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56자)

망산의 무덤 하나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사월 초여드레 새벽⁠, 낙양 북문 밖 길은 이슬에 젖어 검게 빛났다⁠. 엽소화는 다홍 장포 위에 무명 겉옷을 걸치고⁠, 손에 대나무 바구니를 들었다⁠. 바구니 안에 술 한 병과 마른 대추 한 줌⁠, 낙양 남시 떡집의 찹쌀떡 셋이 들어 있었다⁠. 열두 해 동안 해마다 사월 스무엿새에 같은 것을 담아 들고 북문을 나섰다⁠. 오늘은 열여드레를 앞당겼다⁠.

북문 돌기둥 아래 사마철이 혼자 서 있었다⁠. 검은 장포 위로 염주를 걸었고⁠, 구양추도 무사도 데려오지 않았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빈손으로 오셨네요⁠.⁠”

“⁠무엇을 들고 와야 하는지 몰랐소⁠. 아들 무덤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소화는 바구니를 고쳐 들고 앞장섰다⁠. 길 양옆으로 봉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망산은 낙양 북쪽에 길게 누운 산이었고⁠, 기슭부터 등성이까지 무덤이 빽빽했다⁠. 왕의 무덤과 장수의 무덤과 이름 없는 무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낙양 사람들은 살아서는 강남의 물 좋은 고을 소주와 항주에 살고 죽어서는 북망에 묻히라는 말을 했다⁠. 북망은 망산의 다른 이름이었다⁠.

“⁠묻힐 자리를 잘 골랐구려⁠.⁠” 사마철이 말했다⁠.

“⁠고를 겨를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시신을 다 거두고 나서야 올라올 수 있었으니까요⁠.⁠”

*

언덕 하나를 넘자 등 뒤로 낙양 성벽이 내려다보였다⁠. 낙수가 성을 가로질러 은빛으로 흘렀다⁠. 성 동쪽 큰길 위로 먼지가 길게 일고 있었다⁠. 누런 깃발을 든 행렬이 성을 향해 움직였다⁠. 행렬 맨 앞 수레들에는 쌀가마가 높이 실려 있었고⁠, 가마 위에 덮은 거적이 바람에 들썩였다⁠. 사마철이 걸음을 멈추고 행렬을 보았다⁠.

“⁠소림 승병이오⁠. 맹이 부른 거요⁠. 그믐 다음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오⁠.⁠”

“⁠이장로님도 기다리시죠⁠?⁠”

사마철이 소화를 돌아보았다⁠. “⁠오복이 말했소⁠?⁠”

“⁠해진 신발을 사 줬더니 말이 많아졌어요⁠.⁠”

“⁠탁문걸은 서쪽 소금길을 원하오⁠. 싸움이 다시 붙으면 장로회는 탁문걸에게 무사를 맡길 거요⁠. 오늘 내가 성녀를 잃은 대장로가 되었으니⁠.⁠”

“⁠성녀를 잃으신 게 아니라 딸을 시집보내시는 거예요⁠.⁠”

사마철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걸었다⁠.

등성이 길 중간에 띠 지붕을 얹은 움막이 있었다⁠. 움막 앞에서 허리 굽은 노인이 낫을 갈고 있었다⁠. 망산 이쪽 기슭 무덤들의 풀을 깎아 주고 해마다 삯을 받는 묘지기였다⁠. 노인은 소화를 보자 낫을 내려놓고 손을 흔들었다⁠.

“⁠매파 아씨⁠! 올해는 이르시오⁠. 스무엿새가 아직 멀었는데⁠.⁠”

“⁠올해는 손님을 모시고 왔어요⁠.⁠”

노인이 사마철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검은 장포에 흰 수염⁠, 목에 건 염주⁠.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다시 소화에게 돌아왔다⁠.

“⁠아씨⁠, 드디어 새 신랑감이오⁠? 연세가 좀 있으신데⁠.⁠”

사마철의 염주가 멈췄다⁠. 소화는 부채를 펴서 웃음을 가렸다⁠.

“⁠시아버님이세요⁠. 되실 뻔한⁠.⁠”

“⁠아이고⁠.⁠” 노인이 허리를 더 굽혔다⁠. “⁠그럼 그 무덤 주인 아버님이시구먼⁠. 아버님⁠, 아씨가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삯을 안 깎았소⁠. 풀이 한 뼘만 자라도 사람을 보내 물었소⁠. 깎았냐고⁠.⁠”

“⁠올해 삯은 얼마요⁠?⁠” 사마철이 물었다⁠.

노인이 손가락 둘을 펴려다 소화 눈치를 보고 하나를 접었다⁠. “⁠한 냥이오⁠. 원래⁠.⁠”

사마철이 품에서 은자 한 덩이를 꺼내 노인 손에 쥐여 주었다⁠. 한 냥의 열 배는 되는 덩이였다⁠. 노인이 은자를 깨물어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버님⁠, 이건 열 해 치요⁠.⁠”

“⁠열두 해 치요⁠. 모자라면 말하시오⁠.⁠”

노인은 은자를 품에 넣고 낫을 다시 쥐었다⁠. 둘을 앞서 숲까지 길을 쳐 주겠다며 풀을 베며 걸었다⁠. 숲 어귀에서 노인이 멈추고 돌아섰다⁠.

“⁠여기서부턴 아씨가 아시지요⁠.⁠”

산길이 좁아지고 측백나무 숲이 나왔다⁠. 숲 그늘로 들어서자 공기가 서늘했고⁠, 흙과 송진 냄새가 짙었다⁠. 소화가 숲 끝 작은 비탈에서 멈췄다⁠.

비탈 아래 측백나무 한 그루 곁에 낮은 봉분이 있었다⁠. 봉분은 작았고⁠, 풀이 단정하게 깎여 있었다⁠. 비석은 없었다⁠. 대신 손바닥만 한 돌 하나가 봉분 머리에 놓여 있었고⁠, 돌 위에 붉은 실 한 가닥이 감겨 있었다⁠. 실은 비바람에 바래 분홍빛이었다⁠.

사마철은 비탈 위에 서서 내려가지 않았다⁠. 염주를 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요⁠.⁠” 소화가 말했다⁠.

*

소화는 바구니를 봉분 앞에 내려놓았다⁠. 술을 따라 돌 앞에 붓고⁠, 대추와 떡을 놓았다⁠. 손이 익숙했다⁠. 열두 해 동안 열두 번 한 손이었다⁠. 사마철이 천천히 비탈을 내려왔다⁠. 봉분 앞에 서서 한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무릎을 꺾었다⁠. 예순하나의 무릎이 흙에 닿는 소리가 났다⁠.

“⁠열두 해⁠.⁠”

사마철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열두 해 동안 나는 망산 언덕을 다 뒤졌다고 믿었소⁠. 해마다 사람을 보내 무덤을 팠소⁠. 이름 없는 무덤마다 열어 보았소⁠. 이 자리만 못 찾았소⁠. 매파가 숨겼으니까⁠.⁠”

“⁠네⁠. 숨겼어요⁠.⁠”

“⁠왜⁠?⁠”

사마철이 고개를 들었다⁠. 깊은 눈 밑 주름이 젖어 있었다⁠.

“⁠아비에게서 아들을 열두 해 동안 빼앗았소⁠. 왜 그랬소⁠?⁠”

소화는 봉분 곁에 섰다⁠. 머리에 매듭이 없었다⁠. 나흘 전부터 소매에 넣고 다녔다⁠.

“⁠대장로님께 알려 드리면 준이를 서쪽으로 데려가실 거였으니까요⁠. 천산 아래 사마 집안 묘지로요⁠. 저는 숙주로 못 돌아가고⁠, 서쪽으로는 더더욱 못 가요⁠. 대장로님이 며느리로 받아 주지 않은 여자가 마교 묘지에 무슨 얼굴로 가요⁠? 준이를 서쪽에 보내면 저는 준이 무덤에 한 번도 못 가요⁠.⁠”

“⁠그래서 아비 대신 정혼녀가 아들을 가졌소⁠?⁠”

“⁠대장로님이 먼저 며느리를 안 받으셨어요⁠.⁠”

사마철의 입이 닫혔다⁠. 소화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부채를 펴지도 않았다⁠.

“⁠답장을 받던 날 준이가 저한테 그랬어요⁠. 아버지는 화가 나면 서신을 짧게 쓰신다고⁠. 짧을수록 화가 크신 거라고⁠. 답장은 한 줄이었어요⁠. 「⁠중원 매파의 딸은 안 된다⁠」⁠. 준이는 그 한 줄을 접어 품에 넣고 낙양에 왔어요⁠. 망산 화친이 끝나면 아버지께 저를 보여 드리겠다고⁠. 얼굴을 보시면 한 줄이 두 줄이 될 거라고⁠.⁠”

사마철이 봉분을 보았다⁠. 손을 뻗어 흙을 만졌다⁠. 손바닥이 흙 위에서 멈췄다⁠.

“⁠그 서신은⁠.⁠”

“⁠같이 묻었어요⁠. 품에 있던 그대로요⁠.⁠”

*

측백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사마철은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소화는 바구니에서 떡 하나를 꺼내 사마철 손에 쥐여 주었다⁠.

“⁠드세요⁠. 준이 몫인데 준이는 안 먹어요⁠. 해마다 제가 먹었어요⁠.⁠”

사마철은 떡을 쥐고만 있었다⁠.

“⁠준이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소⁠?⁠”

소화는 봉분 머리의 돌을 보았다⁠. 바랜 실이 돌을 세 번 감고 있었다⁠.

“⁠아이를 보냈다고 했어요⁠. 칼 쥔 정파 아이 하나를 보냈다고⁠. 그 아이 목에 칼을 대고 있다가 거두었는데⁠, 등 뒤에서 그 아이 아비가 뛰어들었다고⁠. 숨이 끊어지기 전에 웃었어요⁠. 아이가 달아나는 걸 봤다고⁠.⁠”

사마철의 손에서 떡이 떨어졌다⁠. 떡이 흙 위로 굴렀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보름 남짓 전에 알았어요⁠. 남궁 소가주님이 모래톱에서 성녀님과 칼을 섞다가⁠, 성녀님 칼끝이 원을 그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 물었어요⁠. 망산에서 검은 털 술을 단 마교 무사가 자기 칼을 쳐서 떨어뜨리고⁠, 칼을 거두면서 가라고 했다고⁠.⁠”

“⁠남궁진⁠.⁠”

“⁠네⁠. 준이가 살려 보낸 아이가 남궁진이에요⁠. 준이를 벤 칼은 남궁창의 칼이었고요⁠. 아들 목에 마교 칼이 닿은 걸 보고 뛰어든 아비의 칼⁠.⁠”

사마철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염주가 손에서 풀려 흙 위로 흘렀다⁠. 알이 몇 개 굴러 떡 곁에 멈췄다⁠.

“⁠그리고 남궁창을 벤 건 대장로님이시죠⁠.⁠”

“⁠아들이 쓰러지는 걸 보았소⁠. 남궁창의 칼이 아들 목에서 빠져나오는 걸⁠.⁠”

“⁠남궁가 사람들도 대장로님이 남궁창을 베는 것만 보았어요⁠. 그 앞은 아무도 못 봤고요⁠. 다들 제가 본 데서부터 미워했어요⁠. 열두 해 동안요⁠.⁠”

소화는 한 가지를 더 말했다⁠.

“⁠성녀님이 불탄 수레 밑에서 나올 때⁠, 수레 바퀴를 들어 올린 사람은 흰 옷을 입은 남궁가 사람이었대요⁠. 등에 칼을 맞은 채로요⁠. 남궁 소가주님 형님이에요⁠. 남궁호⁠. 대장로님이 이튿날 아침 재 속에서 찾은 손은⁠, 남궁호가 하루 전에 끌어낸 손이었어요⁠.⁠”

사마철이 고개를 숙였다⁠. 흰 수염이 흙에 닿았다⁠. 오래 그러고 있었다⁠. 측백나무 그늘이 봉분 위에서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

해가 등성이 위로 올라왔을 때 사마철이 일어났다⁠. 무릎에 흙이 묻었다⁠. 흩어진 염주 알을 하나씩 주워 손바닥에 모았다⁠. 끊어진 줄은 없어서 알만 한 줌이었다⁠. 사마철은 알 한 줌을 품에 넣고⁠, 흙 묻은 떡을 집어 털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래 씹었다⁠.

“⁠달군⁠.⁠”

“⁠남시 떡집이에요⁠. 준이가 좋아했어요⁠. 낙양 와서 첫날 먹고는⁠, 마교 떡은 다 돌이라고 했어요⁠.⁠”

사마철이 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입가가 한 번 움직이고 말았다⁠.

“⁠매파⁠. 내가 무엇을 하길 바라오⁠? 무덤을 보여 주고 아들 마지막 말을 들려준 까닭이 있을 것 아니오⁠. 매파는 사례 없이 일을 안 한다고 들었소⁠.⁠”

“⁠사돈 맞선에 앉으세요⁠. 남궁 태부인과 한 탁자에서요⁠. 차 한 잔 놓고⁠.⁠”

“⁠모용란과⁠.⁠”

“⁠스무엿새에 혼주가 둘 다 오셔야 혼례예요⁠. 맹도 혼주 두 분이 맞절하면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 그믐 다음 날 소림 승병이 성에 들어오기 전에요⁠.⁠”

사마철은 등성이 너머 큰길을 보았다⁠. 누런 깃발 행렬은 성문 가까이 와 있었다⁠. 오래 보다가 소화를 돌아보았다⁠. 대장로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앉겠소⁠. 조건이 있소⁠.⁠”

“⁠말씀하세요⁠.⁠”

“⁠모용란이 먼저 절하시오⁠. 내 아들을 벤 집안이 먼저⁠.⁠”

“⁠태부인은 대장로님이 남편을 베셨다고 하실 거예요⁠.⁠”

“⁠그럼 맞선은 거기서 끝나겠지⁠.⁠”

소화는 바구니를 챙겼다⁠. 봉분 머리 돌 위의 바랜 실을 한 번 쓰다듬었다⁠. 사마철의 눈이 소화의 손에서 실로⁠, 실에서 빈 머리로 옮겨 갔다⁠.

“⁠매듭은 어디 두었소⁠?⁠”

“⁠소매에요⁠. 혼례 날까지는 거기 둘 거예요⁠.⁠”

“⁠혼례 날에는⁠?⁠”

“⁠그날 정하지요⁠.⁠”

“⁠남궁 집 혼례에 준이 매듭을 꽂고 갈 생각이오⁠?⁠”

“⁠매파는 혼례 날 머리를 단정히 해야 해요⁠. 장식이 하나도 없으면 신부 집에서 초라하다 하고⁠, 둘이면 신부보다 튄다고 해요⁠. 하나가 딱 맞아요⁠.⁠”

“⁠그 하나가 무엇이 될지는 그날 정한다는 말이구려⁠.⁠”

“⁠사례를 받으면 알려 드릴게요⁠.⁠”

사마철이 염주 알 한 줌을 품 안에서 쥐었다 놓았다⁠. 알끼리 부딪는 소리가 작게 났다⁠.

소화가 비탈을 올랐다⁠. 사마철은 봉분 앞에 한 번 더 서 있다가 뒤따랐다⁠. 숲을 나서기 전 사마철이 돌아서서 측백나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화는 보지 않은 척 앞만 보고 걸었다⁠. 산길 아래에서 오복이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엄지 나온 신발을 감추며 나왔다⁠.

“⁠사장님⁠. 이장로가 객관에서 무사를 모으고 있다⁠. 서른이다⁠. 정파 쪽에서는 남궁율이 청년들을 다시 불렀다⁠. 둘이 같은 날을 고른다⁠.⁠”

“⁠스무엿새⁠?⁠”

“⁠스무엿새⁠. 친영 행렬이 강을 건너는 시각⁠.⁠”

사마철이 걸음을 멈췄다⁠. 소화는 바구니를 오복에게 넘겼다⁠. 빈 바구니였는데 오복은 무거운 것을 받듯 두 손으로 받았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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