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87자)

치킨집 카운터에 앉은 돌아가신 어머니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9월 24일 금요일⁠, 논산 군청 일 층 무료 법률 상담실 앞 의자에는 상복 입은 사람이 셋이나 앉아 있었다⁠. 춘희는 번호표를 쥐고 앉아 앞사람들의 사연을 듣지 않으려고 애썼다⁠. 바로 앞의 남자는 돌아온 장인이 사위 차를 돌려 달라고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담 당번 변호사는 서른넷의 도해진이었다⁠. 단발머리에 볼펜을 손가락 사이로 쉬지 않고 돌렸고⁠, 춘희가 사연을 반쯤 말했을 때 볼펜을 멈췄다⁠.

“⁠한골 송씨 종가요⁠? 혹시 갑수 할머니⁠?⁠”

“⁠네⁠.⁠”

“⁠저 옆 마을 하촌리예요⁠. 어릴 때 마을 잔치 때마다 할머니 탕국 먹었어요⁠.⁠” 해진이 볼펜을 다시 돌렸다⁠. “⁠간이 진짜 좋았는데⁠. 할머니가 그 탕국 간은 큰며느리가 본다고 하셨거든요⁠.⁠”

춘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남한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사십 년 만에 처음 알았다⁠.

“⁠사건 맡을게요⁠. 처음 보는 사건이라 저도 공부하면서 갈 거예요⁠. 수임료는 할머니 탕국으로 주세요⁠.⁠” 해진이 수첩을 덮었다⁠. “⁠내일 열 시 가족회의요⁠? 갈게요⁠. 형제분들 말씀부터 들어 봐야 판이 보여요⁠.⁠”

*

9월 25일 토요일 아침 열 시⁠, 안방에 사람이 꽉 찼다⁠. 시어머니가 아랫목 보료에 앉았고⁠, 삼 형제가 차례로 앉았다⁠. 시어머니 말대로 둘째 동서와 막내 동서도 왔다⁠. 둘째 동서는 대전에서 반찬통 세 개를⁠, 막내 동서는 치킨 두 마리를 들고 왔다⁠. 한월은 윗목 구석에 팻말을 무릎에 세우고 앉았다⁠. 해진은 시어머니 옆에 노트북을 펴 놓았다⁠.

춘희는 늘 하던 대로 문간에 탕국 쟁반을 놓고 무릎을 꿇었다⁠. 해진이 방석 하나를 집어 춘희 앞으로 밀었다⁠.

“⁠형수님도 안으로 들어와 앉으세요⁠. 당사자세요⁠.⁠”

“⁠저는 상속인이 아니라서요⁠.⁠”

“⁠상속인은 아니어도 이 집 사람이시잖아요⁠.⁠”

춘희는 방석을 받아 놓고도 문간에서 한 뼘만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시어머니가 춘희를 보더니 지팡이로 방바닥을 두 번 찧었다⁠.

“⁠시작혀⁠.⁠”

명호가 노트북처럼 반듯하게 말했다⁠. 정부 지침대로라면 명호는 논 판 돈 일억 육천을⁠, 명철은 예금 팔천을 돌려드려야 하고⁠, 이 집과 선산은 정정 허가가 나는 대로 등기를 고쳐 어머니 앞으로 돌린다⁠. 논은 이장님 것이라 돌아오지 않는다⁠. 명호가 말을 마치자 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호 법무사님 말씀이 대체로 맞아요⁠.⁠”

“⁠변호사가 누구 편이여⁠?⁠” 시어머니가 해진을 노려보았다⁠.

“⁠할머니 편이요⁠. 그러니까 맞는 말은 맞다고 해야죠⁠. 그래야 틀린 말이 나올 때 이겨요⁠.⁠”

시어머니가 코로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아들 셋을 하나씩 보았다⁠.

“⁠테레비에서 그러더라⁠. 부모 버린 자식은 상속 못 받는다며⁠. 니들 다 상속 못 받게 혀 버릴 거여⁠.⁠”

명철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엄마⁠, 저 명절마다 왔어요⁠! 치킨 들고⁠!⁠”

“⁠들고만 왔지⁠.⁠”

“⁠먹고도 갔잖아요⁠!⁠”

해진이 볼펜 돌리던 손을 멈췄다⁠. “⁠할머니⁠, 그 제도 있어요⁠. 다만 생각하시는 거랑 조금 달라요⁠.⁠” 해진이 노트북 화면을 시어머니에게 돌렸다⁠. “⁠삼 년 전에 헌법재판소가⁠, 부모를 버리거나 학대한 자식까지 꼬박꼬박 유류분을 챙겨 가는 건 헌법에 안 맞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법이 바뀌었어요⁠. 작년 1월부터는 자식을 안 키운 부모가 상속권을 잃을 수 있게 됐고⁠, 작년 봄에 다시 고쳐서 자식이나 배우자도 부모를 중대하게 저버리면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되는 거네⁠.⁠”

“⁠중대하게요⁠, 할머니⁠. 아픈 부모를 버려두고 연락을 끊었다거나⁠, 학대를 했다거나⁠. 명절마다 치킨 들고 온 아들은 어려워요⁠.⁠”

“⁠치킨 들고 온 게 죄냐⁠?⁠”

“⁠죄는 아닌데 상속권 뺏을 만한 일도 아니에요⁠.⁠”

명호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리고 그 청구는 엄마가 유언으로 뜻을 밝혀 두고 유언집행자가 하거나⁠, 다른 상속인이 하는 거예요⁠. 엄마가 지금 하실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유언⁠? 나 아직 안 죽었다니께⁠.⁠”

“⁠그러니까요⁠.⁠”

시어머니의 엄포가 방바닥에 떨어져 아무도 줍지 않았다⁠. 둘째 동서가 반찬통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막내 동서는 치킨 상자를 무릎 위에서 쓰다듬었다⁠. 둘째 동서가 춘희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형님⁠, 어머님 피부가 더 좋아지셨어요⁠. 저승에 뭐 바르는 거 있나 봐요⁠.⁠”

“⁠형님⁠, 진짜 제사 안 지내요⁠?⁠” 막내 동서가 반대편에서 속삭였다⁠. “⁠그럼 저희 명절에 어디 가요⁠?⁠”

“⁠친정 가⁠.⁠”

막내 동서의 얼굴이 형광등처럼 환해졌다가⁠,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도로 꺼졌다⁠.

“⁠명길아⁠.⁠” 시어머니가 장남을 불렀다⁠. “⁠니가 장남이니께 동생들한테 받아 와⁠.⁠”

명길이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깍지 꼈다⁠. “⁠엄마⁠, 쟤들도 사정이⁠…⁠…⁠.⁠”

“⁠사정 없는 놈이 어딨어⁠. 나도 사정 있어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춘희를 힐끗 보았다가 도로 명길을 보았다⁠. “⁠니가 못 받아 오면 내가 직접 간다⁠.⁠”

*

9월 26일 일요일 저녁⁠, 시어머니는 정말로 직접 갔다⁠. 논산 시내 시장 골목 끝의 「⁠명철이네 통닭⁠」은 저녁 장사로 기름 냄새가 골목 입구까지 차 있었다⁠. 춘희가 가게 문을 밀자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가 카운터 옆 높은 의자에 앉았다⁠. 한월은 갓을 숙여 문을 통과하더니 냄새를 맡고 눈을 감았다⁠.

“⁠어서 오세⁠…⁠…⁠.⁠” 주방에서 나오던 명철이 국자를 떨어뜨렸다⁠.

가게 안에 손님이 두 테이블 있었다⁠. 창가 테이블의 중년 남자가 시어머니를 보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함을 뒤졌다⁠. 화면을 시어머니 얼굴 옆에 대 보았다⁠. 「⁠[부고] 송갑수 님 별세 · 상주 송명길 송명호 송명철⁠」⁠.

“⁠저⁠, 사장님⁠. 이분이⁠…⁠…⁠.⁠”

“⁠우리 엄마요⁠.⁠” 명철이 국자를 주웠다⁠. “⁠돌아오셨어요⁠.⁠”

“⁠아이고⁠, 그러셨구나⁠.⁠”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조 오만 원 했는데요⁠.⁠”

“⁠돌려드려요⁠?⁠”

“⁠아뇨⁠, 아뇨⁠. 그냥 반반 하나만 서비스로⁠…⁠…⁠.⁠”

카운터의 태블릿이 「⁠딩동⁠」 울렸다⁠. 배달 앱 주문이었다⁠. 「⁠후라이드 한 마리 · 요청사항⁠: 무 많이 주세요 사장님 어머님 돌아오셨다면서요 힘내세요⁠」⁠. 동네 소문이 배달 앱보다 빨랐다⁠.

“⁠차사님은 뭐 드실래요⁠?⁠” 명철이 물었다⁠.

“⁠무 많이요⁠.⁠”

*

주방은 좁고 뜨거웠다⁠. 튀김기 두 대에서 기름이 끓었고⁠, 벽에 붙은 종이에 「⁠기름 교체일⁠」과 「⁠월세 입금일⁠」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시어머니가 주방 문턱에서 지팡이를 짚고 버텼다⁠. 명철은 닭을 튀김옷에 굴리며 엄마를 보지 않았다⁠.

“⁠팔천 어디 썼냐⁠.⁠”

“⁠카드론 사천⁠, 밀린 월세 석 달 팔백사십⁠, 튀김기 할부 남은 거⁠, 앱 광고비⁠.⁠” 명철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반팔 아래 팔뚝에 동전만 한 화상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다⁠. “⁠엄마 돈 아니었으면 이 가게 7월에 닫았어요⁠.⁠”

“⁠닫지 그랬냐⁠.⁠”

“⁠닫으면 뭐 해요⁠. 쉰다섯에 어디 가서 닭을 튀겨요⁠?⁠” 명철이 닭을 기름에 넣었다⁠. 기름이 확 일어났다⁠. “⁠엄마가 그랬잖아⁠. 너는 뭘 해도 끝을 못 본다고⁠. 이거는 끝을 보고 싶었어⁠.⁠”

시어머니가 명철의 팔뚝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지팡이를 쥔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가 다시 쥐어졌다⁠.

“⁠팔은 왜 그 모양이냐⁠.⁠”

“⁠기름 튀어서요⁠.⁠”

“⁠토시를 껴야지⁠.⁠”

“⁠덥잖아요⁠.⁠”

명철의 코끝이 빨개졌다⁠. 시어머니가 혀를 찼다⁠.

“⁠울지 말고 기름 온도나 봐라⁠. 닭 탄다⁠.⁠”

명철이 허겁지겁 바구니를 건졌다⁠. 닭은 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바구니에서 날개 하나를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 뜨거워서 손을 털면서도 놓지 않았다⁠.

“⁠갚어⁠. 언제든 갚어⁠. 대신 오늘 닭은 내가 먹고 간다⁠.⁠”

“⁠엄마⁠, 그거 손님 거⁠…⁠…⁠.⁠”

“⁠니 엄마도 손님이여⁠.⁠” 시어머니가 날개를 베어 물었다⁠. “⁠짜다⁠. 염지 물을 반으로 줄여⁠.⁠”

카운터 앞에서 춘희는 한월과 나란히 앉아 무를 집어 먹었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모자의 목소리는 싸움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한월이 무를 오독오독 씹으며 말했다⁠.

“⁠저쪽에서는 이런 소리를 못 듣습니다⁠. 다들 조용해요⁠.⁠”

*

9월 27일 월요일⁠, 명길은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에 갔다⁠. 퇴직하고 처음 타 보는 시외버스였다⁠. 무릎 위에 귤 한 봉지를 올려놓고 가는 내내 창밖만 보았다⁠.

명호의 법무사 사무실은 법원 앞 상가 삼 층이었다⁠. 「⁠송명호 법무사 사무소 · 상속 · 등기 · 공탁⁠」⁠. 사무장이 커피를 내왔고⁠, 명호는 책상 너머에서 형이 내민 귤 봉지를 받아 서랍에 넣었다⁠.

“⁠돌려드리자⁠.⁠” 명길이 말했다⁠. 오는 내내 입안에서 굴린 말이었다⁠.

“⁠형은 얼마 돌려드리는데⁠?⁠”

“⁠나는 집⁠…⁠…⁠.⁠”

“⁠집은 어차피 엄마한테 도로 가⁠. 정정 허가 나면 형 이름 지우고 엄마 이름 다시 써⁠. 형이 내놓는 건 하나도 없어⁠.⁠” 명호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형은 잃을 게 없어⁠. 그러니까 형이 엄마 편 드는 건 공짜야⁠. 나는 일억 육천이야⁠. 12월에 딸 결혼식이고⁠, 아파트 대출은 갚아서 없어졌는데 이제 그걸 도로 빌려야 돼⁠. 이자는 형이 내줄 거야⁠?⁠”

명길은 커피잔을 쥐었다⁠. 뜨거웠는데 놓지 않았다⁠.

“⁠엄마가 귀신 되시면⁠…⁠…⁠.⁠”

“⁠그럼 형 집에 귀신 사는 거지⁠.⁠” 명호가 책상 위 서류를 반듯하게 맞췄다⁠. “⁠형⁠. 형이 엄마 편 들면 나도 할 말 있어⁠.⁠”

“⁠무슨 말⁠.⁠”

“⁠엄마 반닫이 세 번째 서랍⁠.⁠”

명길의 손에서 커피잔이 받침 위로 떨어졌다⁠. 커피가 받침에 흘렀다⁠. 사무장이 휴지를 들고 뛰어왔다⁠. 명호는 휴지를 받아 형 앞의 커피를 직접 닦았다⁠.

“⁠형이 조용하면 나도 조용해⁠. 그리고 나는 법원에서 반대할 거야⁠.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인지부터 따져야지⁠. 지문도 보고 유전자도 보고⁠.⁠”

“⁠너 엄마 손 잡아 봤잖아⁠.⁠”

“⁠그날은 따뜻했지⁠.⁠” 명호가 젖은 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법원은 손으로 안 봐⁠, 형⁠.⁠”

*

같은 날 오후 네 시⁠, 해진은 가정법원 민원실 창구에 서류를 냈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허가 신청 · 사건 본인 송갑수⁠」⁠. 접수 도장이 찍혔다⁠. 창구 직원이 서류를 받아 쌓인 더미 위에 올렸다⁠. 더미의 높이가 해진의 어깨까지 왔다⁠. 직원이 말했다⁠. “⁠오늘만 마흔 건째예요⁠.⁠”

저녁 일곱 시⁠, 명길이 마지막 시외버스로 돌아왔다⁠. 춘희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귤 줬어⁠.⁠”

“⁠그것만요⁠?⁠”

“⁠응⁠.⁠”

명길은 건넌방이 아니라 사랑채로 갔다⁠. 춘희가 마당을 가로질러 장독 뚜껑을 덮으러 가다 보니 사랑채 장지문에 명길의 그림자가 비쳤다⁠. 벽장에서 낚시 가방을 꺼내 지퍼를 열었다가⁠, 한참 들여다보고⁠, 도로 닫았다⁠. 명길은 낚시를 끊은 지 오 년이 넘었다⁠.

저녁 여덟 시⁠, 형제 단톡방에 명호의 글이 올라왔다⁠.

「⁠명호⁠: 법원에서 뵙겠습니다⁠. 감정 신청합니다⁠. 지문⁠, 유전자⁠」

명철이 우는 얼굴 이모티콘을 세 개 보냈다⁠. 명길은 읽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사흘 전에 춘희가 시어머니 휴대전화를 새로 만들어 드리면서 단톡방에 초대해 두었다⁠. 안방에서 시어머니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단추를 꾹 눌렀다⁠. 춘희가 가르쳐 준 음성 메시지 단추였다⁠.

방 안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시어머니가 휴대전화에 대고 딱 세 글자를 말하고 손가락을 뗐다⁠.

「⁠(⁠음성 메시지⁠)⁠」

대전의 명호가 메시지를 눌렀다⁠. 스피커에서 짙은 충청도 억양이 흘러나왔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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