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4자)

이혼할 의사가 있습니까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5월 6일 목요일 오전 아홉 시 반⁠, 법원 가사 대기실의 의자는 3월에 본 그대로 한 칸씩 띄워 앉게 되어 있었다⁠. 지안은 접수증을 손에 쥐고 앉아 벽시계를 보았다⁠.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소리를 끈 채 아침 드라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 속 시어머니가 며느리 뺨을 때리려다 멈추는 장면이었다⁠. 한 달 열흘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은 접수증이라 접힌 자국이 하얗게 닳아 있었다⁠.

앞줄에 낯익은 뒤통수가 있었다⁠. 3월에 에어프라이어를 두고 다투던 부부였다⁠. 여자는 무릎 위 쇼핑백에 에어프라이어 바스켓만 빼서 들고 와 있었다⁠. 남자는 바스켓을 곁눈질했다⁠. 같은 날 신청했으니 확인기일도 같은 날이었다⁠.

“⁠바스켓은 왜 가져왔대⁠.⁠”

현오가 지안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본체는 남자가 갖고⁠, 바스켓은 여자가 갖기로 했나 봐⁠.⁠”

“⁠그럼 둘 다 못 쓰잖아⁠.⁠”

“⁠그러니까 이혼하지⁠.⁠”

말해 놓고 지안은 입을 다물었다⁠. 현오도 다물었다⁠. 둘 다 웃으면 안 되는 자리에서 웃음이 나올 뻔했고⁠, 웃음을 참는 얼굴이 서로 너무 닮아서 더 참기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법원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 현오의 차를 타고 와서 주차장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대신 로비 회전문으로 엄마 민선자가 들어왔다⁠. 엄마 뒤에 등산 조끼를 입은 함병도가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따라 들어왔다⁠. 목의 방울에 손수건을 감아 소리를 막아 놓았다⁠.

“⁠엄마⁠, 왜 같이 와⁠?⁠”

“⁠증인이야⁠.⁠”

“⁠협의이혼에 증인 없어⁠.⁠”

“⁠그럼 구경꾼이야⁠.⁠”

병도가 지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안에 안 들어갑니다⁠. 로비에 있겠습니다⁠.⁠”

“⁠회장님은 왜 오셨어요⁠?⁠”

“⁠드릴 것이 있어서요⁠. 끝나고 드리겠습니다⁠.⁠”

엄마는 대기 의자에 앉자마자 핸드백에서 비닐에 싼 떡을 꺼내 병도에게 하나⁠, 현오에게 하나 건넸다⁠. 현오는 받아야 할지 몰라 쥐고만 있었다⁠. 엄마가 턱으로 떡을 가리켰다⁠.

“⁠먹어⁠. 이혼하러 와도 사위는 사위야⁠. 오늘까지는⁠.⁠”

“⁠감사합니다⁠, 어머님⁠.⁠”

“⁠어머님 소리도 오늘까지야⁠.⁠”

병도는 떡을 받아 손수건에 싸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가 쳐다보자 병도가 설명했다⁠.

“⁠회원들 갖다주려고요⁠. 평균 연세가 예순여덟이라 떡을 좋아합니다⁠.⁠”

“⁠다음 주에 반찬 남은 거 갖다줄게요⁠. 계약금 깎아 준 대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래를 맺는 동안 지안은 엄마와 퇴마 협회 회장이 친해지는 것을 보았다⁠. 파주 금촌 시장 사람들은 무엇이든 반찬으로 바꿨다⁠. 퇴마비도⁠, 사위도⁠.

*

열 시⁠, 확인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판사석이라고 해 봐야 책상 하나였고⁠, 판사는 흰 블라우스에 검은 법복을 걸친 쉰 남짓의 여자였다⁠. 법원 직원이 두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나갔다⁠. 창밖으로 주차장이 내려다보였다⁠. 현오의 작은 차가 보였고⁠, 조수석에 연보라 한복이 앉아 있었다⁠.

판사가 서류를 넘겼다⁠.

“⁠두 분⁠, 숙려 기간 동안 생각 많이 하셨지요⁠. 자녀는 없으시고⁠, 재산 분할은 협의서대로 하시고요⁠.⁠”

“⁠네⁠.⁠”

지안이 대답했다⁠. 현오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한 분씩 여쭙겠습니다⁠. 오지안 씨⁠, 이혼할 의사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목소리가 또렷하게 나왔다⁠. 웨딩홀에서 혼인 서약 다음에 사회자가 성혼을 선언하듯⁠, 지안의 대답도 방 안에 반듯하게 떨어졌다⁠.

“⁠주현오 씨⁠, 이혼할 의사가 있습니까⁠?⁠”

현오가 안경을 벗었다⁠. 닦지 않고 손에 쥐었다⁠.

“⁠없습니다⁠.⁠”

판사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지안은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알고 있던 대답이었다⁠. 그래도 귀로 들으니 달랐다⁠.

“⁠없으시다고요⁠?⁠”

“⁠아내가 원해서 같이 왔습니다⁠. 저는 아내를 붙잡을 자격은 없는데⁠, 이혼할 마음은 없습니다⁠. 판사님이 마음을 물으셔서요⁠.⁠”

판사는 펜 끝으로 서류를 두 번 두드렸다⁠. 이런 대답을 처음 듣는 얼굴은 아니었다⁠.

“⁠협의이혼은 두 분 모두 의사가 있어야 확인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다시 협의하셔서 새로 신청하시든지⁠,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실 수 있습니다⁠. 재판상 이혼은 먼저 조정을 거칩니다⁠.⁠”

“⁠조정이요⁠?⁠”

“⁠법원에서 조정위원과 같이 합의를 찾아보는 자리입니다⁠. 거기서 합의가 되면 그날로 이혼의 효력이 생깁니다⁠.⁠”

지안은 수첩을 꺼내 받아 적고 싶었다⁠. 손이 가방으로 가다가 멈췄다⁠. 웨딩홀이라면 다음 순서를 받아 적는 것이 지안의 일이었다⁠. 오늘은 지안 자신이 순서였다⁠.

확인실을 나오자 복도 끝에서 에어프라이어 부부가 먼저 나와 있었다⁠. 둘은 확인을 받은 얼굴이었다⁠. 여자가 쇼핑백에서 바스켓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가져⁠. 이거 없으면 본체 못 써⁠.⁠”

남자는 바스켓을 받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둘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로 다른 단추를 눌렀다⁠. 위로 가는 것과 아래로 가는 것⁠. 엘리베이터가 먼저 온 남자가 타기 전에 돌아보았고⁠, 여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현오가 지안 옆에서 엘리베이터 앞을 보다가 아주 작게 말했다⁠.

“⁠우리는 바스켓도 없네⁠.⁠”

지안은 대답하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층을 내려가는 동안 현오의 구두 소리가 세 계단 뒤에서 따라왔다⁠.

*

열 시 이십 분⁠, 주차장 끝 화단 앞에서 지안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현오가 다섯 걸음 뒤에서 따라오다 멈췄다⁠. 오월 햇볕이 아스팔트를 데워서 발밑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당신이 원하면이라며⁠.⁠”

“⁠같이 오는 건 원하는 대로 했어⁠.⁠”

“⁠판사님 앞에서 없다고 하는 게 원하는 대로야⁠?⁠”

“⁠판사님이 내 마음을 물었잖아⁠. 엄마 때문 아니야⁠. 엄마 백 일은 상관없어⁠. 나는 당신이랑 안 헤어지고 싶어⁠.⁠”

“⁠일 년 반 동안 아무것도 안 고르다가 그걸 판사님 앞에서 골라⁠? 나한테는 한 번도 안 물어봤잖아⁠. 나도 마음이 있는데⁠.⁠”

현오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손에 쥔 안경이 햇빛을 받아 화단에 하얀 점을 떨어뜨렸다⁠.

“⁠그럼 지금 물을게⁠. 당신 마음은 뭐야⁠?⁠”

“⁠지금 물으면 나도 몰라⁠. 일 년 반 전에 물었으면 알았어⁠.⁠”

지안은 말하면서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맞는 말이라서 목이 메었다⁠. 현오가 한 걸음 다가왔다가 다시 물러났다⁠.

“⁠나는 일 년 반 동안 밤마다 당신 자리 베개를 폈다가 아침에 도로 접었어⁠. 그거 몇 번 한 줄 알아⁠?⁠”

현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안도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세어 본 적이 없었고⁠, 세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더 비참했다⁠.

차 안에서 시어머니가 창문을 내리지 않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유리 너머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정수리의 흰머리 마흔네 가닥이 햇빛에 비쳤다⁠.

*

“⁠따님⁠.⁠”

함병도가 화단 옆 벤치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뒤에서 핸드백을 꼭 쥐고 따라왔다⁠. 병도는 서류철에서 사진 석 장을 꺼내 벤치에 나란히 놓았다⁠.

“⁠저희 협회는 2019년부터 정발산동의 흰 여우를 지켜봤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해 뒤부터입니다⁠. 그동안 모은 사진 가운데 따님 일과 닿는 것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첫 장은 라온채 그랜드홀이었다⁠. 날짜가 찍혀 있었다⁠. 2024년 4월 13일⁠. 무대 앞에서 신랑 측 혼주와 신부 측 혼주가 멱살을 잡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검은 정장을 입은 지안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지안도 기억하는 날이었다⁠. 신랑 아버지가 사돈에게 혼수를 두고 한마디 했다가 식이 멈췄다⁠. 사진 맨 뒤⁠, 하객석 마지막 줄에 연보라 한복이 서 있었다⁠.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무대가 아닌 지안을 향해 있었다⁠.

“⁠시어머님은 그날 하객이 아니었습니다⁠. 신랑 신부 어느 하객 명단에도 없습니다⁠. 저희 회원이 그 예식에 하객으로 있었습니다⁠. 회원 조카 결혼식이었거든요⁠.⁠”

둘째 장은 다도 교실 단체 사진이었다⁠. 다관과 찻잔이 놓인 낮은 탁자 앞에 여자들이 한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 시어머니⁠, 오른쪽 옆에 라온채 대표가 있었다⁠.

셋째 장은 카페 창가였다⁠. 시어머니와 대표가 마주 앉아 있었다⁠. 날짜는 2024년 5월 2일⁠. 사진 귀퉁이에 회원이 볼펜으로 적은 메모가 있었다⁠. 「⁠여우⁠, 예식장 사장과 만남⁠. 사진 한 장 건넴⁠」⁠. 탁자 위 대표의 손에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자의 증명사진이었다⁠.

지안은 증명사진을 알아보았다⁠. 소개팅 전날 대표가 휴대전화로 보여 준 사진이었다⁠. 「⁠지안 씨⁠, 좋은 사람 있어⁠. 안경사야⁠. 한번 만나 봐⁠.⁠」

“⁠소개팅은 누가 시켜 주셨습니까⁠?⁠”

병도가 물었다⁠. 대답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대표님이요⁠.⁠”

엄마가 지안의 팔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현오는 벤치 옆에서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현오도 몰랐다는 것을 지안은 남편의 얼굴로 알았다⁠. 남편이 몰랐다는 것이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왜 이걸 저한테 보여 주세요⁠?⁠”

“⁠따님이 무엇을 두고 판단하시는지 아셔야 해서요⁠. 저희는 저희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병도는 사진을 서류철에 다시 넣지 않고 벤치에 두었다⁠. 지안의 몫이라는 듯이⁠.

엄마가 병도의 조끼 자락을 잡아당겼다⁠.

“⁠회장님⁠, 이거 오늘 꼭 보여 줘야 했어요⁠? 애가 방금 판사 앞에서 나왔는데⁠.⁠”

“⁠오늘이어야 했습니다⁠, 어머님⁠. 따님이 다음 서류를 내기 전에요⁠.⁠”

병도의 대답에는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엄마가 조끼 자락을 놓았다⁠.

*

지안은 사진 석 장을 들고 현오의 차로 걸어갔다⁠. 아스팔트가 구두 굽 밑에서 물렀다⁠. 조수석 문을 열었다⁠. 에어컨 바람과 함께 차향이 밀려 나왔다⁠. 시어머니가 보온병 뚜껑을 무릎에 놓고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는 정발산동 집에서 가져온 다도 도구 상자가 실려 있었다⁠. 상자 뚜껑에 「⁠목요반⁠」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대표가 다니는 반이었다⁠. 시어머니는 확인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창밖으로 다 보았을 것이었다⁠.

지안은 사진을 시어머니 무릎 위에 한 장씩 놓았다⁠. 예식장⁠, 다도 교실⁠, 카페⁠.

“⁠어머님⁠. 어머님이 저 고르셨어요⁠?⁠”

시어머니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카페 사진의 날짜를 쓸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는 눈매가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네⁠. 내가 골랐어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대답은 짧았다⁠. 지안은 조수석 문손잡이를 쥔 채 서 있었다⁠.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일 년 반 동안 혼자 잔 밤⁠, 판사 앞에서 남편이 없다고 한 대답⁠, 신혼집 찬장의 찻잔 여섯 벌이 한 줄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시어머니의 백 일이 이 결혼 안에 들어 있었다⁠.

“⁠왜요⁠?⁠”

시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지안은 손을 들어 막았다⁠.

“⁠지금은 듣기 싫어요⁠.⁠”

시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지안은 문을 닫았다⁠.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주차장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지안은 돌아서서 법원 건물로 걸었다⁠. 엄마가 불렀고⁠, 현오가 불렀다⁠. 대답하지 않았다⁠. 로비 회전문을 밀고 민원 창구 앞 번호표 기계에 손가락을 댔다⁠. 기계가 종이를 뱉었다⁠. 「⁠가사 민원 47번⁠」⁠. 지안은 번호표를 쥐고 대기 의자에 앉았다⁠. 맨 앞 창구에서 빈 쇼핑백을 반으로 접어 든 여자가 확인서를 받아 가방에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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