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26자)

도장이 두 동강 났다

무림맹 민원실 · 하로운

6월 10일 묘시⁠, 줄은 민원실 창구에서 시작해 대청을 빠져나가 정문을 지나고⁠, 돌계단을 내려가 버드나무를 돌아 산길 첫 굽이까지 이어졌다⁠. 다름은 문을 열기 전에 정문 위 망루에 올라가 줄 끝을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굽이 너머로 나귀 귀 두 개가 삐죽 솟아 있었다⁠. 안골 닭 주인이 타고 온 마을 나귀였다⁠.

석교촌 우돌은 줄 앞쪽에 있었다⁠. 번호패를 받자마자 패를 이로 깨물어 보고는 진짜라며 품에 넣었다⁠. 돌다리 이장은 부인과 같이 왔는데⁠, 부인이 콩 한 줌을 주머니에 넣어 왔다⁠. 맹에서도 콩으로 정하면 쓰려고 가져왔다고 했다⁠. 하촌 버들 할멈은 새로 산 닭을 안고 있었다⁠. 이번에는 주려고 가져온 게 아니라 집에 두고 오면 족제비가 물어 간다고 했다⁠. 흑석곡 서른 가구는 줄 맨 끝에서 귀 없는 노인을 앞세우고 왔다⁠. 저마다 등에 감자 자루를 졌다⁠. 줄 서는 동안 먹을 것이라고 했다⁠.

줄 중간쯤에 검은 도포가 하나 섞여 있었다⁠. 주태곤이었다⁠. 고르지 않게 잘린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번호패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고 있었다⁠. 다름과 눈이 마주치자 주태곤은 고개를 돌렸다⁠. 사시가 되기 전에 주태곤은 줄에서 빠져나갔다⁠. 빈자리에 돌다리 이장 부인이 콩 주머니를 내려놓고 앉았다⁠.

매향은 줄에 서지 않고 줄 옆을 오르내리며 사람들에게 물을 돌렸다⁠. 연보라 옷자락이 줄을 따라 위아래로 오갔다⁠.

*

진시 북이 울리자 다름의 창구 옆에 탁자 하나가 더 놓였다⁠. 위소강이 감찰원 서리 둘을 데리고 와서 앉았다⁠. 탁자 위에 「⁠본인 확인⁠」 패와 인주 접시와 흰 종이 한 묶음이 있었다⁠.

“⁠원로회 결정대로 하겠소⁠. 얼굴⁠, 호적⁠, 손도장⁠.⁠”

첫 사람은 우돌이었다⁠. 우돌이 흰 종이에 손바닥을 찍자 위소강이 감찰원 뒷방에서 나온 두루마리를 옆에 펼쳐 놓고 두 손도장을 견주었다⁠. 한참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엄지 밑 굳은살이 다르오⁠.⁠”

“⁠보리 베느라 물집이 잡혔어요⁠.⁠” 우돌이 손을 뒤집어 보였다⁠. 엄지 밑에 터진 물집이 세 개 있었다⁠. “⁠석 달 전엔 감자 심을 때고⁠, 지금은 보리 벨 때잖아요⁠.⁠”

“⁠맹규에 보리 이야기는 없소⁠.⁠”

다름이 창구에서 몸을 내밀었다⁠.

“⁠맹규에 굳은살 이야기도 없습니다⁠. 손도장은 손가락 마디 수와 손금으로 봅니다⁠. 마디는 그대로입니다⁠. 손금도 그대로입니다⁠. 물집은 손금 위에 잡혔습니다⁠.⁠”

위소강이 다름을 보았다⁠. 대기 의자에 앉은 일곱 마을 사람들이 위소강을 보았다⁠. 위소강은 두 손도장을 다시 견주었다⁠. 마디가 같았다⁠. 손금이 같았다⁠. 위소강의 붓이 「⁠본인⁠」 두 글자를 썼다⁠. 줄 전체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대청에 퍼졌다⁠.

버들 할멈의 차례에서는 손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었다⁠. 할멈은 닭을 탁자에 올려놓고 위소강을 빤히 보았다⁠.

“⁠우리 아들 장례 끝나고 마을 사람 마흔이 손도장 찍은 거⁠, 그거 맹에서 석 달 동안 어디 있었소⁠?⁠”

위소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멈은 닭을 도로 안고 손바닥을 흰 종이에 꾹 눌렀다⁠. 마흔 손도장 가운데 맨 위의 것과 똑같았다⁠.

*

사시가 끝나 갈 무렵⁠, 총관의 서리가 정문에 방 하나를 붙였다⁠. 「⁠오늘 점심시간은 오시부터 신시까지로 한다⁠」⁠. 점심시간이 세 시진이었다⁠. 신시면 창구가 닫히는 때였다⁠. 대기 의자가 술렁였다⁠. 위소강은 방을 보고도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창구 뒤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던 왕춘삼이 벌떡 일어났다⁠. 허리를 펴고 정문까지 걸어가더니 방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맹규 민원실 편 둘째 장⁠. 창구 여닫는 때를 바꿀 때는 열흘 전에 정문에 방을 붙인다⁠.⁠” 왕춘삼의 목소리가 대청 끝까지 울렸다⁠. 다름은 왕춘삼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처음 들었다⁠. “⁠이 방은 오늘 아침에 붙었소⁠. 열흘 뒤인 6월 20일부터 점심시간이 세 시진이오⁠. 오늘은 원래대로 오시부터 미시까지⁠.⁠”

총관의 서리가 입을 벌렸다⁠. 위소강이 왕춘삼을 보았다⁠. 왕춘삼은 위소강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22년 동안 점심시간 하나는 칼같이 지켰소⁠. 남의 점심시간도 지켜 드려야지⁠.⁠”

대기 의자에서 박수가 터졌다⁠. 돼지 치는 사내가 또 어디선가 나타나 고구마를 왕춘삼에게 던졌다⁠. 왕춘삼은 받아서 바로 먹었다⁠.

미시에 창구를 다시 열자⁠, 이번에는 위소강이 일어나 다름의 창구 앞으로 왔다⁠.

“⁠남 주사⁠, 감찰원에서 물어볼 것이 있소⁠. 지금 같이 가야겠소⁠.⁠”

다름은 통을 위소강 앞으로 밀었다⁠.

“⁠번호표 뽑으십시오⁠.⁠”

위소강의 손이 통 위에서 멈췄다⁠. 줄은 아직 정문 밖 버드나무까지 남아 있었다⁠. 위소강이 뽑은 패는 「⁠287⁠」이었다⁠. 위소강은 패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감찰원 탁자로 돌아가 앉았다⁠.

오시에 점심을 먹지 못한 다름의 탁자에 찻잔 하나가 놓였다⁠. 천무량이었다⁠. 실장이 주사에게 차를 따라 준 것은 처음이었다⁠. 차는 식어 있었다⁠. 천무량이 마시는 온도였다⁠.

“⁠오늘 다 찍어라⁠.⁠” 천무량이 낮게 말했다⁠. “⁠내일로 넘기지 말고⁠.⁠”

“⁠처분은요⁠?⁠”

천무량은 대답하지 않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다름은 식은 차를 한 번에 마셨다⁠. 쓴맛이 혀 뒤에 오래 남았다⁠.

*

유시⁠, 해가 숭산 서쪽 어깨에 걸터앉았을 때 마지막 두루마리에 도장이 찍혔다⁠. 안골 닭 주인의 것이었다⁠. 「⁠점창 제자 셋이 흑석곡 닭을 사파 닭이라며 잡아갔다⁠」⁠. 닭 주인은 접수증을 받고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쳤다⁠. 다름은 숫자를 세었다⁠. 일곱 마을에서 온 서른한 건⁠, 하촌 할멈의 것⁠, 남은 마을 것은 마을 사람이 대신 가져와 「⁠본인⁠」 도장을 받은 아홉 건⁠. 마흔 건이었다⁠. 흑석곡이 점창 분타의 땅 민원에 낸 답변서도 접수됐다⁠. 귀 없는 노인이 서른 가구의 손도장을 받아 왔다⁠. 손도장 서른 개가 감자 자루 무늬처럼 빼곡했다⁠.

다름은 도장을 내려놓고 손목을 주물렀다⁠. 하루 동안 이백구십 번 도장을 찍었다⁠. 손목이 뜨거웠다⁠.

“⁠다 됐습니다⁠.⁠” 다름이 말했다⁠. “⁠오늘 날짜로 마흔 건⁠, 전부 접수됐습니다⁠.⁠”

대청 안에 남은 사람들이 웃었다⁠. 흑석곡 노인 하나가 감자 자루를 풀어 다름의 탁자에 감자를 쏟아 놓으려 하자 매향이 막았다⁠. 뇌물이라 안 된다고 했다⁠. 노인이 그럼 감자를 그냥 바닥에 떨어뜨리겠다고 했다⁠. 떨어진 건 줍는 사람 것이라고⁠.

웃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정문이 열렸다⁠. 총관이 들어왔다⁠. 위소강이 287번 패를 손에 쥔 채 뒤따랐다⁠. 안쪽 방에서 천무량이 나왔다⁠.

*

“⁠민원실 주사 남다름⁠.⁠” 총관이 창구 앞으로 왔다⁠. 대청에 남은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3월 20일 밤 감찰원 뒷방에 허락 없이 들어가 봉인한 상자를 열고 들고 나간 일로 감찰을 받았소⁠. 감찰관⁠.⁠”

위소강이 287번 패를 다름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제 내 차례요⁠, 남 주사⁠. 묻겠소⁠. 그날 밤 뒷방에 든 사람이 몇이었소⁠?⁠”

다름은 탁자 위 287번 패를 보았다⁠. 패 옆에 오늘 찍은 마흔 건의 접수증 사본이 쌓여 있었다⁠. 6월 14일 자정까지 나흘이 남아 있었다⁠. 자정 전에 누군가 처분 도장을 찍어야 했다⁠. 처분 도장은 천무량의 소매에 있었다⁠.

“⁠하나였습니다⁠.⁠” 다름이 말했다⁠.

천무량의 소매가 움찔했다⁠. 매향이 다름을 보았다⁠.

“⁠열쇠는⁠?⁠”

“⁠실장님 관사 서랍에서 제가 훔쳤습니다⁠. 실장님은 모르셨습니다⁠.⁠”

위소강의 눈이 천무량에게 갔다⁠. 천무량은 다름을 보고 있었다⁠. 입술이 한 번 열렸다⁠. 다름이 천무량을 마주 보았다⁠. 천무량의 입술이 다시 닫혔다⁠.

위소강은 한참 다름을 보다가 붓을 들어 적었다⁠. 다름은 위소강이 거짓말인 줄 안다는 것을 알았다⁠. 위소강도 다름이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위소강은 적었다⁠. 실장이 남는 것이 감찰원에도 나쁘지 않았다⁠. 큰 문파 먼저인 실장이 선거 전날 밤 점창을 걸어 처분을 낼 리 없었다⁠.

“⁠민원실 주사 남다름⁠, 파면⁠.⁠” 총관이 말했다⁠. “⁠오늘 이후 맹 담 안에 들어오지 마시오⁠. 오늘 찍은 접수는 찍힌 것이오⁠. 맹규대로⁠.⁠”

총관이 손을 내밀었다⁠. 다름은 도장을 집었다⁠. 대추나무 도장은 손때가 묻어 거무스름했다⁠. 첫날 아침 손에 쥐었을 때보다 가벼웠다⁠. 다름은 도장을 총관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총관은 도장을 들어 창구 탁자 모서리에 내리쳤다⁠. 마른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대청 천장까지 올라갔다⁠. 도장이 두 동강 나서 하나는 탁자 위에⁠, 하나는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반쪽이 굴러가 칼자국 난 탁자 다리에 부딪혀 멈췄다⁠. 「⁠무림맹 민원실⁠」까지가 한 조각⁠, 「⁠접수⁠」가 한 조각이었다⁠.

대청에 남은 사람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돌이 번호패를 꽉 쥐었다⁠. 할멈 품의 닭도 울지 않았다⁠.

매향이 천무량 앞으로 걸어갔다⁠. 부채는 접혀 있었는데⁠,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이 없어⁠?⁠”

천무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도장 반쪽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그날 밤 문으로 들어갔잖아⁠. 실장이라 문으로 간다며⁠.⁠”

“⁠매향 씨⁠.⁠” 다름이 불렀다⁠. “⁠그만하십시오⁠.⁠”

매향이 홱 돌아보았다⁠. 눈이 붉었다⁠. 다름은 바닥에서 도장 반쪽을 주웠다⁠. 「⁠접수⁠」가 새겨진 반쪽이었다⁠. 탁자 위 나머지 반쪽은 총관이 소매에 넣었다⁠.

*

다름은 관복을 입은 채로 대청을 나갔다⁠. 사모를 벗어 왕춘삼의 창구에 놓았다⁠. 왕춘삼이 사모를 두 손으로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청에서 정문까지⁠, 줄이 아직 반쯤 남아 있었다⁠. 내일 다시 올 사람들이 대기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다름이 지나가자 사람들이 말없이 길을 비켰다⁠. 돌다리 이장 부인이 주머니에서 콩 한 알을 꺼내 쥐여 주려다가 손을 거두었다⁠. 맹에서 쓰려고 가져온 콩이었다⁠.

버들 할멈이 창구 옆 콩 통 앞에 서 있었다⁠. 만족⁠, 보통⁠, 불만⁠. 할멈은 만족 통에서 콩 한 알을 꺼내 다름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도장 반쪽을 쥔 손이었다⁠.

“⁠우리 수길이가 그랬어요⁠. 맹에 가면 높은 사람들이 다 해 준다고⁠.⁠” 할멈이 다름의 손가락을 접어 콩을 쥐여 주었다⁠. “⁠높은 사람은 몰라도⁠, 나리는 해 줬어요⁠.⁠”

다름은 콩과 도장 반쪽을 한 손에 쥐고 정문을 나갔다⁠. 돌계단 아래 버드나무 그늘에 흑석곡 사람들이 감자 자루를 지고 앉아 있었다⁠. 귀 없는 노인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서른 가구가 따라 일어났다⁠. 다름은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갔다⁠. 관복 소매가 아직 걷혀 있었고⁠, 학 두 마리가 노을빛을 받아 붉었다⁠.

버드나무 아래까지 내려왔을 때 매향이 계단을 세 칸씩 뛰어 내려와 다름의 소매를 잡았다⁠.

“⁠왜 혼자 했다고 했어⁠? 실장도 같이 들어갔잖아⁠. 나도 들어갔고⁠.⁠”

“⁠처분 도장은 실장님 소매에 있습니다⁠.⁠” 다름이 말했다⁠. “⁠나흘 뒤 자정 전에 누군가 흑석곡 처분을 찍어야 합니다⁠. 그 소매가 맹 안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실장이 안 찍으면⁠?⁠”

다름은 손바닥을 폈다⁠. 도장 반쪽과 콩 한 알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럼 제가 오늘 한 일은 마흔 건 접수가 다입니다⁠. 그것도 일입니다⁠.⁠”

매향은 다름의 손바닥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콩을 집어 다름의 관복 앞섶 안에 넣고 앞섶을 여며 주었다⁠. 학 두 마리가 가슴에서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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