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1자)

찜질방 양머리 수건을 쓴 저승차사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서울에서 돌아오는 세 시간 동안 차 안에서 말한 사람은 한월 하나뿐이었다⁠. 한월은 졸다 깨서 “⁠다 왔습니까⁠?⁠”를 네 번 물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다섯 번째에는 묻지 않았다⁠.

10월 21일 목요일 새벽 한 시⁠, 춘희는 건넌방에 앉아 있었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았고 이불도 펴지 않았다⁠. 미닫이가 열리고 명길이 낚시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오 년 넘게 벽장에 있던 가방이었다⁠. 지퍼를 열자 낚싯대 대신 누런 서류 봉투 하나가 나왔다⁠.

명길이 봉투를 방바닥에 놓고 춘희 앞으로 밀었다⁠. 춘희는 봉투를 열었다⁠. 공책을 찢은 종이 한 장이 반으로 접혀 있었다⁠. 시어머니 글씨였다⁠. 받침마다 힘을 주어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유언장 논 열두 마지기는 큰며느리 엄춘희에게 준다⁠. 대신 내 제사와 종가 제사는 춘희가 끝까지 지낸다⁠. 2025년 5월 8일 송갑수⁠」

주소는 없었다⁠. 도장도 없었다⁠. 이름 옆에 지장을 찍으려다 만 듯 인주가 손톱만큼 묻어 있었다⁠.

춘희는 종이를 두 번 읽었다⁠. 첫 줄에서 숨이 멎었고⁠, 두 번째 줄에서 숨이 도로 나왔다⁠.

“⁠언제부터 갖고 있었어요⁠?⁠”

“⁠장례 다음 날⁠.⁠”

“⁠석 달이요⁠.⁠”

“⁠응⁠.⁠”

“⁠왜요⁠?⁠”

명길이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손가락으로 장판 무늬를 따라 그었다⁠.

“⁠명호가 무효라고 했어⁠. 주소도 도장도 없으니까 법으로는 종이 쪼가리라고⁠.⁠”

“⁠무효면 보여 줘도 됐잖아요⁠.⁠”

“⁠보여 주면 당신이 지켰을 거야⁠.⁠” 명길이 고개를 들었다⁠. “⁠법으로 무효든 말든⁠, 엄마 글씨로 쓰인 거면 당신은 지켜⁠. 논 한 평 못 받고도 죽을 때까지 제사 지냈을 거야⁠.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그래서 숨겼어요⁠?⁠”

“⁠그리고 명철이 가게가 넘어가게 생겼고⁠, 명호는 딸 결혼시켜야 하고⁠…⁠…⁠.⁠” 명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당신은 괜찮다고 할 사람이라서⁠.⁠”

춘희는 종이를 접었다⁠. 반듯하게⁠, 원래 접힌 자리대로⁠.

“⁠그건 내가 정할 일이었어요⁠.⁠”

명길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논을 받을지 말지도⁠, 제사를 지낼지 말지도 내가 정할 일이었어요⁠. 사십 년 동안 어머님이 정하셨어요⁠. 무슨 그릇을 쓰고⁠, 탕국에 간장을 몇 국자 넣고⁠, 몇 시에 일어나는지⁠. 이번에는 당신이 정했네요⁠. 내가 괜찮다고 할 사람이라서⁠.⁠”

“⁠춘희야⁠.⁠”

“⁠당신은 내가 괜찮다고 할 사람인지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춘희가 일어나 장롱을 열었다⁠. 여행 가방은 없었다⁠. 시장 장바구니에 속옷과 양말과 휴대전화 충전기를 넣었다⁠. 손이 저절로 부엌 쪽으로 가서 고무장갑까지 챙겨 넣었다⁠. 춘희는 장바구니 속 분홍 장갑을 내려다보다가 꺼내지 않았다⁠.

“⁠어디 가⁠.⁠”

“⁠몰라요⁠. 정하고 나면 알려 줄게요⁠.⁠” 춘희가 신발을 신었다⁠. “⁠당신이 알려 준 것처럼요⁠.⁠”

*

아침 여섯 시⁠, 시어머니가 부엌 문턱에 앉아 기다렸다⁠. 일곱 시가 되어도 쌀 씻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건넌방 미닫이를 두 번 쳤다⁠. 명길이 혼자 나왔다⁠. 눈 밑이 검었다⁠.

“⁠춘희는⁠.⁠”

“⁠나갔어요⁠.⁠”

“⁠어디를⁠.⁠”

“⁠몰라요⁠. 정하고 나면 알려 준대요⁠.⁠”

시어머니가 명길의 손에 들린 누런 봉투를 보았다⁠. 봉투 모서리에 시어머니가 아는 공책 종이의 줄무늬가 비쳤다⁠. 시어머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니가 가져갔냐⁠.⁠”

“⁠예⁠.⁠”

지팡이가 명길의 정강이를 쳤다⁠. 세게 친 것이 아니었는데 명길은 무릎을 꿇었다⁠. 예순두 살 장남이 부엌 문턱 앞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그거 왜 쓰셨어요⁠? 제사 조건은 왜 다셨어요⁠?⁠”

“⁠니가 물을 말이 아녀⁠.⁠”

“⁠엄마가 그 조건 안 다셨으면 저도 안 숨겼어요⁠.⁠”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거두었다⁠. 한참 장남을 내려다보다가 부엌 안을 보았다⁠. 프라이팬 네 개가 벽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비뚜름했다⁠. 춘희는 늘 반듯하게 걸어 두었다⁠.

“⁠밥은 누가 허냐⁠.⁠”

“⁠제가 할게요⁠.⁠”

“⁠니가⁠?⁠”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비뚜름한 프라이팬을 바로 걸었다⁠. “⁠사십 년 동안 쌀 한 번 안 씻은 놈이⁠.⁠”

10월 22일 금요일 오후⁠, 논산 시내 찜질방 이 층 수면실⁠. 춘희는 주황색 찜질복에 양머리 수건을 쓰고 맥반석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이틀째였다⁠. 시집온 뒤로 사흘 이상 집을 비운 적이 없었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뜨고 해가 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딸 선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가출했다며⁠? 아빠가 전화 왔어⁠.⁠”

“⁠가출은 무슨⁠. 찜질방이야⁠.⁠”

“⁠잘했어⁠, 엄마⁠. 진짜 잘했어⁠.⁠” 선영의 목소리 뒤에서 회사 복사기 소리가 났다⁠. “⁠근데 엄마⁠, 할머니는 뭐 드셔⁠?⁠”

“⁠몰라⁠.⁠”

“⁠엄마가 그 말을 하는 거 처음 들어 봐⁠.⁠”

“⁠엄마도 처음 해 봐⁠.⁠”

전화를 끊고 맥반석 계란을 까는데 수면실이 술렁였다⁠. 사람들이 일제히 입구를 보았다⁠. 춘희도 보았다⁠.

지팡이 소리가 났다⁠. 두 번⁠. 초록 한복을 입은 시어머니가 입구에 있었다⁠. 카운터에서 찜질복을 내준 모양인데 시어머니는 찜질복을 팔에 걸치고 한복 차림 그대로였다⁠. 뒤에 한월이 들어왔다⁠. 주황색 찜질복을 입었고⁠, 머리에는 갓을 썼고⁠, 갓 아래로 분홍 양머리 수건이 귀를 덮고 있었다⁠. 카운터 직원이 갓을 벗기려다 실패하고 양머리 수건이라도 씌운 모양이었다⁠.

수면실의 아주머니들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셔터 소리가 연달아 났다⁠. 한월이 고개를 숙이고 갓을 손으로 눌렀다⁠.

“⁠찍지 마십시오⁠. 규정상 저쪽 사람은 사진에 흐리게 나옵니다⁠.⁠”

“⁠그럼 흐린 걸로 찍지 뭐⁠.⁠” 누군가 말했다⁠.

*

시어머니는 춘희 옆 맥반석에 지팡이를 내려놓고 앉았다⁠. 무릎을 펴는 데만 한참이었다⁠. 춘희는 일어나 앉았고 양머리 수건은 벗지 않았다⁠. 둘 사이에 식혜 두 잔이 놓였다⁠. 한월이 사 온 것이었다⁠. 한월은 눈치를 보더니 불가마 쪽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집에 가자⁠.⁠”

“⁠유언장 봤어요⁠.⁠”

시어머니의 손이 식혜 잔에서 멈췄다⁠. 한참 뒤에 잔을 들었다⁠.

“⁠봤냐⁠.⁠”

“⁠논 주시는 대신 제사 끝까지요⁠.⁠” 춘희가 시어머니를 똑바로 보았다⁠. 맥반석 열기에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머님은 저한테 논을 주신 게 아니라 제사를 주신 거예요⁠. 논은 덤이고요⁠.⁠”

“⁠덤이라니⁠.⁠”

“⁠그 논 받으려면 죽을 때까지 상 차려야 하잖아요⁠. 어머님 상까지요⁠.⁠”

시어머니가 식혜를 한 모금 마셨다⁠. 얼굴을 찡그렸다⁠.

“⁠달다⁠. 밥알도 덜 삭았고⁠.⁠”

“⁠어머님⁠.⁠”

“⁠내가 칠십 년 지킨 거여⁠.⁠” 시어머니가 잔을 내려놓았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열여덟에 시집왔어⁠. 시어머니가 첫날 나 앉혀 놓고 그러더라⁠. 이 집 상이 끊기면 조상이 굶는다고⁠. 나는 그게 무서워서 칠십 년을 상을 차렸어⁠. 내가 가면 끊길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 종이를 쓴 거여⁠. 니 아니면 누가 혀⁠. 명길이가 혀⁠? 명호 마누라가 혀⁠?⁠”

“⁠끊기면 안 돼요⁠?⁠”

시어머니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님도 시집와서 우셨다면서요⁠. 시어머님이 더하셨다면서요⁠.⁠” 춘희가 양머리 수건을 벗었다⁠. 곱슬 파마가 땀에 젖어 이마에 붙었다⁠. “⁠그래서 저도 그래야 돼요⁠? 어머님이 울었으니까 저도 울고⁠, 제가 울었으니까 선영이도 울고요⁠?⁠”

불가마 앞에서 한월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수면실의 아주머니들은 휴대전화를 내리고 귀를 세웠다⁠.

시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한 번⁠, 두 번⁠. 무슨 말인가 나오려다 말았다⁠. 아흔 해 동안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말이라 입이 모양을 몰랐다⁠.

“⁠집에 와⁠.⁠” 결국 시어머니가 말했다⁠. “⁠밥은 니가 혀야 맛있어⁠.⁠”

“⁠안 가요⁠.⁠”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집었다⁠. 일어나느라 또 한참 걸렸고⁠, 춘희는 이번에는 팔을 받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혼자 일어났다⁠. 입구까지 가서 돌아보았다⁠.

“⁠식혜 값은 내가 냈다⁠.⁠”

“⁠차사님이 내셨잖아요⁠.⁠”

“⁠차사가 내 돈으로 냈어⁠.⁠”

시어머니가 나가자 한월이 불가마 앞에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땀에 젖은 양머리 수건을 벗어 춘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한 손으로 갓을 누른 채 뛰어나갔다⁠. 수면실 아주머니들이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진 속 한월은 정말로 흐리게 나왔다⁠.

*

10월 23일 토요일⁠, 춘희 없는 종가 부엌에 삼 형제가 서 있었다⁠. 명철이 가게에서 튀김옷 가루를 한 포대 들고 왔고⁠, 명호는 대전에서 내려와 휴대전화로 요리 앱을 열었다⁠. 명길은 쌀을 씻었다⁠. 물을 세 번 버리는 것까지는 기억했는데 네 번째에는 쌀까지 버렸다⁠.

“⁠형⁠, 탕국은 간장 몇 국자야⁠?⁠” 명호가 앱을 보며 물었다⁠.

“⁠형수님은 그냥 넣던데⁠.⁠”

“⁠그냥이 몇 국자냐고⁠.⁠”

명철은 동태전을 부친다며 동태포에 치킨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넣었다⁠. 동태가 치킨이 되어 나왔다⁠. 명철이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팔아도 되겠다⁠.⁠”

안방 상에 밥과 탕국과 동태 치킨이 올라갔다⁠. 시어머니는 숟가락으로 탕국을 한 번 떠 보고 내려놓았다⁠. 밥은 위는 설고 바닥은 탔다⁠. 시어머니는 김을 한 장 집어 장독대에서 떠 온 씨간장에 찍어 밥에 싸 먹었다⁠. 그것만 먹었다⁠.

한월은 동태 치킨을 다섯 개 먹었다⁠.

명호의 휴대전화는 아침부터 쉬지 않고 떨었다⁠. 카페 게시판에 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표님 유언장 숨기신 거예요⁠?⁠」 「⁠형수님 몫 가로챈 사람이 우리 대표⁠?⁠」 「⁠탈퇴합니다⁠」⁠. 회원 수가 이만에서 만 사천으로 줄었다⁠. 명호는 화면을 엎어 놓고 앱의 탕국 간장 칸을 노려보았다⁠. 「⁠간장 1큰술(⁠기호에 따라⁠)⁠」⁠.

“⁠기호에 따라가 뭐야⁠.⁠” 명호가 중얼거렸다⁠. “⁠엄마 기호를 내가 어떻게 알아⁠.⁠”

*

10월 24일 일요일 밤⁠, 명길이 사랑채에 동생들을 불렀다⁠. 명호는 대전에 가지 않고 남아 있었고⁠, 명철은 가게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고 왔다⁠. 명길이 상 위에 누런 봉투를 올려놓았다⁠.

“⁠금요일 조정에 이거 들고 나갈 거야⁠.⁠”

명호가 봉투를 보고 형을 보았다⁠.

“⁠형⁠, 그러면 형 상속결격이야⁠. 민법 1004조⁠. 유언서를 숨긴 사람은 상속인이 못 돼⁠. 무효인 유언장이라도 다툼이 붙어⁠. 엄마 다시 가시면 형은 이 집에서 마루 한 칸도 못 받을 수 있어⁠.⁠”

“⁠알아⁠.⁠”

“⁠그리고 나는⁠? 내가 같이 읽고 무효라고 한 거 다 나와⁠. 조정에서 엄마가 나한테 논 주기로 했다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 돼⁠. 나 끝나⁠.⁠”

“⁠알아⁠.⁠”

“⁠알면서 왜 해⁠!⁠”

명길이 봉투 위에 손을 얹었다⁠.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네 형수가 그러더라⁠. 내가 정할 일이 아니었다고⁠.⁠” 명길이 말했다⁠. “⁠석 달 동안 내가 정했어⁠. 이번엔 안 정할래⁠. 판사가 보고 엄마가 보고 네 형수가 보라고 내놓을 거야⁠.⁠”

“⁠형들 왜 그래⁠.⁠” 명철이 울먹였다⁠. “⁠우리 그냥 반씩 나누면 안 돼⁠?⁠”

“⁠뭘 반씩 나눠⁠. 엄마를⁠?⁠” 명호가 일어났다⁠. 미닫이를 열어젖히고 나가다 문턱에서 멈췄다⁠. “⁠형⁠. 형이 그거 내놓으면 우리 이제 형제 아니야⁠.⁠”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봉투 위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명호가 나간 뒤 명길은 마당으로 나갔다⁠. 장독대 맨 뒤 씨간장 독 앞에 서서 뚜껑을 열었다⁠. 달빛이 검은 간장 위에 떴다⁠. 명길은 해마다 아내가 여기에 새 간장을 붓는 것을 보았지만⁠, 몇 국자를 붓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명길은 뚜껑을 도로 덮고 한참 독을 끌어안듯이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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