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98자)

대신 나갈 사람

무림 보험설계사 · 기담오

엄순자는 남시 장 어귀에 돗자리를 펴고 나물을 팔고 있었다⁠. 화산에서 들고 온 바구니의 나물은 사흘 만에 다 팔았고⁠, 지금 펴 놓은 것은 낙양 성 밖 둑길에서 새벽마다 뜯어 온 것이었다⁠. 냉이⁠, 달래⁠, 쑥⁠. 아들이 죽고 열흘이 지났지만⁠, 엄순자의 손은 쉬지 않았다⁠.

나는 돗자리 앞에 쪼그려 앉아 손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비단옷 입은 부잣집 찬모가 냉이 한 줌을 집어 들고 값을 물었다⁠.

“⁠두 푼이요⁠.⁠”

“⁠한 푼 반에 해요⁠. 시골 냉이잖아⁠.⁠”

“⁠시골 냉이니까 두 푼이지요⁠. 성안 냉이는 수레바퀴에 밟혀서 향이 없어요⁠. 이건 둑길에서 새벽이슬 맞은 거예요⁠. 코에 대 보세요⁠.⁠”

찬모가 냉이를 코에 댔다가 눈을 크게 떴다⁠. 엄순자는 찬모가 눈을 뜬 틈에 달래 한 줌을 더 얹었다⁠.

“⁠달래는 덤이에요⁠. 대신 내일도 오세요⁠.⁠”

찬모는 두 푼을 내고 냉이와 달래를 받아 갔다⁠. 나는 입을 벌린 채 엄순자를 보았다⁠. 덤을 얹는 때가 정확했다⁠. 손님이 망설임을 끝내기 한 호흡 앞이었다⁠. 나는 열다섯 해 장사를 하고도 덤을 저렇게 얹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덤을 미리 줬다⁠. 붓 한 자루씩⁠, 손님이 망설이기도 전에⁠.

“⁠어머님⁠, 장사 저보다 잘하시네요⁠.⁠”

“⁠설계사 양반은 덤을 너무 일찍 줘요⁠. 정월에 우리 두열이한테도 붓을 먼저 줬다면서요⁠. 붓 받고 나면 사람이 안 살 수가 없어요⁠.⁠” 엄순자는 돈주머니를 허리춤에 넣었다⁠. “⁠오늘은 뭘 가져왔어요⁠?⁠”

나는 주머니 두 개를 돗자리 위에 내려놓았다⁠. 엄순자는 끈을 풀지 않고 손바닥으로 무게를 가늠했다⁠. 한 번 들었다 놓고⁠, 다시 들었다 놓았다⁠.

“⁠쉰 냥쯤이네요⁠.⁠”

“⁠예⁠. 쉰 냥입니다⁠.⁠”

“⁠이번엔 어디서 난 돈이에요⁠?⁠”

엄순자는 같은 것을 두 번 묻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무슨 돈이냐고 물었고⁠, 이번에는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나는 쉬운 대답을 찾지 않았다⁠. 찾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었다⁠.

“⁠제가 빌린 돈입니다⁠. 누구한테 빌렸는지는 말씀 못 드립니다⁠. 빌려준 사람이 그렇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엄순자는 나를 오래 보았다⁠. 그러다 주머니를 풀어 은을 쏟았다⁠. 쉰 개의 은이 돗자리 위에서 반짝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렸다⁠. 엄순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을 열 개씩 모았다⁠. 열 개를 모을 때마다 허리춤에서 무명실 한 가닥을 꺼내 매듭을 하나 지었다⁠. 지난번의 열 냥에 지은 매듭이 이미 하나 있었다⁠. 매듭은 여섯이 되었다⁠.

“⁠빚낸 돈을 받으면 나도 빚진 거예요⁠.⁠” 엄순자가 실을 손가락에 감았다⁠. “⁠빌려준 사람이 누군지 모르면⁠, 나는 누구한테 빚진 거예요⁠?⁠”

“⁠저한테요⁠, 어머님⁠.⁠”

“⁠설계사 양반은 누구한테 빚졌고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순자도 더 묻지 않았다⁠. 은을 수건에 싸서 바구니 밑에 넣고 냉이를 다시 가지런히 놓았다⁠.

관아 세리가 장터를 돌며 좌판세를 걷다가 엄순자의 돗자리 앞에 멈췄다⁠. 한 푼이었다⁠. 엄순자는 세리를 올려다보았다⁠.

“⁠나리⁠, 나는 화산 사람이라 낙양 세금은 처음 내는데요⁠. 이 한 푼 내면 관아에서 뭘 해 주세요⁠?⁠”

“⁠장터를 지키지⁠.⁠”

“⁠우리 애는 비무에서 죽었는데⁠, 관아는 비무장은 안 지키지요⁠?⁠”

세리는 대답 없이 한 푼을 받아 갔다⁠. 엄순자는 세리의 등에 대고 덧붙였다⁠. “⁠영수증 주세요⁠.⁠” 세리가 돌아와 영수증을 써 주었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엄순자는 웃지 않았다⁠. 영수증을 바구니 밑 은 옆에 넣었다⁠.

*

청송객잔 뒷마당에서는 화산 제자들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젓가락은 객잔 주인이 더는 못 빌려주겠다고 해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비무는 닷새 뒤였다⁠. 무림맹 서기가 아침에 찾아와 누가 나가는지 물었고⁠, 위시목은 저녁까지 정해 알려 주겠다고 했다⁠.

마당 한가운데에서 대제자가 목검을 들고 있었다⁠. 위시목은 툇마루에 앉아 대제자의 발놀림을 보았다⁠. 대제자가 한 걸음을 잘못 디디자 위시목이 혀를 찼다⁠.

“⁠왼발이 반 뼘 늦다⁠. 흑풍채 채주는 그 반 뼘을 안 놓친다⁠.⁠”

나는 툇마루로 걸어갔다⁠. 위시목은 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문인⁠, 대제자를 내보내십니까⁠?⁠”

“⁠설계사가 알 일이 아니오⁠.⁠”

“⁠대제자에게도 어머니가 계시지요⁠. 화음현에 계신다고 정월에 들었습니다⁠. 대제자가 이번 비무에서 죽으면⁠, 대제자 어머님도 두열 어머님처럼 남시 장에 돗자리를 펴셔야 합니다⁠. 이 비무도 비무라서 은은 한 푼도 안 나옵니다⁠.⁠”

“⁠알고 있소⁠.⁠”

“⁠그럼 장문인이 나가세요⁠.⁠”

마당의 목검 소리가 멎었다⁠. 제자들이 돌아보았다⁠. 나는 웃는 눈을 하고 있었다⁠. 열다섯 해 동안 몸에 붙은 얼굴이라⁠, 가장 나쁜 말을 할 때도 눈은 웃고 있었다⁠.

“⁠장문인은 식구가 없으시잖아요⁠. 부인도 자식도 없으시고⁠, 노모도 대전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장문인이 죽으면 은을 못 받아서 굶을 사람이 없습니다⁠.⁠”

말을 다 하고 나서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렸다⁠. 손님의 식구를 세어 보고 보험료를 매기던 입이⁠, 이번에는 식구 없는 사람에게 죽으라고 했다⁠. 사람 말이 아니라 영업 말이었다⁠. 가장 나쁜 영업 말⁠.

위시목이 일어났다⁠. 검이 칼집에서 나왔다⁠. 한 마디⁠, 두 마디⁠.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검 끝이 내 목 앞에서 멈췄다⁠. 차가운 쇠 냄새가 났다⁠.

“⁠다섯 번째⁠…⁠”

“⁠다섯 번째 줄은 없소⁠.⁠” 위시목이 말했다⁠. “⁠설계사가 판 계약은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되었소⁠. 화산 제자 서른은 이제 상회 고객이 아니오⁠. 약관도 없고⁠, 다섯 번째 줄도 없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약관 한 줄로 칼을 멈추던 손님들이 이제는 손님이 아니었다⁠. 내 방패를 치운 사람은 심제원이었고⁠, 심제원에게 방패를 넘겨준 사람은 나였다⁠.

검 끝이 한참 내 목 앞에 있었다⁠. 대제자가 마당에서 뛰어왔다⁠.

“⁠사부님⁠!⁠”

위시목은 검을 칼집에 밀어 넣었다⁠. 딸깍 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내가 나가겠다⁠.⁠”

“⁠사부님⁠, 안 됩니다⁠. 사부님은 대전 이후로 한 번도 비무에 안 나가셨습니다⁠. 지난 이월에도⁠…⁠” 대제자가 말을 삼켰다⁠.

“⁠지난 이월에도 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위시목은 대제자를 지나쳐 객잔 문으로 걸어갔다⁠. 무림맹 서기에게 출전할 사람을 알리러 가는 걸음이었다⁠. 문턱에서 멈추고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설계사 말이 맞소⁠. 굶을 사람이 없는 내가 나가는 게 맞소⁠.⁠”

*

철민은 객잔 부엌 뒤에서 내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했다⁠. 객잔 주인이 철민에게 젓가락 서른 벌 값을 받아 내려고 붙잡아 두는 바람에 부엌에 있었다는 것이다⁠.

“⁠누님⁠, 저 녹림에서 별말을 다 들었는데요⁠. 아까 그 말은 못 들어 봤어요⁠.⁠”

“⁠알아⁠.⁠”

“⁠칼 든 사람한테 죽으라고 하면 보통은 누님이 죽거든요⁠.⁠”

“⁠알아⁠.⁠”

“⁠그런데 장문인이 칼을 넣었어요⁠. 녹림에서는 그런 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함정이라며⁠.⁠”

“⁠아니요⁠.⁠” 철민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빚이라고 해요⁠. 칼을 넣어 준 사람한테는 목숨을 빚진 거래요⁠.⁠”

나는 주판을 꺼내 알을 튕겼다⁠. 엄순자에게 준 은 예순 냥⁠. 남은 백마흔 냥⁠. 흑풍채 빚 쉰 냥⁠, 열흘마다 다섯 냥⁠. 그리고 오늘⁠, 위시목에게 진 목숨 하나⁠. 주판에는 목숨을 놓을 자리가 없었다⁠.

남시 거리에서는 벌써 비무에 돈을 거는 판이 벌어졌다⁠. 장터 술집 주인이 칠판을 내걸고 흑풍채 채주에게 셋⁠, 화산 장문인에게 하나를 쳐 주었다⁠. 장문인이 직접 나간다는 소문이 돌자 술집 주인은 분필을 들고 한참 고민하다가 장문인 숫자를 둘로 고쳤다⁠. 정사 대전의 영웅에게 붙은 숫자가 둘이었다⁠.

나는 칠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술집 안에서는 화산에 건 손님들과 흑풍채에 건 손님들이 탁자 두 줄로 갈려 앉아 서로 째려보고 있었다⁠. 화산에 건 손님들 탁자가 훨씬 짧았다⁠. 손님들 얼굴에 같은 걱정이 붙어 있었다⁠. 잃으면 어쩌나⁠.

걱정이 붙은 얼굴을 보면 내 입은 저절로 열렸다⁠.

“⁠사장님⁠, 장사 하나 하시지요⁠.⁠”

“⁠아가씨는 상회에서 쫓겨났다며⁠?⁠”

“⁠상회는 쫓겨났어도 주판은 안 쫓겨났습니다⁠.⁠” 나는 허리의 주판을 흔들었다⁠. “⁠화산에 건 손님이 잃으면⁠, 건 돈의 한 할을 돌려 드리는 겁니다⁠. 보험료는 건 돈의 반 할⁠. 사장님이 손님들한테 받아서 저한테 넘기시고⁠, 수고비로 그중 한 푼씩 떼시고요⁠. 손님은 잃어도 덜 아프고⁠, 사장님은 화산에 거는 돈이 더 들어오고요⁠.⁠”

술집 주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잃으면 아가씨가 물어 주는 거야⁠? 돈은 있고⁠?⁠”

“⁠없습니다⁠. 그래서 파는 겁니다⁠.⁠”

술집 주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끝에 도장을 찍겠다고 했다⁠. 나는 주인에게 종이 한 장을 빌려 약속을 썼고⁠, 다 쓴 다음 소리 내어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험료⁠, 돌려줄 돈⁠, 언제 돌려주는지⁠. 그리고 끝자락의 거절 사유까지⁠. 장문인이 스스로 기권하면 주지 않는다⁠. 비무가 무림맹 서기 손으로 미뤄지면 보험료를 그대로 돌려준다⁠. 손님이 술에 취해 칠판을 부순 손님 몫은 없다⁠.

마지막 줄을 읽을 때 술집 주인은 탁자에 턱을 괴고 졸고 있었다⁠. 철민이 주인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사장님⁠, 끝까지 들으셨어요⁠?⁠”

“⁠들었어⁠, 들었어⁠. 기권하면 안 주고 칠판 부수면 안 주고⁠.⁠” 술집 주인은 하품을 하며 엄지에 인주를 묻혔다⁠. “⁠아가씨 원래 이렇게 다 읽어 줘⁠?⁠”

“⁠오늘 처음입니다⁠.⁠”

화산에 건 손님들이 하나둘 보험료를 냈다⁠. 저녁까지 은 세 냥이 모였다⁠. 내 손으로 판 첫 물건이었다⁠. 상회 이름도 관아 관인도 없는 종이 한 장이었다⁠. 장문인이 지면 나는 이 손님들에게 은 서른 냥 가까이를 물어 줘야 했다⁠. 갚으려고 판 물건이 또 빚을 낳았다⁠. 철민이 옆에서 주판 알을 대신 튕겨 보고 고개를 저었다⁠.

“⁠누님은 빚지는 데 재주가 있어요⁠.⁠”

“⁠나 원래 수금원이었어⁠. 빚이 어디서 생기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아⁠.⁠”

*

밤이 깊어 객잔이 조용해졌을 때 나는 뒷마당 우물가로 갔다⁠. 엄순자에게 한 말을 다시 생각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한테 빚졌고요⁠. 우물가에 사람이 있었다⁠.

위시목이었다⁠. 두레박을 끌어 올려 놓고 우물 턱에 두 손을 짚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기침 소리가 났다⁠. 낮에 들은 마른기침보다 깊었다⁠. 위시목이 두레박 물에 손을 담갔다가 입을 헹궜다⁠. 뱉은 물이 달빛 아래 검게 보였다⁠. 두레박에 붉은 실 같은 것이 풀려 떠돌았다⁠.

위시목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숨길 틈이 없었다⁠. 위시목은 소매로 입가를 닦고 천천히 허리를 폈다⁠.

“⁠설계사⁠. 이건 약관 몇 번째 줄이오⁠?⁠”

나는 대답했다⁠. 입이 저절로 대답했다⁠.

“⁠가입 전에 입은 상처는 지급하지 않는다⁠. 세 번째 줄입니다⁠.⁠”

“⁠대전 때 사파 고수의 장력을 가슴에 받았소⁠. 다섯 해 동안 내기를 돌려 눌러 두었지만⁠, 반 시진 넘게 칼을 쓰면 터지오⁠.⁠” 위시목은 두레박 물을 우물에 쏟았다⁠. 붉은 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제자들도 모르오⁠.⁠”

“⁠대제자는 알고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대제자는 눈치가 빠르오⁠. 그래서 걱정이오⁠.⁠”

위시목이 우물 턱에서 손을 떼려다 휘청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위시목의 손을 잡았다⁠. 정월에 한 번 쥐어 본 손이었다⁠. 굳은살이 단단했고⁠, 손바닥이 찼다⁠. 봄밤인데 우물물보다 찼다⁠.

위시목은 내 손을 놓고 혼자 몸을 가누었다⁠.

“⁠입막음 값으로 얼마를 주면 되오⁠?⁠”

“⁠장문인⁠, 입막음은 안 팝니다⁠.⁠”

“⁠그럼 무엇을 파시오⁠?⁠”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위시목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우물가에 남아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위시목의 손이 남긴 찬 기운이 오래 가시지 않았다⁠. 닷새 뒤 광장에서⁠, 이 손으로 흑풍채 채주의 칼을 받아야 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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