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70자)

관을 벗은 성녀, 검을 놓은 소가주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사월 초나흘 아침⁠, 월하원 아래층 탁자들이 벽으로 밀려나 있었다⁠. 국수 솥은 불이 꺼졌고⁠, 가운데에 큰 탁자 하나만 남았다⁠. 엽소화는 탁자 머리에 붉은 천을 깔고 찻잔 넷을 놓았다⁠. 혼주 둘⁠, 신랑 신부 둘⁠. 곽춘매는 대문 밖에서 들어오려는 구경꾼들을 막다가 지쳐서 창마다 번호표를 붙였다⁠. 창 하나에 머리 셋씩이었다⁠.

“⁠아가씨⁠, 장터 내기가 둘로 갈렸어요⁠. 검을 놓는다에 셋⁠, 안 놓는다에 일곱⁠. 관을 벗는다에 둘⁠, 안 벗는다에 여덟⁠.⁠”

“⁠네 동전은⁠?⁠”

“⁠둘 다 놓는다에 걸었어요⁠. 곱이 스무 배래요⁠.⁠”

“⁠이기면 월급 안 줘도 되겠네⁠.⁠”

“⁠지면 주셔야죠⁠.⁠”

모용란이 먼저 들어왔다⁠. 뒤에 남궁율이 따랐다⁠. 남궁율은 흰 장포를 새로 지어 입었고⁠, 허리가 비어 있었다⁠. 검을 찰 자리를 비워 둔 허리였다⁠. 사마철이 뒤이어 들어왔고⁠, 곁에 마흔 남짓한 사내 하나가 따랐다⁠. 사내는 마교 검붉은 옷에 금실로 불꽃을 수놓았고⁠, 신발은 막 산 비단신이었다⁠. 대문 곁에서 걸레를 쥐고 있던 오복이 사내의 신발을 보고 걸레를 꽉 쥐었다⁠.

“⁠마교 장로회 이장로 탁문걸이오⁠. 대장로님을 모시고 왔소⁠.⁠”

탁문걸이 소화에게 고개를 숙였다⁠. 숙이면서 아래층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문과 창과 계단의 자리를 세는 눈이었다⁠.

*

진이 들어왔다⁠. 허리에 아버지의 검을 찼다⁠. 남궁세가 가주가 대대로 차는 검으로⁠, 칼집에 푸른 구름이 은으로 상감되어 있었다⁠. 열두 해 전 망산에서 돌아온 뒤로 남궁가에서는 소가주가 이 검을 찼다⁠. 창마다 매달린 머리들이 웅성거렸다⁠.

가린이 들어왔다⁠. 머리에 성녀의 금관을 썼다⁠. 모란밭에서도 모래톱에서도 쓰지 않았던 큰 관이었다⁠. 금 불꽃 일곱 개가 이마 위로 솟아 있었고⁠, 관이 무거워 가린은 목을 곧게 세우고 걸었다⁠. 구양추가 지팡이를 짚고 뒤에서 관 끝이 문틀에 부딪히지 않게 손을 뻗었다⁠.

“⁠첫 번째 절차⁠, 차 한 잔입니다⁠.⁠”

모용란은 이번에는 찻잔을 붓지 않았다⁠.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사마철도 마셨다⁠. 진은 단숨에 들이켰고⁠, 가린은 냄새를 맡은 다음 진의 빈 잔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마셨다⁠. 진이 가린의 빈 잔을 보았다⁠.

“⁠오늘은 안 바꾸냐⁠?⁠”

“⁠오늘은 독이 들어도 괜찮다⁠.⁠”

“⁠왜⁠?⁠”

“⁠오늘 죽으면 깬 사람이 아무도 없다⁠.⁠”

창가의 머리들이 웃었다⁠. 진은 웃지 않았다⁠. 소화는 실패를 꺼냈지만 두 사람 손가락에 실을 묶지 않았다⁠. 오늘은 실 없이 하기로 진과 가린이 어젯밤 따로따로 말을 보내왔다⁠.

“⁠청기 회답입니다⁠. 신랑 집에서 사월 스무엿새를 알렸고⁠, 신부 집에서 답하실 차례예요⁠. 두 혼주께서 조건을 거셨지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모용란이 진을 보았다⁠. 목소리가 아침보다 낮았다⁠.

“⁠남궁가 소가주로는 안 된다⁠. 검을 내려놓아라⁠.⁠”

사마철이 가린을 보았다⁠. “⁠성녀로는 안 되오⁠. 관을 벗으시오⁠.⁠”

*

진이 일어났다⁠. 허리띠에서 칼집 고리를 풀었다⁠. 고리가 풀리는 쇳소리가 조용한 아래층에 또렷하게 울렸다⁠. 진은 두 손으로 검을 받쳐 들고 어머니 앞 탁자에 내려놓았다⁠. 칼집의 은 구름이 붉은 천 위에서 빛났다⁠.

“⁠남궁진⁠. 소가주 검을 내려놓습니다⁠.⁠”

모용란의 손이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열두 해 전 남편의 검이 망산에서 돌아오던 날에도⁠, 모용란은 이 검을 누군가에게서 받아 탁자에 올렸다⁠. 오늘은 아들이 내려놓았다⁠. 모용란은 검에 손을 대지 않았다⁠.

가린이 두 손을 들어 금관을 벗었다⁠. 관이 머리에서 떨어지자 틀어 올린 머리 한 가닥이 흘러내렸다⁠. 가린은 관을 사마철 앞에 놓았다⁠. 금 불꽃 일곱 개가 찻잔 사이에서 반짝였다⁠. 이마의 붉은 불꽃 문양은 그대로였다⁠. 문양은 관을 벗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혁련가린⁠. 성녀 관을 벗습니다⁠.⁠”

사마철의 염주가 손에서 미끄러져 탁자에 떨어졌다⁠. 사마철은 줍지 않았다⁠. 창가가 한 번 크게 술렁였다가⁠, 술렁인 사람들이 서로 입을 막았다⁠. 춘매가 대문 곁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소화와 눈이 마주치자 주먹을 등 뒤로 숨겼다⁠.

소화는 두 혼주를 차례로 보았다⁠.

“⁠조건대로 됐습니다⁠. 날을 받으시겠습니까⁠?⁠”

모용란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사마철도 그랬다⁠. 둘 다 자식이 물러설 줄 알고 건 조건이었다⁠. 물러서지 않은 자식 앞에서 받지 않겠다고 하면⁠, 혼사를 깬 집안이 되었다⁠. 모용란이 먼저 말했다⁠.

“⁠받는다⁠.⁠”

“⁠받소⁠.⁠”

소화는 실패 끝에 매듭 하나를 지었다⁠. 여섯 번째 매듭이었다⁠. 남은 것은 친영 하나였다⁠.

*

모용란이 탁자 위 검을 들었다⁠. 아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몸을 돌려 남궁율에게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율아⁠. 남궁가 소가주 검이다⁠.⁠”

남궁율은 두 손으로 검을 받았다⁠. 비워 둔 허리에 고리를 걸었다⁠. 검이 허리에서 한 번 흔들리고 자리를 잡았다⁠. 남궁율은 진을 보고 웃었다⁠. 웃음이 지난 어느 날보다 깊었다⁠.

“⁠아우님⁠. 잘 지키겠소⁠.⁠”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촌형의 허리를 오래 보았다⁠.

탁문걸이 탁자로 다가와 금관을 집어 들었다⁠. 사마철이 고개를 돌렸다⁠.

“⁠이장로⁠.⁠”

“⁠대장로님⁠. 성녀 자리가 비었으니 장로회가 새 성녀를 세워야지요⁠. 관은 장로회가 모시겠습니다⁠. 대장로님은 혼주 일만 보시면 됩니다⁠.⁠”

사마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탁문걸은 관을 붉은 비단에 싸서 품에 안고 한 걸음 물러섰다⁠. 마교 사람 몇이 탁문걸 뒤로 따라 섰다⁠. 오복이 걸레를 놓고 소화 곁으로 왔다⁠. 소화 귀에 대고 낮게 말했다⁠.

“⁠사장님⁠. 이장로가 관을 쥐면 장로회는 반이 이장로 편이다⁠.⁠”

“⁠나머지 반은⁠?⁠”

“⁠대장로님 편인데⁠, 대장로님이 오늘 성녀를 잃었다⁠.⁠”

*

계단 위에서 손뼉 소리가 났다⁠. 무림맹 총관 당설희가 이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층에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당설희는 계단을 다 내려와 탁자 앞에 섰다⁠. 회색 장포에 공문을 쥐었다⁠.

“⁠잘 보았소⁠. 이제 맹의 답을 하겠소⁠.⁠”

당설희는 공문을 펼치지 않았다⁠.

“⁠맹은 이 혼사에서 손을 떼오⁠. 남궁세가 소가주와 마교 성녀의 혼사를 맡겼소⁠. 소가주도 성녀도 아닌 두 사람의 혼사는 화친이 되지 않소⁠. 남궁 공자와 혁련 낭자가 혼인하는 것은 막지 않겠지만⁠, 맹이 주관할 일은 아니오⁠.⁠”

창가가 다시 술렁였다⁠. 진이 일어났다⁠.

“⁠총관⁠.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건 우리 어머니와 대장로요⁠. 맹이 아니었소⁠.⁠”

“⁠그렇소⁠. 맹은 자리를 보고 이 혼사를 샀소⁠. 자리가 없어졌으니 살 것이 없소⁠.⁠”

소화가 탁자 머리에서 일어났다⁠. 부채를 접어 쥐었다⁠.

“⁠총관님⁠. 혼사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자리가 하는 게 아니고요⁠.⁠”

“⁠맹은 자리로 사오⁠. 매파도 알지 않소⁠. 처음부터 그랬소⁠.⁠”

“⁠처음부터 그러셨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은 안 보셨고요⁠.⁠”

당설희가 소화를 똑바로 보았다⁠. 독 장갑을 낀 손이 공문을 쥐었다⁠.

“⁠엽 매파⁠. 사람을 보는 일은 매파가 하시오⁠. 맹이 사람을 보면 휴전도 못 맺었소⁠. 맹주께서는 그믐 다음 날 군을 내실 거요⁠. 소림과 무당이 벌써 사람을 모으고 있소⁠. 맹 곳간이 비어서 이 혼사에 은자를 걸었던 거요⁠. 싸움 한 번 피하는 데 삼천 냥이면 싸다고⁠.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됐으니⁠, 삼천 냥은 군량으로 가오⁠. 선금 오백 냥은 돌려주시오⁠.⁠”

창가 머리들이 한꺼번에 소화를 보았다⁠. 춘매가 대문 곁에서 숨을 들이켰다⁠.

소화는 계산대 뒤로 갔다⁠. 서랍을 열고 무명 보자기를 꺼냈다⁠. 보자기를 풀자 은자 꾸러미가 나왔다⁠. 삼월 초엿새에 당설희가 탁자에 밀어 놓았던 꾸러미 그대로였다⁠. 묶은 끈 매듭도 그대로였다⁠.

“⁠오백 냥이에요⁠. 한 푼도 안 썼습니다⁠.⁠”

당설희의 눈썹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빚이 이천이라 하지 않았소⁠? 왜 안 썼소⁠?⁠”

“⁠맹이 언제 손을 뗄지 몰라서요⁠. 쓸모가 없어지면 손을 떼신다고⁠, 첫날 차를 안 드실 때 알았어요⁠.⁠”

소화는 꾸러미를 당설희 앞에 밀었다⁠. 당설희는 꾸러미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집어 들었다⁠. 무게를 손바닥으로 한 번 쟀다⁠.

“⁠엽 매파⁠. 혼례는 그래도 올리겠소⁠?⁠”

“⁠올립니다⁠. 스무엿새⁠, 해 질 녘에요⁠.⁠”

“⁠맹 없이⁠, 은자 없이⁠, 자리 없는 신랑 신부로⁠?⁠”

“⁠혼주 둘은 있잖아요⁠.⁠”

당설희는 고개를 돌려 모용란과 사마철을 보았다⁠. 두 혼주는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용란은 빈 칼집 고리를 만지작거리는 아들을 보고 있었고⁠, 사마철은 탁자에 떨어진 염주를 보고 있었다⁠. 당설희는 꾸러미를 품에 넣고 문으로 걸어갔다⁠. 문간에서 한 번 멈췄다⁠.

“⁠그믐까지는 맹도 칼을 안 뽑소⁠. 그 안에 혼주 둘이 맞절이라도 하면⁠, 그때 다시 오겠소⁠.⁠”

*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저녁⁠, 월하원 아래층에 진과 가린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진의 허리는 비었고⁠, 가린의 머리도 비었다⁠. 춘매가 국수 두 그릇을 놓았다⁠. 둘 다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매파⁠. 사례는 우리가 내겠다⁠.⁠” 진이 말했다⁠.

“⁠무엇으로요⁠?⁠”

진은 품을 뒤졌다⁠. 나무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 보지 않고 다시 넣었다⁠. 동전 몇 닢이 나왔다⁠. 가린도 소매를 뒤졌다⁠. 끊어진 염주 줄이 나왔다⁠. 둘이 동시에 소화를 보았다⁠.

“⁠가진 게 없다⁠.⁠” 진이 말했다⁠.

“⁠나도⁠.⁠” 가린이 말했다⁠.

“⁠알아요⁠. 오늘 다들 보셨어요⁠.⁠”

대문이 열렸다⁠. 비단 장포를 입은 뚱뚱한 사내가 빚 문서를 끼고 들어왔다⁠. 만통전장 주인이었다⁠. 뒤에 주인 아내가 따라왔는데⁠, 일곱 해 전 소화가 시집보낸 여인이었다⁠. 여인이 남편 등을 떠밀었다⁠.

“⁠엽 매파⁠. 그믐까지 스무엿새 남았소⁠. 이천 냥이오⁠. 맹이 손을 뗐다는 소문은 들었소⁠.⁠”

“⁠소문이 빠르네요⁠.⁠”

“⁠우리 집사람이 제일 먼저 듣고 왔소⁠.⁠” 전장 주인이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소화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매파님⁠, 미안해요⁠. 이 사람이 돈 이야기는 저한테 안 숨겨요⁠. 매파님이 그렇게 고른 사람이라⁠.⁠”

전장 주인 부부가 골목으로 사라지자 진이 젓가락을 들었다⁠. 국수가 불어 그릇 위로 부풀어 있었다⁠. 진이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삼켰다⁠. 가린도 젓가락을 들었다⁠. 냄새를 맡지 않고 바로 먹었다⁠.

“⁠자리 없는 남자랑 국수 먹는 건 처음이다⁠.⁠” 가린이 말했다⁠.

“⁠관 없는 여자랑 먹는 것도 처음이다⁠.⁠”

“⁠어떠냐⁠?⁠”

“⁠목이 가볍다⁠. 너는⁠?⁠”

“⁠허리가 가볍겠지⁠.⁠” 가린이 진의 빈 허리를 젓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칼이 없으니 국수를 두 그릇 먹어도 되겠다⁠.⁠”

“⁠한 그릇밖에 없다⁠.⁠”

가린이 제 그릇 위 달걀지단을 집어 진의 그릇에 옮겼다⁠. 진은 받아 먹고 나서⁠, 제 그릇의 파를 가린 그릇에 옮겼다⁠. 가린이 파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파를 안 먹는다⁠.⁠”

“⁠나는 지단을 안 먹는다⁠. 방금 먹었지만⁠.⁠”

춘매가 계산대 뒤에서 소화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가씨⁠, 저거 상담 절차 몇 번째예요⁠?⁠”

“⁠절차에 없어⁠. 둘이 만든 거야⁠.⁠”

국수 그릇이 비자 소화는 계산대 위 실패를 집었다⁠. 매듭 여섯이 실 끝에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소화는 붓을 들어 종이에 짧게 적었다⁠. 「⁠대장로님⁠. 망산에 같이 가시지요⁠. 아드님이 계신 자리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엽소화⁠」

“⁠오복아⁠. 이거 객관에 전해⁠. 대장로님 손에만⁠.⁠”

오복이 종이를 받아 품에 넣었다⁠. 소화는 머리의 붉은 매듭을 빼어 손바닥에 올렸다⁠. 진과 가린이 국수를 앞에 두고 소화의 손을 보았다⁠. 소화는 매듭을 다시 꽂지 않고⁠, 장포 소매 안에 넣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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