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52자)

제 제사상 숟가락을 못 드는 시어머니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9월 20일 월요일 아침⁠, 춘희는 부엌 식탁에 휴대전화를 세워 놓고 기사를 소리 내어 읽었다⁠. 시어머니가 돋보기를 어디 두었는지 모른다며 읽으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돋보기는 시어머니의 관 속에 들어 있었다⁠.

「⁠법무부·법원 ‘⁠귀환자 지침⁠’ 발표 … 사망 기록 정정은 가정법원 허가로 신속 처리⁠」

“⁠그다음⁠.⁠”

“⁠재산은 실종선고 취소 규정을 끌어다 쓴다⁠. 고인이 돌아가신 줄 알고 상속받은 사람은 남아 있는 이익만 돌려준다⁠. 그 사이 사정을 모르는 사람과 한 거래는 그대로 둔다⁠.⁠”

“⁠실종선고는 또 뭐여⁠?⁠”

“⁠오래 소식 없는 사람을 법원이 돌아가신 걸로 보는 거래요⁠. 그러다 살아 돌아오면 법원이 그걸 거두고요⁠.⁠”

“⁠나는 소식이 없던 게 아니라 저승에 있었지⁠.⁠”

“⁠기사에도 그렇게 쓰여 있어요⁠. 꼭 맞는 법이 없어서 제일 비슷한 걸 빌려 쓴대요⁠.⁠”

시어머니가 숭늉을 후루룩 마셨다⁠. “⁠남의 법 빌려다 내 일 보는 거⁠, 그거 맘에 안 든다⁠.⁠”

“⁠빌린 법이라도 어머님 편이래요⁠.⁠”

“⁠편은 무슨⁠. 법이 언제 내 편 든 적 있냐⁠.⁠”

마당에서 한월이 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춘희의 휴대전화로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사흘 만에 화면 넘기는 법을 익혔고⁠, 이제는 광고를 건너뛰는 단추까지 알았다⁠.

점심나절 시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장독대로 갔다⁠. 춘희가 빨래를 널다 보니 시어머니가 맨 뒤 씨간장 독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월이 평상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머님⁠, 그건 무엇입니까⁠?⁠”

“⁠씨간장⁠. 우리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때부터 내려온 거여⁠.⁠” 시어머니가 국자로 간장을 떠서 손등에 한 방울 떨어뜨리고 핥았다⁠. 한참 입안에서 굴리더니 눈을 감았다⁠. “⁠해마다 새 장을 부어서 대를 잇는 겨⁠. 한 해라도 거르면 맛이 꺾여⁠.⁠”

“⁠이 집에서 누가 붓습니까⁠?⁠”

“⁠내가 삼십 년 부었고⁠.⁠” 시어머니가 뚜껑을 덮었다⁠. “⁠그다음은 저 애가 사십 년 부었지⁠.⁠”

“⁠맛은 어떻습니까⁠?⁠”

시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뚜껑 위의 낙엽을 손바닥으로 쓸어 내렸다⁠. 빨랫줄 아래에서 춘희는 수건을 털던 손을 멈추고 기다렸다⁠. 시어머니가 한월에게 작게 말했다⁠.

“⁠안 꺾였어⁠.⁠”

춘희에게까지 들리라고 한 말인지⁠, 들리지 말라고 한 말인지 춘희는 알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춘희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춘희는 젖은 수건을 빨랫줄에 널고 집게를 두 개 꽂았다⁠. 하나면 충분한 수건이었다⁠.

*

저녁 일곱 시⁠, 대전에서 명호가⁠, 시내에서 명철이 왔다⁠. 명철은 가게를 일찍 닫고 왔다며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삼 형제는 사랑채에 모여 문을 닫았다⁠. 춘희가 술상을 들고 미닫이 앞에 갔을 때 안에서 명철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남은 이익만이래⁠! 나 다 썼어⁠! 하나도 안 남았어⁠!⁠”

“⁠앉아⁠.⁠” 명호의 목소리였다⁠.

“⁠형⁠, 나 엄마한테 한 푼도 안 돌려줘도 돼⁠! 다 썼으니까⁠!⁠”

“⁠돈은 써도 남은 걸로 봐⁠.⁠”

노래가 멈췄다⁠. 춘희는 술상을 든 채 미닫이 앞에 서 있었다⁠.

“⁠뭐⁠?⁠”

“⁠대법원 판례가 그래⁠. 받은 게 돈이면 다 썼어도 남아 있는 걸로 본다고⁠. 네가 다 썼다는 걸 네가 증명해야 돼⁠. 근데 너 그 돈으로 카드론 갚았지⁠? 빚이 팔천 줄었잖아⁠. 줄어든 빚이 남은 이익이야⁠.⁠”

“⁠그게 무슨 법이야⁠? 다 썼는데 남았다는 게⁠!⁠”

“⁠대출 이자 안 내게 됐잖아⁠. 카드사 독촉 전화 안 오잖아⁠. 그게 남은 거야⁠.⁠”

“⁠그럼 나 독촉 전화 다시 받을게⁠! 그거 돌려줄게⁠!⁠”

“⁠전화는 못 돌려줘⁠, 인마⁠.⁠”

“⁠나도 마찬가지야⁠. 논 판 돈으로 아파트 대출 갚았으니까⁠.⁠”

“⁠논을 팔았어⁠?⁠” 명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이장님한테⁠. 형도 협의분할서에 도장 찍었잖아⁠. 내 앞으로 된 논을 내가 판 거야⁠. 잔금까지 9월 10일에 다 받았어⁠. 이장님은 엄마가 돌아오실 줄 몰랐으니까 그 거래는 그대로야⁠. 지침에 그렇게 나와⁠. 논은 안 돌아와⁠.⁠”

춘희는 술상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미닫이를 열지 않았다⁠. 마당 건너 논 위 하늘이 벌겋게 저물고 있었다⁠. 5월에 심은 벼가 이제 남의 벼였다⁠. 덕만이 추석날 왜 물꼬 이야기를 했는지 춘희는 그제야 알았다⁠.

*

저녁상은 안방에 차렸다⁠. 시어머니는 상석에 앉아 밥을 두 그릇째 비웠고⁠, 삼 형제는 젓가락만 움직였다⁠. 한월은 상 끝에서 조기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발라 먹었다⁠.

“⁠춘희야⁠.⁠”

“⁠예⁠, 어머님⁠.⁠”

“⁠니는 뭐 받았냐⁠.⁠”

젓가락 소리가 멎었다⁠. 명철이 물컵을 들었다 놓았다⁠. 명길은 국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명호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형수님은 상속인이 아니라서요⁠.⁠”

“⁠내가 너한테 물었냐⁠.⁠” 시어머니가 명호를 보지 않고 명길을 보았다⁠. “⁠명길아⁠. 니가 장남이라는 게 그걸 가만뒀냐⁠.⁠”

“⁠법이 그렇대서요⁠, 엄마⁠.⁠”

“⁠법⁠.⁠” 시어머니가 법이라는 말을 씹듯이 되뇌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춘희를 정면으로 보았다⁠. 매서운 눈이 춘희를 아래위로 훑었다⁠. “⁠니는 왜 가만있었냐⁠. 사십 년을 그리 살고 입은 뒀다 뭐 혀⁠.⁠”

춘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허전했다⁠.

“⁠어머님이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내가 뭘⁠.⁠”

“⁠시집온 첫해 제사 때요⁠. 제가 탕국 간 좀 봐도 되냐고 여쭸다가 혼났어요⁠. 종부는 상 앞에서 입 다무는 거라고⁠. 그다음부터 사십 년 동안 간은 봤어도 입은 안 열었어요⁠.⁠”

“⁠그건 국 얘기고⁠.⁠”

“⁠저한테는 다 국 얘기였어요⁠.⁠”

명철이 숨을 멈췄다⁠. 한월이 조기 꼬리를 입에 문 채 굳었다⁠.

“⁠어머님⁠.⁠” 춘희가 공손하게 무릎을 꿇어 앉았다⁠. 화가 날수록 자세가 반듯해지는 것은 시어머니에게 배운 버릇이었다⁠. “⁠어머님 가시면⁠, 저 제사 안 지낼 거예요⁠.⁠”

“⁠뭐여⁠?⁠”

“⁠종가 제사도요⁠. 어머님 제사도요⁠. 일 년에 열두 번⁠, 사십 년이면 사백팔십 번이에요⁠. 이제 그만할래요⁠.⁠”

안방이 조용해졌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명호가 입을 열려다 닫았다⁠. 명길은 춘희를 보았고⁠, 춘희는 시어머니를 보았고⁠, 시어머니는 아무도 보지 않고 숭늉 그릇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한월이 조기 꼬리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갓끈을 고쳐 맸다⁠. “⁠지금 한 가지 보여 드려야겠습니다⁠. 미루면 일이 더 꼬일 것 같아서요⁠.⁠”

한월이 대청으로 나갔다⁠. 다들 따라 나갔다⁠. 영정 앞 작은 상에 밥 한 그릇과 탕국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탈상 전까지 아침저녁으로 고인에게 올리는 상식이었다⁠. 춘희가 49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올렸고⁠, 시어머니가 돌아온 뒤에도 손이 먼저 움직여 오늘 저녁에도 올려 두었다⁠.

“⁠산 사람 앞에 상식을 올리냐⁠?⁠” 시어머니가 춘희를 흘겨보았다⁠.

“⁠손이 그냥 갔어요⁠.⁠”

“⁠어머님⁠, 저 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 보십시오⁠.⁠” 한월이 말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내려놓고 상 앞에 앉았다⁠. 놋숟가락을 쥐었다⁠. 손목에 힘을 주었다⁠. 숟가락이 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두 손으로 쥐었다⁠. 아흔 살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졌다⁠. 숟가락은 상에 못 박힌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엄마⁠, 장난치지 마⁠.⁠” 명철이 다가와 같은 숟가락을 집었다⁠. 숟가락이 가볍게 들렸다⁠. 명철은 얼떨결에 탕국을 한 술 떠먹고⁠, 맛을 보더니 “⁠싱겁다⁠” 했다⁠. 명호가 숟가락을 빼앗아 쥐어 보았다⁠. 가벼웠다⁠. 명길도 쥐어 보았다⁠. 가벼웠다⁠. 세 아들이 돌아가며 숟가락을 들었다 놓는 동안 시어머니는 상 앞에 앉아 제 손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이 상은 어머님을 위해 차린 상입니다⁠.⁠” 한월이 말했다⁠. “⁠11월 3일 해 질 녘에도 이 집에서 어머님을 위해 상을 차리셔야 합니다⁠. 어머님이 거기서 한 술 뜨셔야 순번표에 번호가 새겨집니다⁠. 이승에 남은 일이 안 풀렸으면 숟가락이 이렇게 맷돌처럼 무겁습니다⁠.⁠”

“⁠못 들면요⁠?⁠” 명호가 물었다⁠. 처음으로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번호 없이는 저쪽 문을 못 넘습니다⁠. 대문 밖 길에 남으셔서 이 집 둘레를 도십니다⁠. 계속⁠.⁠” 한월이 팻말을 고쳐 쥐었다⁠. “⁠저도 같이 남습니다⁠. 차사는 넋을 두고 못 갑니다⁠. 규정상 그렇습니다⁠.⁠”

“⁠계속이 얼마나요⁠?⁠”

“⁠계속입니다⁠.⁠”

삼 형제가 서로를 보았다⁠. 명철이 먼저 말했다⁠. “⁠그럼 엄마가 이 집에 계속⁠…⁠…⁠.⁠”

“⁠이 집 형 거지⁠?⁠” 명호가 명길을 보았다⁠.

“⁠엄마 거래⁠, 이제⁠.⁠” 명길이 말했다⁠. 장관 발표 뒤로 집은 다시 어머니 것이 될 판이었다⁠.

“⁠그럼 형이 모시고 살아야지⁠.⁠”

“⁠귀신을⁠?⁠”

“⁠엄마를⁠.⁠”

“⁠엄마가 귀신이 되시는 거잖아⁠.⁠”

“⁠말조심해⁠.⁠”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숟가락을 놓친 손이 아직 떨렸다⁠. 명호가 저도 모르게 팔을 내밀어 어머니를 받쳤다⁠. 면사무소에서 잡지 않은 손이었다⁠. 손은 따뜻했다⁠. 명호가 놀란 얼굴로 손을 뗐다⁠.

*

밤 열 시⁠, 사랑채의 형제 단톡방에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셋이 같은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입 대신 손가락으로 싸웠다⁠.

「⁠명철⁠: 형 우리 엄마 정리 도와드려야 되는 거 아냐⁠」

「⁠명호⁠: 정리가 뭔지부터 알아야지⁠」

「⁠명철⁠: 엄마가 돈 다 돌려받으면 정리되는 거 아냐⁠」

「⁠명호⁠: 그럼 너 팔천 지금 있어⁠?⁠」

「⁠명철⁠: …⁠…⁠」

「⁠명철⁠: 형은 일억 육천 있어⁠?⁠」

「⁠명호⁠: …⁠…⁠」

「⁠명길⁠: 자자⁠」

「⁠명철님이 채팅방 이름을 ‘⁠송씨 삼형제(⁠+형수님⁠)(⁠+엄마 귀신 될 수도⁠)⁠’로 바꿨습니다⁠」

「⁠명호⁠: 이름 바꿔라⁠」

명길이 단톡방을 닫고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춘희가 베개 커버를 갈고 있었다⁠. 명길은 문간에 선 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았다⁠.

“⁠제사 안 지낸다는 거⁠, 진심이야⁠?⁠”

“⁠진심이에요⁠.⁠”

명길이 한참 문틀을 손톱으로 긁었다⁠. “⁠…⁠…잘했어⁠.⁠”

춘희가 베개를 내려놓았다⁠. 사십 년 만에 처음 듣는 대답이라 다음 말을 준비해 두지 않았다⁠.

“⁠그럼 논은요⁠. 당신은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법이 그렇대서⁠.⁠”

“⁠당신 그 말⁠, 오늘만 두 번째예요⁠.⁠”

명길은 대답 대신 베개를 집어 들고 사랑채로 돌아갔다⁠. 동생들 곁에서 자겠다는 뜻이었다⁠. 춘희는 갈다 만 베개 커버를 손에 든 채 서 있다가⁠, 시어머니 이불을 펴러 안방으로 건너갔다⁠.

안방에서 춘희는 이불을 펴다가 시어머니가 장롱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반닫이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고 있었다⁠. 세 번째 서랍에서 손이 멈췄다⁠. 비어 있었다⁠. 시어머니가 서랍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 번 쓸었다⁠. 먼지 한 톨 없이 닦여 있었다⁠. 장례 뒤에 누가 반닫이를 닦았는지 춘희는 몰랐다⁠. 춘희는 닦은 적이 없었다⁠.

“⁠어머님⁠, 뭐 찾으세요⁠?⁠”

“⁠아녀⁠.⁠” 시어머니가 서랍을 닫았다⁠. 소리가 컸다⁠. 시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문지방까지 나갔다⁠. 사랑채 불빛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토요일 아침 열 시⁠! 안방에 다 모여⁠! 니들 마누라들까지 데려와⁠!⁠”

사랑채 미닫이가 열렸다⁠. 셋이 고개만 내밀었다⁠.

“⁠나눠 간 거 다 돌려놓을 궁리 해 오고⁠!⁠” 시어머니가 이번에는 춘희를 돌아보았다⁠. “⁠니는 탕국 끓여 놔⁠. 간 제대로 혀서⁠.⁠”

“⁠제사 안 지낸다니까요⁠, 어머님⁠.⁠”

“⁠제사 말고⁠. 국 끓이라고⁠.⁠” 시어머니가 이불 위에 털썩 앉았다⁠. “⁠그 집 육개장은 맛이 없었다며⁠.⁠”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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