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62자)
예물 수레에 실린 흥정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스무여드레 아침, 남궁 별원 대청 바닥에 긴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엽소화가 밤새 쓴 예물 목록이었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혼인을 굳히는 예물을 보내는 날을 납징이라 했고, 예물이 신부 집 대문을 넘어가면 혼사는 쉽게 물릴 수 없었다. 모용란은 높은 의자에서 목록을 내려다보며 붓을 들었다.
“비단 백 필.”
모용란의 붓이 백을 지우고 열을 적었다.
“마교에 백 필은 아깝다.”
“열 필이면 낙양 포목점 혼수 가운데서도 아래 칸입니다.” 소화가 말했다. “남시 비단 가게 딸이 시집갈 때 스무 필을 보냈어요.”
“비단 가게 딸은 비단이 남으니까 보낸 거다.”
“그럼 태부인 댁은 무엇이 남으십니까?”
모용란이 붓을 멈췄다. 대청 기둥 옆에 선 진이 헛기침을 했다. 소화는 부채를 펴서 목록 끝을 가리켰다.
“마교 쪽 답례는 이미 들었습니다. 서쪽 양 열 마리, 소금 바위 하나, 은 가락지 한 쌍.”
“양 열 마리?”
“살아 있는 양으로요.”
모용란이 붓을 다시 들었다. 열을 지우고 서른을 적었다.
“우리 남궁가는 양 열 마리에 비단 열 필로 답하지 않는다.”
“서른 필이요.” 소화가 춘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춘매가 목록 사본에 서른을 적었다.
*
정오 무렵 소화는 사본을 들고 낙수를 건넜다. 마교 객관 마당에서 구양추가 목록을 읽어 내려가다 서른 필에서 멈췄다.
“서른?”
“태부인께서 양 열 마리에 비단 열 필로는 답하지 않으신다고요.”
구양추가 지팡이로 마당 바닥을 두 번 쳤다. 객관 무사 하나가 뛰어나갔다.
“양 스무 마리. 소금 바위 둘.”
“가락지는요?”
“가락지는 한 쌍이지 두 쌍 하는 법이 없다. 대신 은팔찌 한 쌍.”
소화는 사본에 스물과 둘과 팔찌를 적었다. 객관 이층 난간에서 가린이 내려다보았다. 검붉은 옷 소매를 걷고 손에 무엇인가 쥐고 있었다. 가린이 난간에서 물었다.
“매파. 남궁진은 뭐라고 했냐?”
“기둥 옆에서 헛기침을 하셨어요.”
“한 번?”
“두 번이요. 비단이 열에서 서른으로 오를 때.”
가린이 난간에 턱을 괴었다. 손에 쥔 것은 손바닥만 한 나무 상자였다. 구양추가 마당에서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성녀님, 그건 예물 목록에 안 들어갑니다.”
“알고 있다.”
다시 낙수를 건너는 배 위에서 춘매가 손가락을 꼽았다. “아가씨, 양이 스무 마리면 배 몇 척이에요?”
“양은 다리로 건너.”
남궁 별원 대청에서 모용란은 양 스무 마리와 소금 바위 둘을 듣고 서른을 지워 쉰을 적었다. 소화가 다시 강을 건넜고, 구양추는 양을 서른으로 올렸다. 해가 기울 무렵 소화가 다섯 번째로 강을 건넜을 때 사공은 배삯을 받지 않았다.
“매파님, 오늘은 그냥 타시오. 장터에서 다들 매파님 배가 몇 번 건너는지에 걸었소. 나도 걸었고.”
“몇 번에 거셨어요?”
“일곱.”
“그럼 두 번 더 건너야겠네요.”
*
목록이 마지막으로 별원 대청에 돌아왔을 때 비단은 쉰 필, 양은 서른 마리가 되어 있었다. 모용란이 목록에 남궁가 도장을 찍었다. 찍고 나서 소화가 목록을 말기 전에 진이 다가와 붓을 들었다. 진은 목록 맨 끝, 도장 아래 빈자리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을 적었다. 모용란은 시종에게 차를 시키느라 보지 못했다.
「생일 — 신부가 고르는 날」
소화가 진을 보았다. 진은 붓을 내려놓고 기둥으로 돌아갔다. 귀가 붉었다.
“예물에 이런 것도 넣습니까?” 소화가 낮게 물었다.
“돈이 안 드는 것도 있어야 한다. 어머니가 서른 필에서 쉰 필이 되는 동안 나는 한 푼도 안 냈다.”
“사례는 이 줄만큼 깎아 드릴게요.”
“얼마나?”
“한 푼도 안 깎습니다. 이 줄은 값을 못 매겨요.”
대청을 나서려는 소화를 모용란이 불러 세웠다. 진은 수레를 보러 마당으로 나간 뒤였다. 모용란은 높은 의자에서 내려오지 않고 소화를 내려다보았다.
“마교 며느리였다는 매파가 우리 남궁가 예물을 들고 간다. 손이 떨리지 않느냐?”
“예물이 무거워서 조금 떨립니다.”
“그 사내도 망산에서 죽었다지.”
“네.”
“망산에서 죽은 마교 무사 가운데 우리 남궁가 칼에 쓰러진 자가 많다. 그 사내도 그랬다면, 매파는 왜 우리 집 혼사를 맺느냐?”
소화는 목록을 품에 안았다. 모용란은 답을 알고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모르고 묻는 얼굴이었고, 몰라서 다행인 얼굴이었다.
“태부인께서는 원수 집안에 왜 비단을 쉰 필이나 보내십니까?”
“지지 않으려고.”
“저도요.”
모용란이 한참 소화를 보다가 손을 내저었다. 가라는 손이었다. 소화가 대청 문턱을 넘을 때 등 뒤에서 모용란이 시종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단 궤짝 맨 위에 모란 무늬 필을 올리라는 말이었다.
예물 수레 넷이 별원 문을 나갔다. 비단 궤짝과 술 단지를 실은 수레들 뒤로, 남궁가 문장이 수놓인 붉은 천을 덮은 작은 수레가 따랐다. 진의 목록 한 줄은 맨 앞 수레 비단 궤짝 위에 둘둘 말려 묶여 있었다. 소화가 앞장서고 춘매와 오복이 수레 곁을 따랐다. 오복은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장터에서 일부러 엄지 자리가 해진 것을 골랐다.
*
낙수를 건너는 돌다리 한가운데, 흰 옷 청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스물이 넘는 머릿수였다. 다들 칼을 차고 있었고, 맨 앞 청년이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담벼락에 붙었던 방과 같은 글씨였다.
“마교 며느리 매파의 혼사를 낙양 청년들이 막는다! 예물 수레는 강을 건너지 못한다!”
다리 양 끝에 장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수레를 끌던 말이 콧김을 뿜었다. 소화는 수레에서 내려 청년들 앞으로 걸어갔다. 맨 앞 청년은 스물을 갓 넘긴 얼굴이었다. 손등에 먹물이 묻어 있었다. 방을 직접 쓴 손이었다.
“청년분, 이름이 뭐예요?”
“알 거 없소!”
“혼처는 있으세요?”
청년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뒤쪽 청년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리 위에서 수레를 막으면 관아 방이 하나 더 붙어요. 성안 다리에서 칼 뽑으면 곤장 팔십. 그리고 월하원은 수레 하나 막는 데 사례를 따로 받습니다. 네 수레니까 넷 몫이에요.”
“우리는 정파의 이름으로…….”
“정파 이름으로 장가가실 때 오세요. 마교 며느리 매파는 정파 신랑을 더 잘 골라요. 아무도 안 골라 주는 사람 마음을 아니까.”
청년 하나가 칼자루에 손을 댔다. 오복이 수레 그늘에서 한 걸음 나왔다. 청년의 손이 칼자루에서 멈췄다. 다리 북쪽 끝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진이 말을 타고 다리로 올라왔다. 흰 장포 자락이 말 옆구리를 쳤다.
“비켜라.”
“소가주님! 소가주님도 이 혼사를 싫어하시잖소! 원수 집안 계집을…….”
진이 말에서 내렸다. 칼을 뽑지 않고 맨 앞 청년 앞에 섰다. 청년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내 혼사다. 싫어하는 것도 내가 한다. 너희가 대신 싫어해 줄 것 없다.”
“하지만 남궁율 형님이…….”
“형님이 활터에서 기다린다고 하더냐?”
청년들이 서로를 보았다. 진은 청년들 사이를 걸어 지나갔다. 청년들이 저도 모르게 길을 텄다. 진이 맨 앞 수레의 말고삐를 잡고 끌었다. 수레 넷이 다리를 건넜다. 소화는 맨 끝 작은 수레 곁에서 걸었다. 다리를 다 건넜을 때 장터 사람 하나가 소리쳤다.
“여섯 번째!”
사공이 강가에서 주먹을 쥐었다.
*
예물은 해 질 녘 마교 객관 마당에 내려졌다. 구양추가 비단 궤짝을 하나씩 열어 보고, 은그릇을 하나씩 두드려 보았다. 비단 궤짝 위에 묶인 목록을 풀다가 구양추의 손이 멈췄다. 맨 끝 줄이었다. 구양추가 목록을 말아 가린에게 건넸다. 가린은 마당 한가운데 서서 목록을 끝까지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생일, 신부가 고르는 날.”
가린이 진의 말투로 되뇌었다. 진은 객관 대문 밖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가린은 목록을 접어 품에 넣고,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상자를 소화에게 내밀었다.
“답례 목록에는 안 들어간다. 따로 전해라.”
“무엇입니까?”
“열어 보지 마라. 매파도.”
소화는 상자를 받아 소매에 넣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실패에서 실 끝을 뽑아 매듭 하나를 지었다. 다섯 번째 매듭이었다. 예물이 대문을 넘었으니 납징은 끝났다.
*
별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은 말을 끌고 걸었다. 소화가 상자를 건네자 진은 열어 보지 않고 품에 넣었다. 별원 담장이 보이자 진이 걸음을 멈췄다. 담장 안 활터에서 시위 놓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매파. 같이 가자. 보고 들은 건 못 본 걸로 하지 마라. 본 걸로 해라.”
활터 과녁 앞에 남궁율이 혼자 서 있었다. 다리에서 흩어진 청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남궁율은 화살을 시위에 걸고 당겼다가 놓았다. 화살이 과녁 한가운데 박혔다. 남궁율이 웃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우님. 다리에서 청년들을 쫓았다면서요. 그 애들이 아우님 편 들려고 나간 건데.”
진은 소매에서 화살을 꺼냈다. 모래톱 모래가 말라붙은 깃을 손톱으로 털었다. 흰 깃과 회색 깃이 번갈아 꽂혀 있었다. 진은 남궁율의 화살통으로 걸어가 화살 하나를 뽑았다. 흰 깃과 회색 깃. 오늬 바로 위에 칼로 새긴 작은 금 두 줄. 모래톱 화살에도 같은 자리에 금 두 줄이 있었다.
“형님 화살이오.”
남궁율의 웃음이 얼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렇소. 내가 쐈소.”
소화는 활터 입구 기둥 곁에 섰다. 부채를 펴지 않았다.
“왜?”
“아우님은 열다섯에 아버지를 잃었지요. 나는 아홉에 잃었소. 스물두 해 전 휴전이 깨지던 날에. 휴전도 혼사도 마교한테는 칼 갈 시간이오. 아우님이 마교 사위가 되면 다음 싸움에서 남궁가는 정파 맨 앞에서 등을 보이게 되오. 등 뒤에 마교 처가가 있는 집안이 되니까.”
“그래서 실을 끊었소?”
“실이 끊기면 아우님은 깬 사람이 안 되고, 마교도 깬 집안이 안 되고, 혼사만 사라지오. 아무도 안 다치는 화살이었소.”
“나는 다쳤소.”
남궁율이 처음으로 웃음을 지웠다.
“아우님. 이 화살을 맹 대청에 들고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오? 남궁가 사람이 실을 끊은 거요. 공문대로라면 남궁가가 혼사를 깬 집안이오. 숙모님이 맹 대청에 불려 가시고, 남궁가가 휴전을 깬 집안이 되오. 그래도 들고 가겠소?”
진은 화살 두 대를 나란히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소화는 진이 무엇을 계산하는지 알았다. 들고 가면 어머니가 대청에 섰다. 들고 가지 않으면 사촌형이 다음 화살을 겨눴다.
진이 모래톱 화살을 무릎에 대고 꺾었다. 마른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활터에 울렸다. 반 토막을 남궁율 발 앞에 던지고, 깃이 달린 반 토막은 제 소매에 넣었다.
“들고 가지 않겠소. 대신 형님. 다음 화살은 내가 받겠소. 실 대신 내 등으로.”
남궁율이 발 앞의 반 토막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뒤에 다시 웃음을 얼굴에 올렸다.
“아우님. 화살은 하나가 아니오.”
남궁율이 화살통을 어깨에 메고 활터를 나갔다. 진은 과녁 앞에 서 있었다. 소화는 기둥 곁에서 소매 속 실패를 쥐었다. 매듭 다섯이 손바닥 안에서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