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0자)

열 장 실에 묶인 비무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스무하룻날 아침⁠, 낙수 한가운데 모래톱은 물이 빠져 흰 등을 드러내고 있었다⁠. 엽소화는 맨발로 모래를 밟아 보았다⁠. 밤사이 강바람에 식은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차갑게 밀려 올라왔다⁠. 모래톱 양 끝에 깃대가 하나씩 꽂혔고⁠, 북쪽 깃대에는 남궁가의 푸른 구름 깃발이⁠, 남쪽 깃대에는 마교의 검붉은 불꽃 깃발이 달렸다⁠.

강 양쪽 둑에 사람이 새카맣게 몰려 있었다⁠. 곽춘매는 둑 위에 판자를 깔고 자리마다 번호표를 붙여 팔았다⁠. 앞줄은 동전 다섯 닢⁠, 뒷줄은 두 닢⁠, 버드나무 위는 한 닢이었다⁠.

“⁠아가씨⁠, 버드나무 자리가 제일 먼저 나갔어요⁠. 거지들이 다 샀어요⁠.⁠”

버드나무 가지마다 개방 거지들이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버드나무 아래 둑에서 지난달 상담을 받은 개방 칠대 제자가 해바라기씨를 팔고 있었고⁠, 옆에 순풍표국의 여자 표사가 마흔 근짜리 철퇴를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여드레 전 월하원 맞선에서 상다리를 하나 부러뜨리고 혼약을 했다⁠. 여자 표사가 소화를 보고 철퇴를 번쩍 들어 인사했다⁠. 둑 사람들이 한꺼번에 몸을 젖혔다⁠.

“⁠수리비는 다 갚았어요⁠!⁠”

“⁠알아요⁠. 혼례 날 상은 쇠로 짜 놓을게요⁠.⁠”

*

무림맹 총관 당설희가 모래톱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공문을 무릎에 폈다⁠. 북쪽 깃대 아래에 모용란이 시종에게 양산을 받치게 하고 섰고⁠, 남쪽 깃대 아래에 사마철과 구양추가 섰다⁠. 남궁율은 북쪽 둑 버드나무 그늘에 활을 메고 기대어 있었다⁠.

소화는 실패에서 실을 뽑았다⁠. 한 장은 열 자였고⁠, 열 장이면 모래톱 이쪽 끝에서 저쪽 끝 가까이 닿았다⁠. 소화는 진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실을 풀면서 모래톱을 가로질러 걸었다⁠. 붉은 실이 모래 위에 한 줄로 길게 누웠다⁠. 남쪽 끝에서 가린의 새끼손가락에 매듭을 지었다⁠.

“⁠규칙은 하나입니다⁠. 실을 먼저 끊는 분이 진 겁니다⁠. 칼로 끊든 손으로 끊든 발에 걸려 끊든 같아요⁠.⁠”

“⁠죽이면⁠?⁠” 가린이 물었다⁠.

“⁠죽이시면 수리비가 아니라 장례비를 받습니다⁠. 장례비는 비싸요⁠.⁠”

진이 칼을 뽑았다⁠. 흰 장포 소매가 강바람에 부풀었다⁠. 가린이 가늘고 긴 칼을 뽑았다⁠. 칼날에 아침 해가 미끄러졌다⁠. 북쪽 깃대 아래에서 모용란이 소리쳤다⁠.

“⁠진아⁠! 왼쪽을 비우지 마라⁠. 네 형처럼 싸워라⁠!⁠”

진의 어깨가 한 번 굳었다가 풀렸다⁠. 남쪽 깃대 아래에서 구양추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성녀님⁠! 아침 드신 거 체하지 않게 살살 하십시오⁠!⁠”

가린이 유모를 돌아보지도 않고 칼끝으로 하늘을 한 번 찔렀다⁠. 알았다는 뜻인지 시끄럽다는 뜻인지 둑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읽었다⁠. 당설희가 공문을 들어 한 번 읽고 손을 내렸다⁠.

“⁠시작하시오⁠.⁠”

두 사람은 실을 따라 서로에게 다가갔다⁠. 열 장 실은 모래 위에서 느슨했다⁠. 다가갈수록 남는 실이 둘 사이에 고리를 그리며 쌓였다⁠. 다섯 걸음 앞에서 진이 먼저 들어갔다⁠. 칼이 가린의 어깨를 향해 비스듬히 내려왔고 가린이 칼등으로 받아 흘렸다⁠. 쇳소리가 강물 위로 퍼졌다⁠. 둑에서 탄성이 터졌다⁠.

싸우기 어려운 비무였다⁠. 칼을 크게 휘두르면 바닥의 실이 칼끝에 감겼다⁠. 발을 크게 옮기면 실이 발목에 감겼다⁠. 진이 옆으로 뛰자 실이 가린의 발밑을 쓸었고⁠, 가린이 실을 넘어 뛰자 진의 손가락이 끌려 칼끝이 흔들렸다⁠. 둘은 칼을 섞는 틈틈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둑 위 장터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고 배를 잡았다⁠.

“⁠줄넘기를 하네⁠!⁠”

“⁠저건 비무가 아니라 실뜨기다⁠!⁠”

진이 이를 악물었다⁠. 가린이 실을 발로 차서 진 쪽으로 보냈다⁠. 진이 칼끝으로 실을 들어 다시 가린 쪽으로 넘겼다⁠. 칼날이 실에 닿기 직전 진이 손목을 비틀어 칼등으로 바꿨다⁠. 실이 칼등에 얹혀 하늘로 튀었다가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

열 합쯤 지났을 때 진이 왼발을 반 걸음 끌며 칼끝을 무릎 높이로 내렸다⁠. 왼쪽 옆구리를 칼등으로 덮는 수였다⁠. 가린의 칼이 허공에서 멈췄다⁠.

가린은 칼을 겨눈 채 진의 왼발을 보았다⁠. 모래 위에 끌린 자국이 짧게 패어 있었다⁠. 가린의 숨이 한 번 끊겼다가 이어졌다⁠.

“⁠그 걸음⁠, 누구한테 배웠냐⁠?⁠”

“⁠형한테⁠.⁠”

“⁠네 형은 망산에서 어떻게 죽었냐⁠?⁠”

진의 칼끝이 조금 내려갔다⁠. 둑의 소리가 두 사람에게까지 오지 않았다⁠.

“⁠등에 칼을 맞았다⁠. 불탄 짐수레 옆에서 찾았다⁠. 형이 거기까지 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린이 칼을 내렸다⁠. 끝이 모래에 닿았다⁠.

“⁠수레 밑에 내가 있었다⁠. 불이 수레를 덮었고⁠, 바퀴가 무너졌다⁠. 누가 바퀴를 들어 올리고 나를 끌어냈다⁠. 흰 옷이었다⁠. 나를 내려놓고 일어서는데 등이 붉었다⁠. 그 사람이 왼발을 끌면서 칼을 무릎에 내렸다⁠. 방금 네가 한 것처럼⁠.⁠”

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열다섯 살의 진이 망산에서 본 것은 아버지가 쓰러지는 모습이었고⁠, 형은 싸움이 끝난 뒤 불탄 수레 곁에서 찾았다⁠. 형이 왜 수레로 갔는지 남궁가에서 묻는 사람은 없었다⁠.

가린이 다시 칼을 들었다⁠. 진에게 무슨 말을 더 하지 않으려고 칼을 든 것처럼 빠르게 들어왔다⁠. 칼끝이 진의 가슴 앞에서 작은 원을 한 번 그리고 찔러 들어왔다⁠. 진은 몸을 틀어 피하다가 그대로 굳었다⁠. 이번에는 진이 물었다⁠.

“⁠그 칼끝⁠, 원을 그리고 들어오는 것⁠. 누구한테 배웠냐⁠?⁠”

“⁠대장로님⁠. 사마 집안 검법이다⁠.⁠”

진이 고개를 돌려 남쪽 깃대 아래 사마철을 보았다⁠. 사마철은 염주를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망산에서 마교 무사 하나가 내 칼을 쳐서 떨어뜨렸다⁠. 칼끝으로 원을 그리고 들어왔다⁠. 칼자루에 검은 털 술이 달려 있었다⁠. 내 목에 칼을 대고 있다가 거두면서 말했다⁠. 가라고⁠.⁠”

가린이 숨을 들이켰다⁠. 소화는 모래톱 가운데 의자 곁에 서서 부채를 쥐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검은 털 술⁠. 하서 숙주 장터에서만 파는 야크 털⁠. 열두 해 전 사월 망산 기슭에서 소화가 흙을 덮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진 칼자루에도 같은 술이 달려 있었다⁠.

*

바람 소리가 먼저 났다⁠. 둑 위 어딘가에서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강을 건너왔고⁠, 두 사람 사이 공중에 떠 있던 붉은 실이 툭 끊어졌다⁠. 화살 하나가 실을 끊고 모래톱 가운데 꽂혔다⁠. 깃이 부르르 떨었다⁠.

진과 가린이 동시에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실이 각자의 새끼손가락에서 모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끊긴 두 끝이 바람에 굴렀다⁠.

둑이 터진 듯 소리가 쏟아졌다⁠. 모용란이 양산을 걷어차고 앞으로 나왔다⁠.

“⁠마교가 쐈다⁠! 비무에서 지니까 화살을 날렸다⁠!⁠”

구양추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화살은 북쪽 둑에서 왔다⁠! 남궁가가 쐈다⁠!⁠”

“⁠우리 남궁가는 화살로 혼사를 깨지 않는다⁠!⁠”

“⁠그럼 기러기는 뭘로 잡았냐⁠!⁠”

둑 위에서 웃음과 고함이 뒤섞였다⁠. 버드나무 위 거지들이 해바라기씨 껍질을 뱉으며 편을 갈라 응원했다⁠. 당설희가 의자에서 일어나 공문을 높이 들었다⁠.

“⁠조용히 하시오⁠!⁠”

모래톱이 잠잠해졌다⁠. 당설희는 모래에 박힌 화살을 내려다보고⁠, 끊긴 실 두 끝을 보았다⁠.

“⁠실을 끊은 것은 화살이오⁠. 신랑도 신부도 끊지 않았소⁠. 맹은 화살을 혼사를 깬 집안으로 보지 않소⁠. 혼사는 그대로요⁠.⁠”

“⁠누가 쐈는지는요⁠?⁠” 소화가 물었다⁠.

“⁠그건 맹 일이 아니오⁠. 매파 일이지⁠.⁠”

모용란과 구양추가 모래톱 한가운데서 다시 마주 섰다⁠. 두 노부인 사이에 끊긴 실이 놓여 있었다⁠.

“⁠용문⁠.⁠” 모용란이 말했다⁠. “⁠사흘 뒤 용문 강변⁠. 내가 직접 나가겠다⁠. 마교 화살이 아니면 칼로 보여라⁠.⁠”

“⁠지팡이로 보여 주마⁠.⁠” 구양추가 말했다⁠. “⁠남궁 화살이라는 걸⁠.⁠”

“⁠심판은 누가 보오⁠?⁠” 당설희가 물었다⁠.

두 노부인이 동시에 소화를 가리켰다⁠. 소화는 부채를 접었다⁠.

“⁠심판 사례는 따로 받습니다⁠.⁠”

*

사람들이 모래톱을 빠져나갈 때⁠, 진이 화살 곁에 무릎을 꿇었다⁠. 끊긴 실을 손가락에서 풀어 내는 척하면서 화살대를 쥐고 모래에서 뽑았다⁠. 깃에 젖은 모래가 엉겨 있어 빛깔이 보이지 않았다⁠. 진은 화살을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화는 진의 손을 보았다⁠. 진도 소화가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진이 일어나 소화 곁을 지나치면서 낮게 말했다⁠.

“⁠매파⁠. 오늘 본 건 못 본 걸로 해라⁠.⁠”

“⁠무엇을요⁠? 화살을요⁠, 형님의 걸음을요⁠?⁠”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쪽 깃대 아래 사마철을 한 번 더 보고 배에 올랐다⁠. 북쪽 둑 버드나무 그늘에서 남궁율이 활을 등에 바로 메고 있었다⁠. 남궁율은 진의 배가 다가오자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아우를 둑으로 끌어 올렸다⁠.

가린은 남쪽 끝에 혼자 남아 끊긴 실 한 토막을 손바닥에 감고 있었다⁠. 구양추가 부르는데도 오지 않았다⁠. 소화가 다가가자 가린이 실을 감은 손을 내밀었다⁠.

“⁠매파⁠. 실은 끊겼다⁠. 묶은 사람이 다시 묶어라⁠.⁠”

“⁠용문 비무가 끝나면요⁠.⁠”

“⁠지금 묶어라⁠.⁠”

소화는 실패를 꺼내 가린의 새끼손가락에 남은 토막과 새 실을 이었다⁠. 실 끝은 북쪽 둑으로⁠, 이미 배에 오른 진에게로는 닿지 않았다⁠. 소화는 남은 실 끝을 손에 쥐고 기다렸다⁠. 가린이 실을 내려다보았다⁠.

“⁠저쪽에도 묶어라⁠. 오늘 안에⁠.⁠”

“⁠성녀님⁠, 혼사를 깨시려던 분 아니셨어요⁠?⁠”

“⁠깰 거다⁠.⁠” 가린이 이마의 불꽃 문양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땀에 번진 붉은 물감이 손등에 묻었다⁠. “⁠내 손으로 깰 거다⁠. 화살한테 맡기지 않는다⁠.⁠”

모래톱에 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소화는 실 끝을 들고 배에 올라 북쪽 둑을 향했다⁠. 실패에서 풀려 나가는 실이 강물 위에 붉은 금을 길게 그었다⁠. 사공이 노를 젓다 말고 실을 보았다⁠.

“⁠매파님⁠, 저거 물고기가 물면 어쩌오⁠?⁠”

“⁠물고기가 끊으면 물고기가 진 거예요⁠.⁠”

*

남궁 별원 문간에서 소화를 맞은 것은 진이었다⁠. 시종 둘은 문 안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진은 젖은 장포를 벗어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소매가 화살 무게로 처져 있었다⁠. 진은 소화 손에 들린 실 끝을 보고⁠, 실이 강 건너 모래톱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모래톱 남쪽 끝에 가린이 아직 서 있었다⁠. 멀어서 점 하나였다⁠.

“⁠그 여자가 시켰냐⁠?⁠”

“⁠성녀님이 묶으라 하셨습니다⁠. 오늘 안에요⁠.⁠”

진은 한참 강을 보다가 왼손을 내밀었다⁠. 소화는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매듭을 지었다⁠. 진이 손가락을 한 번 당겨 보았다⁠. 강 건너 점 하나가 손을 드는 것이 보였다⁠.

“⁠매파⁠. 형이 불 난 수레에 간 까닭을 어머니께 말해야 하냐⁠?⁠”

“⁠그건 상담이 아닙니다⁠. 아드님 일이지요⁠.⁠”

“⁠그럼 하나만 묻겠다⁠. 검은 털 술을 단 무사⁠. 매파는 숙주 사람이라 했다⁠. 그런 술을 단 마교 무사를 아느냐⁠?⁠”

소화는 부채를 펴지 않았다⁠. 손에 든 실패가 무거웠다⁠.

“⁠숙주 장터에선 그 술이 흔해요⁠. 개 목에도 달아요⁠.⁠”

진은 소화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매파의 말이 칼보다 빠르다는 것은 진도 알았다⁠. 오늘은 대답이 한 박자 늦게 나왔다⁠. 진은 묻지 않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진의 등 너머⁠, 별원 담장 안 활터에 과녁 셋이 보였다⁠. 과녁마다 흰 깃과 회색 깃을 번갈아 꽂은 화살들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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