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99자)

수익 화면

로맨스 스캠에 걸린 엄마 · 지백솔

상록구 솔빛 경로당의 작은 방에는 에어컨이 한 대뿐이었다⁠. 봉남이 리모컨을 들고 「⁠제습⁠」과 「⁠냉방⁠」 사이를 오가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신발장에 신발이 여덟 켤레가 되었을 때 봉남이 리모컨을 내려놓고 헛기침을 했다⁠.

“⁠자⁠, 출발합니더⁠. 이번 열차는 같은 목소리행입니다⁠. 중간에 내릴 분 없지예⁠?⁠”

아무도 웃지 않았다⁠. 봉남이 한 번 더 헛기침을 했다⁠. 순애가 웃어 주었다⁠.

방에는 순애와 봉남 말고 여섯이 있었다⁠. 독일 의사와 연애한다던 일흔한 살 할머니⁠, 시흥에서 꽃집을 하는 예순하나의 여자⁠, 퇴직한 간호사⁠, 아내를 보내고 혼자 사는 일흔 줄의 남자 둘⁠, 그리고 미용실 원장 염미단⁠. 미단은 쉰여덟이었고⁠,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볶았고⁠, 손톱에 작은 진주를 붙였다⁠. 방에 들어오면서 「⁠저는 피해자 아니에요⁠, 구경 온 거예요⁠」라고 말한 사람은 미단 하나였다⁠.

봉남이 순서를 정했다⁠. 각자 연인의 사진을 하나씩 휴대전화로 띄워 방바닥 가운데에 놓기로 했다⁠.

휴대전화 여덟 대가 원을 그리며 놓였다⁠. 의사 가운⁠, 석유 회사 작업복⁠, 선글라스 쓴 사업가⁠, 그리고 군복이 셋이었다⁠. 군복 셋이 모두 같은 얼굴이었다⁠. 이를 다 드러내고 웃는 얼굴⁠.

꽃집 여자가 먼저 손을 뻗었다⁠.

“⁠이거 우리 대니얼이에요⁠. 해군 대령⁠.⁠”

“⁠우리 케일런이에요⁠. 육군 소령⁠.⁠”

순애가 말했다⁠. 퇴직 간호사가 자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이 사람 공군이라던데⁠. 마이클⁠.⁠”

셋이 동시에 서로의 화면을 보았다⁠. 꽃집 여자가 먼저 화를 냈다⁠.

“⁠이 사람이 바람을 피웠네⁠.⁠”

“⁠세 군데서 진급도 다르게 했네⁠.⁠”

봉남이 말했고⁠, 이번에는 방 안이 다 웃었다⁠. 웃음이 끝나자 꽃집 여자가 울었다⁠. 퇴직 간호사가 휴지를 뽑아 주며 자기 눈도 닦았다⁠. 순애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거꾸로 찾는 법을 보여 주었다⁠. 사진을 길게 누르고⁠, 사진으로 찾기를 누르면⁠, 노란 방화복의 소방관이 아이 셋과 바비큐를 굽는 화면이 나왔다⁠. 간호사가 따라 해 보다가 두 번 엉뚱한 단추를 눌렀다⁠. 세 번째에 소방관이 나왔다⁠.

“⁠이 양반 마누라는 알까예⁠?⁠”

봉남이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미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저는 달라요⁠. 빈센트는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벌게 해 줬지⁠.⁠”

미단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금빛 사다리 그림이 있는 앱이 떠 있었다⁠. 「⁠다이아몬드 래더⁠」 맨 위에 커다란 숫자가 있었다⁠. 투자 원금 삼천만 원⁠, 평가 금액 육천이백만 원⁠. 그래프가 오른쪽 위로 솟았다⁠.

“⁠싱가포르에서 금 선물 하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쓰는 앱이라고 알려 줬어요⁠. 처음에 오백만 원 넣었는데 이틀 만에 칠백이 됐어⁠. 오십만 원 빼 봤더니 진짜로 통장에 들어왔다고요⁠. 그래서 더 넣었지⁠. 지금 육천이에요⁠. 미용실 삼십 년 해서 숫자는 내가 알아요⁠.⁠”

순애는 화면을 받아 들었다⁠. 앱 화면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출금 신청 시 수익의 20% 세금 및 수수료 선납 필요⁠」

“⁠원장님⁠, 지금 육천이백을 빼려면 얼마를 먼저 넣으라고 해요⁠?⁠”

미단의 팔짱이 조금 풀렸다⁠.

“⁠육백 얼마⁠. 세금이라고⁠. 다음 주까지 넣으면 한 번에 다 빼 준대요⁠.⁠”

“⁠수익에서 세금을 떼면 되지⁠, 왜 따로 넣으라고 할까요⁠?⁠”

“⁠그건⁠… 싱가포르 법이 그렇대⁠.⁠”

봉남이 끼어들었다⁠.

“⁠세관도 그렇다 캤소⁠. 나는 통관비⁠.⁠”

순애는 화면을 위로 밀었다⁠. 앱 정보를 눌렀다⁠. 회사 이름은 영어로 길었고⁠, 주소는 없었고⁠, 고객센터는 메신저 대화방 하나였다⁠.

“⁠원장님⁠, 이 앱 어디서 받으셨어요⁠? 휴대폰 앱 장터에서요⁠?⁠”

“⁠아니⁠, 빈센트가 문자로 주소를 보내 줬어⁠. 눌렀더니 깔렸어요⁠.⁠”

“⁠앱 장터에 없는 앱을 주소로 깔라고 하는 건 은행에서는 무조건 막아요⁠. 그리고 이 숫자⁠.⁠” 순애는 육천이백만 원에 손가락을 댔다⁠. “⁠이건 돈이 아니고 글자예요⁠. 저 사람들이 화면에 육천이백이라고 쓰면 육천이백이 되고⁠, 일억이라고 쓰면 일억이 돼요⁠.⁠”

“⁠그럼 오십만 원은⁠? 진짜로 들어왔다니까⁠.⁠”

“⁠그 오십만 원⁠, 보낸 사람 이름 기억하세요⁠?⁠”

미단이 통장 앱을 열었다⁠. 입금 내역을 한참 내렸다⁠. 손톱의 진주가 화면에 톡톡 부딪쳤다⁠. 오십만 원 입금 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보낸 사람 이름 칸에 남자 이름 석 자가 있었다⁠.

순애는 이름 석 자를 알았다⁠. 시흥 연립⁠, 선풍기⁠, 철도청 달력⁠. 삼백만 원을 보낸 날 아침⁠, 같은 계좌에 다른 사람 넷이 돈을 넣었다⁠.

“⁠원장님⁠. 이 이름⁠, 시흥에 사는 일흔 넘은 어르신이에요⁠. 통장을 빌려줬다가 지금 피의자가 됐어요⁠. 원장님이 돌려받은 오십만 원은 빈센트의 돈도⁠, 앱 수익도 아니에요⁠. 다른 피해자가 같은 통장에 넣은 돈에서 오십만 원을 떼서 원장님한테 보낸 거예요⁠. 처음에 조금 돌려줘서 믿게 하고⁠, 그다음에 크게 받아요⁠.⁠”

미단은 입금 내역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돼⁠. 그럼 빈센트가 나한테 매일 보내는 목소리는 뭔데⁠?⁠”

“⁠한번 들어 봐도 돼요⁠?⁠”

미단이 마지못해 음성 메시지를 눌렀다⁠. 낮은 남자 목소리였다⁠. 영어 억양이 섞인 한국말이었다⁠. 「⁠미단⁠, 오늘 시장 좋아요⁠. 우리 미래 좋아요⁠.⁠」 끝에 웅웅거림이 깔렸다⁠.

깨깟⁠. 깨깟⁠.

방 안 사람 여덟이 동시에 숨을 멈췄다⁠. 봉남이 무릎을 쳤다⁠.

“⁠또 그 새다⁠.⁠”

*

“⁠확인할 데가 있어요⁠.⁠”

순애는 미단에게 자기 휴대전화를 건넸다⁠. 금융감독원의 상담 번호 1332였다⁠. 순애가 스피커를 켜 주자 미단이 머뭇거리며 앱 이름과 회사 이름을 불렀다⁠. 상담원이 등록된 금융회사인지 조회했다⁠.

“⁠고객님⁠, 말씀하신 회사는 국내에 등록된 투자 업체가 아닙니다⁠. 출금하려면 세금이나 수수료를 먼저 내라고 하는 앱은 불법 업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가로 돈을 넣지 마시고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입금하신 계좌는 은행에 지급 정지를 요청하시고요⁠.⁠”

미단은 전화가 끊긴 뒤에도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한참 뒤에 내리며 말했다⁠.

“⁠삼천만 원이에요⁠. 적금 깬 거⁠. 딸 시집갈 때 주려고 모은 거⁠.⁠”

아무도 미단에게 휴지를 건네지 않았다⁠. 미단이 휴지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방 안 사람들이 다 알았다⁠. 미단은 손톱의 진주를 하나씩 눌러 떼어 손바닥에 모았다⁠. 일곱 개였다⁠.

“⁠이거 붙이는 데 이만 원 들었어⁠. 빈센트가 손 사진 보내 달래서⁠.⁠”

봉남이 말없이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을 「⁠냉방⁠」으로 바꿨다⁠.

*

순애는 경로당 마당으로 나와 평상 끝에 앉았다⁠. 마당 한구석에서 고추가 볕에 말라 가고 있었다⁠. 「⁠홍삼⁠」에게 전화를 걸자 재빈은 신호가 두 번 가기 전에 받았다⁠. 뒤에서 지하철 안내 방송이 들렸다⁠. 「⁠이번 역은 중앙⁠, 중앙역입니다⁠.⁠」

“⁠재빈 씨⁠, 다이아몬드 래더라는 앱 알아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지하철 문 닫히는 소리가 지나갔다⁠.

“⁠삼 층이요⁠. 단지 삼 층이 투자 조였어요⁠. 연애 조가 붙잡고 있는 사람이 통관비나 수수료에서 머뭇거리면⁠, 연인이 「⁠같이 돈 벌자⁠」며 앱을 알려 줘요⁠. 그때부터는 삼 층이 받아요⁠. 앱 화면 숫자는 삼 층 사람들이 쳐 넣어요⁠. 오르는 날⁠, 떨어지는 날까지 정해서요⁠. 처음에 조금 빼 주는 것도 대본에 있어요⁠. 그게 있어야 다음에 크게 넣거든요⁠.⁠”

“⁠사람마다 숫자를 다르게 쳐요⁠?⁠”

“⁠네⁠. 그 사람이 얼마 있는지 보고요⁠. 미용실 하시는 분이면 가게 보증금까지 봐요⁠.⁠” 재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머님⁠, 그 모임 조심하세요⁠. 모임이 생기면 위에서 제일 먼저 사람을 넣어요⁠. 피해자처럼 들어가서⁠, 「⁠돈 찾아 주겠다⁠」고 또 받아요⁠. 단지에서는 그걸 두 번 먹는다고 했어요⁠.⁠”

“⁠두 번 먹는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제 입으로 하는 게⁠.⁠”

순애는 전화를 끊고 한참 고추를 보았다⁠. 볕에 마르면서 고추 껍질이 조금씩 오그라들었다⁠. 방 안에서 봉남이 「⁠다음 역은 신고역입니더⁠」 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몇 사람이 웃었다⁠.

*

대화방 「⁠같은 목소리⁠」는 모임이 끝날 무렵 열네 명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경로당 친구들을 불렀고⁠, 꽃집 여자가 꽃집 손님 하나를 불렀다⁠. 순애는 들어오는 사람마다 첫 메시지를 읽었다⁠. 대부분 사진부터 올렸다⁠. 군복⁠, 가운⁠, 작업복⁠.

열세 번째로 들어온 사람의 이름은 「⁠탁 사장⁠」이었다⁠. 사진은 올리지 않고 음성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아이고⁠, 저도 독일 여의사한테 당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시니 동병상련이올시다⁠. 저도 오늘 모임 간다고 했는데 차가 막혀서요⁠. 지금 도착합니다⁠.⁠”

순애는 메시지를 두 번 들을 필요가 없었다⁠.

경로당 현관 문이 열렸다⁠. 탁갑룡이 떡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반소매 셔츠⁠, 금테 안경⁠.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탁 사장입니다⁠. 떡 좀 해 왔습니다⁠. 시루떡이에요⁠. 액운 떼는 데는 시루떡이 최고지요⁠.⁠”

할머니들이 반가워했다⁠. 봉남이 떡을 받아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순애는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탁갑룡이 떡 상자를 내려놓을 칼을 찾는 척하며 따라 들어왔다⁠.

경로당 부엌은 좁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보리차 주전자가 있었고⁠, 냉장고 문에 「⁠반찬 가져가신 분 그릇 돌려주세요⁠」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탁갑룡이 칼을 집어 떡을 썰었다⁠. 목소리를 낮췄다⁠.

“⁠어머님⁠, 좋은 일 하십니다⁠. 저도 돕고 싶어서 왔어요⁠.⁠”

“⁠무슨 도움이요⁠?⁠”

“⁠피해금 회수요⁠. 제가 아는 데가 있습니다⁠. 해외 계좌에 묶인 돈을 찾아 주는 법무 대행이에요⁠. 착수금만 조금 내면 절반은 찾아 준답니다⁠. 여기 분들 돈 돌려받고 싶어 하시잖아요⁠.⁠”

순애는 보리차 주전자를 들어 컵 두 개에 따랐다⁠. 하나를 탁갑룡 앞에 놓았다⁠.

“⁠한 번 당한 사람한테 돈 찾아 준다며 또 받는 것도 은행에서 많이 봤어요⁠. 착수금⁠, 수수료⁠, 공탁금⁠. 받는 사람만 바뀌고 받는 계좌는 또 남의 이름이지요⁠.⁠”

탁갑룡이 칼을 멈췄다⁠.

“⁠어머님⁠, 오해십니다⁠.⁠”

“⁠사장님이 떡을 썰면 사람들이 받아먹어요⁠. 착수금을 말하면 사람들이 또 보내요⁠. 여기 미용실 원장님은 오늘 처음으로 앱에 돈을 안 넣기로 했어요⁠. 기관사 선생님은 송금 신청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그분들한테 시루떡 말고 아무것도 내밀지 마세요⁠.⁠”

“⁠어머님이 막으시면⁠, 나중에 돈 못 찾은 원망은 어머님이 다 들으십니다⁠. 다들 어머님이 우리 돈 찾을 길을 막았다고 하겠지요⁠. 따님 귀에도 들어가고요⁠.⁠”

탁갑룡이 썬 떡을 접시에 담았다⁠. 칼끝으로 접시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맞췄다⁠. 휴대전화가 셔츠 주머니에서 반쯤 나와 있었고⁠, 화면에 「⁠같은 목소리⁠」 대화방이 열려 있었다⁠. 열네 명의 이름이 한 줄씩 보였다⁠. 순애가 오늘 한 사람씩 받아들인 이름들이었다⁠.

“⁠시루떡 맛있게 드십쇼⁠. 어머님⁠. 이 방⁠, 오늘부터는 제가 같이 지키겠습니다⁠.⁠”

탁갑룡은 떡 접시를 들고 방으로 나갔다⁠. 방에서 할머니들이 「⁠아이고 사장님⁠」 하는 소리가 났다⁠. 순애는 부엌 개수대에 기대어 보리차 컵을 들었다⁠. 컵이 손바닥보다 뜨거웠다⁠. 순애는 내려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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