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73자)

퇴마비는 부가세 별도입니다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4월 27일 화요일 오후 세 시⁠, 파주 금촌 시장 방앗간 옆 계단은 참기름 냄새로 미끄러웠다⁠. 2층 철문에 「⁠한국전래퇴마협회⁠」 아크릴 간판이 붙어 있었고⁠, 간판 귀퉁이에 「⁠카드 결제 가능⁠」 스티커가 비뚤게 붙어 있었다⁠. 엄마 민선자가 앞장서서 철문을 밀었다⁠. 문에 달린 놋쇠 방울이 딸랑 울렸다⁠.

사무실은 지안의 웨딩홀 신부대기실보다 좁았다⁠. 벽 한 면에 노란 종이 묶음이 쌓여 있었고⁠, 접이식 탁자에서 백발 노인 셋이 붓으로 부적을 그리고 있었다⁠. 한 노인은 돋보기를 이마에 올린 채 붓 끝을 혀로 축였다가 옆 사람에게 등을 맞았다⁠. 벽에는 단체 사진 액자가 하나 있었다⁠. 「⁠교토 여우 신사 연수 2019⁠」⁠. 사진 속 회원들은 붉은 기둥 앞에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쪽 책상에서 남자가 일어났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등산 조끼를 입고⁠, 목에 엄지만 한 놋쇠 방울을 걸고 있었다⁠. 손목에는 나무 염주가 두 바퀴 감겨 있었다⁠. 쉰일곱이라고 했는데 등이 곧아서 더 젊어 보였다⁠. 함병도는 두 손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한국전래퇴마협회 회장 함병도 · 상담 · 정화 · 야간 짐승 퇴치⁠」⁠.

“⁠앉으십시오⁠. 녹차 드릴까요⁠, 둥굴레차 드릴까요⁠?⁠”

“⁠둥굴레요⁠.⁠”

지안과 엄마가 동시에 말했다⁠. 지안은 둥굴레차를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병도는 책상 서랍에서 갈색 서류철을 꺼냈다⁠. 첫 장은 흑백 사진이었다⁠. 눈 덮인 닭장⁠, 철망 한쪽이 찢어져 있었고 눈밭에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발자국 옆으로 무언가 쓸고 간 자국이 아홉 줄 나 있었다⁠.

“⁠1988년 12월⁠, 파주 교하의 양계장입니다⁠. 하룻밤에 닭이 이백 마리 없어졌습니다⁠. 피는 한 방울도 없었습니다⁠.⁠”

다음 장은 컬러 사진이었다⁠. 목발을 짚은 남자가 협회 간판 아래 서 있었다⁠. 병도와 눈매가 닮았다⁠.

“⁠제 아버지 함춘길입니다⁠. 그날 밤 흰 여우를 쫓아 저수지까지 갔습니다⁠. 얼음이 깨졌고⁠, 왼쪽 다리가 그 뒤로 굽혀지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하신 말씀이 하나였습니다⁠.⁠”

병도는 사진을 뒤집어 뒷면을 보여 주었다⁠. 볼펜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흰 여우가 사람 되기 전에 산으로 보내라⁠. 마지막 백 날이 제일 배고프다⁠.⁠」

지안은 손에 쥔 찻잔이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1988년 겨울은 시어머니가 배가 많이 고팠다던 겨울이었다⁠.

“⁠정발산동 정육점 셔터 이빨 자국도 저희가 확인했습니다⁠. 작년 봄 경찰 신고 기록이 있습니다⁠. 동네 맘카페 글도 받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뭘 원하세요⁠?⁠”

“⁠두 가지입니다⁠.⁠”

병도가 손가락 둘을 폈다⁠.

“⁠하나는 동네입니다⁠. 마지막 백 날의 여우는 배가 고픕니다⁠. 정육점 셔터에서 끝나면 다행이고⁠, 사람 손에서 끝나면 늦습니다⁠. 둘째는 제 아버지입니다⁠. 사람이 되면 천 년 동안 한 일을 물을 데가 없어집니다⁠. 사람은 여우를 재판할 수 없고⁠, 사람이 된 여우는 이미 사람이니까요⁠. 저는 묻고 싶습니다⁠. 사람이 되기 전에⁠.⁠”

말투는 공손했고 문장마다 마침표가 또렷했다⁠. 지안은 웨딩홀에 견적을 받으러 오는 신랑 아버지들을 떠올렸다⁠. 이런 사람은 화내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끝까지 받아 갔다⁠.

“⁠그리고 저희가 따님께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병도가 지안에게 몸을 돌렸다⁠.

“⁠따님이 이혼하시면 여우는 제 발로 산에 갑니다⁠. 저희는 피 볼 일 없이 입회만 하면 되고⁠, 따님은 원래 하시려던 일을 하시는 겁니다⁠. 서로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제 이혼은 제가 정해요⁠.⁠”

지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협회 일정에 맞춰서 하는 거 아니에요⁠. 확인기일은 5월 6일이고⁠, 그날 제가 판사님 앞에서 말할 거예요⁠. 회장님이 제 이혼에 끼실 자리는 없어요⁠.⁠”

병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기분 상한 기색이 없었다⁠.

“⁠압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희 일을 하겠습니다⁠.⁠”

엄마가 말이 끊긴 틈을 놓치지 않고 탁자 위 견적서를 끌어당겼다⁠. 「⁠여우 퇴치 · 야간 입회 · 정화 일괄 3⁠,000⁠,000원(⁠부가세 별도⁠)⁠」⁠.

“⁠삼백⁠? 부가세까지 따로⁠? 회장님⁠, 반찬이 몇 통인 줄 알아요⁠?⁠”

“⁠어머님⁠, 저희도 회원 열한 명이 먹고삽니다⁠. 평균 연세가 예순여덟입니다⁠.⁠”

“⁠우리 가게는 평균 연세 예순둘이 혼자 해요⁠.⁠”

둘은 오 분 동안 값을 깎았다⁠. 이백오십에서 만났고⁠, 부가세는 병도가 빼 주었다⁠. 병도는 카드 단말기를 꺼내 엄마 카드로 계약금 오십만 원을 긁고 영수증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붓질하던 노인들이 박수를 쳤다⁠.

돋보기를 이마에 올린 노인이 붓을 내려놓고 엄마를 빤히 보았다⁠.

“⁠선자반찬 사장님 아니세요⁠? 우리 집사람이 거기 깻잎만 먹어요⁠.⁠”

“⁠아이고⁠, 화요일마다 오시는 분⁠?⁠”

“⁠맞아요⁠. 퇴마비를 반찬으로 받으면 안 됩니까⁠?⁠”

병도가 헛기침을 했다⁠. 노인은 붓을 다시 들었다⁠.

병도는 철문까지 두 사람을 배웅했다⁠. 엄마가 계단을 먼저 내려가자 병도가 지안에게만 낮게 말했다⁠.

“⁠따님⁠. 시어머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십니까⁠?⁠”

“⁠늙고 싶대요⁠.⁠”

“⁠저희 아버지도 늙고 싶어 하셨습니다⁠. 다리 하나로요⁠.⁠”

지안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등 뒤에서 철문 방울이 딸랑 울렸다⁠.

*

시장 골목으로 내려오자 엄마 가게 「⁠선자반찬⁠」이 셔터를 반쯤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셔터를 올리지 않고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았다⁠. 진열장 유리에 엄마와 지안이 나란히 비쳤다⁠.

“⁠엄마⁠, 왜 그렇게까지 해⁠?⁠”

“⁠니가 우는 거 싫어서⁠.⁠”

“⁠나 안 울어⁠.⁠”

“⁠일 년 반 동안 전화할 때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어⁠. 엄마는 그거 알아⁠.⁠”

엄마는 셔터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니 일곱 살 때⁠, 엄마도 한 번 나간 적 있어⁠. 니 아빠가 밤에 안 들어오던 해였어⁠.⁠”

지안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오늘은 반찬 싸 가⁠.⁠”

엄마는 셔터를 끝까지 올리고 진열장에서 장조림과 깻잎을 꺼내 비닐에 담았다⁠. 손이 빨랐다⁠. 지안은 엄마가 무엇을 말하려다 삼켰는지 묻지 못하고 비닐봉지를 받았다⁠.

*

밤 열한 시 이십 분⁠, 지안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저녁에 수요일 다도 수업 도구를 가지러 정발산동 집에 갔고⁠, 현오가 차로 데려다주었다⁠. 열한 시 전에 오겠다고 했는데 아직이었다⁠. 한 달 만에 혼자 있는 거실이었다⁠. 소파에는 흰 털이 한 겹 깔려 있었고⁠, 찬장에서는 찻잔 여섯 벌이 머그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 년 반 동안 바라던 조용한 밤인데⁠, 지안은 저도 모르게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 자막이 지나갔다⁠. 「⁠봄 결혼 시즌⁠, 예식장 대관료 줄줄이 인상⁠」⁠. 라온채도 다음 달부터 올린다고 대표가 말한 적이 있었다⁠. 지안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현관을 한 번 보았다⁠. 현관 바닥에는 시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안아⁠, 내려와⁠. 엄마가 못 들어가⁠.⁠”

현오의 목소리 뒤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지안은 슬리퍼를 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내리자 공동현관 유리문 너머로 흰 꼬리가 보였다⁠. 시어머니가 유리문 바로 앞에서 꼬리 아홉 개를 잔뜩 부풀린 채 서 있었다⁠. 유리문 안쪽 면에 노란 부적이 세 장 붙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에도⁠, 우편함 위에도 붙어 있었다⁠. 붉은 글씨가 형광등 아래 번들거렸다⁠.

현오는 꼬리 세 개를 쥐고 있었고⁠, 1104호 아이 엄마가 몰티즈를 안고 화단 앞에서 굳어 있었다⁠. 몰티즈가 꼬리를 향해 목이 쉬도록 짖었다⁠.

“⁠어머님⁠, 들어오세요⁠.⁠”

“⁠못 가요⁠. 문이 나를 밀어요⁠.⁠”

시어머니가 유리문에 손을 대자 손바닥이 닿기 직전에 무언가에 튕긴 듯 물러났다⁠. 꼬리털이 정전기를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일어났다⁠.

화단 옆 가로등 아래에 함병도가 서 있었다⁠. 노인 회원 둘이 양옆에서 방울을 들고 있었다⁠. 병도는 휴대전화를 들어 꼬리를 찍고 있었다⁠.

“⁠부적은 공용 부분에 붙였습니다⁠. 세대 현관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은 넣으셔도 됩니다⁠.⁠”

“⁠여기 우리 집 들어오는 문이에요⁠.⁠”

“⁠따님 집 문은 12층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지안은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 사십일 분이었다⁠. 현오는 엄마를 두고 혼자 올라갈 사람이 아니었고⁠, 남편이 밖에 있으면 지안이 안에서 자정을 넘겨도 지붕은 둘이 아니었다⁠. 지안이 나가서 밖에 같이 서 있어도 하늘은 지붕이 아니었다⁠.

몰티즈가 계속 짖었다⁠. 2층 창문 몇 개에 불이 켜졌다⁠. 누군가 창문을 열고 “⁠개 좀 조용히 시켜요⁠!⁠” 하고 외쳤다⁠.

지안은 유리문 앞으로 갔다⁠. 노란 부적 세 장이 손 닿는 높이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테이프가 아니라 풀로 붙여서 귀퉁이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떼시면 안 됩니다⁠.⁠”

병도가 말했다⁠. 막으러 오지는 않았다⁠.

“⁠회장님이 남의 집 문에 뭘 붙이실 때 저한테 물어보셨어요⁠?⁠”

지안은 손톱으로 부적 귀퉁이를 긁어 일으켰다⁠. 한 장⁠, 두 장⁠, 세 장⁠. 종이가 찢어지면서 붉은 글씨가 반으로 갈렸다⁠. 유리문이 열렸고⁠, 시어머니가 꼬리를 끌고 로비로 들어왔다⁠. 1104호 아이 엄마가 몰티즈의 입을 손으로 감쌌다⁠.

병도가 휴대전화를 내리고 조끼 주머니에서 영수증 철을 꺼냈다⁠.

“⁠훼손하신 부적은 한 장에 오만 원입니다⁠. 세 장이라 십오만 원입니다⁠. 영수증 끊어 드리겠습니다⁠.⁠”

지안은 슬리퍼 바람으로 휴대전화 뒤에 끼워 둔 카드를 뽑아 내밀었다⁠. 회원 노인이 들고 온 단말기에 카드가 긁혔다⁠. 「⁠승인 150⁠,000원⁠」⁠. 병도가 영수증을 두 손으로 건넸다⁠.

“⁠다음에는 미리 여쭙겠습니다⁠.⁠”

“⁠다음은 없어요⁠.⁠”

“⁠있을 겁니다⁠.⁠”

*

자정⁠, 거실 벽시계 아래에서 현오가 확대경을 엄마 머리에 댔다⁠.

“⁠서른여섯⁠.⁠”

시어머니는 소파 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부적에 튕긴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지안은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수건에 싸서 내밀었다⁠. 시어머니가 받아서 손에 감았다⁠.

“⁠고마워요⁠.⁠”

“⁠어머님 때문에 뗀 거 아니에요⁠. 우리 집 문 앞에 남이 뭘 붙이는 게 싫어서요⁠.⁠”

“⁠알아요⁠.⁠”

시어머니는 알면서도 고마운 표정이었다⁠. 지안은 고마워하는 얼굴이 싫지 않은 제 마음이 싫었다⁠.

새벽 한 시⁠, 시어머니가 잠들고 현오가 꼬리를 무릎에 개어 놓았을 때⁠, 지안은 식탁에서 오늘 받은 영수증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엄마가 긁은 계약금 오십만 원⁠, 제가 긁은 부적 십오만 원⁠. 한집에서 양쪽 편을 다 들고 있었다⁠.

“⁠지안아⁠.⁠”

현오가 소파 아래에서 불렀다⁠. 꼬리를 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5월 6일 말인데⁠.⁠”

“⁠응⁠.⁠”

“⁠나 판사님 앞에서 거짓말 못 해⁠.⁠”

“⁠무슨 소리야⁠?⁠”

“⁠판사님이 이혼할 마음 있냐고 물으면⁠, 나는 없다고 할 거야⁠. 같이 가는 건 갈게⁠. 당신이 원하니까⁠. 근데 마음은 없어⁠.⁠”

지안은 영수증 두 장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종이 밑에서 식탁이 차가웠다⁠.

“⁠당신⁠, 일 년 반 동안 아무것도 안 고르다가 이걸 지금 골라⁠?⁠”

현오는 대답 대신 엄마의 꼬리 뿌리를 다시 고쳐 쥐었다⁠. 호수공원 가로등이 세 시를 기다리며 아직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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