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12자)

실을 돌려주러 온 손님들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스무닷새 아침⁠, 월하원 대문에 숯으로 쓴 글씨가 커다랗게 남아 있었다⁠. 「⁠마교 며느리⁠」⁠. 곽춘매가 걸레로 문질렀지만 숯 가루가 나뭇결에 박혀 글씨가 회색으로 번지기만 했다⁠.

“⁠아가씨⁠, 지우니까 더 잘 보여요⁠.⁠”

“⁠그럼 그 밑에 써⁠. 상담은 여전히 아홉 절차⁠.⁠”

춘매가 붓을 들기도 전에 골목 어귀가 시끄러워졌다⁠. 소화가 이층 창으로 내다보았다⁠. 골목 끝에서 월하원 대문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남녀가 둘씩 짝을 지어 섰고⁠, 짝마다 손에 무엇인가 쥐고 있었다⁠. 붉은 실이었다⁠. 혼례 날 소화가 새끼손가락에 묶어 주고⁠, 혼례가 끝나면 부부가 나눠 간직하던 실 토막이었다⁠.

맨 앞 부부는 남시 비단 가게 주인과 안주인이었다⁠. 일곱 해 전 소화가 맺어 준 집이었다⁠. 남편이 실을 내밀었다⁠.

“⁠매파님⁠, 이거 돌려드리러 왔소⁠. 장인어른이 마교 며느리가 묶은 실은 집에 두지 말라고 하셔서⁠.⁠”

안주인이 남편 손에서 실을 도로 낚아챘다⁠.

“⁠이건 내 실이에요⁠. 당신 실이나 돌려드려요⁠.⁠”

“⁠둘이 한 실이잖소⁠.⁠”

“⁠그러니까 반만 돌려드려요⁠.⁠”

안주인이 실을 반으로 뚝 끊어 남편 손에 쥐여 주고 제 반쪽을 품에 넣었다⁠. 남편이 반 토막을 들고 서 있다가 소화에게 내밀지도 못하고 안주인 뒤를 따라갔다⁠. 춘매가 계산대에서 붓을 들고 물었다⁠.

“⁠아가씨⁠, 반 돌려받은 건 몇으로 쳐요⁠?⁠”

“⁠안 쳐⁠. 돌려받은 게 아니야⁠.⁠”

줄은 줄지 않았다⁠. 정파 무관 사범의 어머니는 실과 함께 사례금 환불을 요구했고⁠, 소화가 혼례 뒤에 손주를 둘 보셨으니 환불은 손주 하나당 반씩 깎인다고 하자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객잔 주인 부부는 실을 돌려주러 왔다가 계단 아래서 부부 싸움을 시작해⁠, 서로 상대방 실만 돌려주겠다고 다투다가 둘 다 실을 쥐고 집에 갔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계산대 위 대접에 쌓인 실 토막은 마흔 개를 넘었다⁠. 소화는 대접을 내려다보았다⁠. 실 토막 하나하나에 혼례 날 날씨와 신부 집 대문 빛깔이 떠올랐다⁠.

줄 끝에 개방 칠대 제자와 순풍표국 여자 표사가 서 있었다⁠. 둘은 실을 들고 오지 않았다⁠. 대신 여자 표사가 철퇴를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우리는 안 돌려줘요⁠. 상다리 값 다 냈는데 왜 돌려줘요⁠.⁠”

“⁠다리 밑 패거리가 매파님 욕하면 저 사람이 업고 뛴대요⁠.⁠” 거지 신랑이 말했다⁠.

“⁠업고 뛰는 거 아니고 업어서 던지는 거예요⁠.⁠”

소화는 처음으로 부채를 펴지 않고 웃었다⁠.

*

한낮이 지나 계단이 무겁게 울렸다⁠. 무림맹 총관 당설희가 올라왔고⁠, 뒤에 관매 장금옥이 목에 나무 명패를 걸고 따라 올라왔다⁠. 당설희는 맞선 방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공문을 탁자에 펼쳤다⁠.

“⁠엽 매파⁠. 맹은 매파를 바꾸겠소⁠.⁠”

“⁠차 한 잔은 드시고요⁠.⁠”

“⁠안 마시오⁠. 처음부터 안 마셨소⁠.⁠”

장금옥이 탁자 위 실 대접을 들여다보고 혀를 찼다⁠. “⁠관매가 이 혼사를 맡겠소⁠. 관아 도장이 있으니 육례도 빠르오⁠. 문명이니 납길이니 이미 지난 건 관아에서 다시 하면 되지⁠.⁠”

“⁠다시 하면 휴전 끝나는 날까지 서른닷새입니다⁠.⁠” 소화가 말했다⁠. “⁠기러기부터 다시 잡으셔야 해요⁠. 태부인께서 기러기를 또 쏘실지는 모르겠네요⁠.⁠”

당설희가 공문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맹은 공정해 보이는 매파가 필요하오⁠. 오늘 아침 소림에서 서신이 왔소⁠. 마교 며느리가 맺는 혼사를 맹이 주관하면 소림은 맹 회의에 나오지 않겠다고⁠. 무당도 같은 말을 했소⁠. 혼사가 공정해 보이지 않으면 휴전을 깬 집안을 벌할 명분도 없어지오⁠.⁠”

“⁠공정해 보이는 매파와 혼사를 맺을 매파는 다릅니다⁠.⁠”

“⁠맹에는 같소⁠.⁠”

“⁠총관님⁠. 저를 처음 찾아오셨을 때 저를 고르신 까닭이 뭐였습니까⁠?⁠”

당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화가 대신 대답했다⁠.

“⁠칼 두 자루 앞에서도 키와 좋아하는 음식을 물을 매파라서요⁠. 쓸모 있는 매파라서요⁠. 지금도 쓸모는 같습니다⁠. 달라진 건 맹이 저를 보는 눈이지요⁠.⁠”

“⁠눈이 달라지면 쓸모도 달라지오⁠.⁠”

당설희의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사천 당문의 독 장갑을 낀 손이 공문 위에서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당설희는 사람을 쓸모로 쟀고⁠, 쓸모가 사라지면 손을 뗐다⁠. 소화는 당설희의 손이 지금 무엇을 재고 있는지 알았다⁠. 소림과 무당⁠, 맹 회의의 빈자리⁠, 텅 빈 곳간⁠.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둘 올라왔다⁠. 하나는 세 칸씩⁠, 하나는 한 칸씩⁠.

*

남궁진과 혁련가린이 문간에 나란히 섰다⁠. 둘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붉은 실로 이어져 있었다⁠. 실은 한 자도 안 되게 짧았다⁠. 계단을 오르며 서로의 걸음에 맞추느라 진은 세 칸씩 오르다 말았고 가린은 한 칸씩 오르다 빨라졌다⁠.

“⁠총관⁠. 매파를 바꾼다고 들었소⁠.⁠” 진이 말했다⁠.

“⁠그렇소⁠.⁠”

“⁠매파는 우리가 고르겠소⁠.⁠”

장금옥이 명패를 쥐었다⁠. “⁠혼사에서 매파를 신랑 신부가 고르는 법은 없소⁠!⁠”

“⁠이 혼사엔 법이 없소⁠. 백 년 원수 집안끼리 혼사하는 법이 원래 없으니까⁠.⁠” 진이 실에 묶인 손을 들었다⁠. “⁠새 매파가 오면 실도 새로 묶겠지⁠. 새 실은 아무나 끊을 수 있소⁠. 이 실은 화살 말고는 아무도 못 끊었소⁠.⁠”

당설희의 눈이 가린에게로 옮겨 갔다⁠. “⁠성녀는⁠?⁠”

가린은 느리게 말했다⁠.

“⁠대장로님이 받아 주지 않은 며느리였다고 했다⁠. 마교도 안 받아 주고 정파도 안 받아 주는 사람이다⁠.⁠” 가린이 소화를 보았다⁠. “⁠나와 같다⁠. 이 혼사는 그런 사람이 맺어야 한다⁠.⁠”

진이 고개를 돌려 가린을 보았다⁠. 가린은 진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남궁진이 먼저 실을 끊는 걸 이 매파 앞에서 봐야 한다⁠. 다른 매파는 못 믿는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진이 말했다⁠.

당설희가 한참 두 사람을 보았다⁠. 쓸모를 다시 재는 눈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같은 매파를 골랐다는 소문이 낙양에 퍼지면⁠, 소림과 무당에 보낼 답장의 첫 줄이 생겼다⁠. 당설희가 공문을 접었다⁠.

“⁠좋소⁠. 매파는 그대로 두오⁠. 대신 열흘이오⁠. 열흘 안에 납징과 청기를 마치시오⁠. 예물을 주고받고 혼례 날을 잡으시오⁠. 열흘이 지나도록 날을 못 잡으면 맹은 매파를 바꾸고⁠, 그때는 신랑 신부가 고른다는 말도 듣지 않겠소⁠.⁠”

장금옥이 입을 삐죽였다⁠. “⁠열흘 뒤에 다시 오겠소⁠. 관아 도장 들고⁠.⁠”

“⁠그때는 국수에 고명 두 개 얹어 드릴게요⁠.⁠”

*

당설희와 장금옥이 내려간 뒤 춘매는 계산대에 앉아 실 대접을 끌어안았다⁠. 실 토막을 하나씩 꺼내 길이대로 늘어놓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대접에 넣기를 되풀이했다⁠. 오복이 이층에서 내려온 깨진 찻잔 조각을 쓸어 담았다⁠.

“⁠아가씨⁠. 저 하나만 여쭤도 돼요⁠?⁠”

“⁠사례 없이⁠?⁠”

“⁠월급에서 까세요⁠.⁠” 춘매가 실 토막 하나를 들었다⁠. “⁠그분 이름이 준이었어요⁠? 아가씨가 열두 해 동안 아침마다 매듭 고쳐 꽂은 분이요⁠?⁠”

“⁠응⁠.⁠”

“⁠잘생겼어요⁠?⁠”

“⁠눈썹에 흉이 있었어⁠. 웃으면 흉이 같이 올라갔고⁠.⁠”

춘매가 실 토막을 대접에 도로 넣었다⁠. “⁠그럼 저 오늘부터 마교 며느리 매파 집 견습이네요⁠. 장터에서 누가 물으면 그렇다고 할게요⁠. 숨기면 더 캐요⁠.⁠”

“⁠월급은 안 올라⁠.⁠”

“⁠알아요⁠.⁠”

오복이 빗자루를 세워 놓고 말했다⁠. 오복이 묻지 않은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장님⁠. 장로회가 둘로 갈렸다⁠. 대장로님은 혼사를 깨려고 하지만 칼은 안 쓰신다⁠. 이장로 탁문걸은 다르다⁠. 사월 그믐에 싸움이 다시 붙어야 서쪽 소금길을 도로 찾는다고 한다⁠. 지붕에서 떨어진 날⁠, 나를 보낸 건 대장로님이었다⁠. 다음에 오는 놈은 이장로가 보낸다⁠.⁠”

“⁠다음에 오는 놈은 어떻게 알아봐⁠?⁠”

“⁠신발이 안 해졌다⁠. 이장로는 사람한테 신발을 사 준다⁠.⁠”

소화는 오복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엄지가 나온 신발은 그대로였다⁠. 소화는 계산대 서랍에서 동전 한 줌을 꺼내 오복 손에 쥐여 주었다⁠.

“⁠신발 사⁠. 해진 걸로⁠.⁠”

해가 지고 가린이 구양추에게 끌려가다시피 객관으로 돌아간 뒤⁠, 진은 혼자 이층에 남았다⁠. 실은 가린이 이로 풀고 갔다⁠. 진은 창틀에 걸터앉아 소매 속 화살을 만지작거렸다⁠. 모래가 마른 깃이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

“⁠매파⁠. 묻겠다⁠.⁠”

“⁠사례는 이번엔 안 받겠습니다⁠.⁠”

“⁠검은 털 술을 단 무사⁠. 왼쪽 눈썹 끝에 칼자국이 있었다⁠. 내 목에 칼을 대고 웃었다⁠. 웃으면서 가라고 했다⁠.⁠”

소화가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주전자 바닥이 탁자에 부딪혀 짧게 울렸다⁠.

“⁠사마준이냐⁠?⁠”

등잔불이 흔들렸다⁠. 소화는 머리의 매듭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손은 탁자 모서리를 짚고 있었다⁠.

“⁠눈썹 칼자국은 숙주에서 말 타다 떨어져서 생긴 거예요⁠. 자기는 늘 칼싸움에서 났다고 했지만⁠.⁠”

진의 손에서 화살이 멈췄다⁠.

“⁠망산에서 저는 뒤에 있었어요⁠. 사절단 짐 곁에요⁠. 싸움이 끝나고 올라가 보니 준이는 숨이 붙어 있었어요⁠. 제 손을 잡고 말했어요⁠. 아이를 보냈다고⁠. 칼 쥔 정파 아이 하나를 보냈다고⁠. 그리고 숨이 끊어졌어요⁠.⁠”

“⁠누가 벴냐⁠?⁠”

소화는 진을 바로 보았다⁠.

“⁠남궁 가주님 칼이었어요⁠. 준이 목에 남은 자국이 남궁 검이었어요⁠. 아드님 목에 마교 칼이 닿아 있는 걸 보고 뛰어오셨겠지요⁠. 준이가 칼을 거두는 걸 보셨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진은 창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열다섯 살의 진은 칼을 떨어뜨리고 달아났다⁠. 달아나다 돌아보았을 때 아버지가 쓰러지고 있었다⁠. 아버지를 벤 사람은 흰 수염의 마교 장로였다⁠. 진이 본 것은 거기까지였다⁠. 아버지가 왜 진이 있던 자리로 달려왔는지⁠, 무엇을 벤 뒤에 쓰러졌는지⁠, 열두 해 동안 진은 묻지 않았다⁠.

“⁠그래서 이 혼사를 맡았냐⁠? 우리 아버지가 벤 사람 대신 그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아뇨⁠. 빚 때문에요⁠.⁠”

진이 소화를 보았다⁠. 소화는 웃지 않았다⁠.

“⁠이천 냥이에요⁠. 사월 그믐까지⁠. 그것 말고 다른 까닭이 있었으면 제가 먼저 소가주님 목에 칼을 댔겠지요⁠.⁠”

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 목에서 걸려 기침처럼 나왔다⁠. 진은 화살을 소매에 도로 넣고 창틀에서 내려왔다⁠.

“⁠납징은 내가 준비하겠다⁠. 어머니 몰래 반⁠, 어머니 알게 반⁠.⁠”

“⁠예물 목록은 제가 드릴게요⁠. 정찰가로요⁠.⁠”

“⁠양은 빼라⁠.⁠”

“⁠신랑 집에서 보내는 예물에 양은 원래 없어요⁠. 신부 집에서 답례로 보낼 때 들어가지요⁠. 서쪽에서는 양 열 마리가 기본이에요⁠.⁠”

진의 얼굴이 모란밭에서 양고기를 씹을 때처럼 굳었다⁠. 소화가 부채를 펴서 입을 가렸다⁠.

“⁠열 마리를 다 볶아 오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아마⁠?⁠”

“⁠성녀님 마음이지요⁠. 유모님 손이고요⁠.⁠”

진이 계단으로 내려갔다⁠. 소화는 등잔을 들고 따라 내려가 대문을 열어 주었다⁠. 대문 밖 담벼락에 새 방이 붙어 있었다⁠. 먹물이 아직 마르지 않아 끝이 흘러내렸다⁠.

「⁠정파 청년 동지들에게 — 마교 며느리 매파가 맺는 혼사를 낙양 청년들이 막는다⁠. 모이는 곳 별원 활터⁠. 남궁율⁠」

진이 방을 한참 보았다⁠. 손을 뻗어 떼려다 멈췄다⁠. 소화가 등잔을 들어 방을 비추었다⁠. 방 귀퉁이에 흰 깃과 회색 깃을 번갈아 그린 작은 화살 그림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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