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38자)

공증 사무소에 증인으로 따라온 저승차사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11월 1일 월요일 아침⁠, 안방 보료 앞에 해진이 노트북을 펴고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무릎에 눕혔다⁠. 춘희는 문간에 앉지 않고 해진 옆 방석에 앉았다⁠. 방석 위가 아직도 엉덩이에 어색했다⁠.

“⁠다 춘희 줄 거여⁠.⁠” 시어머니가 말했다⁠. “⁠집이고 선산이고 명호한테 받을 돈이고 명철이한테 받을 돈이고⁠. 싹 다⁠.⁠”

해진이 볼펜을 멈췄다⁠. “⁠할머니⁠, 그렇게 하시면 아드님 세 분이 유류분을 청구하실 수 있어요⁠. 자식은 법으로 정한 몫의 절반은 받게 돼 있어요⁠. 세 분이니까 각자 전체의 육분의 일이요⁠. 합치면 절반이 아드님들한테 돌아가요⁠.⁠”

“⁠절반이나⁠?⁠”

“⁠그것도 작년에 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땅이나 집으로 안 돌려주고 돈으로 돌려줘요⁠. 형수님이 집을 받으시면 집을 팔든 대출을 받든 돈을 마련해서 아드님들한테 드려야 해요⁠.⁠”

“⁠그럼 니들이 막으면 되잖여⁠.⁠”

“⁠법을 막을 수는 없어요⁠, 할머니⁠.⁠”

춘희가 해진의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뗐다⁠. “⁠어머님⁠, 저 집 안 받아요⁠.⁠”

시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뭐여⁠?⁠”

“⁠이 집 받으면 저 또 이 집 종부예요⁠. 대문 밖에서 누가 송씨 종가 하면 제가 나가 봐야 돼요⁠. 기와 깨지면 제가 고쳐야 되고⁠, 선산 벌초 날 잡는 것도 제가 해야 돼요⁠. 저는 그거 안 하려고 제사 그만둔다고 한 거예요⁠.⁠”

“⁠그럼 뭘 받을 거여⁠?⁠”

“⁠생각해 볼게요⁠.⁠”

“⁠내일이 공증이여⁠.⁠”

“⁠오늘 밤에 생각할게요⁠.⁠”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쥐었다 놓았다⁠. 한참 춘희를 노려보다가⁠, 해진에게 물었다⁠.

“⁠씨간장 독은⁠?⁠”

“⁠네⁠?⁠”

“⁠장독대 맨 뒤에 큰 독⁠. 그것도 유언으로 혀야 되냐⁠?⁠”

“⁠그건 지금 바로 주실 수도 있어요⁠. 살아 계실 때 주시는 증여요⁠. 형수님이 받겠다고 하시면 돼요⁠.⁠”

시어머니가 춘희를 보았다⁠. 매서운 눈매가 조금도 풀리지 않은 채였다⁠.

“⁠그건 니 거여⁠.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원래 니 거여⁠. 사십 년 니가 부었잖여⁠.⁠”

춘희는 대답하기 전에 해진을 보았다⁠. 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춘희가 시어머니를 보았다⁠.

“⁠그건 받을게요⁠, 어머님⁠.⁠”

“⁠받는다고 똑바로 혀⁠.⁠”

“⁠받겠습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방바닥을 두 번 찧었다⁠. 해진이 노트북에 한 줄을 적었다⁠. 백 년 된 간장 한 독이 그렇게 주인을 바꿨다⁠.

*

밤 열한 시⁠, 춘희는 장독대 앞에 쪼그려 앉아 휴대전화 계산기를 두드렸다⁠. 오늘부터 제 것이 된 씨간장 독이 등 뒤에 있었다⁠. 해진이 낮에 알려 준 숫자를 하나씩 넣었다⁠. 집과 선산의 감정가⁠, 명호가 갚을 돈⁠, 명철이 갚을 돈⁠. 더하고 셋으로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누었다⁠. 숫자가 맞는지 몰라 세 번을 다시 눌렀다⁠.

마당 건너 사랑채에서 한월이 놋방울을 귀에 대고 있었다⁠. 방울이 울릴 때마다 한월의 갓이 위아래로 끄덕였다⁠. 저쪽 대기실이 오늘 또 얼마나 찼는지 듣는 모양이었다⁠.

사랑채 미닫이가 열리고 명길이 나왔다⁠. 장독대까지 와서 춘희 옆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뭐 해⁠.⁠”

“⁠계산이요⁠.⁠”

“⁠줘 봐⁠. 나 수학 선생이었어⁠.⁠”

춘희가 휴대전화를 건넸다⁠. 명길이 화면을 보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하나씩 짚었다⁠. 서른 해 동안 칠판 앞에서 하던 손짓이었다⁠. 다 짚고 나서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맞아⁠.⁠”

“⁠진짜요⁠?⁠”

“⁠응⁠. 당신이 맞아⁠.⁠”

명길이 일어나 사랑채로 돌아갔다⁠. 춘희는 화면을 한 번 더 보았다⁠. 숫자는 아까와 같았다⁠. 맞다는 말을 들은 숫자는 조금 달라 보였다⁠.

춘희는 해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변호사님 이렇게 하면 도련님들 유류분이 남아요⁠?⁠」

답은 이 분 만에 왔다⁠.

「⁠형수님 이거 직접 하신 거예요⁠?⁠」

「⁠네⁠」

「⁠내일 공증 사무소에서 형수님이 말씀하세요⁠. 제가 하는 것보다 그게 나아요⁠」

춘희는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앞치마는 이번에는 두르고 있었다⁠. 씨간장 독 뚜껑 위에 떨어진 감잎을 손바닥으로 쓸어 냈다⁠.

*

11월 2일 화요일 오전 열 시⁠, 논산 시내 공증 사무소 대기실에는 돌아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특례법이 귀환 기간에 한 유언을 인정한다고 하자 전국의 공증 사무소가 미어터졌다⁠. 시어머니 앞에 휠체어 탄 할아버지 둘⁠, 뒤에 지팡이 짚은 할머니 하나⁠. 다들 사흘 안에 떠날 사람들이었다⁠. 휠체어 할아버지 하나가 시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몇 날 남었슈⁠?⁠”

“⁠내일⁠.⁠”

“⁠나는 모레여⁠.⁠”

“⁠그럼 내가 먼저 가서 자리 맡어 놓을게⁠.⁠”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고쳐 짚었다⁠. “⁠거기도 줄이 길어⁠.⁠”

할아버지가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할아버지의 딸이 등을 두드리며 시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공증인은 육십 대 남자였다⁠. 서류를 펴고 증인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월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서겠습니다⁠. 저보다 공정한 증인은 없습니다⁠. 이쪽 일에 아무 이해가 없습니다⁠.⁠”

“⁠신분증 주세요⁠.⁠”

한월이 도포 소매를 뒤적이더니 「⁠정원 초과⁠」 팻말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건 팻말이고요⁠. 주민등록증이요⁠.⁠”

“⁠저쪽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럼 안 됩니다⁠.⁠”

한월이 팻말을 도로 들고 대기실 의자로 물러났다⁠. 명길이 일어나려 하자 해진이 팔을 잡았다⁠.

“⁠큰아드님은 안 돼요⁠. 유언으로 이익 받는 분의 배우자는 증인이 못 돼요⁠. 아드님들도 다 이익 받으실 수 있어서 안 되고요⁠.⁠”

결국 증인은 해진이 전화로 부른 사람들이 맡았다⁠. 이장 변덕만이 경운기를 몰고 장화 바람으로 왔고⁠, 서울에서 내려와 논을 짓는다는 덕만의 아들이 따라왔다⁠. 아들은 서른둘이었고⁠, 사무실 안에서도 밀짚모자를 벗을 줄 몰랐다⁠.

“⁠형님⁠, 내가 증인이여⁠.⁠” 덕만이 시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논은 못 돌려드려도 이건 해 드려야지⁠.⁠”

*

공증인이 서류를 펴는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명호였다⁠. 남색 양복에 넥타이를 맸고⁠, 한 손에 법전⁠, 한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명철이 형을 보고 반가워 일어났다가 명길의 눈치를 보고 도로 앉았다⁠.

“⁠엄마가 도장 들고 오라셔서요⁠.⁠” 명호가 시어머니 맞은편에 앉았다⁠. 법전을 펴지 않고 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혀⁠.⁠”

“⁠엄마가 형수님한테 다 주시면 저희 셋은 유류분 청구합니다⁠. 각자 육분의 일이요⁠. 작년 법대로 돈으로 받습니다⁠. 형수님은 이 집을 팔아서라도 저희한테 주셔야 돼요⁠. 엄마는 내일 가시고⁠, 형수님은 저희랑 몇 년을 법원에서 보셔야 돼요⁠. 그거 엄마가 원하시는 거 아니잖아요⁠.⁠”

해진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법무사님⁠, 작년 개정법에 동거하며 특별히 부양한 대가로 준 재산은 유류분 계산에서 뺀다는 조항이 있어요⁠.⁠”

“⁠그건 공동상속인이 받은 증여 얘기예요⁠.⁠” 명호가 바로 받았다⁠. “⁠형수님은 상속인이 아니잖아요⁠. 상속인 아닌 사람한테 준 건 그대로 유류분 계산에 들어가요⁠. 돌아가시기 1년 안에 준 거면 더 볼 것도 없고요⁠. 엄마는 내일 가세요⁠.⁠”

해진이 입을 다물었다⁠. 볼펜을 한 바퀴 돌리고 말했다⁠.

“⁠판례가 갈릴 수 있지만⁠, 법무사님 말씀이 더 안전한 해석이에요⁠.⁠”

명철이 박수를 치려다 명길의 눈과 마주쳐 손을 무릎에 내렸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공증인은 펜을 든 채 기다렸다⁠. 대기실 의자에서 한월이 갓을 숙였다⁠.

“⁠그럼 어떡혀⁠.⁠” 시어머니가 말했다⁠. 처음으로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

“⁠어머님⁠.⁠” 춘희가 말했다⁠. 다들 춘희를 보았다⁠. 공증 사무소에서 춘희가 입을 연 것은 처음이었다⁠.

“⁠집하고 선산은 도련님들 세 분 몫으로 남기세요⁠. 법대로 셋이 나눠 갖게요⁠.⁠”

명호가 눈을 깜박였다⁠.

“⁠대신 도련님들이 어머님한테 갚을 돈이요⁠. 둘째 도련님 일억 육천⁠, 막내 도련님 팔천⁠. 그거 저 주세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덕만의 아들이 밀짚모자를 벗었다⁠.

명호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계산기 앱을 열었다⁠. 손가락이 빨랐다⁠. 집과 선산의 감정가를 넣고⁠, 갚을 돈 두 덩이를 더하고⁠, 셋으로 나누고⁠, 반으로 나누었다⁠. 화면을 보았다⁠.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천천히 눌렀다⁠. 화면을 보았다⁠.

“⁠형⁠, 뭐야⁠?⁠” 명철이 물었다⁠.

명호가 대답하지 않고 세 번째로 눌렀다⁠. 그러고 나서 휴대전화를 탁자에 엎었다⁠.

“⁠집하고 선산이 삼억이면 저희 셋이 일억씩 받아요⁠. 엄마 재산은 집하고 갚을 돈 합쳐서 오억 사천이고요⁠. 저희 유류분은 각자 구천이에요⁠.⁠” 명호가 안경을 벗었다⁠. “⁠일억 받는데 구천을 달라고 할 수는 없어요⁠. 남는 게 없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명철이 두 형을 번갈아 보았다⁠.

“⁠형수님이 나한테 받을 돈을 받으시는 거야⁠. 엄마 대신⁠.⁠” 명호가 안경을 닦았다⁠. “⁠나는 형수님한테 빚쟁이가 되는 거고⁠. 형수님한테 해마다 갚는 거야⁠. 너도⁠.⁠”

“⁠네⁠, 도련님⁠.⁠” 춘희가 말했다⁠.

명호가 안경을 다시 썼다⁠. 형을 보았다⁠.

“⁠형 결격은요⁠? 형이 결격되면 형 몫은⁠…⁠…⁠.⁠”

“⁠그러면 큰아드님 몫은 따님 선영 씨가 대신 받아요⁠. 대습상속이요⁠.⁠” 해진이 말했다⁠.

명호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새는 소리였다⁠.

“⁠청구해 봐야 선영이 좋은 일이네⁠.⁠” 명호가 휴대전화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계산은 형수님이 하셨어요⁠?⁠”

“⁠네⁠.⁠”

“⁠어디서 배우셨어요⁠?⁠”

“⁠사십 년 장 보면서요⁠.⁠”

*

공증인이 시어머니에게 유언을 직접 말로 해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찧었다⁠.

“⁠집하고 선산은 법대로 아들 셋⁠. 명호하고 명철이한테 받을 돈은 큰며느리 엄춘희⁠.⁠” 시어머니가 숨을 골랐다⁠. 공증인의 펜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덧붙였다⁠. “⁠조건 없이⁠. 제사 그런 거 안 붙여⁠.⁠”

춘희가 고개를 들었다⁠. 시어머니는 춘희를 보지 않고 공증인의 펜 끝만 보았다⁠.

“⁠주소 쓰시고⁠, 도장 주세요⁠.⁠”

시어머니가 주소를 또박또박 불렀고⁠, 도장을 찍었다⁠. 이번에는 인주를 듬뿍 묻혀 꾹 눌렀다⁠. 덕만과 덕만의 아들이 증인 칸에 이름을 썼다⁠. 명호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공증인이 서류를 정리하는 동안 명호는 어머니의 도장 찍힌 자리를 오래 보았다⁠.

“⁠엄마⁠, 그때는 왜 도장 안 찍으셨어요⁠? 어버이날에⁠.⁠”

“⁠찍으면 진짜가 되니께⁠.⁠” 시어머니가 도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조건이 진짜가 되는 게 싫었나 보지⁠.⁠”

*

사무소 밖 계단에서 시어머니가 숨을 몰아쉬었다⁠. 해가 짧아져 오후 한 시인데도 빛이 비스듬했다⁠. 춘희가 팔을 받쳤다⁠. 이번에는 받쳤다⁠.

“⁠어머님⁠, 그래도 제사는 안 지내요⁠.⁠”

“⁠알어⁠.⁠”

한월이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도포 소매에서 나무 순번표를 꺼냈다⁠. 다들 계단 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패는 처음 상 위에 놓였을 때 그대로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아직입니다⁠.⁠” 한월이 말했다⁠. “⁠재산은 정리되셨는데⁠, 번호가 안 나왔습니다⁠.⁠”

시어머니가 패를 내려다보았다⁠. 명철이 침을 삼켰다⁠. 명호가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걸음을 멈췄다⁠.

“⁠내일 해 질 녘입니다⁠.⁠” 한월이 패를 소매에 도로 넣었다⁠. “⁠이 집에서 어머님을 위해 상을 차려야 합니다⁠. 상은 누가 차리십니까⁠?⁠”

계단 위의 사람들이 하나씩 고개를 돌렸다⁠. 시어머니만 돌리지 않았다⁠. 다들 춘희를 보았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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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읽기2026.11.06· 9화

    집도 선산도 마다하고 씨간장 독만 받겠다는 춘희 씨에서 울컥했어요. 신분증이 없어서 공증 증인에서 밀려난 저승차사는 너무 웃기고요. 명호 계산기가 유류분이 안 남는다고 답하는 장면, 춘희 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짰을까요?

    • 피오담작가2026.11.06

      춘희는 사십 년 동안 이 집 살림 계산을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씨간장 독을 고른 이유는 갑수 여사가 떠나는 날 드러납니다.

공증 사무소에 증인으로 따라온 저승차사 ·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