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63자)

신부대기실의 열두 번째 밤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4월 3일 토요일 저녁 여섯 시⁠, 라온채 1층 가든홀에는 하우스웨딩 테이블 열두 개가 깔려 있었다⁠. 천장에 매단 전구 줄이 막 켜지면서 흰 식탁보 위에 노란 점들을 뿌렸다⁠. 지안은 귀에 무전기 이어폰을 꽂고 테이블 사이를 걸으며 이름표를 하나씩 확인했다⁠. 신부 측 3번 테이블에 큰아버지 두 분이 같이 앉게 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이십 년째 말을 안 한다는 것을 신부가 어제 전화로 알려 주었다⁠. 지안은 이름표 하나를 5번 테이블로 옮겼다⁠.

“⁠매니저님⁠, 신부 아버님 축가 반주 파일이요⁠.⁠”

음향 담당이 노트북을 내밀었다⁠. 파일 이름이 「⁠아빠축가_최종_진짜최종_이거⁠.mp3⁠」였다⁠. 지안은 재생 단추를 눌러 첫 소절이 트로트인 것을 확인하고 엄지를 들었다⁠.

오늘 밤 피로연은 열두 시 반에 끝날 예정이었다⁠. 정리까지 하면 한 시가 넘었다⁠. 지안은 일부러 이 예식을 붙잡았다⁠. 2팀장이 바꿔 주겠다고 했을 때 고개를 저었다⁠. 열두 시를 웨딩홀에서 넘기면 남편과 아내는 한 지붕 아래 있지 않다⁠. 그러면 시어머니의 열두 번째 밤은 차지 않는다⁠. 시어머니에게는 미리 말해 두었다⁠. 말해 두었으니 비겁하지 않다고⁠, 지안은 아침부터 몇 번이나 제게 말했다⁠.

사회자 변희동이 마이크를 손에 쥐고 무대 계단에 앉아 대본을 외우고 있었다⁠.

“⁠자⁠, 하객 여러분⁠. 오늘 두 사람은 마라톤 동호회에서 만났습니다⁠. 신랑은 십 킬로미터 지점에서 신부에게 물을 건넸고⁠, 신부는 그 물을⁠…⁠…⁠.⁠”

희동이 고개를 들었다⁠.

“⁠매니저님⁠, 신부가 그 물을 어떻게 했대요⁠?⁠”

“⁠신랑 머리에 부었대요⁠. 더워 보여서⁠.⁠”

“⁠이거 넣어도 돼요⁠?⁠”

“⁠신부가 넣어 달래요⁠.⁠”

희동이 대본에 별표를 쳤다⁠. 지안은 웃다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십이 분이었다⁠.

*

밤 열 시 반⁠, 피로연은 둘째 술잔이 돌고 있었다⁠. 신부 아버지가 트로트 축가를 두 번이나 불러서 반주 파일을 세 번째로 다시 틀어야 했다⁠. 지안이 로비로 얼음 상자를 받으러 나왔을 때 회전문이 돌았다⁠.

시어머니가 들어왔다⁠. 연보라 한복 위에 베이지 카디건⁠, 한 손에 보온병⁠, 다른 손에는 접은 이불을 안고 있었다⁠. 뒤에서 현오가 베개 두 개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로비 안내 데스크 직원이 하객인 줄 알고 “⁠가든홀은 왼쪽입니다⁠”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했다⁠.

지안은 얼음 상자를 내려놓고 두 사람 앞으로 갔다⁠. 목소리를 낮췄다⁠.

“⁠어머님⁠. 여기 제 직장이에요⁠.⁠”

“⁠알아요⁠. 그래서 조용히 있을게요⁠.⁠”

“⁠제가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밤은 안 들어간다고⁠.⁠”

“⁠그래서 우리가 왔잖아요⁠.⁠”

시어머니가 로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샹들리에가 세 층으로 매달려 있었다⁠.

“⁠지붕은 아무 지붕이나 돼요⁠. 현오 아버지랑 신혼여행 가서 여관에서 잤을 때도 지붕은 지붕이었어요⁠.⁠”

지안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지붕이 아무 지붕이나 된다면 지안이 어디로 가든 시어머니와 현오는 이불을 안고 따라올 수 있었다⁠. 웨딩홀이든 찜질방이든 친정이든⁠.

“⁠현오 씨⁠.⁠”

지안이 남편을 보았다⁠. 현오는 베개 두 개 사이로 얼굴을 반만 내밀고 있었다⁠.

“⁠엄마가 혼자 간다길래⁠. 열한 시 넘으면 혼자 못 다녀⁠.⁠”

열한 시⁠. 지안은 손목시계를 다시 보았다⁠. 열 시 사십일 분이었다⁠. 가든홀에는 하객 백이십 명이 있었고⁠, 그중 절반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

열 시 오십팔 분⁠, 지안은 시어머니의 팔을 잡고 2층 신부대기실 문을 열었다⁠. 신부는 피로연에 내려가 있어서 방은 비어 있었다⁠. 벽 한 면이 거울이었고⁠, 꽃 장식을 단 의자 하나와 드레스 보정용 페티코트가 걸린 행거가 있었다⁠. 현오가 베개와 이불을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시어머니의 한복 치마가 부풀었다⁠.

꼬리 아홉 개가 펼쳐지면서 행거를 쳤다⁠. 페티코트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거울 속에서 흰 꼬리가 열여덟 개로 보였다⁠.

“⁠앉으세요⁠, 어머님⁠. 여기요⁠.⁠”

지안은 꽃 의자를 끌어왔다⁠. 시어머니가 신부 의자에 앉고⁠, 현오가 의자 앞 바닥에 앉아 꼬리를 무릎에 쌓았다⁠. 남는 꼬리는 지안이 주워 페티코트로 덮었다⁠. 흰 망사 아래 흰 털이라 덮어 놓으니 드레스 자락처럼 보였다⁠.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매니저님⁠, 신부님이 화장 고치러 대기실 올라가신대요⁠.⁠”

“⁠지금은 안 돼요⁠. 3층 메이크업실로 모셔 주세요⁠.⁠”

“⁠3층은 잠겼는데요⁠.⁠”

“⁠열쇠는 제 책상 두 번째 서랍이요⁠.⁠”

무전을 끊자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변희동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매니저님⁠, 신부 화장실이 어디라고⁠…⁠…⁠.⁠”

희동의 눈이 신부 의자 위의 한복 차림 여자⁠, 바닥의 남자⁠, 페티코트 아래 꿈틀거리는 흰 털 더미로 차례차례 옮겨 갔다⁠.

“⁠매니저님⁠. 이분은요⁠?⁠”

지안은 거짓말할 말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고를 줄도 몰랐다⁠.

“⁠제 시어머니예요⁠.⁠”

희동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늘 사회 보는 변희동입니다⁠.⁠”

“⁠반가워요⁠. 목소리가 좋네요⁠.⁠”

희동은 문을 닫았다⁠. 문밖에서 희동의 발소리가 한참 멈춰 있다가 계단으로 멀어졌다⁠. 연회팀 단톡방에 희동의 글이 올라왔다⁠. 「⁠신부 화장실 1층으로 안내했습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

자정에 피로연 아래층에서 하객들이 박수를 쳤다⁠. 신랑이 신부를 안아 올렸다는 무전이 들어왔다⁠. 신부대기실 벽시계는 꽃 장식에 반쯤 가려 있었는데⁠, 초침이 12를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현오가 확대경을 엄마 머리에 대고 손전등을 켰다⁠.

“⁠열둘⁠.⁠”

시어머니가 거울을 보며 정수리를 더듬었다⁠. 흰머리 열두 가닥이 틀어 올린 검은 머리 사이에서 작은 빛줄기처럼 보였다⁠.

지안은 대기실 벽에 등을 붙이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드레스 보정용 페티코트의 망사가 손등에 까슬하게 닿았다⁠. 오늘 하루 짜 놓은 동선이 머릿속에서 무너졌다⁠. 웨딩홀도 지붕이었다⁠. 엄마 집도⁠, 친구 집도⁠, 출장 가서 잡은 호텔도 지붕이었다⁠. 남편과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자정을 피하려면 남편이 따라오지 않는 곳으로 가야 했다⁠. 남편은 따라올 것이었다⁠. 엄마가 혼자 못 다니니까⁠.

부부가 아니게 되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5월 6일⁠, 법원⁠.

“⁠어머님⁠. 이러시면 저 도망갈 데가 없어요⁠.⁠”

“⁠법원이 있잖아요⁠.⁠”

시어머니가 거울 속에서 지안을 보며 말했다⁠. 비꼬는 말투가 아니었다⁠. 길을 알려 주는 말투였다⁠.

피로연이 끝난 것은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지안은 내려가서 하객을 배웅하고⁠, 신부 아버지에게 축가 반주 파일을 USB에 담아 드리고⁠, 3번 테이블과 5번 테이블의 큰아버지 두 분이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담배를 나눠 피우는 것을 보았다⁠. 이십 년 만이라고 신부가 울면서 지안의 손을 잡았다⁠.

한 시 반에 대기실로 돌아오니 현오는 바닥에서 꼬리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시어머니는 신부 의자에 앉아 깨어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입이 먼저 물었다⁠.

“⁠1990년 겨울에 고봉산에서 덫에 걸렸어요⁠. 일산에 새 도시 짓는다고 산 밑에 측량하러 온 사람이 풀어 줬어요⁠. 내가 여우인 줄 알고 풀어 줬고⁠, 봄에 내가 사람 모습으로 고맙다고 찾아갔을 때도 알았어요⁠.⁠”

“⁠알고 결혼하셨어요⁠?⁠”

“⁠알고 결혼했어요⁠. 밤마다 꼬리를 쥐고 잤어요⁠. 스물여덟 해 동안⁠.⁠”

지안은 바닥에서 자는 남편의 손을 보았다⁠. 꼬리 뿌리를 쥔 손가락이 잠결에도 풀리지 않았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손이었다⁠.

“⁠아버님은 어머님한테 말해 주셨네요⁠. 다 알고 있다고⁠.⁠”

“⁠네⁠.⁠”

“⁠현오 씨는 저한테 안 했어요⁠.⁠”

“⁠알아요⁠. 그건 내가 잘못 키웠어요⁠.⁠”

시어머니는 변명을 붙이지 않았다⁠. 지안은 대기실 바닥에 누워 신부들이 수천 번 앉았다 일어난 의자를 올려다보았다⁠. 형광등이 너무 밝았다⁠. 눈을 감자 아래층에서 의자를 접는 소리가 났다⁠.

*

새벽 두 시⁠, 현오의 작은 차 뒷자리에서 꼬리 아홉 개가 창문마다 눌려 있었다⁠. 뒷유리까지 흰 털로 꽉 차서 룸미러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현오는 사이드미러만 보며 백석동에서 호수공원까지 시속 사십 킬로미터로 달렸다⁠. 지안은 조수석에서 뒤로 팔을 뻗어 꼬리 뿌리 두 개를 쥐고 있었다⁠. 현오가 운전하는 동안은 누군가 쥐어야 했다⁠.

마두역 사거리에서 빨간불에 멈추자 옆 차선에 택시가 나란히 멈췄다⁠.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뒷좌석 창에 눌린 흰 털을 한참 보더니 엄지를 들었다⁠.

“⁠사모예드죠⁠? 우리 딸도 키워요⁠. 털 엄청 빠지죠⁠?⁠”

현오가 창문을 내렸다⁠.

“⁠엄마예요⁠.⁠”

“⁠아⁠, 어머님이 키우시는구나⁠.⁠”

신호가 바뀌었고 택시가 먼저 출발했다⁠. 뒷자리에서 시어머니가 쿡쿡 웃었다⁠. 꼬리 아홉 개가 같이 흔들려서 차가 좌우로 들썩였다⁠.

“⁠사모예드가 뭐예요⁠?⁠”

“⁠하얀 개요⁠, 어머님⁠. 눈밭에서 썰매 끄는⁠.⁠”

“⁠나는 썰매는 안 끌어요⁠.⁠”

지안은 꼬리를 쥔 채 웃음을 참다가 결국 웃었다⁠. 일 년 반 만에 셋이 한 차에서 웃었다⁠. 웃음이 그치자 차 안이 조용해졌고⁠, 지안은 웃었다는 것이 억울해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수공원 산책길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

4월 4일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신혼집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지안은 식탁에서 고개를 들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셋이었다⁠. 둘은 식탁에 있었다⁠.

“⁠지안아⁠, 엄마 왔다⁠! 장조림 했어⁠!⁠”

엄마 민선자가 반찬통 세 개를 쌓아 들고 들어왔다⁠. 파주 금촌에서 첫 버스를 타고 왔는지 등산 바지에 장바구니를 메고 있었다⁠. 장조림 냄새가 현관부터 밀려왔다⁠.

엄마의 발이 거실 입구에서 멈췄다⁠. 식탁에는 지안과 현오⁠, 그리고 지안의 토끼 그림 잠옷을 입은 시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잠옷 소매가 짧아서 시어머니 손목이 한 뼘 나와 있었다⁠. 낮이라 꼬리는 없었다⁠. 시어머니는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다 말고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사돈⁠, 오셨어요⁠.⁠”

“⁠사돈이 왜 여기 계세요⁠?⁠”

엄마가 반찬통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방패를 든 모양이었다⁠.

“⁠백 일만 살려고요⁠.⁠”

“⁠백 일⁠? 우리 딸 이혼한다는데 사돈이 들어와 살아요⁠?⁠”

“⁠네⁠.⁠”

시어머니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서⁠, 엄마는 다음 말을 찾느라 입을 두 번 열었다 닫았다⁠. 지안은 두 엄마를 번갈아 보며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현오는 계란말이를 입에 넣은 채 씹지도 못하고 있었다⁠.

“⁠엄마⁠, 앉아⁠. 내가 설명할게⁠.⁠”

“⁠설명은 무슨⁠. 너 그 잠옷 내가 사 준 거잖아⁠.⁠”

엄마의 손가락이 시어머니 가슴팍의 토끼를 가리켰다⁠. 시어머니가 내려다보았다⁠.

“⁠예뻐서 빌려 입었어요⁠. 미안해요⁠.⁠”

“⁠사과는 잘하시네⁠.⁠”

엄마는 반찬통을 식탁에 탕 내려놓았다⁠. 뚜껑이 들썩였다⁠.

“⁠좋아요⁠. 이렇게 된 거 양가 다 모여요⁠. 결혼도 상견례부터 했으니 이혼도 상견례부터 해야지⁠. 날은 내가 잡아요⁠.⁠”

“⁠좋아요⁠.⁠”

시어머니가 바로 대답했다⁠. 엄마가 오히려 멈칫했다⁠.

“⁠장소는 며늘아가 웨딩홀로 해요⁠. 거기 상견례룸 밥이 맛있다고 우리 다도 반 대표님이 그러시던데⁠.⁠”

지안은 식탁에 이마를 댔다⁠. 이마 밑에서 엄마가 휴대전화 달력을 넘기는 소리와 시어머니가 장조림 뚜껑을 여는 소리가 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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