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69자)

이백십삼 번과 이백십사 번

무림맹 민원실 · 하로운

6월 14일 해시⁠, 야간 창구 앞 공터에서 남궁태열의 손이 먼저 통에 들어갔다⁠. 반 박자 늦게 청송 진인의 손이 들어갔다⁠. 두 손이 통 안에서 부딪쳤다⁠. 나무패가 덜컥였다⁠. 남궁태열이 꺼낸 패에는 「⁠213⁠」이⁠, 청송 진인이 꺼낸 패에는 「⁠214⁠」가 새겨져 있었다⁠.

청송이 자기 패를 내려다보았다가 남궁의 패를 보았다⁠. 한 번 더 보았다⁠.

“⁠허허⁠, 하나 차이로구려⁠.⁠”

“⁠하나면 충분하오⁠.⁠” 남궁태열이 말했다⁠.

다름은 창구 탁자 뒤에서 두 사람을 보았다⁠. 맹규에 처분 전인 민원이 걸린 후보는 투표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의 두루마리는 서로를 걸고 있었다⁠. 남궁의 것이 먼저 찍히면 청송이 내일 아침 투표에서 내려가고⁠, 청송의 것이 먼저 찍히면 남궁이 내려갔다⁠. 30년 전과 같은 밤이었다⁠. 다른 것은 두 후보가 동시에 왔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몇 번까지 부르셨소⁠?⁠” 남궁태열이 물었다⁠.

“⁠오십육 번입니다⁠.⁠”

남궁태열은 줄을 돌아보았다⁠. 줄은 담 모퉁이를 돌아 산길까지 내려가 있었다⁠. 등불과 횃불이 줄을 따라 띄엄띄엄 켜져 있었다⁠. 남궁태열은 말없이 대기 의자로 가서 빈자리를 찾았다⁠. 빈자리는 하나뿐이었다⁠. 일 번 할멈 옆이었다⁠.

*

다름은 번호를 불렀다⁠. 오십칠 번은 우돌의 이웃이었다⁠. 민원이 없었다⁠. 우돌을 따라 줄을 서러 왔다고 했다⁠. 오십팔 번은 돼지 치는 사내였다⁠. 지난번 같이 달아난 돼지 두 마리가 새끼를 낳았는데 새끼는 누구 집 돼지냐는 민원이었다⁠. 다름은 도장을 찍었다⁠. 대기 의자에서 웃음이 터졌다⁠. 청송 진인도 수염 속으로 웃었다⁠. 남궁태열은 웃지 않았지만 입가가 한 번 움직였다⁠.

민원 없는 사람은 「⁠줄만 섰어요⁠」 하고 옆으로 비켜 앉았다⁠. 비켜 앉은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번호는 빨리 넘어갔다⁠. 백 번을 넘길 무렵 청송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흰 도포 자락이 등불 아래 펄럭이더니⁠, 노도사의 몸이 가볍게 떠올라 줄 머리 위를 지나 창구 바로 앞에 내려앉았다⁠. 기와 한 장 울리지 않는 경공이었다⁠.

청송은 창구 앞에 서서 무언가 말하려다가⁠, 등불 아래 나무패를 보았다⁠. 「⁠경공으로 줄 앞에 내려앉지 마십시오⁠」⁠. 다름이 6월 1일 남궁의 지붕 유세 때 그대로 둔 나무패였다⁠. 서쪽 담 밖까지 들고 온 것은 왕춘삼이었다⁠.

청송은 한참 나무패를 읽었다⁠. 대기 의자 사람들이 숨을 참고 노도사를 보았다⁠. 청송은 수염을 한 번 쓸고⁠, 다시 떠올라 줄 끝 제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경공은 오는 경공보다 느렸다⁠. 줄 어딘가에서 누가 박수를 쳤다가 얼른 멈췄다⁠.

*

할멈은 감자 자루에서 감자 하나를 꺼내 옆자리에 내밀었다⁠. 남궁태열은 감자를 내려다보았다⁠.

“⁠흑석곡 감자요⁠. 사파 감자라고들 하는데⁠, 먹어 보면 그냥 감자예요⁠.⁠”

남궁태열은 감자를 받았다⁠. 비단 소매에 감자 껍질의 흙이 묻었다⁠. 한 입 베어 물고 오래 씹었다⁠. 할멈은 남궁을 보지 않고 창구만 보았다⁠.

“⁠우리 아들이 석 달 전에 둑 무너질 때 물에 빠진 칼잡이 애를 건지다 죽었어요⁠.⁠” 할멈이 말했다⁠. “⁠그 애도 사파는 아니었어요⁠. 철우방이었어요⁠.⁠”

남궁태열은 감자를 든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다름은 번호를 부르다 말고 창구 탁자에서 일어났다⁠. 왕춘삼에게 눈짓을 하자 왕춘삼이 다름 자리에 앉아 다음 번호를 불렀다⁠. 다름은 대기 의자로 가서 남궁태열 앞으로 갔다⁠.

“⁠가주님 민원을 미리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접수는 순서대로 합니다⁠. 듣는 것만 먼저 듣습니다⁠.⁠”

남궁태열이 두루마리를 다름에게 건넸다⁠. 「⁠무당파 장문 청송이 사파 흑풍채를 무당 외문으로 받아들여 칼을 들게 하려 했다⁠. 맹규에 어긋난다⁠」⁠. 사실이었다⁠. 청송의 제자가 흑석곡 마루에서 한 말과 같았다⁠. 6월 5일 정문 유세에서 청송이 직접 외친 말과도 같았다⁠.

“⁠청송 진인의 민원도 압니다⁠.⁠” 다름이 말했다⁠. “⁠감찰원 뒷방 상자와 가주님의 편지입니다⁠.⁠”

“⁠그것도 사실이지⁠.⁠” 남궁태열이 감자를 다시 들었다⁠. “⁠둘 다 사실이네⁠, 남 주사⁠. 오늘 밤은 사실 둘이 줄을 서 있어⁠.⁠”

이백십사 번 청송 진인은 줄 끝에서 제자 둘에게 부채질을 받고 있었다⁠. 부채질하는 제자들도 번호표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청송이 뽑으라고 시킨 것이었다⁠. 줄에 선 무당 사람 셋이 다 번호표를 쥐고 있으니⁠, 무당은 오늘 밤 줄 서는 문파라는 것이 청송의 계산이었다⁠. 표국 호위 하나가 청송 제자에게 다가가 감자와 번호표를 바꾸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남궁태열이 줄을 둘러보았다⁠. 감자와 달걀을 나눠 먹는 사람들⁠, 줄만 서러 온 사람들⁠, 담에 기대 조는 노인들⁠. 남궁의 눈이 「⁠야간 접수⁠」 현판에서 멈췄다⁠.

“⁠30년 전 그 밤⁠, 나도 여기 있었네⁠.⁠” 남궁태열이 말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낮아졌다⁠. “⁠아버지 가마 옆에⁠. 스물일곱이었지⁠. 아버지는 줄 중간에 서 있었고⁠, 갈대울 사람들은 맨 앞에 있었네⁠. 창구에는 스물두 살 주사가 앉아 있었지⁠. 지금 자네 실장 말이야⁠.⁠”

다름은 숨을 멈췄다⁠.

“⁠주사가 갈대울 민원에 도장을 찍는 소리를 들었네⁠. 우리 세가가 걸린 민원이었지⁠.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가마로 돌아가셨고⁠, 이튿날 아침 맹을 나가셨네⁠. 형님은 그 이듬해 겨울 숭산 남쪽 고개에서 돌아가셨고⁠.⁠” 남궁태열이 감자를 마저 먹었다⁠. “⁠나는 30년 동안 그 도장 소리를 들으며 살았네⁠. 오늘 밤 자네 실장이 흑석곡 처분을 찍으면⁠, 남궁은 30년 전처럼 맹을 나가네⁠. 이번엔 일곱 문파가 아니라 열이 따라 나갈 걸세⁠. 그다음은 자네도 알지⁠.⁠”

“⁠가주님은 오늘 밤 번호표를 뽑으셨습니다⁠.⁠”

“⁠뽑았지⁠.⁠”

“⁠30년 전 가주님 아버님은 줄 중간에 서 계셨습니다⁠. 오늘 가주님은 이백십삼 번을 쥐고 할머니 옆에 앉아 계십니다⁠.⁠” 다름이 말했다⁠. “⁠저는 그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남궁태열은 다름을 오래 보았다⁠. 원로당 복도에서처럼 처음 보는 물건을 보는 눈이었다⁠. 그러고는 다름의 오른손을 가볍게 잡았다⁠. 도장을 쥐는 손이었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자정이 지나면 흑석곡 일은 칼이 정하네⁠. 맹규대로⁠.⁠” 남궁태열이 손을 놓았다⁠. “⁠그때까지 자네 실장이 찍을 수 있을지 보세⁠. 나도 여기 앉아서 보겠네⁠. 이백십삼 번이니까⁠.⁠”

*

안쪽 방에서 천무량은 처분서를 다 써 놓고 있었다⁠. 먹이 말라 있었다⁠. 처분 도장은 소매에서 나와 탁자 위⁠, 처분서 옆에 놓여 있었다⁠. 천무량의 손은 탁자 끝을 짚고 있었다⁠. 다름이 들어오자 천무량이 고개를 들었다⁠.

“⁠남궁이 30년 전 이야기를 하더냐⁠?⁠”

“⁠가마 옆에 계셨답니다⁠. 스물일곱 살에⁠.⁠”

“⁠알고 있었다⁠.⁠” 천무량이 처분서를 내려다보았다⁠. 「⁠점창 하남 분타의 흑석곡 땅 민원은 기각한다⁠. 땅 문서 사본은 날짜를 고친 것이다⁠. 흑석곡 서른 가구는 등봉현 양민이다⁠. 점창 분타는 막은 물길을 이레 안에 연다⁠. 이 처분에 칼을 뽑는 자는 맹규로 다스린다⁠」⁠. “⁠30년 동안 남궁 가주 얼굴을 볼 때마다 그 가마 옆 젊은 얼굴이 같이 보였다⁠.⁠”

“⁠찍으십시오⁠.⁠”

“⁠찍으면 남궁이 나간다⁠. 열 문파가 따라 나간다⁠.⁠” 천무량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분담금이 반으로 준다⁠. 맹이 반으로 줄면 다음 대란 때 아무도 못 막는다⁠. 흑석곡 서른 가구 지키다가 삼천이 죽을 수 있다⁠. 남궁 말이 틀린 데가 없다⁠.⁠”

“⁠압니다⁠.⁠”

“⁠아는데도 찍으라고⁠?⁠”

“⁠안 찍으시면 자정에 흑석곡에서 서른 가구가 죽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니고⁠, 자정이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름은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30년 전 실장님은 이튿날 아침을 모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아십니다⁠. 남궁이 나간다는 것도⁠, 분담금이 준다는 것도 다 아십니다⁠. 아시고 찍으시면⁠, 내일 아침은 실장님이 고르신 아침입니다⁠. 모르고 맞는 아침이 아닙니다⁠.⁠”

천무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처분 도장 위로 갔다가 멈췄다⁠.

“⁠밖에 남궁 가주가 번호표를 쥐고 앉아 있습니다⁠. 이백십삼 번입니다⁠.⁠” 다름이 말했다⁠. “⁠30년 전에는 칼 찬 사람이 줄 중간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은 줄에 앉아 할머니 감자를 먹고 있습니다⁠. 실장님이 큰 문파 먼저를 지키신 30년 동안⁠, 큰 문파 가주가 번호표를 뽑는 날이 왔습니다⁠. 그건 실장님 30년도 한 일입니다⁠.⁠”

천무량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식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려다⁠, 잔이 비어 있는 것을 알고 내려놓았다⁠.

방 밖에서 왕춘삼이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구십 번⁠, 백구십일 번⁠. 「⁠줄만 섰어요⁠」 하는 대답이 이어졌다⁠. 백구십오 번에서 돼지 치는 사내의 아내가 일어나 남편이 돼지 새끼 민원을 낸 것은 자기 허락 없이 한 일이라는 민원을 냈다⁠. 대기 의자가 한 번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안쪽 방 창호지를 흔들었다⁠. 천무량이 웃음소리에 처음으로 창호지를 돌아보았다⁠.

“⁠30년 동안 저 창구에서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못 들었다⁠.⁠” 천무량이 말했다⁠. “⁠낮 창구에서는 다들 숨죽이고 기다렸지⁠. 금칠 패가 지나가면⁠.⁠”

멀리서 북소리가 났다⁠. 맹 원로당 망루에서 치는 북이었다⁠. 해시가 끝나 가고 있었다⁠. 자시 북이 울리면 자정까지 반 시진이었다⁠. 흑석곡까지는 삼십 리였다⁠.

문간에 매향이 서 있었다⁠. 주태곤이 뒤에 있었다⁠. 둘 다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매향이 부채를 허리띠에 꽂으며 말했다⁠.

“⁠삼십 리⁠. 나는 반 시진⁠. 쟤는 반 시진 하고 조금⁠.⁠”

“⁠조금 아니오⁠.⁠” 주태곤이 말했다⁠. “⁠반 시진이오⁠.⁠”

천무량은 매향과 주태곤을 보고⁠, 다름을 보고⁠, 처분서를 보았다⁠. 그리고 처분 도장을 집었다⁠. 인주를 묻히는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처분서 아래 끝에 도장을 눌렀다⁠. 30년 전 야간 창구에서 울렸을 소리와 같은 소리가 안쪽 방을 울렸다⁠. 대기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남궁태열도 고개를 들었다⁠.

천무량은 처분서 사본에 한 번 더 찍었다⁠. 사본을 접어 기름종이에 싸서 매향에게 내밀었다⁠.

“⁠흑석곡 입구에서 읽으시오⁠. 크게⁠. 분타주와 남궁 무사장 둘 다 듣게⁠.⁠”

매향이 사본을 받아 품에 넣었다⁠. 주태곤이 칼집을 허리에 다시 찼다⁠. 둘은 문을 나서자마자 담 위로 뛰어올랐고⁠, 서쪽 산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등불 하나가 흔들리다 꺼졌다⁠.

다름은 창구로 돌아왔다⁠. 왕춘삼이 자리를 비켜 주며 다름의 사모를 한 번 바로 씌워 주었다⁠. 대기 의자의 사람들이 다름을 보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안쪽 방에서 울린 도장 소리를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름은 통 옆에 쌓인 패를 넘겨 다음 번호를 확인했다⁠. 이백구 번이었다⁠. 이백십삼 번까지 넷이 남아 있었다⁠. 줄 끝에서 청송 진인이 제자들의 부채질을 물리고 일어나 앉음새를 고쳤다⁠. 남궁태열은 할멈 옆에 앉은 채 창구를 보고 있었다⁠. 손바닥에 감자 껍질을 모아 쥐고⁠, 버릴 데를 찾지 못한 얼굴이었다⁠. 할멈은 일 번 패를 무릎에 얹고 앉아⁠, 남궁의 손바닥을 힐끗 보더니 앞치마 주머니를 벌려 내밀었다⁠. 남궁태열은 껍질을 할멈 주머니에 털어 넣지 않았다⁠. 손바닥을 그대로 쥐고 있었다⁠.

“⁠이백구 번 손님⁠.⁠”

원로당 망루에서 자시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기 의자에서 남궁태열이 감자 껍질을 손바닥에 모아 쥔 채 일어났다⁠. 이백십삼 번 패가 다른 손에 쥐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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