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37자)

모란밭에서 읽은 엉터리 시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보름 아침⁠, 월하원 아래층 계산대 위에 붉은 종이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엽소화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혔다가 벼루 끝에 두 번 털었다⁠.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를 붉은 종이에 적어 주고받는 것을 팔자첩이라 했고⁠, 이 종이가 두 집 사이를 건너가야 혼사가 다음 례로 넘어갔다⁠.

“⁠아가씨⁠, 장터 내기가 바뀌었어요⁠.⁠”

곽춘매가 대문을 밀고 들어오며 숨을 몰아쉬었다⁠.

“⁠깨진다에 여덟⁠, 된다에 둘⁠. 구운 기러기 이야기가 퍼져서요⁠. 마교가 다리 하나를 남긴 데서 정이 붙었대요⁠.⁠”

“⁠네 동전 다섯 닢은⁠?⁠”

“⁠그대로 걸어 뒀어요⁠. 곱이 줄어서 속상해요⁠.⁠”

탁자를 닦던 오복이 걸레를 멈췄다⁠. “⁠다리를 남긴 건 질겨서다⁠. 유모가 이가 없다⁠.⁠”

“⁠그 얘기는 장터에 하지 마⁠.⁠”

대문 문턱에 놋쇠 방울 소리가 났다⁠. 쉰 줄의 여인이 목에 나무 명패를 걸고 들어왔다⁠. 명패에는 「⁠하남부 낙양현 관매⁠」라고 새겨져 있었다⁠. 관아에 이름을 올리고 관아가 맡긴 혼사와 혼인 송사를 거드는 매파를 관매라 했고⁠, 소화처럼 사사로이 혼처를 이어 주는 매파는 사매라 했다⁠. 여인은 계산대 위 붉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관매 장금옥이오⁠. 세가 혼사에 관매가 빠지면 혼서가 관아에 안 올라가는 거⁠, 엽 사매는 알지⁠?⁠”

“⁠알아요⁠. 그래서 혼례 날 도장 찍으러 오시라고 국수 한 그릇 떠 놓으려 했어요⁠.⁠”

“⁠국수⁠? 무림맹이 은자 삼천 냥을 건 혼사에 국수⁠?⁠”

“⁠고명도 얹어 드릴게요⁠.⁠”

장금옥의 눈가가 실룩였다⁠. “⁠반이오⁠. 사례의 반을 내면 관아 도장은 내가 책임지지⁠.⁠”

“⁠반을 드리면 제 빚은 누가 책임지나요⁠?⁠”

“⁠그건 사매 사정이고⁠.⁠” 장금옥은 명패를 고쳐 걸고 몸을 돌렸다⁠. “⁠오늘 팔자첩 주고받는다며⁠? 구경 가겠소⁠. 관매는 남의 첩을 볼 줄 알거든⁠.⁠”

방울 소리가 골목으로 멀어졌다⁠. 춘매가 소금 뿌리듯 문턱에 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

성 동쪽 화원은 다섯 해 전 소화가 늦장가를 보낸 노인의 것이었다⁠. 노인은 고맙다며 모란밭 한가운데 정자를 비워 주었고⁠, 대신 혼례 날 모란을 사 가라고 했다⁠. 밭고랑마다 주먹만 한 붉은 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이었고⁠, 먼저 벌어진 꽃잎 몇 장이 아침 햇볕에 얇게 비쳤다⁠. 흙에서 거름 냄새가⁠, 꽃에서 단내가 같이 올라왔다⁠.

“⁠월하원 아홉 절차 가운데 다섯 번째⁠, 함께 걷기입니다⁠.⁠”

소화는 남궁진과 혁련가린의 새끼손가락을 세 자 실로 이었다⁠. 지난번보다 두 자가 길었다⁠. 진은 흰 장포 소매를 걷어 올렸고⁠, 가린은 검붉은 비단옷 자락을 손에 감아 쥐었다⁠. 둘 다 칼은 화원 문간에 맡겼다⁠. 춘매가 문간에서 번호표를 나눠 주며 소매와 비녀를 미리 확인했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나왔다⁠.

두 사람은 고랑을 따라 걸었다⁠. 진이 빨리 걸으면 실이 당겨져 가린의 손이 앞으로 끌렸고⁠, 가린이 멈추면 진의 손이 뒤로 끌렸다⁠. 세 걸음마다 둘 다 멈춰 서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왜 하필 새끼손가락이냐⁠.⁠” 가린이 물었다⁠. “⁠월하노인은 발목에 묶는다고 들었다⁠.⁠”

“⁠옛이야기 속 월하노인은 붉은 끈으로 두 사람 발목을 묶지요⁠.⁠” 소화가 뒤에서 대답했다⁠. “⁠해 봤는데요⁠, 맞선 탁자 밑으로 발을 묶으면 꼭 걷어차는 분이 나와요⁠.⁠”

“⁠찬 사람이 깬 사람이냐⁠?⁠”

“⁠찬 사람은 수리비를 냅니다⁠.⁠”

진이 고랑 끝에서 걸음을 멈추고 소매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종이가 여러 번 접혔다 펴져 귀퉁이가 보풀처럼 일어나 있었다⁠.

“⁠시를 지어 왔다⁠.⁠”

가린의 눈썹이 올라갔다⁠. 소화는 부채를 펴서 얼굴 아래를 가렸다⁠. 사흘 전 진이 월하원 이층에서 물었던 미움받는 법 가운데 다섯 번째였다⁠. 진은 목을 가다듬고 한 줄씩 읽었다⁠.

“⁠모란은 붉고⁠, 네 옷도 붉고⁠, 내 칼에 묻을 피도 붉다⁠. 붉은 것끼리는 혼인하지 않는다⁠.⁠”

모란밭에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가린이 시를 그대로 되뇌었다⁠.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한 낱말도 빼지 않고⁠.

“⁠붉은 것끼리는 혼인하지 않는다⁠.⁠”

“⁠그렇다⁠.⁠”

“⁠운이 하나도 안 맞는다⁠.⁠”

“⁠미워지라고 지은 거다⁠.⁠”

가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이 버티지 못하고 벌어졌다⁠. 콧바람이 먼저 새고⁠, 이어서 목소리가 터졌다⁠. 가린은 허리를 굽히고 웃었다⁠. 이마의 붉은 불꽃 문양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진의 귀가 모란 봉오리처럼 붉어졌다⁠.

“⁠웃지 마라⁠.⁠”

“⁠미워지기엔 너무 못 지었다⁠. 불쌍하다⁠.⁠”

“⁠불쌍해하지도 마라⁠!⁠”

소화는 부채 뒤에서 숨을 골랐다⁠. 남자가 지은 엉터리 시에 여자가 질색하는 대신 웃으면⁠, 혼사는 대개 모란밭에서 반쯤 끝났다⁠. 삼백 쌍 가운데 백 쌍은 그랬다⁠.

*

“⁠여섯 번째 절차⁠, 함께 먹기⁠.⁠”

가린이 정자 난간에 놓아둔 검은 칠기 함을 열었다⁠. 붉은 기름이 번들거리는 볶음 요리가 김을 피워 올렸다⁠. 마른 고추가 고기보다 많았다⁠.

“⁠서쪽 고추로 볶은 양고기다⁠. 유모가 새벽부터 볶았다⁠.⁠”

진의 얼굴이 굳었다⁠. 아흐레 전 춘매가 적은 「⁠양고기 싫어함⁠」을 매파가 마교 객관에 전한 적은 없었다⁠. 소화는 고개를 돌려 춘매를 보았고⁠, 춘매는 하늘을 보았다⁠.

“⁠장터에서 다 알아요⁠, 아가씨⁠. 남궁 소가주가 양고기 싫어한다고⁠.⁠”

진은 젓가락을 들었다⁠.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두 점⁠, 세 점⁠. 이마에 땀이 솟았고 눈가가 젖었다⁠. 실에 묶인 새끼손가락이 떨렸지만 젓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함 바닥이 드러나자 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맛있다⁠.⁠”

“⁠거짓말⁠.⁠”

“⁠거짓말이다⁠. 다 먹었다⁠.⁠”

가린은 빈 함을 내려다보았다⁠. 고추 하나 남지 않았다⁠. 가린이 함 뚜껑을 닫는 손이 느렸다⁠. 실이 두 사람 사이에서 축 늘어졌다⁠.

*

정자에 혼주 자리 둘이 마주 놓였다⁠. 남궁세가 태부인 모용란이 시종 둘을 거느리고 먼저 와 앉았고⁠, 마교 장로회 대장로 사마철이 유모 구양추만 데리고 뒤따라 들어왔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 앉은 것은 백 년 전쟁이 시작된 뒤 처음이라고⁠, 화원 담장 밖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담장 위에 장금옥의 명패가 보였고⁠, 명패 옆에 남궁율이 사과를 들고 앉아 있었다⁠.

“⁠첫 번째 절차⁠, 차 한 잔입니다⁠.⁠”

춘매가 찻잔 둘을 놓았다⁠. 모용란은 찻잔을 들어 정자 밖 모란 뿌리에 부었다⁠. 사마철도 찻잔을 들어 반대편 모란 뿌리에 부었다⁠. 춘매가 빈 잔에 다시 따랐고⁠, 두 혼주가 또 부었다⁠. 세 번째 잔에서 화원 노인이 담장 너머로 소리쳤다⁠.

“⁠꽃 다 썩소⁠!⁠”

소화는 주전자를 춘매에게서 받아 내려놓았다⁠. “⁠차는 여기까지 하지요⁠. 첩을 주고받겠습니다⁠.⁠”

모용란이 붉은 종이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진의 팔자첩이었다⁠. 구양추가 품에서 붉은 종이를 꺼내 사마철 앞에 놓았고⁠, 사마철은 손대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모용란에게 밀었다⁠. 모용란이 첩을 펴서 읽었다⁠.

“⁠칠월 초이레 진시⁠.⁠”

모용란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칠석날 아침에 났다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에 난 성녀라⁠. 혼인 팔자로는 더 바랄 게 없군⁠.⁠”

사마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염주 알을 넘기던 엄지가 멈췄다⁠. 소화는 사마철의 엄지를 보았다⁠. 진도 보았다⁠. 진이 고개를 돌려 가린에게 물었다⁠.

“⁠네 생일이 칠석이냐⁠?⁠”

가린은 진을 보지 않고 모란밭을 보았다⁠.

“⁠모른다⁠.⁠”

정자 안이 조용해졌다⁠. 담장 위 남궁율의 사과 씹는 소리만 들렸다⁠. 구양추가 지팡이로 정자 바닥을 한 번 쳤다⁠.

“⁠내가 지었다⁠. 하서에선 다들 그렇게 한다⁠. 팔자가 사나운 신부는 점쟁이한테 제일 좋은 날을 받아 첩에 적는다⁠. 성녀님은 팔자가 사나운 게 아니라 아예 없어서 제일 좋은 날을 드렸다⁠.⁠”

모용란이 첩을 탁자에 내리쳤다⁠. “⁠가짜 팔자를 우리 남궁가에 들이밀어⁠?⁠”

진이 일어났다⁠. 실이 당겨져 가린의 손이 탁자 위로 끌려 나왔다⁠. 진은 가린을 내려다보았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생일도 모르는 사람과는 합혼 점을 칠 수 없다⁠. 점을 못 치면 례가 멈춘다⁠. 멈춘 건 마교 탓이다⁠.⁠”

“⁠생일을 모르는 게 내 탓이냐⁠?⁠”

“⁠네 집 탓이다⁠.⁠”

가린이 그제야 진을 보았다⁠.

“⁠내 집은 열두 해 전 망산 아래서 불탔다⁠. 너희 집 사람들이 지른 불이었다⁠. 생일을 알려 줄 사람이 불 속에 있었다⁠.⁠”

진의 입이 닫혔다⁠. 실이 팽팽하게 떨렸다⁠. 진은 손가락을 오므리려다 실을 보고 다시 폈다⁠. 사마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생일은 마교가 정하오⁠. 칠석이오⁠, 매파⁠.⁠”

“⁠우리 남궁가는 거짓 첩을 받지 않는다⁠.⁠” 모용란이 말했다⁠.

“⁠그럼 돌려보내시오⁠. 돌려보내는 집이 혼사를 깬 집이오⁠.⁠”

모용란의 손이 첩 위에서 멈췄다⁠. 돌려보내면 남궁가가 깬 집안이 되었고⁠, 받으면 거짓 첩을 받은 집안이 되었다⁠. 모용란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첩 귀퉁이를 집어 들었다⁠. 죽은 쥐 꼬리를 드는 손이었다⁠. 시종이 비단 보자기를 펴자 보자기 위에 떨어뜨렸다⁠.

“⁠받았다⁠. 읽지는 않겠다⁠.⁠”

“⁠받으셨으면 됐습니다⁠.⁠” 소화가 부채를 접었다⁠. “⁠문명은 끝났어요⁠.⁠”

소화는 실패에서 실 끝을 뽑아 매듭 하나를 더 지었다⁠. 맞선과 납채에 문명까지⁠, 매듭이 셋이 되었다⁠. 가린이 실을 이로 물어 풀고 정자를 내려갔다⁠. 내려가다 말고 돌아보았다⁠.

“⁠남궁진⁠. 시는 버리지 마라⁠. 다음에 웃을 일이 없을 때 읽겠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종이를 소매 깊이 밀어 넣었다⁠.

혼주 둘이 시종과 유모를 데리고 반대 방향 문으로 나간 뒤에도 진은 정자 난간에 남아 있었다⁠. 소화가 빈 찻잔을 거두는 동안 진은 고추 기름이 묻은 칠기 함 뚜껑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혀가 아직 얼얼한지 말을 할 때마다 숨을 들이켰다⁠.

“⁠매파⁠. 미움받는 상담⁠, 사례를 곱절로 냈다⁠.⁠”

“⁠받았지요⁠.⁠”

“⁠하나도 안 됐다⁠. 시를 읽었더니 웃었고⁠, 양고기를 먹었더니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

“⁠사례는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상담은 드렸고⁠, 미움을 받고 못 받고는 손님 솜씨라서요⁠.⁠”

진이 난간에 등을 기댔다⁠. 모란 봉오리 하나가 바람에 툭 벌어졌다⁠.

“⁠그 여자⁠, 생일을 모른다는 건 참말이냐⁠?⁠”

“⁠성녀님이 거짓말을 하실 때는 상대 말을 되받지 않으세요⁠. 아까는 소가주님 말을 하나도 안 되받으셨어요⁠.⁠”

진은 한참 모란밭을 보다가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소매 속 종이를 한 번 더 눌렀다⁠. 버리겠다는 손이 아니었다⁠.

*

해 질 녘 월하원 대문을 두드린 것은 현청 포쾌였다⁠. 포쾌는 허리의 쇠사슬을 철렁거리며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사매 엽소화⁠. 혼인 팔자첩을 거짓으로 꾸미는 일을 거든 일로 삼월 열여드레 현청 대청에 나올 것⁠. 고발인 관매 장금옥⁠, 남궁세가 남궁율⁠」

춘매가 종이 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소리를 질렀다⁠.

“⁠남궁율이요⁠? 신랑 집 사촌이 매파를 고발해요⁠?⁠”

“⁠들러리가 제일 바쁜 법이야⁠.⁠”

골목 맞은편 국숫집 처마 밑에 남궁율이 서 있었다⁠. 흰 장포에 웃는 얼굴 그대로⁠, 국수 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소화에게 인사했다⁠. 소화는 소환장을 접어 실패 사이에 끼웠다⁠. 실패 끝에 매달린 매듭 셋이 저녁 바람에 흔들렸다⁠.

“⁠춘매야⁠. 현청 가는 날⁠, 점쟁이 하나 알아봐⁠.⁠”

“⁠점쟁이는 왜요⁠?⁠”

“⁠관아가 점을 치자고 할 거야⁠. 남의 점쟁이한테 점을 맡길 수는 없지⁠.⁠”

남궁율이 국수를 다 먹고 그릇을 국숫집 노인에게 돌려주었다⁠. 소화는 부채를 활짝 펴서 남궁율에게 마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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