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02자)

꼬리가 아홉이에요

시어머니는 구미호 · 석다감

2027년 3월 23일 화요일 오후 한 시 오십 분⁠, 정발산동 시댁 대문 앞에서 오지안은 서류 봉투를 옆구리에서 가슴 앞으로 옮겨 들었다⁠. 봉투 안에는 구청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뽑은 이혼 신고서가 들어 있었다⁠. 아내 칸은 석 달 전에 다 채우고 도장까지 찍었고⁠, 남편 칸만 아직 하얬다⁠. 석 달 동안 서류는 출근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웨딩홀 무전기 충전기와 같이 살았다⁠.

대문 기둥에 처음 보는 전단이 붙어 있었다⁠. 「⁠한국전래퇴마협회 — 야간 짐승 퇴치 · 묵은 집 정화 · 상담 환영 / 회장 함병도⁠」⁠. 귀퉁이에 방울 그림까지 찍혀 있었다⁠. 지안은 전단을 떼어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시어머니 집 대문에 퇴마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꼴을 동네 사람이 보는 것이 싫었다⁠. 이혼하러 온 며느리가 할 걱정은 아니었다⁠.

휴대전화에는 아침에 본 동네 맘카페 글이 아직 떠 있었다⁠. 「⁠정발산동 사시는 분들⁠, 밤에 하얀 개 보신 적 있나요⁠? 꼬리가 여러 개처럼 보였는데 제가 피곤한 건지⁠」⁠. 댓글이 서른 개였고 반은 웃는 얼굴이었다⁠. 지안은 화면을 끄고 목을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신랑 주현오 군과 신부 오지안 양의 이혼을 시작하겠습니다⁠.⁠”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지안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일산 백석동 웨딩홀 라온채에서 연회 매니저로 일한 지 여덟 해⁠, 주말마다 예식 서너 건을 돌리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진행 멘트가 먼저 나왔다⁠. 남의 결혼식은 일 분 단위로 굴리면서 제 결혼은 일 년 반째 굴러가지 않았다⁠.

남편 현오는 결혼한 해 가을부터 밤마다 이 집에서 잤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안경을 한 번 닦고 “⁠엄마가 밤에 혼자 무서워해서⁠”라고 말했고⁠, 아침 일곱 시에 머리에 베개 자국을 달고 신혼집에 와 샤워를 했다⁠. 처음 한 달은 이해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어머니였다⁠. 석 달째에는 따졌고⁠, 반년째에는 울었고⁠, 일 년째에는 이혼 신고서를 내려받았다⁠. 현오의 대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았다⁠. “⁠조금만 더⁠.⁠”

지안은 오늘 아침 시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님⁠, 오늘 두 시에 찾아뵐게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기다릴게요⁠. 현오도 오라고 했어요⁠.⁠」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마당의 목련이 막 벌어져서 흰 잎이 돌바닥에 몇 장 떨어져 있었다⁠.

*

거실 유리문에 지안의 모습이 비쳤다⁠. 보통 키에 가는 몸⁠, 어깨에 닿는 갈색 단발⁠, 짙은 눈썹 아래 큰 눈⁠. 출근할 때 입는 베이지 트렌치코트 옆구리에 서류 봉투를 끼고 있었다⁠. 이혼하러 온 얼굴치고는 화장이 너무 반듯했다⁠. 웨딩홀 매니저의 버릇이었다⁠.

유리문을 밀자 오후 햇살이 흰 커튼을 통과해 바닥에 넓게 깔려 있었다⁠. 대리석 원탁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 두 벌⁠, 흰 꽃을 꽂은 유리병이 놓였고⁠, 소파 뒤 벽에는 이 년 전 지안과 현오의 결혼사진 액자가 금테를 두르고 있었다⁠. 사진 속 지안은 활짝 웃고 있었다⁠.

시어머니 백옥주는 소파 한가운데에 꼿꼿하게 앉아 찻잔을 들고 있었다⁠. 키가 크고 등이 곧은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를 틀어 올려 은 머리 장식을 꽂았고⁠, 연보라 개량 한복의 넓은 치마가 소파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가는 눈매 끝이 웃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일요일마다 보던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 뒤에 꼬리가 있었다⁠.

흰 털로 덮인 꼬리 아홉 개가 공작 깃처럼 소파 등받이 위로 펼쳐져 있었다⁠. 하나하나가 지안의 팔보다 굵었고⁠, 끝으로 갈수록 붓처럼 가늘어졌다⁠. 햇빛이 털 사이로 들어가 꼬리 가장자리가 은색으로 빛났다⁠. 꼬리 하나가 느릿느릿 흔들리면서 소파 쿠션을 쓸었다⁠. 쿠션의 꽃무늬가 털 아래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지안은 숨을 들이켠 채로 내쉬지 못했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고⁠, 눈에서 뭔가가 볼을 타고 내려갔다⁠. 슬퍼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다⁠. 눈이 감기는 것을 잊어서 말라 버린 탓이었다⁠. 손에 든 서류 봉투가 가슴께에서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 그걸 왜 지금 꺼내⁠!⁠”

거실 안쪽 복도 문가에서 현오가 반쯤 몸을 내밀고 있었다⁠. 호수공원 앞 안경원에서 일하다 그대로 달려왔는지 흰 셔츠에 넥타이⁠, 가슴에는 「⁠주현오 안경사⁠」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눈은 안경알만큼 커져 있었고⁠, 한 손은 문틀을 꽉 쥐고 있었다⁠.

“⁠네가 말 안 하니까 내가 보여 주는 거지⁠.⁠”

시어머니가 찻잔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달그락⁠, 소리가 작게 났다⁠.

“⁠며늘아가⁠, 앉아요⁠. 차 식어요⁠.⁠”

지안은 앉지 않았다⁠. 대신 봉투를 열어 이혼 신고서를 꺼내 대리석 탁자 위에 펼쳤다⁠. 손이 떨려서 종이가 두 번 미끄러졌다⁠. 세 번째에 겨우 반듯하게 놓였다⁠.

“⁠어머님⁠. 저 이거 드리러 왔어요⁠.⁠”

시어머니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꼬리 아홉 개가 한꺼번에 멈췄다⁠.

“⁠남편 칸만 하얗네요⁠.⁠”

“⁠네⁠. 아드님 도장만 받으면 돼요⁠.⁠”

“⁠꼬리 보고도 그 말이 나와요⁠?⁠”

“⁠꼬리는 꼬리고요⁠, 이혼은 이혼이에요⁠.⁠”

말해 놓고 지안은 제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은 것에 놀랐다⁠. 신랑 아버지가 술에 취해 단상에 올라가려 할 때 쓰던 목소리였다⁠.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 끝에 꼬리 하나가 휙 돌아 찻주전자를 쳤고⁠, 현오가 몸을 날려 주전자를 받아 냈다⁠. 넥타이 끝이 찻물에 젖었다⁠.

*

“⁠나는 고려 때 개경 뒷산에서 났어요⁠.⁠”

시어머니는 새 찻잔에 차를 따라 지안 앞에 밀어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안은 결국 맞은편 의자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다⁠. 현오는 젖은 넥타이를 손에 쥐고 문가에 그대로 있었다⁠.

“⁠여우가 천 년을 살면 사람이 될 자격이 생겨요⁠. 자격만요⁠. 어젯밤 자정에 내 천 년이 찼어요⁠. 이제 마지막 조건 하나가 남았어요⁠.⁠”

“⁠무슨 조건이요⁠?⁠”

“⁠사람 남자와 낳은 아들이 있어야 하고⁠, 그 아들이 아내와 부부로 한 지붕 아래에서 자정을 넘겨야 해요⁠. 한 번 넘길 때마다 하루가 차요⁠. 백 번을 채우고 해가 뜨면 나는 사람이 돼요⁠.⁠”

“⁠백 번이요⁠.⁠”

“⁠백 일이요⁠. 오늘 밤부터 세면 6월 30일이 백 일째예요⁠. 7월 1일 아침이면 나는 사람이에요⁠.⁠”

시어머니가 날짜를 외워 말하는 동안 지안은 휴대전화를 꺼내 달력을 열었다⁠. 6월 30일은 수요일이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연회를 잡을 때처럼 날짜를 꾹 눌러 메모를 띄우려다 멈췄다⁠. 남의 시어머니 사람 되는 날을 제 달력에 적어 둘 까닭이 없었다⁠.

“⁠그 전에 저희가 이혼하면요⁠?⁠”

“⁠채운 날이 다 없어져요⁠. 나는 산으로 돌아가서 다음 천 년을 기다리고요⁠.⁠”

시어머니는 산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차 한 모금 사이에 넣었다⁠. 지안은 대답 대신 신고서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어머님⁠. 저 일 년 반을 혼자 잤어요⁠. 어머님 아드님은 밤마다 여기서 잤고요⁠.⁠”

“⁠알아요⁠. 내 탓이에요⁠.⁠”

“⁠그럼 아시잖아요⁠. 저 더는 못 살아요⁠.⁠”

“⁠그것도 알아요⁠.⁠”

시어머니가 찻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조금 숙였다⁠. 꼬리 아홉 개가 함께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흰 털이 카펫 위에 눈처럼 쌓였다⁠.

“⁠그래도 백 일만 참아 줘요⁠. 부탁이에요⁠.⁠”

지안은 시어머니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결혼식 날에도⁠, 시아버지 제사 날에도 이 사람은 등을 굽히지 않았다⁠. 지안의 목 안이 뜨거워졌다⁠. 거기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왜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천 년을 사셨는데⁠.⁠”

“⁠늙고 싶어서요⁠.⁠”

시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교토에 알던 여우가 하나 있었어요⁠. 1964년에 사람이 됐고⁠, 2010년에 할머니가 되어 죽었어요⁠. 마흔여섯 해를 늙다가 갔어요⁠. 나는 그게 부러웠어요⁠. 현오 아버지는 여덟 해 전에 갔는데⁠, 나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까 옆자리에 누울 수가 없어요⁠.⁠”

지안은 시아버지의 납골당을 기억했다⁠. 벽제의 작은 칸 하나⁠, 옆 칸에 시어머니 이름이 미리 새겨져 있었다⁠. 무덤가에서 시어머니는 미리 새긴 제 이름을 손끝으로 오래 쓸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현오가 문가에서 말했다⁠.

“⁠나 앉아 있어⁠.⁠”

지안과 시어머니가 동시에 말했다⁠. 현오는 입을 다물고 넥타이를 다시 쥐었다⁠.

지안은 신고서를 봉투에 넣고 일어났다⁠. 탁자에 찻잔 자국이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볼게요⁠. 대신 오늘 밤도 이 사람이 여기서 자면⁠, 저는 내일 아침 법원에 갑니다⁠.⁠”

*

신혼집은 호수공원 건너편 아파트 12층이었다⁠. 거실 창으로 호수 둘레 산책길의 가로등이 줄지어 보였다⁠. 욕실 컵에는 칫솔 두 개가 꽂혀 있었는데 파란 칫솔은 늘 말라 있었다⁠. 저녁은 웨딩홀에서 남은 답례 떡 두 조각으로 때웠다⁠. 연회팀 단톡방에는 사회자 변희동이 올린 글이 떠 있었다⁠. 「⁠자⁠, 하객 여러분⁠. 토요일 세 시 예식 신랑 아버님이 축사를 하시겠답니다⁠. 원고는 A4 여섯 장입니다⁠. 다들 기도해 주세요⁠.⁠」 지안은 「⁠축사는 삼 분으로 잘라 주세요⁠」라고 답을 달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밤 열 시⁠, 지안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법원 누리집을 읽고 있었다⁠.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 — 양육할 자녀가 없는 경우 이혼 숙려 기간 1개월⁠」⁠. 부부가 같이 법원에 가서 신청하고⁠, 안내를 받고⁠, 한 달 뒤 둘이 다시 판사 앞에 나와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둘이 같이 가야 한다는 줄에서 지안은 한참 화면을 내리지 못했다⁠.

엄마 민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주 금촌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는 밤 열 시에도 가스레인지 앞에 있었다⁠.

“⁠엄마⁠, 나 이혼해⁠.⁠”

“⁠잠깐만⁠, 장조림 넘친다⁠. 끊지 마⁠.⁠”

냄비 뚜껑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이십 초쯤 났다⁠.

“⁠다시 말해 봐⁠. 뭘 해⁠?⁠”

“⁠이혼⁠.⁠”

“⁠그 집 아들이 또 지 엄마 집에서 자⁠?⁠”

“⁠응⁠. 근데 엄마⁠, 우리 시어머니가⁠…⁠…⁠.⁠”

꼬리 아홉 개라는 말이 혀끝까지 왔다가 내려갔다⁠. 엄마는 반찬가게 단골들에게 하루 만에 소문을 다 내는 사람이었다⁠.

“⁠우리 시어머니가 뭐⁠?⁠”

“⁠차를 잘 타⁠.⁠”

“⁠얘가 미쳤나⁠. 내일 장조림 갖고 갈게⁠.⁠”

“⁠오지 마⁠.⁠”

전화를 끊자 열 시 사십 분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 화면 속에 시어머니가 있었다⁠. 한복 위에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바퀴 달린 캐리어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뒤에서 현오가 이불 한 채를 안고⁠, 이불 위에 찻잔 상자까지 얹어 턱으로 누르고 있었다⁠.

지안은 문을 반만 열었다⁠. 체인을 걸어 둔 채였다⁠.

“⁠어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한 지붕이어야 하루가 찬다고 했잖아요⁠.⁠”

“⁠현오 씨만 들어오면 되잖아요⁠.⁠”

“⁠그게 안 돼요⁠. 밤에 보면 알아요⁠.⁠”

낮에 들은 말이 또 나왔다⁠. 지안이 문을 닫으려는데 복도 끝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열렸다⁠. 1204호 아주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내렸다⁠. 벽시계가 없어도 지안은 알았다⁠. 열한 시였다⁠.

시어머니의 한복 치마 아래가 꿈틀거렸다⁠. 흰 털 끝이 치맛단 밑으로 비죽 나오더니⁠, 다음 순간 꼬리 아홉 개가 한꺼번에 터지듯 펼쳐져 복도를 가득 메웠다⁠. 현오의 이불이 꼬리에 밀려 바닥에 떨어졌다⁠.

1204호 아주머니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전에 지안은 체인을 풀었다⁠. 두 손을 뻗어 손에 닿는 대로 꼬리를 움켜쥐고 현관 안으로 끌어당겼다⁠. 꼬리털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겨울 목도리처럼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시어머니가 꼬리에 끌려 현관 턱에 발이 걸렸고⁠, 현오가 캐리어와 이불을 끌어안고 뒤따라 들어왔다⁠. 문이 닫혔다⁠.

복도에서 장바구니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세 사람은 현관에 엉켜 주저앉아 있었다⁠. 시어머니의 은 머리 장식이 비뚤어져 있었고⁠, 현오의 안경은 콧등 아래로 흘러내렸다⁠. 지안의 두 손에는 아직 꼬리 세 개가 쥐여 있었다⁠.

“⁠며늘아가⁠.⁠”

시어머니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손이 차네요⁠.⁠”

지안은 꼬리를 놓았다⁠. 거실 벽시계가 열한 시 이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정까지 오십팔 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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