숯 더미가 되어 연기만 피워 올렸다. 거리 사람들은 그을린 얼굴로 서로의 집을 돌아보았다. 찻집 지붕에 또 구멍이 뚫렸다. 네 번째였다. 찻집 주인은 이번에는 울지 않고 웃었다. 떡집 덧문 하나가 부서졌고, 옹기전 독 셋이 깨졌다. 버들객잔은 기와 한 장 잃지 않았다. 기름집은 그을렸지만 참기름 단지 마흔 개가 다 무사했다.
소란이 오길의 다리에 찬 천을 감고 있었다. 오길은 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거리 위쪽 어귀에서 흰 장포가 걸어 내려왔다. 설백천 뒤에 철혈방 짐꾼 열이 따라왔다. 설백천은 숯 더미 앞에서 멈췄다. 무너진 민가를 보았다. 그리고 바우를 보았다.
“목수 양반, 내 집을 무너뜨렸구려.”
“불이 났어요. 방주님 짐꾼들이 놓은 불이요.”
설백천의 눈이 오길에게 갔다. 오길은 소란 옆에 앉아 다리를 뻗고 있었다.
“오길, 일어나시오. 창고로 갑시다.”
오길이 일어나지 않았다. 설백천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거리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기름집 영감, 찻집 주인, 떡집 주인, 쌍칼 형제, 쇠도끼, 말 위의 연옥, 대문 앞의 구담. 서른이 넘는 얼굴이 오길을 보고 있었다. 오길이 목에 감은 천을 풀어 던졌다. 연옥의 칼끝이 남긴 붉은 점이 그대로 있었다.
“기름집 옆집에 불 놓으라고 한 건 방주님이오!”
이 목소리는 거리 끝까지 갔다. 오길은 숨을 몰아쉬며 한 번 더 외쳤다.
“버들객잔 대들보도, 기름집도, 찻집도, 다 방주님이 돈 주고 시키신 거요! 내가 그 돈을 날랐소!”
설백천이 걸어왔다. 느린 걸음이었다. 짐꾼들이 길을 텄다. 오길 앞에 섰다. 쇠부채가 펼쳐졌다. 살 끝의 날이 새벽빛에 하얗게 빛났다. 부채 끝이 오길의 목, 붉은 점 바로 옆에 닿았다.
“오길, 그 말 한 번만 더 해 보시오.”
오길의 목울대가 부채 날 아래에서 떨렸다. 바우가 망치를 쥐고 한 걸음 내디뎠다. 구담이 대문에서 칼집을 들었다. 설백천은 부채를 거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