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10자)

광장의 비무

무림 보험설계사 · 기담오

향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동안 광장은 숨을 죽였다⁠. 만두 장수도 찜통 뚜껑을 덮었다⁠. 비무장 흰 줄 안에 두 사람이 마주 섰고⁠, 줄 밖에는 낙양 사람의 절반이 서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손을 보았다⁠. 엽대호는 큰 칼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쥐었다⁠. 손가락이 손잡이를 다 감싸지 못할 만큼 손잡이가 굵었는데⁠, 손바닥 전체가 손잡이에 붙어 있었다⁠. 서른 해 동안 손잡이와 손바닥 사이에 틈을 둔 적이 없는 손이었다⁠. 위시목은 검을 한 손으로 쥐었다⁠. 엄지와 검지만 단단히 걸고 나머지 손가락은 가볍게 얹었다⁠. 화산의 검은 손목으로 쓴다고 정월에 위시목이 말했었다⁠. 검이 매화처럼 피려면 손이 가벼워야 한다고⁠.

무림맹 서기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화약의 옛 관례를 읽었다⁠. 비무에 나서는 사람은 향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타는 동안⁠, 줄 밖의 사람 하나를 불러 마지막 말을 나눌 수 있었다⁠. 대호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돋보기로 칼날의 이가 빠진 데를 살폈다⁠.

위시목이 줄 밖을 돌아보았다⁠. 눈길이 제자들을 지나고 엄순자를 지나 나에게서 멈췄다⁠.

“⁠설계사⁠.⁠”

포졸이 창을 들어 길을 열었다⁠. 나는 흰 줄 앞까지 걸어갔다⁠. 위시목이 목소리를 낮췄다⁠.

“⁠견습이 그러던데⁠, 내가 지면 설계사가 술집 손님들한테 서른 냥을 물어 줘야 한다지요⁠.⁠”

“⁠철민이 입이 싸서 죄송합니다⁠.⁠”

“⁠내가 기권하면 설계사는 한 푼도 안 물어도 되오⁠. 기권하면 안 준다는 줄을 읽어 줬다면서⁠.⁠”

나는 위시목의 가슴께를 보았다⁠. 흰 도포 안에서 숨이 얕게 오르내렸다⁠.

“⁠기권하세요⁠, 장문인⁠.⁠” 내가 말했다⁠. “⁠기권하시면 저는 삽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믿지 마세요⁠. 제 말 말고 장문인 몸이 하는 말을 들으세요⁠.⁠”

위시목이 잠깐 웃었다⁠. 정월에 처음 만난 뒤로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설계사가 처음으로 제 이문을 밝히고 파는구려⁠.⁠” 위시목은 웃음을 거두었다⁠. “⁠기권은 안 하오⁠. 저 어른이 보고 있소⁠.⁠”

향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탔다⁠. 서기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화산파와 만세상회의 비무를 시작합니다⁠!⁠”

“⁠만세상회 대표 흑풍채⁠.⁠” 대호가 칼을 든 채 서기를 돌아보았다⁠. “⁠대표가 빠졌소⁠. 아까 고쳐 쓴 방에는 들어갔는데⁠.⁠”

서기가 얼굴이 빨개져서 다시 외쳤다⁠. “⁠만세상회 대표 흑풍채와 화산파의 비무를 시작합니다⁠!⁠”

“⁠순서가 바뀌었는데⁠.⁠”

“⁠시작합니다⁠!⁠”

광장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다 가라앉기 전에 위시목이 먼저 움직였다⁠.

*

정사 대전 때 화산 장문인이 사파 진영 셋을 혼자 뚫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남시 술집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다⁠. 술꾼들은 장문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진영 수를 하나씩 늘렸다⁠. 오늘 비무장을 보고 나서 나는 술꾼들을 다시 보았다⁠. 진영 수를 늘린 게 아니었다⁠. 줄여서 말한 것이었다⁠.

위시목의 검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쇠가 쇠를 치는 소리도 늦게 왔다⁠. 검 끝이 먼저 가고 소리가 따라왔다⁠. 대호의 큰 칼이 위시목의 검을 막을 때마다 쇳소리가 한 박자 늦게 광장에 퍼졌다⁠. 대호는 처음 몇 합 동안 뒤로만 물러났다⁠. 물러서는 발이 흰 줄에 가까워질수록 흑풍채 졸개들이 줄 밖에서 발을 굴렀다⁠.

“⁠채주님⁠! 뒤에 줄이요⁠, 줄⁠!⁠”

“⁠나도 글 읽을 줄 안다⁠!⁠” 대호가 고함을 치며 칼을 휘둘렀다⁠.

철민은 내 옆에서 흰 떡을 쥔 채 펄쩍펄쩍 뛰었다⁠. 장문인이 한 합을 이길 때마다 떡을 한 입씩 베어 물었다⁠. 흰 떡이 반쯤 없어졌다⁠. 장터 술집 주인은 칠판 옆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장문인이 이기면 술집 주인은 내 보험료를 다 남긴다⁠. 지면 내가 술집 손님들에게 서른 냥 가까이를 물어 줘야 했다⁠. 술집 주인이 기도하는 이유와 내가 숨을 참는 이유가 같았다⁠.

흑풍채 졸개들 뒤에는 북망산 움막의 과부 넷이 서 있었다⁠. 아이를 업은 여자도 있었다⁠. 여자는 두 손을 모으고 대호의 등을 보고 있었다⁠. 채주가 이기면 남편의 청구가 다시 심사에 오른다⁠. 등에 업힌 아이는 내 붓을 흔들며 칼이 부딪칠 때마다 까르르 웃었다⁠. 광장에서 웃는 사람은 업힌 아이 하나뿐이었다⁠. 같은 비무를 두고 술집 주인과 나와 과부 넷이 서로 다른 것을 빌고 있었다⁠.

비무장 북편 상회 자리에 심제원이 앉아 있었다⁠. 호두 두 알이 손바닥 안에서 빠르게 돌았다⁠. 장문인이 앞으로 나갈 때마다 호두가 더 빨라졌다⁠. 곁에 노영필이 있었다⁠. 노영필은 비무를 보지 않고 품속의 서류 두 장을 손끝으로 만지고 있었다⁠.

향이 사분의 일쯤 탔을 때⁠, 위시목의 검이 대호의 어깨를 스쳤다⁠. 검은 장포가 길게 찢어졌다⁠. 피는 나지 않았다⁠. 위시목이 일부러 살갗 앞에서 검을 거둔 것이었다⁠. 광장이 함성으로 뒤집혔다⁠. 흰 떡을 산 사람들이 떡을 들어 올렸다⁠.

“⁠장문인⁠! 장문인⁠!⁠”

나는 함성 속에서 위시목의 숨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들리지 않았다⁠. 대신 위시목의 왼손이 보였다⁠.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이 가슴께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한 번⁠. 몇 합 뒤 또 한 번⁠.

“⁠철민아⁠, 향이 얼마나 탔어⁠?⁠”

“⁠반 조금 안 됐어요⁠. 왜요⁠?⁠”

반 시진 넘게 칼을 쓰면 터지오⁠. 닷새 전 밤 우물가에서 들은 말이었다⁠. 향 한 대는 반 시진이 조금 넘었다⁠.

*

향이 반쯤 탔을 때 위시목이 기침을 했다⁠.

한 번이었다⁠. 함성에 묻혀 거의 아무도 듣지 못했다⁠. 위시목의 검이 아주 조금 늦었다⁠. 손목이 반 뼘 늦게 꺾였다⁠. 대제자에게 왼발이 늦다고 나무라던 바로 반 뼘이었다⁠. 대호는 반 뼘을 놓치지 않았다⁠. 큰 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위시목의 검을 쳐 냈다⁠. 검이 위시목의 손을 떠나 허공에서 두 바퀴 돌고 흰 줄 밖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가 하필 만두 찜통 앞이었다⁠. 만두 장수가 찜통을 끌어안고 뒤로 넘어졌다⁠.

위시목이 무릎을 꿇었다⁠.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이번에는 붉은 실이 아니었다⁠. 흰 도포의 앞섶이 순식간에 젖었다⁠.

대호의 칼끝이 위시목의 목 앞에서 멈췄다⁠. 광장의 함성이 한꺼번에 끊겼다⁠. 흰 떡을 들어 올렸던 손들이 그대로 굳었다⁠. 철민의 입에서 떡이 떨어졌다⁠.

비무장 북편에서 노영필이 일어났다⁠. 품에서 위시목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꺼냈다⁠. 나는 노영필을 향해 소리치려다 그만두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서류의 결론은 이미 적혀 있었다⁠.

대호는 칼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위시목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컸다⁠. 일부러 광장 전체에 들리게 하는 목소리였다⁠.

“⁠장문인⁠, 이월 그믐에도 이랬소⁠?⁠”

위시목이 고개를 들었다⁠.

“⁠이월 그믐 화산 아래 약초밭 비무⁠. 무림맹 방에 붙은 이름이 누구였소⁠? 화산파 장문인 위시목이었소⁠. 흑풍채는 장문인에게 비무를 걸었소⁠. 그런데 그날 아침 비무장에 나온 건 삼대 제자 곽두열이었지⁠. 화약은 대신 내보내는 걸 막지 않소⁠. 그래서 나는 받았소⁠. 장문인이 사파 채주쯤은 제자로 충분하다고 여긴 줄 알았지⁠.⁠”

광장이 웅성거렸다⁠.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제자만이 고개를 숙였다⁠. 아는 얼굴이었다⁠.

“⁠두열이는 손을 떨었소⁠. 칼끝이 흔들렸지⁠. 세 합이면 끝낼 수 있었는데 그 애가 물러서지를 않았소⁠. 물러서면 사부가 나와야 하니까⁠.⁠” 대호의 칼끝이 떨렸다⁠. 처음으로 떨렸다⁠. “⁠나는 일곱 합째에 그 애 가슴을 쳤소⁠. 죽일 생각은 없었소⁠. 그런데 그 애가 내 칼에 몸을 밀어 넣었소⁠. 이 판을 끝내려고⁠.⁠”

대호는 칼을 거두었다⁠. 칼을 땅에 꽂고 위시목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늘 보니 알겠소⁠. 장문인은 겁이 난 게 아니었소⁠. 반 시진을 못 버티는 몸이었소⁠. 그런데 장문인⁠, 그날 장문인이 나와서 졌으면 됐을 일이오⁠. 약초밭 하나 내주면 됐을 일이오⁠.⁠”

위시목이 피 묻은 입술을 움직였다⁠.

“⁠화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그 약초밭으로 겨울 약을 짓소⁠. 사파에 내줄 수 없었소⁠.⁠”

“⁠그래서 두열이를 내줬소⁠?⁠”

위시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산 제자들 사이에서 대제자가 앞으로 뛰어나왔다⁠. 포졸이 창을 내밀었고⁠, 대제자는 창 앞에서 멈춰 소리쳤다⁠.

“⁠두열이 자청했습니다⁠! 그날 새벽 사부님이 피를 토하셨고⁠, 두열이 사부님 방 앞에 무릎 꿇고 제가 나가겠다고⁠… 저도 말렸습니다⁠. 두열이는 비무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요⁠. 두열이가 그랬습니다⁠. 지면 약초밭만 내주면 된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비무에서 죽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으냐고⁠.⁠”

“⁠그만해라⁠.⁠” 위시목이 말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대제자를 돌아보지 않고⁠. “⁠자청한 것은 두열이고⁠, 보낸 것은 나다⁠. 장문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제자는 비무장에 못 선다⁠.⁠”

대제자의 입이 닫혔다⁠. 광장의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무림맹 서기가 붓을 든 채 굳어 있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화산파 장문인이 칼을 놓쳤고 더 겨룰 수 없으니⁠, 이 비무는 만세상회의 이김으로⁠…⁠”

“⁠만세상회 대표 흑풍채의 이김이오⁠.⁠” 대호가 말했다⁠. 고쳐 주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

비무장 북편에서 딱 소리가 났다⁠. 심제원이 호두를 깼다⁠. 심제원의 얼굴은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이겼다⁠. 화산의 청구는 화약에 따라 끝났다⁠. 흑풍채 과부 넷의 청구는 다시 심사에 오른다⁠. 은고의 시렁은 그대로다⁠. 심제원은 깨진 호두를 손바닥에 쥔 채 일어나지 않았다⁠.

장터 술집 주인이 칠판 앞에 주저앉았다⁠. 화산에 건 손님들이 떡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흰 떡이 비무장 안으로 날아갔다⁠. 철민이 날아온 떡 하나를 받아 들고 나를 보았다⁠.

“⁠누님⁠, 장문인은 기권한 게 아니죠⁠? 칼을 놓친 거죠⁠? 그럼 우리가 물어 줘야 돼요⁠.⁠”

“⁠알아⁠.⁠”

“⁠서른 냥이요⁠.⁠”

“⁠알아⁠.⁠”

나는 흰 줄로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줄 앞에서 관아 포졸이 창을 가로로 들어 나를 막았다⁠. 위시목은 아직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제자가 달려가 사부를 부축하려 했고⁠, 위시목은 이번에는 대제자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포졸 옆으로 작은 사람 하나가 지나갔다⁠. 포졸이 창을 내밀려다 멈췄다⁠. 머리에 무명 수건을 쓴 노인이었다⁠. 엄순자는 포졸을 올려다보지도 않고 흰 줄을 넘었다⁠. 손에 매듭 여섯 개를 지은 무명실을 쥔 채였다⁠.

광장의 눈이 전부 엄순자를 따라갔다⁠. 엄순자는 비무장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었다⁠. 땅에 꽂힌 대호의 칼을 지나고⁠, 쪼그려 앉은 대호를 지나고⁠, 무릎 꿇은 위시목 앞에서 멈췄다⁠. 대호가 일어나 한 걸음 물러났다⁠. 큰 덩치가 노인 하나 앞에서 길을 비켰다⁠.

엄순자는 위시목을 내려다보았다⁠. 위시목의 흰 도포 앞섶이 피로 젖어 있었다⁠. 엄순자는 품에서 수건을 꺼내 위시목에게 내밀었다⁠. 은을 싸던 수건이었다⁠. 위시목은 수건을 받지 못했다⁠.

“⁠장문인⁠.⁠”

엄순자의 목소리는 장에서 냉이 값을 부를 때와 같았다⁠.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우리 애가 대신 나간 거예요⁠?⁠”

위시목은 고개를 들어 엄순자를 보았다⁠. 피가 입가에서 턱으로 흘렀다⁠. 위시목이 칼을 반쯤 뽑다 말던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말도 반쯤 하다 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위시목은 끝까지 말했다⁠.

“⁠그렇소⁠.⁠”

엄순자는 수건을 위시목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무명실의 매듭 여섯 개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만졌다⁠. 하나⁠, 둘⁠, 여섯⁠. 다 만지고 나서 실을 손바닥에 감아 쥐었다⁠. 향로의 향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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