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37자)

유세는 지붕 위에서

무림맹 민원실 · 하로운

6월 1일 오시⁠, 무림맹 정문 지붕 용마루 위에 사람이 하나 내려앉았다⁠. 기와 한 장 울리지 않았다⁠. 정문 앞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젖혔다⁠. 남궁태열은 검은 도포 자락을 바람에 맡긴 채 용마루 끝으로 걸어 나왔다⁠. 해가 등 뒤에 있어 얼굴은 그늘졌고⁠, 목소리만 마당으로 내려왔다⁠.

다름은 민원실 창구에서 지붕 위 남궁태열을 올려다보다가⁠, 창구 옆에 세워 둔 나무패를 보았다⁠. 「⁠경공으로 줄 앞에 내려앉지 마십시오⁠」⁠. 지붕은 줄 앞이 아니었다⁠. 다름은 나무패를 그대로 두었다⁠.

“⁠30년 전⁠, 맹이 갈라졌습니다⁠.⁠” 남궁태열이 말했다⁠. 크게 외치지 않는데도 마당 끝까지 들렸다⁠. “⁠갈라진 맹 사이로 사파가 내려왔고⁠, 3년 동안 숭산 남쪽 고개마다 무덤이 생겼습니다⁠. 내 형님의 무덤도 그중 하나입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대기 의자에서 번호패를 쥔 사람들도 창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지금 조정은 조선에서 돌아온 관군으로 호광의 산을 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하남입니다⁠. 관군은 산 밑 마을에 사파가 섞였는지 가리지 않습니다⁠. 맹이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맹 둘레 산에서 칼 들던 사람들을 산 밖으로 내보내야⁠, 관군이 와도 태울 것이 없습니다⁠.⁠” 남궁태열이 잠깐 말을 멈췄다⁠. “⁠강호를 깨끗이⁠. 깨끗해야 아무도 안 탑니다⁠.⁠”

박수가 터졌다⁠. 큰 문파 사람들만 친 것이 아니었다⁠. 표국 호위도⁠, 객잔 주인도 쳤다⁠. 다름은 박수 치는 손들을 보았다⁠. 무서워서 치는 손이 반⁠, 맞는 말이라 치는 손이 반이었다⁠. 남궁태열은 박수가 끝나기 전에 용마루에서 사라졌다⁠. 기와 한 장 울리지 않았다⁠.

왕춘삼이 창구에서 고개를 빼고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지붕 수리비는 누구한테 청구하나⁠?⁠”

“⁠기와가 안 깨졌습니다⁠.⁠”

“⁠아깝다⁠.⁠”

천무량이 안쪽 방에서 나와 창구 옆으로 왔다⁠. 마당에는 아직 박수 소리의 끝이 남아 있었다⁠.

“⁠남궁 말에 틀린 데가 있더냐⁠?⁠”

“⁠없습니다⁠.⁠” 다름이 말했다⁠. “⁠관군 이야기도 맞고 30년 전 이야기도 맞습니다⁠.⁠”

“⁠그런데⁠?⁠”

“⁠틀린 데가 없어서 무섭습니다⁠. 맞는 말로 서른 가구를 산 밖으로 내보내자고 하시니까⁠, 박수 치는 사람들이 서른 가구 얼굴을 안 봅니다⁠.⁠”

천무량은 식은 차를 마셨다⁠. 한참 뒤에 한 마디만 했다⁠. “⁠나도 30년 동안 얼굴 안 보고 박수 친 사람이다⁠.⁠”

*

청송 진인의 유세는 이튿날 정문 앞 돌계단에서 열렸다⁠. 무당 제자 스물이 계단 양옆에 늘어서서 사람들에게 손바닥만 한 나무패를 나눠 주었다⁠. 다름은 점심 감자를 먹다가 창구로 들어온 첫 손님의 손을 보고 감자를 떨어뜨렸다⁠. 손님이 내민 나무패에는 번호 대신 「⁠청송 — 줄 선 차례대로⁠」가 새겨져 있었다⁠.

“⁠이거 번호표 아니오⁠?⁠”

“⁠선거용 나무패입니다⁠.⁠”

“⁠번호표처럼 생겼는데⁠.⁠”

“⁠생긴 것만 그렇습니다⁠.⁠”

오후가 되자 대기 의자에 앉은 사람 절반이 청송 나무패를 쥐고 있었다⁠. 진짜 번호패와 섞이는 바람에 일흔두 번 다음에 「⁠줄 선 차례대로⁠」가 불려 나왔고⁠, 「⁠줄 선 차례대로⁠」를 쥔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다퉜다⁠. 다름은 붓을 뽑아 새 나무패를 썼다⁠. 「⁠선거용 나무패는 번호표가 아닙니다⁠. 통에서 뽑은 것만 받습니다⁠」⁠. 다 쓰고 나서 한 줄을 더 보탰다⁠. 「⁠청송 진인의 나무패는 무당 제자에게 돌려주십시오⁠」⁠.

나무패를 세우자마자 표국 호위 하나가 청송 나무패 셋을 들고 와서 진짜 번호패 하나와 바꾸자고 대기 의자를 돌았다⁠. 셋에 하나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바꿔 주지 않자 호위는 왕춘삼의 창구로 갔다⁠. 왕춘삼은 청송 나무패 셋을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나무가 좋다며 땔감 바구니에 넣었다⁠. 호위는 번호패도 못 받고 나무패도 잃었다⁠. 왕춘삼은 저녁에 나무패 셋으로 찻물을 끓였다⁠.

해 질 무렵 칠십칠 번이 불렸다⁠. 창구에 앉은 사람은 흰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노도사였다⁠. 청송 진인이 진짜 번호패를 탁자에 내려놓고 허허 웃었다⁠.

“⁠빈도도 줄을 섰소⁠. 반나절이나⁠.⁠”

“⁠고맙습니다⁠.⁠”

“⁠남 주사가 번호표 주사로 이름이 났더군⁠. 강호 사람들이 다 아오⁠.⁠” 청송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선거 날까지 빈도 옆에 한 번만 서 주시오⁠. 유세 단 위에서⁠. 말은 안 해도 되오⁠. 서 있기만 하면 되오⁠.⁠”

“⁠민원이십니까⁠?⁠”

“⁠민원이라고 하면 받겠소⁠?⁠”

“⁠민원이면 접수하고⁠, 이레 안에 실장님이 처분하십니다⁠. 처분은 아마 반려일 겁니다⁠. 주사가 후보 옆에 서는 일은 맹 일이 아닙니다⁠.⁠”

청송의 웃음이 얕아졌다⁠. 수염을 쓸던 손이 멈췄다⁠.

“⁠흑석곡 채주는 아직 답이 없더군⁠. 무당의 문은 넓은데⁠.⁠” 청송이 일어나며 번호패를 탁자에 두고 갔다⁠. “⁠문 밖에 오래 서 있으면 비를 맞소⁠, 남 주사⁠. 번호표로는 비를 못 가리지⁠.⁠”

*

6월 5일⁠, 청송의 두 번째 유세에는 사람이 더 많이 모였다⁠. 다름은 창구를 왕춘삼에게 맡기고 정문 돌계단 아래로 갔다⁠. 매향이 군중 한가운데 있었다⁠. 흑석곡 노인 둘이 매향 양옆에 서 있었다⁠. 장에 감자를 팔러 왔다가 들렀다고 했다⁠.

청송 진인이 단 위에서 소매를 펼쳤다⁠.

“⁠무당은 작은 이웃을 버리지 않소⁠! 숭산 남쪽 흑석곡 서른 가구가 무당의 외문 흑석당으로 들어오기로 했소⁠. 빈도가 맹주가 되면⁠, 흑석당을 건드리는 자는 무당을 건드리는 것이오⁠!⁠”

군중이 술렁였다⁠. 흑석곡 노인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매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가 다시 몰려들었다⁠. 부채가 손에서 탁 펴졌다⁠.

다름이 말릴 틈도 없었다⁠. 매향은 앞사람 어깨를 디디고 날아올라 단 위에 내려앉았다⁠. 청송 옆이었다⁠. 무당 제자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청송은 웃는 얼굴을 지키려 애썼다⁠.

“⁠채주⁠, 마침 잘 오셨소⁠. 사람들에게 인사를⁠.⁠.⁠.⁠”

“⁠채주는 깃발이랑 같이 내렸어요⁠.⁠” 매향이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한 번도 펴지 않은 서신이었다⁠. 매향은 서신을 청송의 손에 도로 쥐여 주었다⁠. “⁠답 안 했는데 왜 들어왔대요⁠?⁠”

마당이 웃음으로 출렁였다⁠. 청송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는 무당 줄에 서려고 산에서 내려온 거 아니에요⁠. 칼 다시 들려고 감자 심은 것도 아니고⁠.⁠” 매향이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우리는 민원실 줄에 설 거예요⁠. 저기 번호표 통에서 뽑아서⁠. 남궁세가 집사님 옆에 앉아서 고구마도 얻어먹고⁠.⁠”

군중 속 어딘가에서 돼지 치는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고구마 내가 줬소⁠!⁠”

마당이 다시 웃음으로 뒤집혔다⁠. 돼지 치는 사내 바로 옆에 남궁세가 집사가 서 있었는데⁠,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쏠리자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소매 끝에 고구마 껍질이 묻어 있었다⁠. 매향은 단에서 뛰어내려 다름 앞으로 왔다⁠.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잘했어⁠?⁠”

“⁠무당이 막아 주던 것이 없어졌습니다⁠.⁠”

“⁠알아⁠.⁠”

“⁠점창이든 남궁이든⁠, 이제 흑석곡 앞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너 있잖아⁠.⁠” 매향이 부채를 접어 다름의 학 흉배를 톡 쳤다⁠. “⁠학 두 마리도 있고⁠.⁠”

단 위에서 청송 진인이 서신을 소매에 넣고 있었다⁠. 웃음기가 다 빠진 얼굴로 매향의 뒤통수를 보다가⁠, 다름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허허 웃었다⁠. 웃는 눈이 차가웠다⁠.

*

6월 8일 아침⁠, 줄 서른한 번째 사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마흔 중반에 콧수염이 짧았고⁠, 검은 도포에 점창 하남 분타의 패를 찼다⁠. 뒤에 주태곤이 따라왔는데⁠, 머리끝이 고르지 않게 잘려 있었다⁠.

“⁠점창 하남 분타주요⁠. 민원을 내러 왔소⁠.⁠”

분타주가 두루마리를 펼쳤다⁠. 「⁠흑석곡 산자락은 점창 분타가 지난해 등봉현에서 사들인 산의 일부다⁠. 흑석곡 서른 가구는 남의 땅에 산다⁠. 이레 안에 내보내 주기를 청한다⁠」⁠. 끝에 등봉현에서 받은 땅 문서의 사본이 붙어 있었다⁠. 지현의 관인이 찍혀 있었다⁠. 흑석곡 호적 증서에 찍힌 것과 같은 관인이었다⁠.

다름은 두루마리를 오래 보았다⁠. 사파는 줄 밖이라 사파를 걸어서는 민원을 낼 수 없었다⁠. 분타주는 사파를 걸지 않았다⁠. 지현의 호적에 오른 흑석곡 서른 가구⁠, 양민을 걸었다⁠. 맹에 속한 문파가 맹 둘레 고을 양민과 땅을 다투는 민원이었다⁠. 맹규 어디에도 받지 말라는 말이 없었다⁠.

“⁠번호표 순서대로 받으신다 들었소⁠.⁠” 분타주가 말했다⁠. “⁠서른한 번이오⁠.⁠”

대기 의자의 사람들이 다름의 손을 보았다⁠. 주태곤도 보았다⁠. 주태곤은 분타주 뒤에서 시선을 바닥에 두고 있었다⁠.

다름은 인주를 묻혔다⁠. 도장을 든 손이 공중에서 한 번 멈췄다⁠. 멈춘 손을 보며 다름은 첫날 할멈의 두루마리를 떠올렸다⁠. 스물한 번이라서 찍었다⁠. 지금은 서른한 번이었다⁠.

도장이 내려갔다⁠. 「⁠6월 8일 접수⁠」⁠.

“⁠흑석곡 서른 가구와 점창 분타⁠, 오늘부터 이레 동안 칼을 뽑지 못합니다⁠.⁠”

“⁠알고 있소⁠.⁠” 분타주가 접수증을 받아 접었다⁠. “⁠이레째는 6월 14일이오⁠. 그날 자정이 지나면⁠, 맹이 묻지 않는 것도 알고 있소⁠.⁠”

분타주가 나갔다⁠. 주태곤은 나가다 말고 창구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입을 열었다가 닫고⁠, 그냥 나갔다⁠.

점심때 개봉에서 어머니의 편지가 왔다⁠. 두부 이야기 다음에 큰일이 쓰여 있었다⁠. 맹주를 뽑는 날 구경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관복 입은 아들이 일하는 데를 한 번은 봐야 동네에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옆집 아주머니도 같이 간다고 했다⁠. 다름은 편지를 두 번 읽고 세 번째에 이마를 탁자에 댔다⁠. 맹 정문에는 학 흉배를 단 구품 주사가 번호표를 나눠 주고 있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는 아들은 향시에 붙은 아들이었다⁠.

안쪽 방문이 열렸다⁠. 천무량이 찻잔을 들고 서서 접수증 사본을 보았다⁠. 「⁠6월 8일⁠」 아래로 천무량의 손가락이 하루씩 짚어 내려갔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손가락이 멈췄다⁠.

“⁠6월 14일 자정⁠.⁠” 천무량이 말했다⁠. “⁠선거 전날 밤이다⁠.⁠”

신시가 되어 창구를 닫으려는데 위소강이 번호표 없이 대청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통에 손을 넣지 않았다⁠. 창구 손님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위소강은 다름의 탁자 위 접수증 사본을 손가락으로 끌어다 읽었다⁠.

“⁠모레 열두 마을 사람들이 온다지요⁠.⁠”

“⁠일곱 마을입니다⁠. 그리고 흑석곡⁠.⁠”

“⁠맹규에 따르면⁠, 본인이 직접 와야 하오⁠. 원로회 결정도 그렇소⁠. 그러니 감찰원이 한 사람씩 본인인지 확인하겠소⁠. 얼굴과 호적과 손도장⁠.⁠” 위소강이 사본을 도로 밀어 놓았다⁠. “⁠손도장이 두루마리 손도장과 다르면 접수하지 마시오⁠. 남이 대신 온 것이니⁠.⁠”

“⁠농사짓는 손입니다⁠. 석 달이면 굳은살이 바뀝니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오⁠. 맹규에 손바닥 굳은살 이야기는 없소⁠.⁠” 위소강이 처음으로 다름의 학 흉배를 보았다⁠. “⁠남 주사⁠, 모레가 지나면 원로회가 끝내지 못한 일 하나를 감찰원이 마저 끝낼 것이오⁠. 감찰원 뒷방 일 말이오⁠. 순서대로⁠.⁠”

다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구 위 접수증 사본에 붉은 도장이 아직 마르지 않고 있었다⁠. 이틀 뒤 6월 10일에는 일곱 마을과 흑석곡 사람들이 보리를 다 거두고 이 줄에 설 것이었다⁠. 다름은 도장을 내려놓고⁠, 통에서 번호패를 하나 꺼내 손바닥에 쥐었다⁠. 「⁠032⁠」⁠. 다음 사람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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