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66자)

폐백실에 불이 났다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6월 12일 토요일 새벽 한 시⁠, 거실 바닥에 군용 담요가 깔려 있었고 담요 위에 화투장이 흩어져 있었다⁠. 엄마 민선자가 시어머니의 꼬리 세 개를 무릎에 얹고⁠, 나머지 여섯 개는 등 뒤에 베개처럼 받친 채 패를 쥐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맞은편에 앉아 한 손으로 패를 들고 다른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정수리의 흰머리가 여든한 가닥이었다⁠. 틀어 올린 머리 위에 서리가 앉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이 집에서 밤을 지낸 지 스무 날이 넘었다⁠. 낮에는 파주 가게를 아빠에게 맡겼는데⁠, 아빠는 전화로 깻잎 무침 간을 물어 오는 것 말고는 불평하지 않았다⁠.

“⁠사돈⁠, 고⁠.⁠”

“⁠고가 뭐예요⁠?⁠”

“⁠더 간다는 거예요⁠. 사돈은 이번 판 끝났어요⁠.⁠”

엄마가 패를 내려놓았다⁠. 시어머니가 제 패를 들여다보다가 내려놓았다⁠. 시어머니는 화투를 배운 지 스무 날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좋은 패가 들어오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는 시어머니 얼굴만 보고 패를 맞혔다⁠.

“⁠사돈은 거짓말을 못 해서 화투도 못 해요⁠.⁠”

“⁠천 년 동안 화투는 처음이에요⁠.⁠”

지안은 안방 문틈으로 두 엄마를 보고 있었다⁠. 물을 마시러 나오다가 엄마의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을 듣고 멈췄다⁠.

“⁠사돈⁠. 나도 한 번 나간 적 있어요⁠. 우리 지안이 일곱 살 때⁠.⁠”

시어머니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애 아빠가 그해 밤마다 안 들어왔어요⁠. 택시 몬다고⁠. 근데 손님 태우는 시간보다 기사 식당에서 화투 치는 시간이 길었어요⁠. 그래서 애 데리고 부산 언니 집에 갔어요⁠. 한 해를 거기 있었어요⁠.⁠”

“⁠그러고 돌아왔네요⁠.⁠”

“⁠애 아빠가 날마다 밤에 언니 집 앞에 택시 대 놓고 그 안에서 잤어요⁠. 한 해를⁠. 언니가 질려서 우리를 내쫓았어요⁠.⁠”

엄마가 웃었다⁠. 시어머니도 웃었다⁠.

“⁠돌아온 게 잘한 건지는 몰라요⁠. 돌아왔다는 것만 알아요⁠.⁠”

엄마는 패를 섞었다⁠. 지안은 문틈에서 물러나 침대로 돌아갔다⁠. 일곱 살 때 부산 바닷가에서 한 해를 산 기억이 났다⁠. 왜 거기 있었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현오가 잠결에 지안 쪽으로 돌아누웠다⁠. 지안은 밀어내지 않았다⁠.

*

오후 한 시⁠, 라온채 3층 그랜드홀⁠. 하객 사백 명이 들어찼고⁠, 천장에서 흰 꽃 장식이 폭포처럼 내려와 있었다⁠. 지안은 귀에 헤드셋을 끼고 무대 옆에 서 있었다⁠. 오늘은 대표의 딸 결혼식이었고⁠, 지안이 맡은 예식 가운데 가장 큰 예식이었다⁠. 소화기 위치⁠, 신부 동선⁠, 축가 반주 파일⁠, 폐백실 촛불까지 어젯밤 열한 시에 세 번 확인했다⁠.

사회자 변희동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 하객 여러분⁠. 지금부터 신랑 신부의 혼인 서약이 있겠습니다⁠.⁠”

신랑이 서약서를 펼치고 첫 줄에서 막혔다⁠. 종이가 바뀌어 있었다⁠. 신랑이 들고 온 것은 축가 가사였다⁠. 하객석에서 웃음이 번졌다⁠. 희동이 한 박자 쉬고 말했다⁠.

“⁠신랑이 서약 대신 노래를 하겠답니다⁠. 노래로 하는 서약은 철회가 안 됩니다⁠.⁠”

하객석이 박수로 터졌다⁠. 지안은 무전으로 음향팀에 반주를 준비시키고⁠, 신부 측 테이블 옆에서 연보라 한복을 보았다⁠. 시어머니였다⁠. 대표가 한 달 전에 다도 선생님을 하객으로 모셨다⁠. 시어머니는 화려한 하객들 사이에서 꼿꼿하게 앉아 신랑의 엉망인 노래에 박수를 쳤다⁠. 흰머리 여든한 가닥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시어머니가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지안도 숙였다⁠.

*

오후 세 시 십 분⁠, 2층 폐백실은 사람으로 꽉 찼다⁠. 신랑 측 가족이 병풍 앞 방석에 앉고⁠, 원삼에 족두리를 쓴 신부와 사모관대를 입은 신랑이 절을 올렸다⁠. 한지에 학과 소나무를 그린 열 폭 병풍이 벽을 둘렀고⁠, 상 위에 대추와 밤과 술병⁠, 그리고 신부가 고집한 진짜 촛불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지안은 초를 병풍에서 한 뼘 반 떨어뜨려 놓았고⁠, 소화기 두 대를 문 양옆에 세웠다⁠.

대추와 밤을 던지는 순서가 왔다⁠. 신랑 아버지가 대추를 던지고⁠, 신랑 어머니가 밤을 던졌다⁠. 신부가 원삼 치마를 펼쳐 받았다⁠. 하객들이 몇 개 받았는지 소리 내어 셌다⁠. 신랑 삼촌이 흥에 겨워 밤 한 줌을 들고 일어났다⁠. 힘을 너무 주었다⁠. 밤 한 알이 신부 치마를 넘어 상 위로 날아가 촛대를 쳤다⁠.

촛대가 넘어지면서 촛불이 병풍 아래 한지에 닿았다⁠. 한지는 소리도 없이 불을 받아먹었다⁠. 불길이 학의 날개를 타고 위로 번졌다⁠. 이 초도 안 되어 병풍 두 폭이 타올랐고⁠, 불이 창가 커튼 끝까지 올라갔다⁠. 한지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퍼졌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하객들이 문으로 몰렸다⁠.

지안은 소화기로 몸을 날렸다⁠. 문 왼쪽 소화기는 문으로 몰려 나가는 하객들 사이에 묻혀 있었다⁠. 오른쪽 소화기로 손을 뻗는 사이 불길이 신부 쪽으로 꺾였다⁠. 신부는 원삼 소매가 무거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족두리 장식이 흔들렸다⁠.

문가에서 시어머니가 걸음을 내디뎠다⁠.

시어머니는 사람들을 거슬러 폐백실 안으로 들어왔다⁠. 낮이었다⁠. 꼬리는 감출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감추지 않았다⁠. 한복 치마가 부풀고⁠, 흰 꼬리 아홉 개가 폐백실 천장까지 펼쳐졌다⁠. 하객들의 비명이 한 번 더 났다⁠. 다른 비명이었다⁠.

시어머니는 꼬리 아홉 개를 한꺼번에 불타는 병풍 위로 덮었다⁠. 털이 불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이불로 불을 덮을 때처럼 둔한 소리였다⁠. 꼬리 두 개가 커튼을 감아 내렸다⁠. 털 타는 냄새가 한지 냄새를 덮었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하얘졌는데 꼬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지안이 소화기 안전핀을 뽑아 꼬리 가장자리에 남은 불씨에 하얀 가루를 뿌렸다⁠. 폐백실이 흰 가루와 흰 털로 뿌옇게 덮였다⁠.

불이 꺼졌다⁠. 병풍 석 폭이 검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신부는 원삼 소매를 쥐고 방석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시어머니가 꼬리를 거둬들였다⁠. 아홉 개 꼬리 끝이 모두 검게 그을려 있었다⁠. 꼬리를 치마 속으로 넣으려다 그을린 끝이 걸리적거려 반쯤만 들어갔다⁠.

폐백실 문가에서 휴대전화 수십 대가 들려 있었다⁠. 화면마다 빨간 녹화 표시가 깜빡였다⁠.

정적을 깬 것은 신부였다⁠. 신부는 족두리가 비뚤어진 채 시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그을린 꼬리 끝에서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랐다⁠.

*

오후 네 시⁠, 폐백실 앞 복도⁠. 대표가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화면에 벌써 영상이 돌고 있었다⁠. 「⁠일산 예식장 폐백실 화재⁠… 불 끈 건 ‘⁠꼬리⁠’⁠?⁠」⁠. 조회 수가 숫자를 갈아 치우며 올라갔다⁠. 대표의 다른 손에 쥔 업무용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다음 달 예약 손님들이었다⁠.

“⁠지안아⁠.⁠”

대표의 얼굴이 하얬다⁠. 딸을 구해 준 사람에게 고마운 얼굴과 회사를 지켜야 하는 얼굴이 한데 엉켜 있었다⁠.

“⁠선생님한테는 내가 평생 갚을 거야⁠. 그건 그거고⁠. 하나만 해 줘⁠.⁠”

“⁠네⁠.⁠”

“⁠기자들한테 특수분장이라고 해⁠. 폐백 이벤트로 준비한 연출이었다고⁠. 촛불도 연출⁠, 꼬리도 연출⁠. 사고가 아니었다고⁠. 그럼 내가 다 수습해⁠. 지배인도 그대로 가고⁠.⁠”

지안은 복도 창으로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시어머니가 현오의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현오가 연락을 받고 달려와 열린 차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차창 너머로 그을린 꼬리 끝이 비쳤다⁠.

“⁠대표님⁠. 저는 그 말 못 해요⁠.⁠”

“⁠지안아⁠.⁠”

“⁠제 시어머니예요⁠. 구미호예요⁠. 오늘 불 끈 건 저희 시어머니 꼬리예요⁠. 연출 아니에요⁠.⁠”

대표는 오래 지안을 보았다⁠. 삼 년 전 지안에게 소개팅을 시켜 준 얼굴이 오늘은 피곤해 보였다⁠.

“⁠그럼 지배인은 2팀장한테 간다⁠. 미안하다⁠.⁠”

“⁠네⁠.⁠”

지안은 고개를 숙였다⁠. 팔 년을 다닌 회사에서 가장 짧은 대답이었다⁠. 헤드셋을 벗어 손에 감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참에서 변희동이 마이크 선을 둘둘 말고 있다가 지안을 보고 손을 멈췄다⁠.

“⁠매니저님⁠.⁠”

“⁠희동 씨⁠, 나 지배인 안 돼요⁠.⁠”

희동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하객 테이블에 놓는 답례 사탕이었다⁠. 지안은 받아서 입에 넣었다⁠. 단맛이 혀에 퍼졌는데 목이 메었다⁠.

*

밤 열 시⁠, 신혼집 거실 바닥에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시어머니가 신문지 위에 엎드려 있었고⁠, 꼬리 아홉 개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현오가 안경원에서 쓰는 작은 가위로 그을린 털 끝을 한 올씩 잘라 냈다⁠. 안경테 나사를 조이던 손이라 떨리지 않았다⁠. 지안은 화상 연고를 손가락에 짜서 털이 빠진 자리마다 발랐다⁠. 연고가 닿을 때마다 시어머니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프세요⁠?⁠”

“⁠천 년 동안 불에 덴 건 처음이에요⁠.⁠”

“⁠왜 꺼내셨어요⁠? 낮이었잖아요⁠. 감추실 수 있었잖아요⁠.⁠”

“⁠며늘아가가 소화기를 들고 있었잖아요⁠. 불은 며늘아가 쪽으로 오고 있었고⁠.⁠”

지안의 손이 연고를 바르다 멈췄다⁠. 시어머니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현오가 가위를 내려놓았다⁠.

“⁠지배인 안 됐다며⁠. 희동 씨가 문자 보냈어⁠.⁠”

“⁠응⁠.⁠”

“⁠엄마 때문이야⁠?⁠”

“⁠어머님 때문 아니야⁠. 내가 거짓말을 못 해서야⁠.⁠”

말하고 나서 지안은 웃음이 났다⁠. 시어머니가 지안을 고른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고른 까닭이 오늘 지안의 승진을 가져갔다⁠. 시어머니가 신문지에 이마를 댄 채로 어깨를 떨었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지안은 보지 않았다⁠. 연고 뚜껑을 닫고 다음 꼬리를 끌어왔다⁠.

엄마가 식탁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영상은 저녁 뉴스에도 나왔다⁠. 「⁠일산 예식장 화재 영상 속 ‘⁠흰 꼬리⁠’⁠… 합성인가 실제인가⁠」⁠. 해외 계정들이 영어 자막을 달아 퍼 날랐고⁠, 어느 나라 사람이 「⁠한국 결혼식에는 여우가 온다⁠」고 적은 글이 수만 번 공유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여우가 온다는 대목에서 혀를 찼다⁠.

아파트 단톡방도 울렸다⁠. 「⁠1203호 그 할머니 맞죠⁠?⁠」「⁠무섭습니다⁠. 아이 키우는 집도 생각해 주세요⁠」「⁠불 끄신 거잖아요⁠, 신부 구하신 거⁠」「⁠여우가 사람을 구했다고 여우가 아니게 되나요⁠?⁠」⁠.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동 사람들이 반으로 나뉘어 말하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화면 속에 함병도가 서 있었다⁠. 오늘은 등산 조끼 위에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다⁠. 지안은 문을 열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병도가 인쇄한 종이 한 장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주민 설명회 안내 — 6월 29일(⁠화⁠) 밤 9시⁠, 아파트 놀이터⁠. 흰 여우에 관해 협회가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전래퇴마협회⁠」⁠.

“⁠관리사무소와 동대표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영상 이후로 주민 민원이 마흔 건 넘게 들어왔답니다⁠.⁠”

“⁠왜 하필 29일이에요⁠?⁠”

“⁠아흔아홉 번째 밤이니까요⁠. 백 번째 밤 전에⁠, 주민들이 무엇과 함께 사는지 아셔야 합니다⁠.⁠”

병도의 눈이 지안 어깨 너머 거실 바닥의 꼬리로 갔다⁠. 그을린 털을 잘라 낸 꼬리 끝이 신문지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병도는 잘린 꼬리 끝을 오래 보았다⁠. 1988년 겨울 사진 속 눈밭의 아홉 줄 자국을 볼 때와 같은 눈이었다⁠.

“⁠오늘 신부를 구하신 것도 압니다⁠. 설명회에서 그것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병도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놋쇠 방울이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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