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70자)
용문의 노부인 비무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스무나흘 아침, 낙양 남문을 나선 나귀 수레가 이수 강변 길을 따라 덜컹거렸다. 엽소화는 수레 앞자리에서 부채로 해를 가렸고, 곽춘매는 짐칸에서 약상자와 수건과 소금 한 줌을 챙겼다. 오복이 고삐를 잡았다.
“아가씨, 소금은 왜 챙기라고 하셨어요?”
“노인 둘이 칼을 쓰면 반은 허리를 다치고 반은 다리에 쥐가 나. 쥐 나면 소금 물 먹여.”
“장터 내기는 태부인한테 여섯, 유모한테 넷이에요. 그런데 오복 오라버니가 유모한테 걸래요.”
오복이 고삐를 쥔 채 말했다. “유모 지팡이에 장로회 무사 셋이 이가 나갔다. 내가 넷째가 될 뻔했다.”
“왜?”
“성녀님 방에 밤에 들어갔다가.”
“무슨 일로?”
“장로회가 성녀님을 지키라고 보냈다. 유모는 그걸 몰랐다.”
춘매가 오복을 한참 보다가 동전 두 닢을 꺼내 유모 쪽으로 걸겠다고 했다. 수레가 모퉁이를 돌자 강 양쪽에서 산이 바짝 다가왔다. 서쪽 절벽에는 바위를 파내 부처를 새긴 굴이 벌집처럼 뚫려 있었고, 크고 작은 돌부처 얼굴들이 강을 내려다보았다. 이수가 두 산 사이를 문처럼 빠져나가는 곳이라 사람들은 이곳을 용문이라 불렀다.
*
강변 자갈밭에 구경꾼이 모래톱 때보다 두 배는 몰렸다. 남궁세가 사람들이 동쪽 자갈밭에, 마교 사람들이 서쪽 자갈밭에 자리를 잡았고, 가운데에는 아무도 서지 않았다. 동쪽 무리 앞줄에 진과 남궁율이, 서쪽 무리 앞줄에 가린과 사마철이 있었다. 진과 가린의 새끼손가락은 사흘 전 소화가 이은 실로 아직 묶여 있었다. 실은 자갈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강물 쪽으로 늘어져 있었고, 두 무리 사람들은 실을 밟지 않으려고 깡충거렸다.
모용란이 자갈밭 가운데로 나왔다. 푸른 구름이 수놓인 소매를 걷어 묶고 장검을 뽑았다. 칼날에 강물 빛이 어룽거렸다. 구양추가 맞은편에서 나왔다. 허리를 굽힌 채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자갈밭 가운데 서자 허리를 폈다. 등이 퍽 하고 울리는 소리가 소화 귀에까지 들렸다.
“두 분.” 소화가 가운데 섰다. “월하원 아홉 절차 가운데 일곱 번째가 ‘어른 뵙기’입니다. 보통은 절하고 차 마시는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하겠습니다. 허리가 삐끗하거나 무릎이 꺾이면 바로 멈춥니다. 한 분이 쥐가 나면 다른 분도 기다리셔야 합니다.”
“쥐는 마교 것들이나 난다.” 모용란이 말했다.
“쥐는 정파 늙은이가 먼저 난다.” 구양추가 말했다.
“시작하세요.”
모용란의 칼이 먼저 나갔다. 쉰둘의 손목이라고 믿기지 않는 빠르기였다. 칼끝이 구양추의 어깨를 노리고 곧게 뻗었고, 구양추의 지팡이가 아래에서 칼등을 쳐 올렸다. 쇠와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절벽 굴속을 돌아 메아리로 돌아왔다. 구경꾼들이 숨을 삼켰다.
모용란은 시집오기 전 모용세가에서 검을 잡았다. 남궁가에 들어와서는 남편과 큰아들의 칼집을 닦았고, 열두 해 전부터는 혼자 남은 막내의 검을 보았다. 오래 묵은 검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자갈밭의 모두가 보았다. 구양추의 지팡이는 칼과 맞서지 않고 칼을 비켜 갔다. 칼이 오면 비켜서 손목을, 칼이 물러나면 따라붙어 무릎을 노렸다.
열 합이 지났을 때 모용란이 갑자기 칼을 세웠다.
“잠깐.”
“쥐냐?”
“허리다.”
모용란이 칼을 짚고 허리를 폈다. 구양추도 지팡이를 짚고 숨을 골랐다. 소화가 춘매에게 손짓했다. 춘매가 달려와 두 노부인에게 물을 한 사발씩 건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동시에 물을 마셨다. 다 마시고 동시에 사발을 춘매에게 내밀었다.
“한 사발 더.”
*
두 번째 겨룸부터 칼과 지팡이 사이로 말이 오갔다.
“우리 진이는 세 살에 목검을 쥐었다.” 모용란이 칼을 내리치며 말했다.
“우리 성녀님은 열세 살에 내 손에 왔다. 오자마자 내 지팡이를 부러뜨렸다.” 구양추가 받아치며 말했다.
“가짜 생일이나 지어 주는 유모가 무슨 자랑이냐.”
“생일을 알려 줄 사람을 태워 죽인 건 너희다.”
모용란의 칼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구양추의 지팡이가 칼이 멈춘 틈에 칼등을 눌렀다. 두 노부인이 칼과 지팡이를 맞댄 채 서로 밀었다. 얼굴이 한 자 거리로 붙었다.
“망산에서 내 남편이 죽었다. 큰아들도 죽었다. 큰아들은 등에 칼을 맞았다. 등에.”
“망산에서 우리 성녀님 어미 아비가 수레 안에서 탔다. 열세 살 아이가 수레 밑에서 엄마 아빠 타는 냄새를 맡았다.”
자갈밭이 조용해졌다. 진이 고개를 돌려 가린을 보았다. 가린은 강물만 보고 있었다. 실이 두 사람 사이에서 조금 당겨졌다. 진은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모래톱에서 들은 이야기, 불타는 수레 밑에서 흰 옷이 아이를 끌어냈다는 이야기를 진은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모용란과 구양추는 칼과 지팡이를 맞댄 채 한참 버텼다. 무릎은 둘이 함께 꺾였다. 두 노부인이 동시에 자갈밭에 주저앉았다. 칼과 지팡이가 엇갈린 채 둘 사이에 떨어졌다.
“멈춤!”
소화가 둘 사이로 뛰어들어 부채를 펴 들었다.
“두 분 동시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비겼어요.”
“내가 먼저 앉았다.” 모용란이 말했다.
“내가 먼저다.” 구양추가 말했다.
“먼저 앉으신 게 진 거예요.”
“그럼 저 늙은이가 먼저 앉았다.”
“나는 앉으려고 앉은 게 아니라 무릎이 먼저 앉은 거다.”
자갈밭 양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정파 사람도 마교 사람도 웃었다. 웃다가 서로 같이 웃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다무는 사람도 있었다. 춘매가 소금물 사발을 두 노부인 입에 번갈아 대 주었다. 모용란이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짜다.”
“남궁가가 보낸 소금이다.” 구양추가 말했다. “아껴 쓰는 중이다.”
진이 자갈밭을 가로질러 와서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실이 진을 따라 끌려오는 바람에 가린도 서쪽 무리에서 몇 걸음 끌려 나왔다. 가린은 버티지 않고 끌려왔다가, 구양추 곁에 쪼그려 앉아 유모의 무릎을 주물렀다. 두 노부인 사이 한 장 거리에서 진과 가린이 각자의 어른을 붙들고 있었다.
“어머니. 모래톱에서 형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용란이 아들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형님이 망산에서 불 난 수레로 간 까닭이요. 수레 밑에…….”
“네 형은 마교 놈한테 등을 찔렸다. 그게 다다.”
모용란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열두 해 동안 같은 말을 같은 자리에 눌러 둔 목소리였다. 진의 입이 닫혔다. 가린은 유모의 무릎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진을 보았다. 진은 어머니의 팔을 붙든 채 고개를 숙였다. 소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실이 땅에 처지는 것을 보았다. 진이 말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가 막아서가 아니었다. 형이 마교 아이를 구하러 갔다고 말하는 순간, 열두 해 동안 어머니가 혼자 미워한 것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진은 어머니의 미움을 반으로 덜어 낼 수 없었다.
구양추가 가린의 손을 툭 쳤다. “성녀님, 무릎 말고 허리.”
“허리는 아까 주물렀다.”
“또 아프다.”
가린은 다시 허리를 주물렀다. 진이 어머니를 부축해 일어서는 동안 가린의 손이 몇 번 멈췄다가 움직였다.
*
비무가 끝나고 구경꾼들이 흩어지려는데, 서쪽 자갈밭에서 사마철이 걸어 나왔다. 사마철은 자갈밭 가운데, 칼과 지팡이가 떨어져 있던 자리에 섰다. 염주를 쥔 손을 들자 마교 무리가 먼저 조용해졌고, 정파 무리도 따라 조용해졌다.
“매파.”
소화는 부채를 접었다. 사마철은 소화를 보지 않고 자갈밭 양쪽을 둘러보았다.
“이 혼사를 맺는 매파에게 묻겠소. 매파의 머리에 꽂힌 매듭은 어디서 났소?”
“장터에서 샀지요.”
“숙주 장터에서는 정혼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붉은 실로 땋은 매듭을 준다. 열두 해 전 봄, 내 아들 사마준이 숙주에서 내게 서신을 보냈소. 매파의 딸과 정혼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서신 안에 매듭 하나를 넣어 보냈소. 바로 저 매듭이오.”
자갈밭이 술렁였다. 진이 소화를 보았다. 가린도 소화를 보았다. 모용란이 춘매에게서 사발을 뺏어 내려놓았다.
“나는 허락하지 않았소. 중원 매파의 딸은 마교 대장로 집안 며느리가 될 수 없다고 답했소. 준이는 답장을 받고도 그 여자를 데리고 낙양에 왔소. 망산 화친 자리에 사절로 따라오면서. 화친은 깨졌고, 준이는 망산에서 죽었소. 나는 아들 시신을 끝내 찾지 못했소.”
사마철이 처음으로 소화를 똑바로 보았다.
“매파. 그날 어디 있었소?”
소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물 소리가 컸다. 절벽 굴속 돌부처들이 강 건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낙양에서 열 해를 살았다고 했지. 열두 해요. 열두 해 전 사월, 매파는 마교 대장로 집안의 며느리가 되려던 사람이오. 정파 세가의 혼사를 맺겠다고 나선 매파가.”
동쪽 무리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마교 며느리가 남궁가 혼사를 맺는다!”
“그래서 마교 편을 들었구나! 지붕에서 떨어진 자객을 점소이라고 감싸고!”
남궁율이 무리 앞으로 나섰다. 웃음 대신 굳은 얼굴이었다.
“숙모님. 매파가 처음부터 마교 사람이었다면 이 혼사는 마교가 짠 혼사입니다. 맹 공문은 공정한 매파가 맺는 혼사를 말한 것이고요.”
모용란이 자갈밭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꺾였던 다리가 아직 떨렸는데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엽 매파. 대답해라. 대장로 말이 맞느냐?”
*
소화는 머리의 붉은 매듭에 손을 올렸다. 열두 해 동안 아침마다 고쳐 꽂던 손이 오늘은 매듭을 쥐고 오래 있었다. 실이 손바닥 안에서 까끌거렸다.
“맞습니다.”
동쪽 무리가 들끓었다. 서쪽 무리는 조용했다. 마교 사람들 가운데 몇이 소화를 다른 눈으로 보았다. 가린이 실을 당겨 진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진은 소화를 보고 있었다. 사흘 전 별원 문간에서 숙주 장터엔 검은 털 술이 흔하다고 한 매파였다.
“숨긴 것은 맞습니다. 대장로님이 허락하지 않은 며느리였던 것도 맞고요.” 소화가 말했다. “그래서 이 혼사가 마교가 짠 혼사냐고 물으시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저는 마교가 받아 주지 않은 사람이에요. 마교 편을 들 이유가 제일 없는 사람이지요.”
“그럼 왜 숨겼소?” 당설희가 무리 뒤에서 물었다. 언제 왔는지 회색 장포 차림으로 공문을 쥐고 서 있었다.
“말하면 아무도 저한테 혼사를 안 맡기니까요. 오늘처럼요.”
사마철은 소화의 손에 쥐인 매듭을 보고 있었다. 염주 알이 엄지 밑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준이가 어디 묻혔는지 아오?”
소화는 사마철을 보았다. 자갈밭 위로 강바람이 불어 다홍 장포 자락이 펄럭였다. 대답하면 망산에 데려가야 했고, 망산에 데려가면 열두 해 동안 혼자 다닌 길을 이 사람과 같이 걸어야 했다.
“오늘은 심판으로 왔습니다. 비무는 비겼고요.”
소화는 매듭을 머리에 다시 꽂았다. 이번에는 손이 한 번에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춘매가 든 소금물 사발을 받아 사마철에게 내밀었다.
“대장로님도 한 모금 드세요. 얼굴이 하얘지셨어요.”
사마철은 사발을 받지 않았다. 동쪽 무리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소화의 발밑 자갈에 부딪혔다. 오복이 수레에서 뛰어내려 소화 앞을 막았다. 두 번째 돌멩이는 날아오지 않았다. 구양추의 지팡이가 허공에서 돌멩이를 쳐서 강물로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