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42자)

야간 창구를 엽니다

무림맹 민원실 · 하로운

6월 14일 미시⁠, 하숙방 바닥에 짐이 세 덩이 놓여 있었다⁠. 사서를 묶은 덩이⁠, 관복을 접은 덩이⁠, 향시 답안 석 장을 끼운 덩이⁠. 하숙집 주인은 아침부터 문밖에서 헛기침을 했다⁠. 파면된 주사가 방값을 언제 낼지 묻는 헛기침이었다⁠. 다름은 어머니의 편지를 다시 펼쳤다⁠. 내일 아침 맹 정문에서 보자고 쓰여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와 떡 한 시루를 이고 오겠다고 했다⁠.

사흘 동안 다름은 하숙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11일 아침 남궁세가 집사가 문 앞에 서신 한 장을 두고 갔다⁠. 「⁠총관부 자리는 아직 비어 있네⁠. 번호표 없이⁠」⁠. 다름은 서신을 펴 보고 접어 사서 덩이 맨 아래에 끼웠다⁠. 12일에는 정문 앞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맹 안의 줄을 바라보았다⁠. 담 너머로 왕춘삼이 번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22년 동안 점심시간만 지키던 목소리가 이백 번까지 쉬지 않고 갔다⁠. 13일에는 비가 와서 하숙방 처마 밑에서 도장 반쪽을 손바닥에 굴렸다⁠. 「⁠접수⁠」 두 글자에 인주가 아직 남아 있었다⁠.

방문이 열렸다⁠. 노크 대신 기침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천무량이 문간에 서 있었다⁠. 한 팔에 먼지 앉은 나무 현판을 끼고⁠, 한 손에 보자기를 들었다⁠. 다름은 일어나지도 못했다⁠.

“⁠앉아 있어라⁠. 짐 쌀 거 없다⁠.⁠” 천무량이 방에 들어와 현판을 벽에 기대 세웠다⁠.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어 내자 글자가 드러났다⁠. 「⁠야간 접수⁠」⁠. 칠이 반쯤 벗겨져 있었다⁠.

천무량이 보자기를 풀었다⁠. 대추나무 도장 하나가 나왔다⁠. 관사 서랍에서 녹슨 열쇠 옆에 있던 도장이었다⁠. 다름의 것보다 조금 컸고⁠, 손때가 새카맣게 배어 있었다⁠. 바닥에는 「⁠무림맹 야간 접수⁠」가 거꾸로 새겨져 있었다⁠.

“⁠30년 전에 내가 쓰던 거다⁠.⁠”

“⁠저는 파면됐습니다⁠. 맹 담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야간 창구는 서쪽 담 밖이다⁠.⁠” 천무량이 도장을 다름 무릎에 올려놓았다⁠. “⁠맹규 민원실 편 마지막 장⁠. 야간 창구 담당은 실장이 앉힌다⁠. 총관에게 묻지 않는다⁠. 30년 동안 아무도 안 앉혔으니 아무도 그 장을 지우지 않았다⁠.⁠”

다름은 도장을 내려다보았다⁠. 무릎 위에서 묵직했다⁠.

“⁠흑석곡 처분은요⁠? 오늘 자정입니다⁠.⁠”

“⁠읽고 정한다⁠.⁠” 천무량이 일어났다⁠. “⁠읽을 것이 다 모이면 정한다⁠. 유시에 연다⁠. 늦지 마라⁠.⁠”

“⁠실장님⁠.⁠”

천무량이 문간에서 돌아보았다⁠.

“⁠그날 감찰원 일⁠, 혼자 했다고 해서 화나셨습니까⁠?⁠”

“⁠화났다⁠.⁠” 천무량이 말했다⁠. “⁠30년 동안 남이 내 몫까지 진 건 처음이다⁠. 그래서 왔다⁠.⁠”

*

서쪽 담 밖 야간 창구는 담에 붙여 지은 작은 기와 집이었다⁠. 문짝에 거미줄이 세 겹으로 쳐져 있었고⁠, 창구 탁자 위에는 30년 묵은 먼지가 손가락 마디만큼 앉아 있었다⁠. 다름이 행주로 탁자를 닦자 먼지 아래서 칼자국 하나가 나왔다⁠. 30년 전 누군가 꽂았던 자리였다⁠.

“⁠강호 사람들은 30년 전에도 탁자에 칼을 꽂았구나⁠.⁠”

“⁠그때는 수리비를 안 받았다⁠.⁠” 천무량이 현판을 처마 밑에 걸며 말했다⁠. “⁠받을 생각을 못 했지⁠.⁠”

해가 지기 전에 왕춘삼이 끙끙거리며 담을 돌아왔다⁠. 등에 번호패 통을 지고 있었다⁠. 한 손에는 다름의 사모를 들었다⁠.

“⁠통은 맹 재산인데요⁠.⁠”

“⁠빌려 온 거야⁠. 내일 아침 진시 전에 갖다 놓으면 빌린 거고⁠, 안 갖다 놓으면 훔친 거지⁠. 맹규에 그렇게 돼 있어⁠.⁠” 왕춘삼이 사모를 다름 머리에 씌웠다⁠. 흐트러진 갈색 머리가 사모 밑으로 삐져나왔다⁠. 왕춘삼이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관복은 입고 왔네⁠. 학은 아직 날고 있고⁠.⁠”

유시에 다름은 등불을 켰다⁠. 심지가 오래 묵어 처음 두 번은 불이 붙지 않았고⁠, 세 번째에 파르르 떨며 살아났다⁠. 등불 하나가 「⁠야간 접수⁠」 현판을 비췄다⁠. 서쪽 담 밖은 산길로 이어졌고⁠, 산길 아래로 숭산 기슭 마을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첫 손님은 버들 할멈이었다⁠. 10일부터 등봉 읍내 객줏집에 묵고 있었다고 했다⁠. 닭은 객줏집에 맡기고 왔다⁠. 할멈은 번호패를 뽑아 들고 창구 앞 의자에 앉았다⁠. 「⁠001⁠」⁠. 민원은 없었다⁠.

“⁠민원은 없는데요⁠. 줄 서 있으면 사람이 줄 보고 오잖아요⁠.⁠”

다름은 할멈의 번호패를 오래 보았다⁠. 첫날 할멈이 쥐고 있던 패는 스물한 번이었다⁠. 오늘은 일 번이었다⁠. 할멈은 다름이 패를 보는 것을 보고⁠, 패를 다름 쪽으로 들어 보이며 웃었다⁠. 이가 몇 개 빠진 웃음이 수길의 웃음과 닮아 있었다⁠.

두 번째는 흑석곡 귀 없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감자 자루를 의자 밑에 내려놓고 자루 입을 벌려 두었다⁠. 누구든 집어 먹으라는 뜻이었다⁠. 줄 뒤쪽에 앉은 표국 호위 하나가 망설이다가 감자 하나를 집었다⁠. 사파 감자라는 소문을 들은 얼굴이었다⁠. 한 입 베어 물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호위는 감자를 하나 더 집어 옆 사람에게 넘겼다⁠. 돼지 치는 사내도 어디서 들었는지 구경을 왔다⁠. 이번에는 고구마 대신 삶은 달걀을 한 바구니 들고 와서⁠, 노인의 감자 자루 옆에 내려놓았다⁠. 감자와 달걀이 줄을 따라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다⁠. 세 번째는 석교촌 우돌이었다⁠. 보리를 다 베고 다시 왔다고 했다⁠. 해가 다 질 무렵에는 등불 앞 의자가 다 찼고⁠, 의자가 모자라 사람들이 담에 기대 앉았다⁠. 대부분 민원이 없었다⁠. 줄을 서러 온 사람들이었다⁠.

매향은 등불을 하나 더 들고 산길 들머리에 서 있다가 해시가 가까워지자 창구로 왔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우리 사람이 방금 뛰어왔어⁠. 흑석곡 입구에 점창 제자 서른⁠, 남궁 무사 이백⁠. 횃불 들고 자정만 기다리고 있대⁠.⁠” 매향이 다름의 탁자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분타주가 앞에 있고⁠, 남궁 무사장이 옆에 있대⁠. 칼집에서 칼이 반쯤 나와 있대⁠.⁠”

다름은 안쪽 방문을 보았다⁠. 천무량이 등잔 아래서 두루마리를 읽고 있었다⁠. 6월 10일에 다시 접수한 마흔 건⁠, 흑석곡의 답변서⁠, 점창 분타의 땅 민원⁠. 천무량은 한 장을 다 읽으면 다음 장을 넘겼다⁠. 빠르지 않았다⁠.

다름이 찻물을 들고 들어가자 천무량은 고개도 들지 않고 손만 내밀었다⁠.

“⁠자정까지 두 시진이 안 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십니까⁠?⁠”

“⁠30년 전에는 빨리 찍었다⁠.⁠” 천무량이 찻잔을 받았다⁠. “⁠순서대로⁠, 빨리⁠. 이튿날 아침이 어떨지는 안 읽고⁠.⁠” 천무량이 두루마리 한 장을 넘겼다⁠. “⁠오늘은 이튿날 아침까지 읽는다⁠.⁠”

다름은 찻물을 따르고 나왔다⁠. 매향이 창구 탁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자정까지 안 찍으면 나 흑석곡 갈 거야⁠.⁠”

“⁠가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이백 명 앞에 서야지⁠. 너처럼⁠. 칼은 못 막아도 앞에 서는 거⁠.⁠” 매향이 부채를 접었다 폈다⁠. “⁠너한테 배운 거야⁠. 바보짓⁠.⁠”

“⁠바보짓은 향시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세 번이나⁠.⁠”

*

술시 끝 무렵⁠, 줄 맨 끝에 검은 도포가 붙었다⁠.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맨 장발 검객이었다⁠. 주태곤은 통에서 번호패를 뽑아 들고 줄 끝 담벼락에 기대 오래 서 있었다⁠. 차례가 되자 창구 앞 의자에 앉았다⁠. 칼은 뽑지 않았다⁠. 칼집째 풀어 탁자 옆에 세웠다⁠.

“⁠민원 내러 왔소⁠.⁠”

“⁠말씀하십시오⁠.⁠”

“⁠우리 분타주님을 걸어서⁠.⁠” 주태곤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점창 하남 분타주가 흑석곡 물길을 막으라 명했다⁠. 흑석곡 땅 문서 사본은 지난달 남궁세가 사람들이 분타에 다녀간 뒤에 만들었다⁠. 등봉현 서리에게 은을 주고 지난해 날짜로 찍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다름은 두루마리를 두 번 읽었다⁠. 대기 의자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대사형님⁠, 이걸 내시면 분타로 못 돌아가십니다⁠.⁠”

“⁠알아⁠.⁠” 주태곤이 잘린 머리끝을 만졌다⁠. “⁠흑석곡 할매들이 물동이 지고 고개 넘는 거 석 달 봤소⁠. 처음엔 사파 할매라고 생각했지⁠. 석 달 보니 그냥 할매더군⁠.⁠”

다름은 옛 도장에 인주를 묻혔다⁠. 도장이 무거웠다⁠. 손목에 30년의 무게가 얹혔다⁠. 「⁠6월 14일 야간 접수⁠」⁠.

“⁠점창 분타주와 주태곤⁠, 오늘부터 이레 동안 칼을 뽑지 못합니다⁠.⁠”

“⁠분타주님은 오늘 자정에 칼 뽑을 거요⁠. 흑석곡에⁠.⁠” 주태곤이 말했다⁠. “⁠나한테는 안 뽑겠지⁠. 바빠서⁠.⁠”

주태곤이 일어나자 매향이 앞을 막았다⁠. 둘은 창구 앞에서 마주 보았다⁠. 대기 의자의 사람들이 감자를 입에 문 채 굳었다⁠. 매향은 한참 주태곤을 올려다보다가 부채 대신 감자 하나를 내밀었다⁠.

“⁠머리 반대편도 맞춰 줄까⁠?⁠”

“⁠됐소⁠.⁠” 주태곤이 감자를 받았다⁠. 받고 나서 어디에 둘지 몰라 칼집 옆에 꽂듯이 허리띠에 끼웠다⁠. “⁠맛있소⁠?⁠”

“⁠사파 감자야⁠. 먹어 봐⁠.⁠”

다름은 접수증을 안쪽 방으로 들고 갔다⁠. 천무량이 받아 읽었다⁠. 땅 문서 사본 위에 주태곤의 두루마리를 겹쳐 놓았다⁠. 등잔 심지가 지직 소리를 냈다⁠. 천무량은 여전히 처분 도장을 꺼내지 않았다⁠.

*

해시 첫머리에 산길에서 등불 열 개가 내려왔다⁠. 맨 앞에서 위소강이 걸어왔다⁠. 뒤에 감찰원 서리들이 따랐다⁠. 위소강은 줄 선 사람들을 지나 곧장 창구로 왔다⁠. 이번에는 통을 보지도 않았다⁠.

“⁠파면된 자가 맹 도장을 들고 창구에 앉았소⁠. 맹규에 따르면⁠.⁠.⁠.⁠”

“⁠맹규 민원실 편 마지막 장⁠.⁠” 안쪽 방에서 천무량이 나왔다⁠. “⁠야간 창구 담당은 실장이 앉힌다⁠. 총관에게 묻지 않는다⁠.⁠”

“⁠그 장은 30년 동안 아무도 안 읽었소⁠.⁠”

“⁠제가 읽었습니다⁠.⁠” 창구 옆 담벼락에 기대 졸던 왕춘삼이 손을 들었다⁠. “⁠22년 동안 점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맹규를 처음부터 끝까지 서른 번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 끝 줄에 침 자국도 있습니다⁠. 제 침입니다⁠.⁠”

대기 의자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위소강은 웃지 않았다⁠. 천무량과 왕춘삼과 다름을 차례로 보고⁠, 줄 선 사람들을 보았다⁠. 줄은 어느새 담 모퉁이를 돌아 산길까지 이어져 있었다⁠. 위소강이 번호패 통을 내려다보았다⁠.

“⁠총관을 모셔 오겠소⁠. 총관은 원로당에서 내일 선거 준비를 하고 있소⁠.⁠” 위소강이 몸을 돌렸다가⁠, 다시 다름을 보았다⁠. “⁠남 주사⁠. 자정까지 한 시진 남짓이오⁠. 실장은 아직 처분 도장을 안 꺼냈구려⁠.⁠”

위소강의 등불들이 산길로 올라갔다⁠. 다름은 안쪽 방을 보았다⁠. 천무량은 다시 등잔 아래 앉아 있었다⁠. 소매 속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해시 중간쯤⁠, 산길 양쪽에서 동시에 말방울 소리가 났다⁠. 동쪽 길에서 검은 가마 한 채가 횃불 넷을 앞세우고 내려왔고⁠, 서쪽 길에서 흰 가마 한 채가 등불 넷을 앞세우고 올라왔다⁠. 두 가마는 야간 창구 앞 공터에서 동시에 멈췄다⁠. 가마꾼들이 서로를 보고 놀라 멈칫했다⁠. 줄 선 사람들이 입에 문 감자와 달걀을 그대로 문 채 고개를 돌렸다⁠. 할멈 혼자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일 번 패를 무릎에 올려놓고⁠, 창구만 보고 있었다⁠.

검은 가마에서 남궁태열이 내렸다⁠. 흰 가마에서 청송 진인이 내렸다⁠. 두 사람 손에 각각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둘은 서로를 보았고⁠, 그다음 등불 아래 「⁠야간 접수⁠」 현판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창구 탁자 뒤⁠, 학 흉배를 단 파면된 주사를 보았다⁠.

“⁠민원이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다름은 번호패 통을 두 사람 앞으로 밀었다⁠. 통 안에서 나무패가 덜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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