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23자)

판사가 지문을 찍어 보자는 날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10월 6일 수요일 아침⁠, 가정법원 삼 층 복도는 장례식장 같기도 하고 잔칫집 같기도 했다⁠. 상복 입은 자식들 옆에 돌아온 부모들이 앉아 있었고⁠, 부모들 뒤에는 검은 갓을 쓴 차사들이 벽을 따라 한 줄로 서 있었다⁠. 차사들끼리 갓을 살짝 숙여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 관할이십니까⁠?⁠”

“⁠전라 북부입니다⁠. 그쪽은요⁠?⁠”

“⁠충청 남부요⁠. 여기서 뵙네요⁠. 저쪽 대기실에서 같이 줄 서던 분이시죠⁠?⁠”

한월이 팻말을 옆구리에 끼고 다른 차사들과 고개를 끄덕였다⁠. 팻말을 들고 온 차사는 한월 하나뿐이었다⁠. 다른 차사들이 한월의 팻말을 보고 웃었고⁠, 한월은 팻말을 등 뒤로 감췄다⁠.

춘희 옆자리의 할아버지는 휴대전화 화면을 들고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혼자 살다 돌아가셨는데 재산을 다 요양보호사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겼고⁠, 동생 둘이 유류분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준비하다가 할아버지가 돌아오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고 했다⁠.

“⁠근데 동생들은 원래 유류분이 없어요⁠, 할아버지⁠.⁠” 해진이 볼펜을 돌리며 끼어들었다⁠. “⁠삼 년 전에 헌법재판소가 형제자매 유류분은 위헌이라고 했고⁠, 법에서도 지웠어요⁠. 동생분들은 처음부터 받을 게 없었어요⁠.⁠”

“⁠그려⁠? 그럼 다시 죽어도 걱정 없네⁠.⁠” 할아버지가 무릎을 쳤다⁠. “⁠요양보호사 선생님한테 전화해야겄다⁠.⁠”

반대편 의자에서는 단발머리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김치냉장고를 돌려 달라고 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김치가 이미 들어 있다고 했고⁠, 할머니는 김치째로 달라고 했다⁠. 며느리가 그럼 김치는 자기가 담갔으니 김칫값을 달라고 하자⁠, 할머니는 고춧가루가 자기 것이니 고춧값을 빼고 주겠다고 했다⁠. 둘은 휴대전화 계산기를 하나씩 꺼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무릎 사이에 세우고 복도를 둘러보았다⁠. “⁠다들 바쁘게 사는구먼⁠. 죽어서도⁠.⁠”

*

심문실은 작았다⁠. 판사는 오십 대 여자였고⁠, 서류 더미 너머로 돋보기를 걸쳤다가 벗었다⁠. 시어머니와 해진이 한편에 앉았고⁠, 맞은편에 명호가 이해관계인 의견서를 들고 앉았다⁠. 명길과 명철과 춘희는 벽 쪽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한월은 문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사건 본인 송갑수 님⁠. 2027년 7월 29일 사망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판사가 서류를 넘겼다⁠. “⁠지금 여기 계십니다⁠.⁠”

“⁠예⁠, 여기 있슈⁠.⁠”

“⁠이해관계인 송명호 님⁠, 반대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명호가 일어났다⁠. 의견서를 펴지 않고 말했다⁠. 외워 온 말이었다⁠.

“⁠등록부 정정은 기록이 틀렸을 때 하는 겁니다⁠. 어머니의 사망은 틀린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확인했고⁠, 저희가 염을 했고⁠, 화장장 예약이 밀려 매장을 했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여기 계신 건 새로 생긴 일이지⁠, 7월의 기록이 틀린 게 아닙니다⁠.⁠” 명호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대법원은 상속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항은 허가가 아니라 확정판결로 고쳐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그런 사건입니다⁠.⁠”

판사가 돋보기를 내려놓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 부분을 오래 고민했습니다⁠.⁠”

해진의 볼펜이 멈췄다⁠. 명호의 어깨가 조금 펴졌다⁠.

“⁠다만 지금은 전국에서 이런 사건이 수천 건입니다⁠. 확정판결을 다 기다리면 49일 안에 끝나는 사건이 하나도 없어요⁠.⁠” 판사가 서류 한 장을 들었다⁠. “⁠대법원과 법무부 지침은 본인 확인이 확실하면 허가로 빨리 처리하라는 겁니다⁠. 그러니 본인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법원 직원이 작은 기계와 잉크판을 들고 들어왔다⁠. 판사가 시어머니에게 오른손 엄지를 내밀어 달라고 했다⁠.

“⁠내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지 뭘 찍어⁠.⁠”

“⁠그걸 확인하려고요⁠, 어머님⁠.⁠”

시어머니가 엄지를 잉크에 누르고 종이에 꾹 눌렀다⁠. 직원이 종이를 기계에 넣었고⁠, 노트북 화면에 주민등록 때 찍은 지문과 방금 찍은 지문이 나란히 떴다⁠. 소용돌이 무늬가 겹쳐지며 초록색 글자가 떴다⁠. 「⁠일치⁠」⁠.

명철이 작게 박수를 쳤다가 명호의 눈치를 보고 손을 무릎에 내렸다⁠.

“⁠유전자 감정도 신청하셨는데요⁠.⁠” 판사가 명호를 보았다⁠. “⁠결과가 나오려면 삼 주가 걸립니다⁠. 그사이 사건 본인은 은행도 못 가고 병원도 못 갑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법은 확실해야 하니까요⁠.⁠”

판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벽 앞 의자들을 보았다⁠.

“⁠장남 송명길 님⁠.⁠”

명길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이분이 어머니가 맞습니까⁠?⁠”

심문실이 조용해졌다⁠. 명길은 시어머니를 보지 않고 명호를 보았다⁠. 명호가 형의 눈을 받았다⁠. 대전 사무실에서 커피를 닦던 손이 의견서 모서리를 쥐고 있었다⁠. 반닫이 세 번째 서랍이 둘 사이에 떠 있었다⁠.

명길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맞습니다⁠.⁠”

“⁠무엇으로 아십니까⁠?⁠”

“⁠우리 엄마는 말씀하시기 전에 지팡이를 바닥에 두 번 찧으세요⁠.⁠” 명길의 목소리가 떨렸다⁠. “⁠예순두 해를 들었습니다⁠. 이분이 그렇게 하세요⁠.⁠”

시어머니가 명길을 보았다⁠. 매서운 눈매가 한순간 풀렸다가 도로 조여졌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지팡이를 들어 심문실 바닥을 두 번 찧었다⁠.

“⁠송명철 님은요⁠?⁠”

명철이 벌떡 일어났다⁠. “⁠저⁠, 저는 엄마 편 할게요⁠. 판사님⁠.⁠”

“⁠명철아⁠.⁠” 명호가 낮게 불렀다⁠.

“⁠형⁠, 나 지문 봤어⁠. 일치래⁠.⁠” 명철이 판사를 향해 꾸벅 숙였다⁠. “⁠대신 돈 갚는 건 좀 천천히 해 주시면⁠…⁠…⁠.⁠”

“⁠그건 여기서 정하는 게 아닙니다⁠.⁠” 판사가 말했다⁠.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명호가 의견서를 내려놓았다⁠. “⁠유전자 감정 신청은 거두겠습니다⁠. 반대 의견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

법원 주차장에서 명호가 어머니를 따라왔다⁠. 손에 은색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춘희가 차 문을 열고 시어머니를 앉히는 동안 명호는 차 옆에서 보온병을 내밀었다⁠.

“⁠숭늉이에요⁠. 집사람이 끓였어요⁠. 엄마 법원 가시면 목마르실 거라고⁠.⁠”

시어머니가 보온병을 받았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더니 한 모금 마셨다⁠.

“⁠니 마누라가 끓인 거면 받는다⁠.⁠”

“⁠엄마⁠, 저 미워하시는 거 알아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알지⁠?⁠”

“⁠네⁠.⁠”

“⁠떡 없다⁠.⁠” 시어머니가 보온병을 품에 안았다⁠. “⁠숭늉은 고맙다고 전혀⁠.⁠”

명호가 차창에 손을 짚었다가 뗐다⁠. 춘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수님⁠, 저 12월 18일에 딸 결혼식이에요⁠. 그 전에 일억 육천을 다시 빌려야 돼요⁠. 그거 하나만 알아 주세요⁠.⁠”

“⁠알아요⁠, 도련님⁠.⁠” 춘희가 운전석에 앉아 안전띠를 맸다⁠. “⁠저도 사십 년 하나만 알아 달라고 했어요⁠.⁠”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명호는 같은 자리에 서서 보온병이 없는 빈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

10월 8일 금요일 오후⁠, 해진이 종가 대청에 결정문을 펼쳤다⁠. 「⁠사건 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중 사망 기록을 말소하는 정정을 허가한다⁠」⁠. 시어머니는 법적으로 다시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해진이 결정문 끝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제 주민등록 살리고⁠, 집하고 선산 등기도 할머니 앞으로 돌릴 수 있어요⁠. 명호 법무사님하고 명철 사장님한테는 돌려받을 돈을 청구하고요⁠.⁠”

“⁠논은⁠?⁠”

“⁠논은 안 돼요⁠. 이장님은 할머니가 돌아오실 줄 모르고 사셨어요⁠. 지침이 그런 거래는 지켜 줘요⁠.⁠”

집과 선산 등기를 어머니 앞으로 돌리려면 명길의 도장이 필요했다⁠. 해진이 서류를 내밀자 명길은 읽지도 않고 도장을 찍었다⁠. 인주를 묻히고⁠, 찍고⁠, 휴지로 닦는 데 십 초가 걸리지 않았다⁠. 춘희는 부엌 문간에서 남편의 손을 보았다⁠. 춘희는 협의분할서에 찍혀 있던 남편의 도장을 떠올렸다⁠. 같은 손⁠, 같은 빨간색이었다⁠.

면사무소에서 새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을 때⁠, 시어머니는 사진사에게 턱을 들고 찍어 달라고 세 번을 말했다⁠. 턱은 하나로 나왔다⁠. 사진관 의자에 한월이 따라 앉으려 하자 사진사가 갓은 벗어야 한다고 했고⁠, 한월은 사진을 포기했다⁠.

*

해 질 녘⁠, 춘희와 시어머니는 마을 앞 논둑으로 나갔다⁠. 논에서 콤바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콤바인 뒤로 볏짚이 줄지어 누웠다⁠. 운전석의 덕만이 두 사람을 보고 기계를 세웠다⁠.

“⁠아이고⁠, 형님⁠. 춘희 씨⁠.⁠” 덕만이 모자를 벗고 내려왔다⁠.

춘희는 논둑 끝에 서서 베어진 자리를 보았다⁠. 5월에 무릎까지 빠지며 모를 낸 자리였다⁠. 줄이 비뚤다고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던 자리였다⁠.

“⁠이장님⁠, 이 벼 제가 심은 거예요⁠.⁠”

“⁠알지⁠. 내가 왜 몰러⁠.⁠” 덕만이 목에 건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근디 춘희 씨⁠, 나도 돈 주고 샀어⁠. 서 있는 벼까지 쳐서⁠. 우리 아들이 서울서 회사 그만두고 내려왔어⁠. 농사 지을 땅이 있어야 붙어 있지⁠.⁠”

“⁠덕만아⁠.⁠”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 논 도로 팔어⁠. 값은 쳐줄게⁠.⁠”

“⁠형님⁠, 그건 안 돼유⁠.⁠” 덕만이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공손했는데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이 논 보고 내려왔슈⁠. 형님 아들이 팔았고 내가 샀슈⁠. 형님이 살아 오신 건 반가운디⁠, 우리 아들도 살아야지⁠.⁠”

시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덕만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콤바인 엔진이 혼자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춘희가 논둑 아래로 내려가 베다 남은 벼 포기에서 이삭 하나를 꺾었다⁠. 손바닥에 놓고 비볐다⁠. 껍질 벗은 쌀알이 다섯 알 남았다⁠.

“⁠이장님⁠.⁠”

“⁠응⁠.⁠”

“⁠물꼬는 남쪽 끝 넓적한 돌 밑이에요⁠. 장마 때 거기 먼저 막히니까 내년 봄엔 거기부터 보세요⁠.⁠”

덕만이 모자를 도로 썼다⁠. 한참 춘희를 보다가 말했다⁠. “⁠쌀 한 가마 갖다 놓을게⁠. 춘희 씨 몫으로⁠.⁠”

“⁠제 몫이요⁠?⁠”

“⁠춘희 씨가 심었잖여⁠.⁠”

시어머니가 몸을 돌려 먼저 걸었다⁠. 지팡이 소리가 논둑길에 박혔다⁠. 춘희는 쌀알 다섯 개를 쥔 채 뒤를 따랐다⁠. 사십 년 동안 춘희 몫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곳은 남의 논둑이었다⁠.

*

밤 아홉 시⁠, 명호가 인터넷 카페 하나를 열었다⁠. 「⁠귀환자 가족 모임 · 돌아오신 부모님⁠, 반갑지만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첫 글은 명호가 썼다⁠. 「⁠상속받은 재산을 이미 쓰신 분들⁠,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법무사가 돕겠습니다⁠.⁠」

자정이 되기 전에 가입자가 천 명을 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사천 명이었다⁠. 댓글이 끝없이 달렸다⁠. 「⁠아버지 돌아오셔서 집 대출 다시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제 차를 가져가셨어요 운전도 못 하시는데⁠」 「⁠장례비는 누가 돌려줍니까⁠」⁠. 새벽 두 시쯤에는 이런 댓글도 달렸다⁠. 「⁠대표님 어머님도 돌아오셨다면서요⁠? 대표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명호는 답을 달지 않았다⁠. 카페 대표는 댓글을 지울 수 있었는데⁠, 지우지도 않았다⁠. 화면을 켜 둔 채 사무실 소파에서 아침을 맞았다⁠.

10월 11일 월요일⁠, 춘희의 휴대전화로 서울 방송국 작가의 전화가 왔다⁠. 귀환자 상속 문제를 다루는 생방송 토론에 송갑수 어머님을 모시고 싶다고 했다⁠. 상대 패널은 귀환자 가족 모임 대표였다⁠.

“⁠대표가 누군데요⁠?⁠”

“⁠송명호 법무사님이요⁠. 어머님 아드님이시죠⁠?⁠”

춘희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안방을 보았다⁠. 시어머니가 다 들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지팡이로 방바닥을 두 번 찧었다⁠.

“⁠나간다고 혀⁠. 한복 다려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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