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3자)

마지막 탕국에 씨간장 한 숟갈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11월 3일 수요일 새벽 다섯 시⁠, 춘희는 장독대 맨 뒤에서 씨간장 독 뚜껑을 열었다⁠. 어제부터 제 것이 된 독이었다⁠. 국자를 넣기 전에 숨을 참았다⁠.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은 버릇이었다⁠.

마루에 시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초록 한복에 붉은 고름⁠, 쪽 찐 머리에 비녀까지 다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몰랐다⁠. 지팡이는 무릎 위에 눕혀 두었다⁠.

“⁠차릴 거냐⁠.⁠”

춘희는 국자를 든 채 돌아보았다⁠. “⁠차릴게요⁠.⁠”

시어머니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어머님한테 거는 건 저녁에 말씀드릴게요⁠. 도련님들한테 거는 건 지금 할게요⁠.⁠”

춘희가 고무장갑 낀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장갑 낀 손가락으로는 자판이 잘 안 눌려서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두 번씩 눌렀다⁠.

「⁠형수님⁠: 열 시까지 다 오세요⁠. 앞치마 가져오세요⁠」

삼 분 만에 답이 왔다⁠.

「⁠명철⁠: ?⁠」

「⁠명철⁠: 앞치마요⁠? 가게 거 가져가도 돼요⁠? 닭 그려진 거⁠」

「⁠명호⁠: 저도요⁠?⁠」

「⁠형수님⁠: 도련님도요⁠」

「⁠명호⁠: 저 앞치마 없는데요⁠」

「⁠형수님⁠: 사 오세요⁠」

시어머니가 마루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까부터 같은 단톡방을 보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음성 메시지 단추를 눌렀다⁠.

“⁠늦으면 죽는다⁠.⁠”

명철이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냈다가 곧 지웠다⁠.

*

열 시에 삼 형제가 부엌에 줄지어 모였다⁠. 명철은 닭이 그려진 가게 앞치마를⁠, 명호는 오는 길에 대형 마트에서 산 꽃무늬 앞치마를⁠, 명길은 춘희의 여벌 앞치마를 둘렀다⁠. 서울에서 휴가를 내고 새벽 기차로 내려온 선영이 문간에서 아버지의 앞치마 끈을 매 주었다⁠. 한월은 부엌 구석 의자에 앉아 손을 무릎에 얹었다⁠. 시식 담당이라고 스스로 정했다⁠.

춘희가 식탁 앞으로 갔다⁠. 고무장갑을 손목까지 당겨 올렸다⁠.

“⁠오늘 상은 도련님들이 차려요⁠. 전은 도련님들이 부치고⁠, 나물은 아범이 무치고⁠, 밥은 선영이가 해요⁠. 저는 탕국 간만 봐요⁠.⁠”

“⁠형수님⁠, 저 그런 거 못 해요⁠.⁠” 명호가 꽃무늬 앞치마 자락을 쥐었다⁠.

“⁠저도 처음엔 못 했어요⁠. 사십 년 전에요⁠.⁠” 춘희가 프라이팬 네 개를 차례로 불에 올렸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돈 얘기요⁠.⁠”

삼 형제가 동시에 춘희를 보았다⁠.

“⁠막내 도련님⁠.⁠”

“⁠네⁠, 형수님⁠.⁠” 명철이 차렷 자세를 했다⁠.

“⁠팔천은 가게 닫지 말고 천천히 갚아요⁠. 언제까지라고 안 정할게요⁠. 대신 한 달에 한 번 반반 한 마리 가져와요⁠. 그게 이자예요⁠.⁠”

명철의 코끝이 빨개졌다⁠.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양념 많이요⁠?⁠”

“⁠무 많이요⁠.⁠”

명철이 앞치마 자락으로 눈가를 찍었다⁠. 닭 그림이 젖었다⁠.

“⁠저는요⁠?⁠” 명호가 물었다⁠.

“⁠도련님은 다 갚으세요⁠. 일억 육천⁠. 이자는 안 받을게요⁠.⁠” 춘희가 명호를 똑바로 보았다⁠. “⁠따님 결혼식엔 갈게요⁠. 축의금은 그 돈에서 빼 드릴게요⁠.⁠”

명호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그러더니 웃음이 터졌다⁠. 사십구재 날 밤 이후로 처음 웃는 웃음이었다⁠. 웃다가 안경을 벗어 닦았다⁠.

“⁠형수님 무서운 분이셨네요⁠.⁠”

“⁠사십 년 참은 사람이 원래 무서워요⁠.⁠”

명호가 안경을 도로 썼다⁠. 형을 보지 않고 말했다⁠.

“⁠형 결격 청구는 안 할게요⁠.⁠”

명길이 무를 썰던 칼을 멈췄다⁠.

“⁠선영이 좋은 일 시키기 싫어서예요⁠.⁠” 명호가 선영에게 눈을 찡긋했다⁠. 선영이 혀를 내밀었다⁠. 명호가 춘희를 보았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형수님⁠. 유언장 그거⁠, 저도 같이였어요⁠. 무효라는 말로 덮었어요⁠. 죄송합니다⁠.⁠”

춘희는 대답 대신 명호의 손에 동태포 접시를 쥐여 주었다⁠.

“⁠소금 먼저 뿌리세요⁠. 손가락 세 개로 집어서⁠.⁠”

*

오후 내내 부엌에서 기름 소리가 났다⁠. 시어머니는 부엌 문턱에 지팡이를 짚고 앉아 감독을 했다⁠.

“⁠전은 한 번만 뒤집어⁠! 두 번 뒤집으면 기름 먹어⁠!⁠”

“⁠엄마⁠, 치킨은 두 번 튀기는데요⁠.⁠” 명철이 동그랑땡을 뒤집으며 말했다⁠.

“⁠그건 닭이고⁠!⁠”

명호는 계량스푼으로 소금을 재다가 춘희가 손가락 세 개로 집으라고 한 것을 떠올리고 계량스푼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으로 소금을 집어 동태포 위에 뿌렸다⁠. 많이 뿌렸다⁠. 시어머니가 “⁠짜⁠!⁠” 하고 소리쳤고⁠, 명호는 물에 한 번 헹궜다⁠.

명길은 시금치를 무쳤다⁠.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다⁠. 선영이 아버지 손을 잡고 반을 덜어 냈다⁠. 선영은 밥솥에 쌀을 안치고 손을 펴서 손등이 잠길 만큼 물을 잡았다⁠. 어머니가 문자로 할머니에게 보낸 그대로였다⁠.

“⁠선영아⁠.⁠” 시어머니가 문턱에서 불렀다⁠. “⁠시집은 언제 가냐⁠.⁠”

“⁠할머니⁠, 그 얘기 하시면 저 지금 서울 가요⁠.⁠”

“⁠가지 마라⁠. 밥은 하고 가⁠.⁠”

“⁠그러니까 그 얘기를 하지 마시라고요⁠.⁠”

시어머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선영이 밥솥 뚜껑을 닫고 할머니 옆 문턱에 엉덩이를 붙였다⁠. 둘은 나란히 앉아 부엌 안의 남자 셋을 구경했다⁠. 명호가 또 소금을 많이 뿌렸다⁠. 할머니와 손녀가 동시에 “⁠짜⁠!⁠” 했다⁠.

한월은 전이 하나 나올 때마다 맛을 보았다⁠. 동그랑땡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명호의 동태전에는 물을 마셨다⁠.

춘희는 가스레인지 맨 끝 불 앞에서 탕국을 끓였다⁠. 무와 소고기와 두부가 끓어오르자 씨간장 독에서 떠 온 그릇을 들었다⁠. 사십구재 날에는 반 국자를 넣었다⁠. 왜 반만 넣었는지 그날은 몰랐다⁠. 오늘은 알았다⁠. 그날은 이 국을 먹을 사람에게 다 주기 싫었다⁠.

춘희가 한 국자를 다 넣었다⁠. 그러고 나서 숟가락으로 한 숟갈을 더 떠 넣었다⁠.

시어머니가 문턱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엌 창밖으로 명길이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밤을 치고 있었다⁠. 춘희가 탕국 불을 줄이고 나가 옆에 앉았다⁠.

“⁠나 시내에 방 하나 얻을 거예요⁠.⁠” 춘희가 말했다⁠. “⁠장독 하나 들어갈 만한 데로요⁠. 이 집은 도련님들 셋이 알아서 하라고 해요⁠.⁠”

명길이 칼을 멈췄다⁠. 한참 밤 껍질만 보았다⁠.

“⁠나도 가도 돼⁠?⁠”

춘희가 남편을 보았다⁠. 앞치마 끈이 등 뒤에서 풀려 있었다⁠. 춘희가 손을 뻗어 끈을 다시 매 주었다⁠.

“⁠장독 들어 줄 사람은 필요해요⁠.⁠”

*

해가 감나무 꼭대기에 닿을 무렵 대청에 상이 차려졌다⁠. 영정 앞이 아니라 대청 한가운데였다⁠. 영정은 아침에 춘희가 내려서 안방 장롱 위에 올려 두었다⁠. 상 위에 밥과 탕국과 전 세 접시와 나물과 대추와 밤이 놓였다⁠. 상 끝에 반반 치킨 한 접시가 올라와 있었다⁠.

“⁠치킨은 상에 못 올린다니까⁠.⁠” 명호가 말했다⁠. 그러고는 접시를 상 가운데로 조금 밀었다⁠. “⁠오늘은 돼⁠.⁠”

시어머니가 상 앞에 앉았다⁠. 한월이 대청 끝에 서서 도포 소매에서 순번표를 꺼냈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패였다⁠. 삼 형제와 선영이 대청 아래 섬돌에 나란히 섰고⁠, 춘희는 상 건너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어머니가 놋숟가락을 쥐었다⁠. 손목에 힘을 주었다⁠. 숟가락이 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명철이 숨을 들이켰다⁠. 시어머니가 두 손으로 쥐었다⁠. 아흔 살의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숟가락은 맷돌처럼 무거웠다⁠. 감나무 그림자가 마당을 가로질러 대청 끝까지 길어졌다⁠.

“⁠엄마⁠, 힘내요⁠!⁠” 명철이 소리쳤다⁠.

“⁠힘으로 드는 게 아닙니다⁠.⁠” 한월이 낮게 말했다⁠.

시어머니가 숟가락에서 손을 뗐다⁠. 숨이 거칠었다⁠. 춘희를 보았다⁠.

“⁠조건 말혀라⁠. 저녁에 말한다며⁠.⁠”

춘희가 무릎 위에서 고무장갑 낀 두 손을 모았다⁠.

“⁠어머님⁠. 이 상이 이 집 마지막 상이에요⁠.⁠” 춘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화가 날수록 공손해지는 버릇은 오늘 화가 나지 않았는데도 나왔다⁠. “⁠내년 11월 3일⁠, 어머님 기일에 상 안 차려요⁠. 추석에도⁠, 설에도요⁠. 이 집에서 어머님 앞에 차리는 상은 오늘이 끝이에요⁠. 그래도 드세요⁠.⁠”

섬돌 아래에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해가 감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앉았다⁠.

시어머니가 오래 춘희를 보았다⁠. 매서운 눈매가 조금씩 풀렸다⁠. 칠십 년 동안 지킨 상이 눈앞에 있었다⁠. 이 상 다음에는 아무 상도 없었다⁠.

“⁠그려⁠.⁠” 시어머니가 말했다⁠. “⁠지내지 마라⁠.⁠”

시어머니가 숟가락을 쥐었다⁠. 숟가락이 손톱만큼 들렸다가 도로 내려앉았다⁠. 한월의 손에서 순번표가 그대로였다⁠. 명호가 저도 모르게 섬돌 위로 한 발 올라갔다가 멈췄다⁠.

시어머니가 숟가락을 놓았다⁠. 두 손을 무릎에 얹었다⁠. 입을 열었다⁠. 한 번⁠, 두 번⁠. 찜질방에서처럼 모양을 모르는 입이었다⁠. 아흔 해 동안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말을 찾는 입이었다⁠.

“⁠춘희야⁠.⁠”

“⁠예⁠, 어머님⁠.⁠”

“⁠니 탕국이⁠.⁠” 시어머니가 말을 멈췄다⁠. 숨을 한 번 쉬었다⁠. “⁠니 탕국이 내 탕국보다 낫다⁠.⁠”

춘희의 고무장갑 낀 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십 년 동안 들으려고 기다린 말은 고맙다도 미안하다도 아니었다⁠. 바로 이 말이었다⁠.

시어머니가 숟가락을 쥐었다⁠. 가볍게 들렸다⁠. 탕국을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오래 입안에서 굴렸다⁠.

“⁠씨간장 한 숟갈 더 넣었냐⁠.⁠”

“⁠네⁠.⁠”

“⁠그려⁠. 그 맛이여⁠.⁠”

한월의 손에서 나무 패가 작게 울었다⁠. 패 위로 글자가 하나씩 새겨졌다⁠. 한월이 패를 들어 해에 비춰 읽었다⁠.

“⁠구십칠만 사천이백십일 번입니다⁠.⁠”

“⁠멀다⁠.⁠” 시어머니가 밥을 한 술 더 떴다⁠. “⁠밥은 다 먹고 간다⁠.⁠”

*

해가 산 너머로 반쯤 넘어갔을 때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밥그릇이 비어 있었다⁠. 치킨 접시에는 날개 하나가 없었다⁠.

대청에서 내려와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문 앞에서 멈추고 돌아보았다⁠. 섬돌 아래의 자식들을 하나씩 보았다⁠.

“⁠명호야⁠.⁠”

명호가 다가왔다⁠. 시어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면사무소에서 내밀었던 손이었다⁠.

“⁠잡어 봐라⁠.⁠”

명호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한참 잡고 있었다⁠.

“⁠…⁠…따뜻해요⁠.⁠”

“⁠그려⁠.⁠” 시어머니가 손을 뺐다⁠. “⁠법원은 손으로 안 본다며⁠. 니는 손으로 봐라⁠.⁠”

명철이 엉엉 울며 다가오자 시어머니가 명철의 토시 낀 팔뚝을 두드렸다⁠. “⁠벗지 마라⁠.⁠” 선영에게는 볼을 한 번 쓸어 주었다⁠. 명길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팡이로 명길의 발등 옆 흙을 두 번 찧었다⁠. 명길이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춘희를 보았다⁠. 춘희는 대청 끝에 그대로 서 있었다⁠. 시어머니가 감나무를 지팡이로 가리켰다⁠.

“⁠감 따라⁠. 까치밥은 세 개만 남기고⁠.⁠”

“⁠네⁠, 어머님⁠.⁠”

시어머니가 대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 끝이 먼저 문턱을 넘었고⁠, 초록 한복 자락이 뒤따랐다⁠. 한월이 대문 앞에서 갓을 벗어 가슴에 대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처음으로 갓을 벗었다⁠. 갓을 다시 쓰고 「⁠정원 초과⁠」 팻말을 옆구리에 끼고 시어머니를 따라 나갔다⁠. 바람이 불어 대문이 저절로 닫혔다⁠.

장독대 옆에서 누렁이가 벌떡 일어났다⁠. 닫힌 대문을 향해 짖었다⁠. 49일 만에 처음 짖는 소리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그쳤다⁠.

춘희는 대청에서 내려와 장독대로 갔다⁠. 고무장갑을 한 손가락씩 당겨 벗었다⁠. 분홍 장갑 두 짝을 씨간장 독 뚜껑 위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맨손으로 감나무 가지를 당겨 홍시 하나를 땄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감은 따뜻했다⁠. 춘희는 장독대 앞에 선 채 감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고⁠, 가지 끝에 남은 감을 세었다⁠. 아직 많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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