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6자)

오늘부터 엄마 꼬리 안 잡아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5월 18일 화요일 아침 여덟 시⁠, 우편함에서 꺼낸 법원 등기 봉투는 생각보다 얇았다⁠. 지안은 식탁에 앉아 봉투를 뜯었다⁠.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이혼 사건 조정기일 통지서 · 2027년 6월 30일(⁠수⁠) 오후 2시 · 가사조정실 · 출석하실 때 신분증과 도장을 가져오십시오⁠」⁠.

지안은 날짜를 두 번 읽었다⁠. 식탁 맞은편에서 계란을 부치던 시어머니가 뒤집개를 든 채 고개를 돌렸다⁠. 시어머니는 종이를 보지 않고도 날짜를 알았다⁠. 지안의 얼굴에 적혀 있었을 것이다⁠.

“⁠며칠이에요⁠?⁠”

“⁠6월 30일이요⁠.⁠”

시어머니가 뒤집개를 내려놓았다⁠.

“⁠백 일째네요⁠.⁠”

부엌에 기름 튀는 소리만 남았다⁠. 5월 6일 이후로 열이틀 동안 지안은 시어머니와 꼭 필요한 말만 했다⁠. 시어머니는 날마다 아침을 차렸고⁠, 지안은 날마다 웨딩홀 직원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통지서를 열다가 자리를 뜰 때를 놓쳤다⁠.

거실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혼자 떠들었다⁠. 기상 캐스터가 올해 장마는 6월 말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화면을 흘끗 보더니 창밖의 맑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와도 지붕은 지붕이었다⁠. 지안은 저도 모르게 시어머니의 계산을 따라 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통지서를 뒤집어 놓았다⁠.

현오가 넥타이를 매며 식탁으로 왔다⁠. 지안은 통지서를 현오 쪽으로 밀었다⁠. 현오가 읽고⁠, 안경을 벗었다⁠.

“⁠오후 두 시면⁠…⁠…⁠.⁠”

“⁠조정이 되면 그날로 이혼이야⁠. 판사님이 그랬잖아⁠. 오후 세 시에 도장 찍으면 밤 열두 시에 우리는 부부가 아니야⁠.⁠”

지안은 시어머니를 보지 않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계란을 접시에 옮겨 지안 앞에 놓았다⁠.

“⁠알아요⁠.⁠”

“⁠어머님 백 번째 밤은 안 차요⁠.⁠”

“⁠알아요⁠. 계란 식어요⁠.⁠”

지안은 계란을 먹지 않고 일어났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데 등 뒤에서 현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오늘 밤에 얘기 좀 해⁠.⁠”

*

오전 열 시⁠, 라온채 5층 대표실에는 녹차 냄새가 났다⁠. 대표는 창가 다탁에 앉아 다관에 물을 붓고 있었다⁠. 정발산동 다도 교실에서 배운 손놀림이었다⁠. 지안은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대표님⁠. 삼 년 전 소개팅이요⁠. 저희 시어머니가 부탁하신 거죠⁠?⁠”

대표의 손이 멈췄다⁠. 찻물이 다관 주둥이에서 한 방울 떨어졌다⁠.

“⁠선생님이 말했어⁠?⁠”

“⁠사진을 봤어요⁠.⁠”

대표는 찻잔 두 개에 차를 따르고 하나를 지안 앞에 놓았다⁠. 거짓말할 생각이 없는 사람의 손이었다⁠.

“⁠그래⁠. 선생님이 사진 한 장 주시면서 부탁하셨어⁠. 우리 아들인데⁠, 대표님 회사 오지안 매니저랑 한 번 만나게 해 달라고⁠. 좋은 아이라고⁠.⁠”

“⁠대표님은 저한테 좋은 사람 있다고만 하셨어요⁠.⁠”

“⁠좋은 사람 맞잖아⁠. 아니었어⁠?⁠”

“⁠좋은 사람이에요⁠. 밤에 집에 없었을 뿐이에요⁠.⁠”

대표가 찻잔을 들다 말고 지안을 보았다⁠.

“⁠선생님이 왜 너를 골랐는지는 나도 몰라⁠. 물어본 적 없어⁠. 넌 물어봤어⁠?⁠”

지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시어머니가 입을 열었을 때 손을 들어 막은 것은 지안이었다⁠.

대표가 화제를 돌렸다⁠. 6월 12일 딸 결혼식 이야기였다⁠. 딸이 폐백을 옛날식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대추와 밤을 던지고⁠, 병풍을 치고⁠, 상 위에 진짜 촛불을 켜고 싶다고 했다⁠.

“⁠LED 초는 싫대⁠. 사진에 가짜 티 난다고⁠. 하객이 사백 명이야⁠. 사백 명이 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을 거고⁠.⁠”

“⁠대표님⁠, 폐백실은 좁아서 촛불은 위험해요⁠. 병풍이 한지예요⁠.⁠”

“⁠그러니까 네가 맡는 거야⁠. 위험한 건 네가 제일 잘 막잖아⁠.⁠”

대표가 웃었다⁠. 지안은 수첩에 「⁠폐백실 촛불 — 소화기 두 대⁠, 병풍과 거리 한 뼘 이상⁠」이라고 적었다⁠. 적으면서 생각했다⁠. 이 결혼식이 끝나면 총괄 지배인이 정해진다⁠. 6월 12일이 지나면 6월 30일이 온다⁠. 두 날짜가 수첩 같은 장에 나란히 있었다⁠.

대표실을 나오자 복도에서 변희동이 마이크 선을 감고 있었다⁠.

“⁠자⁠, 하객 여러분⁠. 매니저님 얼굴이 이혼 서류 같습니다⁠.⁠”

“⁠희동 씨⁠, 이혼 두 번 하실 때 누가 소개팅 시켜 줬어요⁠?⁠”

“⁠첫 번째는 우리 엄마⁠, 두 번째는 첫 번째 와이프⁠.⁠”

지안은 걸음을 멈췄다⁠. 희동이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좋은 사람 맞았어요⁠. 나랑 안 맞았을 뿐⁠.⁠”

*

밤 열한 시⁠, 거실 등을 켜 놓은 채로 시어머니의 꼬리가 나왔다⁠. 오늘은 현오가 미리 소파 아래 카펫에 앉아 있지 않았다⁠. 현오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꼬리가 다 펼쳐진 뒤에 일어나 소파로 갔다⁠. 늘 하던 대로 꼬리 세 개를 무릎에 끌어다 쥐었다⁠. 손이 몸보다 먼저 움직였다⁠.

지안은 안방 문을 반쯤 열고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엄마⁠.⁠”

“⁠응⁠.⁠”

“⁠엄마가 내 소개팅 짰어⁠?⁠”

“⁠응⁠.⁠”

“⁠왜⁠?⁠”

시어머니가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꼬리 아홉 개가 숨을 고르듯 천천히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지안이가 거짓말을 못 해서⁠.⁠”

“⁠그게 이유야⁠?⁠”

“⁠응⁠.⁠”

현오는 무릎 위의 꼬리를 내려다보았다⁠. 열 살 때부터 쥐던 꼬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혼자 쥐었고⁠, 결혼한 해 가을부터는 밤마다 쥐었다⁠. 현오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꼬리가 무릎에서 미끄러져 소파 위로 떨어졌다⁠.

“⁠나 오늘부터 엄마 꼬리 안 잡아⁠.⁠”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내 방에서 잘 거야⁠. 지안이 옆에서⁠. 엄마 백 일 못 채워도⁠.⁠”

현오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경을 닦지 않았다⁠. 지안은 남편이 안경 대신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시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맞아⁠.⁠”

시어머니는 한복 저고리의 고름을 풀었다⁠. 긴 연보라 고름 두 줄로 꼬리 아홉 개의 뿌리를 한데 모아 묶고⁠, 남은 끝을 소파 다리에 돌려 매듭을 지었다⁠. 매듭을 세 번 당겨 보았다⁠. 고려 때 개경 장터에서 소 고삐 매는 것을 보고 배운 매듭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묶을게⁠. 들어가서 자⁠.⁠”

현오가 일어났다⁠. 안방 문 앞에서 지안과 눈이 마주쳤다⁠. 지안은 길을 비켜 주었다⁠.

일 년 반 만에 남편이 안방 침대에 누웠다⁠. 누우려다 멈칫한 것은 베개가 없어서였다⁠. 지안이 장롱 위 칸에서 베개를 꺼내 던졌다⁠. 날마다 저녁에 폈다가 아침에 접어 넣던 베개였다⁠. 오늘은 편 채로 아침을 맞을 것이었다⁠. 현오는 침대 가장자리에 몸을 붙이고 반듯하게 누웠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지안은 반대 가장자리에 누웠다⁠. 둘 사이에 사람 하나가 더 누울 자리가 남았다⁠. 방 안에 낯선 숨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 몇 달은 이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등 돌려⁠.⁠”

지안이 말했다⁠. 현오가 등을 돌렸다⁠. 셔츠 대신 입은 회색 티셔츠 등판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보였다⁠. 일 년 반 전보다 어깨가 좁아져 있었다⁠. 밤마다 소파 아래 앉아서 잔 어깨였다⁠.

“⁠지안아⁠.⁠”

“⁠자⁠.⁠”

현오는 오 분도 안 되어 잠들었다⁠. 숨이 길어졌고⁠, 손가락이 이불 위에서 무언가를 쥐듯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지안은 오므라들었다 펴지는 손을 오래 보았다⁠. 거실에서 소파가 가끔 삐걱거렸다⁠. 자정에 벽 너머로 시어머니가 작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쉰일곱 번째 흰머리가 난 것이었다⁠.

*

새벽 두 시⁠, 지안은 쇠붙이 긁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거실로 나가 보니 소파가 한 뼘 밀려나 있었고⁠, 소파 다리에 연보라 고름 반 토막이 매달려 있었다⁠. 나머지 반은 바닥에 끊겨 떨어져 있었다⁠.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복도에 흰 털이 한 줄로 이어졌다⁠.

지안은 안방을 돌아보았다⁠. 현오는 누울 때 자세 그대로 깊이 자고 있었다⁠. 일 년 반 동안 한 번도 이렇게 자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지안은 남편을 깨우지 않았다⁠. 남편이 오늘 고른 것을 오늘 밤 안에 무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잠옷 위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틈이 없었다⁠. 12층을 내려가는 동안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다⁠.

아파트 정문 앞 상가 1층⁠, 「⁠호수정육⁠」 셔터 앞에 시어머니가 있었다⁠. 맨발에 흰 꼬리 아홉 개를 땅에 끌고⁠, 셔터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금빛 눈동자가 셔터 틈을 들여다보았다⁠. 코끝이 쉬지 않고 움찔거렸다⁠. 셔터 아래 틈으로 냉장고 모터 소리가 웅웅 새어 나왔다⁠.

지안은 남은 슬리퍼 한 짝도 벗어 들고 맨발로 다가갔다⁠. 꼬리 뿌리를 두 손으로 쥐었다⁠. 현오가 쥐던 자리⁠, 엄지로 누르는 힘⁠. 여덟 주 동안 옆에서 본 손을 따라 했다⁠. 꼬리가 손안에서 한 번 크게 꿈틀하더니 가만해졌다⁠.

“⁠어머님⁠. 정육점 문 닫았어요⁠. 아침 아홉 시에 열어요⁠.⁠”

시어머니의 눈에서 금빛이 빠졌다⁠. 검은 눈동자가 셔터를 보고⁠, 제 맨발을 보고⁠, 꼬리를 쥔 며느리의 손을 보았다⁠.

“⁠며늘아가 손이네요⁠.⁠”

“⁠현오 씨 깨우기 싫어서요⁠. 처음으로 푹 자요⁠.⁠”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안은 꼬리를 쥔 채 시어머니를 놀이터 벤치에 앉혔다⁠. 그네가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맨발에 모래가 묻어 있었다⁠.

“⁠어머님⁠, 고름은 왜 그렇게 약하게 묶으셨어요⁠?⁠”

“⁠세게 묶었어요⁠. 배가 고프면 이빨이 먼저 나가요⁠.⁠”

시어머니가 고름 끝을 들어 보였다⁠. 매듭이 아니라 고름 가운데가 물어뜯겨 있었다⁠.

“⁠고마워요⁠.⁠”

“⁠어머님 때문 아니에요⁠.⁠”

“⁠알아요⁠.⁠”

시어머니가 웃었다⁠. 지안도 웃음이 났다⁠. 이 말을 몇 번이나 주고받는지 몰랐다⁠.

아파트 단톡방이 새벽 두 시 반에 울렸다⁠. 「⁠놀이터에 한복 입은 분이랑 잠옷 입은 분 계신데 괜찮으신 거죠⁠? 경비실 연락드렸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손전등을 들고 놀이터 입구에 나타났다가⁠, 지안이 손을 흔들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경비 아저씨는 석 달째 1203호의 흰 털을 쓸고 있었다⁠.

*

새벽 네 시⁠, 지안은 거실 소파 아래 카펫에 앉아 꼬리 세 개를 무릎에 쥐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잠들었다⁠. 손가락이 저려 왔다⁠. 출근은 아홉 시였다⁠. 지안은 한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새벽 네 시면 반찬가게에 나가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

“⁠왜⁠.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그냥⁠. 손이 저려서⁠.⁠”

엄마는 오 초쯤 말이 없었다⁠.

“⁠거기 있어⁠. 움직이지 마⁠.⁠”

아침 여섯 시⁠,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반찬통 세 개와 꽃무늬 이불 한 채를 이고 들어왔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딸이 꼬리를 쥐고 앉은 꼴을 보았다⁠. 소파 위에서 눈을 뜬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반찬통을 식탁에 내려놓고⁠, 이불을 소파 옆에 펼치고⁠, 딸의 손에서 꼬리를 한 개씩 빼앗아 제 무릎에 옮겼다⁠. 반찬가게 삼십 년의 손이라 꼬리를 쥐는 것도 무를 쥐는 것처럼 단단했다⁠.

“⁠니가 이걸 잡고 출근을 어떻게 해⁠. 오늘부터 밤에는 내가 잡는다⁠.⁠”

“⁠엄마⁠, 퇴마 협회는⁠?⁠”

“⁠회장님은 회장님 일 하라 그래⁠. 나는 내 딸 잠 재우는 일 할 거니까⁠.⁠”

엄마가 시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사돈⁠. 대신 백 일 끝나면 우리 딸 놔줘요⁠.⁠”

시어머니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꼬리를 쥔 사돈의 손을 한참 보았다⁠.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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