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22자)

생방송 토론, 어머니 대 아들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10월 18일 월요일 아침⁠, 안방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같은 이야기를 했다⁠. 화면 아래 자막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정부 추산 ‘⁠돌아온 사망자⁠’ 전국 이만여 명⁠」

「⁠은행 창구마다 ‘⁠사망 해지 계좌 되살려 달라⁠’ 긴 줄⁠」

「⁠상속 반환 소송 하루 수백 건 … 법원 “⁠귀환자 사건 먼저 처리⁠”⁠」

「⁠국회⁠, 귀환자 특례법 공청회 … 다시 떠나는 날을 사망일로 볼지 쟁점⁠」

시어머니는 보료에 기대 앉아 귤을 까며 뉴스를 보았다⁠. 춘희는 다리미판을 펴고 초록 한복을 다렸다⁠. 붉은 고름은 따로 떼어 낮은 온도로 다렸다⁠. 시어머니가 칠순 때 맞춘 한복이었고⁠, 칠순 때도 춘희가 다렸다⁠.

화면에 명호가 나왔다⁠. 대전 법무사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자막에는 「⁠귀환자 가족 모임 대표 송명호 법무사⁠」라고 떴다⁠.

“⁠돌아오신 부모님⁠, 저희도 반갑습니다⁠. 다만 저희도 살아야 합니다⁠. 모임 회원이 이만 명입니다⁠.⁠”

“⁠지 엄마는 하나뿐인디 이만 명 대표가 됐구먼⁠.⁠” 시어머니가 귤껍질을 접시에 던졌다⁠.

마당에서 놋쇠 방울 소리가 났다⁠. 한월이 도포 소매에서 손가락만 한 방울을 꺼내 귀에 대고 있었다⁠. 방울이 울릴 때마다 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뒤 한월이 마루로 올라왔다⁠.

“⁠저쪽 소식입니다⁠. 대기실 증축 공사가 또 늦어진답니다⁠. 바다 건너 대만하고 베트남 쪽 차사들도 49일씩 돌려보냈답니다⁠. 다들 우리처럼 추석 비슷한 명절이 있는 데라서요⁠.⁠”

“⁠거기도 자식들이 소송허냐⁠?⁠”

“⁠거기도 합니다⁠.⁠”

점심때는 마을 경로당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경로당 할머니들이 시어머니 얼굴을 보자고 했다⁠. 춘희가 모시고 가자 할머니 열한 명이 방석을 깔고 기다리고 있었다⁠. 맨 앞의 할머니가 시어머니 손을 잡았다⁠.

“⁠형님은 죽었다 오니께 텔레비에도 나가네⁠. 나는 언제 죽어서 언제 돌아오나⁠.⁠”

“⁠지금 가면 자리 없어⁠. 만원이여⁠.⁠” 시어머니가 방석에 앉았다⁠. “⁠줄 서서 기다려⁠.⁠”

할머니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춘희는 경로당 부엌에서 식혜를 따랐다⁠. 열한 잔에 시어머니 것 하나⁠, 한월 것 하나를 더 따랐다⁠.

*

10월 19일 화요일 밤⁠, 안방에서 예행연습이 벌어졌다⁠. 해진이 방송국에서 보내 준 질문지를 읽어 주고 간 뒤였다⁠. 춘희가 진행자 자리에 앉아 질문지를 들었고⁠, 한월이 명호 자리에 앉았다⁠. 한월은 명호처럼 보이려고 춘희의 돋보기를 빌려 썼다⁠. 갓 위로 안경테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어머님⁠, 정부 지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춘희가 질문지를 읽었다⁠.

“⁠빌린 법이여⁠. 맘에 안 들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해진 씨가 짧고 분명하게 하시래요⁠.⁠”

“⁠짧고 분명하잖여⁠.⁠”

한월이 헛기침을 했다⁠. 명호 흉내를 내는 목소리가 근엄했다⁠. “⁠어머니⁠, 민법 997조에 따르면⁠…⁠…⁠.⁠”

“⁠시끄러⁠, 이놈아⁠.⁠”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한월의 갓을 툭 쳤다⁠. 한월이 돋보기를 떨어뜨렸다⁠. “⁠그 애 흉내 내지 마⁠. 내 아들은 내가 혼내⁠.⁠”

춘희가 질문지를 넘기다 손을 멈췄다⁠. 맨 아래 질문에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돌려받으신 재산은 어디에 쓰실 계획인가요⁠?⁠」

“⁠어머님⁠.⁠”

“⁠왜⁠?⁠”

“⁠방송에서 제 얘기는 하지 마세요⁠.⁠”

“⁠니 얘기를 내가 왜 혀⁠.⁠”

“⁠어머님이 저 얘기를 하시면 도련님들이 저를 원수로 봐요⁠. 어머님은 가시고 저는 이 집에 남아요⁠.⁠”

시어머니가 한참 춘희를 보았다⁠. 지팡이 끝으로 장판의 눌린 자국을 문질렀다⁠.

“⁠니 얘기 안 혀⁠. 걱정 말어⁠.⁠”

한월이 바닥의 돋보기를 주워 춘희에게 돌려주며 작게 말했다⁠. “⁠저쪽에서 오신 분들이 약속을 지키는 경우는 반반입니다⁠.⁠”

10월 20일 수요일 아침⁠, 명길이 운전대를 잡았다⁠. 시어머니가 뒷자리 가운데에 앉았고 한월은 갓 때문에 조수석 의자를 끝까지 젖히고 반쯤 누워서 갔다⁠. 춘희는 시어머니 옆에서 다린 한복이 구겨질까 봐 치맛자락을 무릎에 받쳐 들었다⁠.

천안을 지날 때까지 아무도 말이 없었다⁠. 휴게소에서 명길이 춘희에게만 들리게 물었다⁠.

“⁠방송 나가서 엄마가 무슨 얘기 하실까⁠.⁠”

“⁠할 말 하신대요⁠.⁠”

“⁠무슨 할 말⁠.⁠”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춘희가 호두과자 봉지를 접었다⁠. “⁠당신은 엄마가 무슨 얘기 하실까 봐 그래요⁠?⁠”

명길은 대답하지 않고 자판기 커피를 두 잔 뽑았다⁠. 한 잔은 한월에게 주고⁠, 한 잔은 들고만 있다가 식은 채로 버렸다⁠.

10월 20일 수요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국 분장실에는 거울이 여섯 개 있었다⁠. 시어머니가 가운데 거울 앞에 앉았고⁠, 분장사가 퍼프를 들고 시어머니 손등의 검버섯을 덮으려 했다⁠.

“⁠그대로 둬⁠. 다 내가 번 거여⁠.⁠”

“⁠어머님⁠, 조명 받으면 얼룩져 보여요⁠.⁠”

“⁠얼룩이 아니라 나이여⁠.⁠”

분장사가 퍼프를 내려놓았다⁠. 춘희는 시어머니 뒤에 서서 비녀를 다시 꽂아 드렸다⁠. 서울까지 차를 몬 명길은 주차장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담배를 끊은 지 십 년인데 주차장 흡연 구역에 서 있겠다고 했다⁠.

복도에서 한월이 무대 감독과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갓이 너무 높아서 화면에 걸립니다⁠, 선생님⁠. 갓은 벗고 앉으시면⁠…⁠…⁠.⁠”

“⁠차사는 갓을 못 벗습니다⁠. 규정상⁠…⁠…⁠.⁠”

“⁠그럼 화면에 안 나오는 데 서 계세요⁠.⁠”

한월은 결국 방청석 맨 뒷줄 기둥 뒤에 서기로 했다⁠. 팻말은 소품실에 맡겼다⁠.

분장실 문이 열리고 명호가 들어왔다⁠. 남색 양복에 넥타이를 맸고⁠, 손에 대본 대신 법전이 들려 있었다⁠. 명호는 시어머니 옆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 속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마주 보았다⁠.

“⁠엄마⁠, 방송에서 저 너무 세게 치지 마세요⁠. 사돈댁에서 봐요⁠.⁠”

“⁠그럼 나오질 말든가⁠.⁠”

“⁠카페 회원들이 저만 보고 있어요⁠. 이만 명이요⁠. 그중에는 진짜로 집 날리게 생긴 사람들도 있어요⁠. 엄마는 2주 뒤에 가시지만⁠, 그 사람들은 남아요⁠.⁠” 명호가 거울 속 어머니를 보았다⁠. “⁠저도 남고요⁠.⁠”

시어머니가 거울 속 아들을 오래 보았다⁠.

“⁠이만 명 아들이 됐구먼⁠.⁠” 시어머니가 비녀를 손끝으로 고쳤다⁠. “⁠내 아들은 언제 혀⁠?⁠”

명호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분장사가 명호 이마에 파우더를 두드렸다⁠. 명호는 눈을 감고 가만있었다⁠.

*

생방송 무대는 둥근 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조명이 쏟아졌다⁠. 진행자 왼편에 시어머니가⁠, 오른편에 명호가 앉았다⁠. 뒤쪽 대형 화면에 시청자 댓글이 실시간으로 흘렀다⁠.

「⁠할머니 한복 예쁘시다⁠」

「⁠아들이랑 나오신 거 실화냐⁠」

「⁠우리 아버지도 돌아오셨는데 차 키부터 달라심⁠」

진행자가 명호에게 먼저 마이크를 넘겼다⁠. 명호는 법전을 펴지 않았다⁠.

“⁠돌아오신 분들 반갑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줄 알고 한 일을 다 무르면⁠, 산 사람이 무너집니다⁠. 장례 치르고⁠, 대출 갚고⁠, 가게 빚 막은 돈을 다시 빌려야 합니다⁠. 부모님은 49일 뒤에 또 가십니다⁠. 자식들은 그 빚을 이십 년 갚습니다⁠. 법이 돌아가신 분만 보고 남는 사람을 안 보면 안 됩니다⁠.⁠”

댓글이 쏟아졌다⁠. 「⁠맞는 말이긴 함⁠」 「⁠우리 집 얘기다⁠」 「⁠대표님 말 잘하시네⁠」⁠.

“⁠송갑수 어머님은요⁠?⁠”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무대 바닥을 두 번 찧었다⁠. 마이크가 지팡이 소리를 크게 키웠다⁠. 진행자가 어깨를 움찔했다⁠.

“⁠살아 돌아온 게 죄여⁠? 내 돈 내가 달라는 게 죄여⁠? 나는 2주 뒤에 가⁠. 가기 전에 내 것은 내 손으로 정리하고 가야 혀⁠. 남이 해 주는 정리는 정리가 아녀⁠.⁠”

「⁠할머니 멋있다⁠」 「⁠사이다⁠」 「⁠근데 아들도 불쌍함⁠」⁠.

진행자가 명호를 돌아보았다⁠. “⁠대표님⁠, 대표님 어머님도 이렇게 돌아오셨는데요⁠. 받으신 재산은 돌려드릴 생각이세요⁠?⁠”

“⁠법원이 정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명호가 말했다⁠. “⁠저는 어머니 아들이기 전에 오늘은 회원 이만 명의 대표로 나왔습니다⁠.⁠”

“⁠거꾸로 됐다⁠.⁠” 시어머니가 마이크에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이만 명 대표이기 전에 내 아들이여⁠. 니 기저귀 내가 갈았어⁠. 이만 명은 니 기저귀 안 갈았어⁠.⁠”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명호의 귀가 빨개졌다⁠. 대형 화면에 「⁠기저귀ㅋㅋㅋㅋ⁠」가 줄줄이 올라갔다⁠.

진행자가 전화 연결을 했다⁠. 경북 안동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딸이었다⁠. 딸은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와서 반가운데⁠, 아버지 이름으로 받은 보험금으로 이미 남편 수술비를 냈다고 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오빠들이 돌려 놓으라고 한다고 했다⁠. 전화가 끊기자 무대가 조용해졌다⁠. 시어머니도 명호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머님⁠, 돌려받으시면 어디 쓰시겠어요⁠?⁠” 진행자가 물었다⁠.

“⁠줄 데가 있어⁠.⁠”

“⁠어디요⁠?⁠”

“⁠우리 큰며느리⁠.⁠” 시어머니가 카메라를 똑바로 보았다⁠. “⁠사십 년 내 밥 한 사람⁠. 내가 논을 그 애 주라고 유언장까지 써 놨었어⁠. 어버이날에⁠. 내 손으로⁠.⁠”

명호가 마이크를 당겼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수백 번 한 말이 혀끝에서 저절로 나왔다⁠.

“⁠어머니⁠, 그 유언장은 무효예요⁠. 주소도 안 쓰셨고 도장도 안 찍으셨잖아요⁠. 자필 유언은 주소하고 도장이⁠…⁠…⁠.⁠”

명호가 말을 멈췄다⁠. 입은 벌어져 있었는데 다음 말이 안 나왔다⁠.

진행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표님⁠, 유언장을 보셨어요⁠?⁠”

방청석이 술렁였다⁠. 대형 화면의 댓글이 한꺼번에 바뀌었다⁠.

「⁠?⁠」

「⁠대표님 유언장 보셨네⁠」

「⁠무효인지 어떻게 알아⁠」

「⁠주소 없는 것까지 아시네ㅋㅋ⁠」

시어머니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아들을 보았다⁠. 조명 아래에서 매서운 눈이 가늘어졌다⁠.

“⁠니가 봤냐⁠.⁠”

명호가 법전을 덮었다⁠. 진행자가 서둘러 광고로 넘겼다⁠.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방송이 끝나고 복도는 사람들로 붐볐다⁠. 춘희는 대기실 모니터로 방송을 다 보았다⁠. 무대 뒤 출구에서 나오는 명호를 붙잡은 것은 춘희였다⁠. 명호가 넥타이를 풀다 멈췄다⁠.

“⁠도련님⁠.⁠”

“⁠형수님⁠, 지금은⁠…⁠…⁠.⁠”

“⁠유언장 보셨어요⁠?⁠”

명호가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이마의 파우더가 땀에 녹아 줄무늬가 졌다⁠. 카페 대표의 얼굴이 아니었다⁠. 대전 사무실에서 귤 봉지를 받던 동생의 얼굴도 아니었다⁠. 사십구재 날 사랑채에서 엄마를 보고 법을 먼저 말했던 얼굴이었다⁠.

“⁠어디 있어요⁠?⁠”

“⁠형한테 물어보세요⁠.⁠”

“⁠아범이요⁠?⁠”

“⁠장례 다음 날이요⁠. 엄마 반닫이 정리하다가 형이 세 번째 서랍에서 찾았어요⁠. 둘이 같이 읽었어요⁠.⁠” 명호가 눈을 감았다⁠. “⁠주소도 도장도 없어서 무효라고 제가 그랬어요⁠. 형이 형수님한테는 말하지 말자고 했어요⁠. 형이 가져갔어요⁠.⁠”

“⁠왜요⁠?⁠”

“⁠형한테 물어보시라니까요⁠.⁠” 명호가 눈을 떴다⁠. “⁠저는 무효라서 말 안 했어요⁠. 형은 왜 말 안 했는지 몰라요⁠. 진짜로요⁠.⁠”

복도 끝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춘희가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명길이 서 있었다⁠. 주차장에서 올라와 어머니와 아내에게 주려고 산 커피 두 잔 가운데 한 잔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종이컵이 옆으로 누웠고⁠, 커피가 복도 바닥 타일의 줄눈을 따라 춘희 발끝까지 천천히 흘러왔다⁠. 명길은 남은 한 잔을 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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