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85자)

엄마 꼬리를 쥐고 잔 남자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3월 24일 수요일 자정을 일 분 남기고⁠, 지안은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잠이 올 리 없었다⁠. 거실 등은 꺼져 있었고 호수공원 가로등 빛이 창으로 들어와 소파 위에 하얀 덩어리를 비추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소파에 반쯤 누워 있었고⁠, 꼬리 아홉 개가 소파 팔걸이를 넘어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현오는 소파 아래 카펫에 앉아 꼬리 세 개를 무릎에 얹고 있었다⁠. 두 손이 꼬리 뿌리 근처를 꽉 쥐고 있었다⁠.

벽시계 초침이 12에 닿았다⁠.

시어머니가 “⁠아⁠” 하고 작게 소리를 냈다⁠. 한 손을 정수리로 올렸다가 내렸다⁠. 현오가 셔츠 주머니에서 안경원에서 쓰는 작은 확대경을 꺼내 엄마 머리에 갖다 댔다⁠.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틀어 올린 검은 머리 사이를 손끝으로 헤쳤다⁠.

“⁠하나⁠.⁠”

현오가 말했다⁠. 확대경 아래 검은 머리 사이로 흰머리 한 가닥이 은실처럼 빛났다⁠. 시어머니가 흰머리 난 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가는 눈매가 젖어 있었다⁠.

“⁠천 년 만에 처음 난 흰머리예요⁠.⁠”

“⁠축하드려요⁠.⁠”

지안이 말했다⁠. 진심인지 비꼬는 것인지 저도 알 수 없었다⁠. 웨딩홀에서 하루에 백 번 하는 말이라 입이 먼저 움직였다⁠.

*

새벽 한 시 십 분⁠, 지안은 소파 맞은편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가 거실에서 나는 소리에 도로 나왔다⁠. 시어머니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코끝이 계속 움찔거렸다⁠. 꼬리 아홉 개가 파도처럼 한 방향으로 쏠렸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냉장고에 뭐 있어⁠?⁠”

현오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생닭⁠. 토요일에 삼계탕 하려고⁠.⁠”

현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시어머니가 일어났다⁠. 눈은 떠 있었는데 눈동자가 금빛이었고⁠,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맨발이 소리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현오가 꼬리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버텼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매단 채로 걸었다⁠. 현오가 카펫 위를 미끄러지며 끌려갔다⁠. 대걸레 같았다⁠.

“⁠엄마⁠, 엄마⁠. 닭이야⁠. 그냥 닭⁠.⁠”

지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어나 냉장고 문 앞을 등으로 막았다⁠. 시어머니가 한 뼘 앞에서 멈췄다⁠. 숨에서 차향과 함께 낯선 냄새가 났다⁠. 비 온 뒤 숲 바닥 같은 냄새였다⁠. 금빛 눈동자가 지안의 어깨 너머 냉장고 손잡이에 박혀 있었다⁠.

“⁠어머님⁠.⁠”

지안은 결혼식 날 신부 입장 직전 우는 신부 어머니를 붙들 때처럼 시어머니의 두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어머님⁠, 지금 새벽 한 시예요⁠. 주무셔야 해요⁠.⁠”

시어머니의 눈에서 금빛이 천천히 빠졌다⁠. 검은 눈동자가 돌아오자 시어머니는 제 손을 잡은 며느리를 내려다보았다⁠. 뒤에서 현오가 꼬리를 안은 채 카펫에 대자로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또 그랬어요⁠?⁠”

시어머니가 물었다⁠. 대답 대신 현오가 천장을 보며 손을 들어 엄지를 세웠다⁠.

시어머니를 소파에 다시 눕히고 나서 현오는 꼬리 아홉 개를 하나씩 개어 무릎에 쌓았다⁠. 손이 익숙했다⁠. 꼬리 뿌리를 쥐는 자리⁠, 엄지로 누르는 힘⁠, 자세를 바꿀 때 놓지 않는 요령까지 몸에 배어 있었다⁠. 지안은 남편이 일 년 반 동안 밤마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남편의 손에서 다 보았다⁠.

*

새벽 세 시⁠, 베란다 창을 반쯤 열자 호수 냄새가 섞인 찬 공기가 들어왔다⁠. 거실에서는 시어머니가 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현오는 꼬리를 소파 다리에 수건으로 감아 두고 베란다로 따라 나왔다⁠. 수건 매듭은 단단했고⁠, 현오는 매듭이 잘 보이게 베란다 문을 열어 두었다⁠.

“⁠결혼한 해 가을부터야⁠.⁠”

현오가 먼저 말했다⁠.

“⁠천 년이 가까워지니까 밤마다 꼬리가 안 들어갔어⁠. 열한 시만 되면 나와⁠. 그리고 날고기 냄새만 맡으면 저렇게 나가⁠. 한 번은 정발산 아래 정육점 셔터 앞에서 찾았어⁠. 다음 날 아침 정육점 사장님이 셔터에 이빨 자국 났다고 경찰을 불렀고⁠.⁠”

“⁠그래서 밤마다 갔어⁠?⁠”

“⁠응⁠. 누가 꼬리를 쥐고 있으면 안 나가⁠. 내 손이 제일 잘 들어⁠.⁠”

“⁠열 살 때부터 알았다며⁠. 아까 어머님이 그러셨잖아⁠.⁠”

“⁠응⁠. 아버지가 말해 줬어⁠. 엄마가 여우라도 엄마는 엄마라고⁠.⁠”

지안은 난간을 쥐었다⁠. 철제 난간이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당신이 갈까 봐⁠.⁠”

“⁠말 안 해서 내가 가는 거야⁠.⁠”

현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으로 닦았다⁠. 닦을 것도 없는 안경을 세 번 닦고 다시 썼다⁠. 결혼하고 지안이 제일 먼저 외운 버릇이었다⁠. 곤란하면 안경을 닦았다⁠.

“⁠엄마는 말하라고 했어⁠. 네 아내니까 네가 말하라고⁠. 내가 안 했어⁠.⁠”

“⁠그럼 어머님 탓도 아니네⁠.⁠”

“⁠응⁠.⁠”

“⁠나는 일 년 반 동안 남편이 마마보이인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네⁠. 경비원이었네⁠.⁠”

현오가 피식 웃었다가 지안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거뒀다⁠.

“⁠그래도 나는 혼자 잤어⁠, 현오 씨⁠. 이유를 오늘 알았다고 혼자 잔 밤이 같이 잔 밤이 되진 않아⁠.⁠”

“⁠알아⁠.⁠”

“⁠나 이혼할 거야⁠.⁠”

현오는 한참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산책길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새벽 세 시에 꺼지게 맞춰 둔 등이었다⁠.

“⁠당신이 원하면 같이 갈게⁠. 법원⁠.⁠”

지안은 남편이 싸우지도 않고 물러서는 것에 화가 났다⁠. 붙잡지도 않는 남자와 이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고⁠, 쉬워서 더 아팠다⁠.

*

3월 25일 목요일 아침 일곱 시⁠, 부엌에서 칼질 소리가 났다⁠. 지안이 머리를 묶으며 나와 보니 시어머니가 지안의 앞치마를 두르고 가스레인지 앞에 있었다⁠. 냄비에서 김이 올랐고⁠, 식탁에는 찹쌀과 대추와 마늘이 접시에 나뉘어 있었다⁠. 생닭은 이미 냄비 안이었다⁠.

“⁠토요일에 한다던 삼계탕이요⁠. 날것으로 두면 내가 밤마다 냉장고 앞에 서 있을 테니까 익혀 버렸어요⁠.⁠”

지안은 할 말이 없어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이 맑고 진했다⁠. 웨딩홀 뷔페 삼계탕보다 나았고⁠, 나아서 더 분했다⁠.

찬장 문이 열려 있었다⁠. 지안이 결혼 선물로 받은 머그잔들은 맨 위 칸으로 올라가 있고⁠, 손이 닿는 칸에는 시어머니가 가져온 찻잔 여섯 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머님⁠, 제 컵이요⁠.⁠”

“⁠손이 자주 가는 데 찻잔을 둬야 차를 마시죠⁠.⁠”

“⁠여기 제 부엌이에요⁠.⁠”

“⁠알아요⁠. 백 일만 빌려요⁠.⁠”

“⁠빌려 드린다고 한 적 없어요⁠.⁠”

시어머니가 국자를 내려놓고 지안을 보았다⁠. 가는 눈매 끝이 웃지 않았다⁠.

“⁠맞아요⁠. 며늘아가는 빌려준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그냥 들어왔어요⁠.⁠”

시인하는 말이 너무 빨라서 지안은 다음 말을 잃었다⁠. 싸우려고 하면 상대가 먼저 인정해 버렸다⁠. 벽에 공을 던지면 벽은 가만히 있기라도 하는데⁠, 시어머니는 공을 받아 들고 고맙다며 돌려주었다⁠.

현오가 넥타이를 매며 나오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읽고 식탁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삼계탕 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1204호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가 지안의 트렌치코트 어깨에서 흰 털 한 가닥을 집어 들었다⁠.

“⁠새댁⁠, 개 키워⁠? 어젯밤에 복도에 하얀 목도리 같은 게 휙 지나가던데⁠.⁠”

“⁠시어머니가 오셨어요⁠.⁠”

“⁠시어머니가 털이 빠져⁠?⁠”

“⁠목도리를 좋아하셔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밤에 꼬리 하나를 목에 감고 잤다⁠. 아파트 단톡방에는 아침부터 관리사무소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12층 복도에 동물 털이 많이 날립니다⁠. 반려동물 키우시는 세대는 털 정리 부탁드립니다⁠.⁠」 지안은 화면을 끄고 1층 단추를 한 번 더 눌렀다⁠.

*

3월 24일 오후⁠, 라온채 3층 연회팀 사무실은 다음 주말 예식표로 벽이 덮여 있었다⁠. 대표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손뼉을 두 번 쳤다⁠. 예순을 넘긴 대표는 늘 보온병에 녹차를 담아 다녔고⁠, 일 년 전부터 정발산동 다도 교실에 다녔다⁠.

“⁠다들 들어⁠. 연회 총괄 지배인 자리⁠, 6월에 정한다⁠. 6월 12일 우리 딸 결혼식 끝나고⁠. 그 결혼식은 지안 씨가 맡아⁠.⁠”

사무실이 술렁였다⁠. 본점 2팀장이 볼펜을 딸깍 눌렀다⁠. 지안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표의 딸 결혼식을 맡는다는 것은 시험이라는 뜻이었고⁠, 시험이라면 지안은 자신 있었다⁠.

대표가 나가자 사회자 변희동이 지안 책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마흔둘⁠, 라온채 전속 사회자로 주말마다 마이크를 잡는 사람이었다⁠.

“⁠자⁠, 하객 여러분⁠. 오지안 매니저님 지배인 되시면 저 토요일 다섯 시 예식 좀 빼 주시는 걸로⁠.⁠”

“⁠희동 씨⁠,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혼할 때 법원에 둘이 같이 가야 돼요⁠?⁠”

희동의 얼굴에서 진행용 웃음이 사라졌다⁠. 희동은 두 번 이혼했고⁠, 두 번 다 라온채에서 결혼했다⁠.

“⁠같이 가지⁠. 신청할 때 한 번⁠, 한 달 뒤에 판사님 앞에 한 번⁠. 나는 두 번 다 끝나고 둘이 짜장면 먹었어⁠.⁠”

“⁠왜요⁠?⁠”

“⁠배고프잖아⁠. 이혼도 사람이 하는 건데⁠.⁠”

희동은 지안 책상 위 서류 봉투를 한 번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연회팀 단톡방에 「⁠오늘 점심 짜장면 드실 분⁠」을 올렸다⁠.

*

3월 26일 금요일 오전 열 시⁠, 법원 가사 민원 창구 앞 대기 의자에는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칸씩 띄어 앉아 있었다⁠. 지안은 띄워 둔 자리를 보면서 하객 좌석 배치를 떠올렸다⁠. 신랑 하객과 신부 하객 사이 통로였다⁠.

앞줄 부부는 에어프라이어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가 샀다고 했고⁠, 여자는 자기 카드로 할부를 갚았다고 했다⁠. 둘 다 목소리를 낮추려고 애썼는데 ‘⁠바스켓⁠’이라는 낱말만 자꾸 크게 튀어나왔다⁠. 현오가 지안에게 몸을 기울였다⁠.

“⁠우리 에어프라이어 누구 거야⁠?⁠”

“⁠어머님이 사 주신 거⁠.⁠”

현오가 입을 다물었다⁠. 신혼집 살림의 반은 시어머니 손을 거쳐 들어왔다⁠. 이혼하면 그릇이며 이불이며 반은 정발산동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현오는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를 또박또박 채웠다⁠. 안경사답게 글씨가 반듯했다⁠. 남편 이름 옆 서명 칸에 손이 한 번 멈췄다가 움직였다⁠. 창구 직원이 두 사람에게 이혼 안내 영상을 보라고 했고⁠, 작은 방에서 둘은 화면 속 상담위원이 재산 분할과 숙려 기간을 설명하는 것을 나란히 앉아 보았다⁠. 결혼 준비할 때 웨딩박람회에서 이렇게 나란히 앉아 혼수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창구 직원이 종이를 내밀었다⁠. 「⁠확인기일 2027년 5월 6일(⁠목⁠) 오전 10시⁠」⁠.

“⁠숙려 기간 지나고 이날 두 분 다 오셔야 합니다⁠. 한 분이라도 안 오시면 확인이 안 됩니다⁠.⁠”

로비로 나오자 시어머니가 기둥 옆 의자에 앉아 보온병 뚜껑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오늘은 회색 개량 한복이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법원 정문 앞에서 택시가 내려 주는 것을 보았다⁠.

“⁠며칠이에요⁠?⁠”

“⁠5월 6일이요⁠.⁠”

시어머니가 손가락을 꼽았다⁠. 열 손가락을 네 번 접고 다섯 개를 더 접었다⁠.

“⁠45일째네요⁠.⁠”

“⁠말리러 오신 거예요⁠?⁠”

“⁠아니요⁠. 보러 왔어요⁠. 며늘아가가 가는 데는 내가 다 봐야 공평하니까요⁠.⁠”

지안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보온병 뚜껑을 내밀었다⁠. 둥굴레차였다⁠. 지안은 받아서 마셨다⁠. 따뜻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연회팀 단톡방이 울렸다⁠. 2팀장이 다음 주 예식표를 올렸다⁠. 「⁠4월 3일(⁠토⁠) 저녁 7시 하우스웨딩⁠, 피로연 밤 12시 30분 종료 예정⁠. 담당 오지안⁠」⁠.

지안은 화면을 한참 보다가 시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님⁠, 4월 3일 토요일 밤은 집에 안 들어가요⁠. 일부러요⁠.⁠」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알겠어요⁠. 미리 말해 줘서 고마워요⁠.⁠」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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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11.06· 2화

    남편이 밤마다 엄마 집에서 잔 이유가 꼬리를 쥐고 버티는 거였다니. 웃다가 짠해졌어요. 그래도 말 안 한 일 년 반은 남는다는 지안 마음도 이해돼서 더 아팠습니다.

    • 석다감작가2026.11.06

      알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마음이 있어요. 법원에 낸 신청서가 백 일 동안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