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86자)
은행 창구에서 “고객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9월 16일 목요일, 춘희는 새벽 다섯 시에 쌀을 씻다가 바가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부엌 문턱에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었다. 초록 한복 그대로였고, 비녀도 그대로였다. 밤새 꿈이었기를 바란 마음이 쌀뜨물과 함께 하수구로 내려갔다.
“밥은?”
“지금 안쳐요, 어머님.”
“물 적게 혀. 저승 밥은 맹물에 만 것 같어서 입이 다 헐었다.”
시어머니는 아침상에서 밥을 세 그릇 먹었다. 생전에는 반 공기를 남기던 사람이었다. 명철이 숟가락을 든 채 엄마 입만 보다가 국을 흘렸다. 명호는 수저를 놓고 팔짱을 꼈고, 명길은 김치만 집었다. 사랑채 툇마루에서 잤다는 차사 한월은 갓을 벗지 않은 채 상 끝에 붙어 앉아 어젯밤 남은 치킨을 밥에 얹어 먹었다. 갓 끝이 자꾸 명철의 이마를 쳤다.
“차사님, 그거 어제 거라 눅눅해요.” 명철이 이마를 문질렀다.
“저쪽 음식에 비하면 이건 잔칫상입니다.” 한월이 닭 다리를 하나 더 집었다. “혹시 사장님 가게는 배달도 됩니까?”
“한골까지는 배달비 따로예요.”
창호지로 들어온 아침 볕에 방바닥으로 사람 그림자가 여럿 누웠다. 시어머니 자리만 그림자가 물에 푼 듯 흐렸다. 마당에서는 누렁이가 대문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 어젯밤부터 한 번도 짖지 않았다.
한월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도포 소매에서 손바닥만 한 나무패를 꺼냈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패였다.
“순번표입니다.” 한월이 패를 상 한가운데 놓았다. “어머님은 사십구재 날부터 49일째 되는 11월 3일, 해 질 녘에 저와 같이 가십니다. 그 전에 이승 일을 정리하셔야 여기에 번호가 새겨집니다. 번호가 있어야 저쪽 대기실에 자리가 납니다.”
“정리 못 하면요?” 명철이 물었다.
“그건 그날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다들 밥을 못 드셔서요.”
“그럼 엄마 11월에 또 가시는 거예요?” 명철이 숟가락을 놓았다. “장례 또 해요? 부조금 또 받아요?”
명호가 명철의 뒤통수를 쳤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들어 명호의 뒤통수를 쳤다. 명호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
“정리는 내가 알아서 헌다.” 시어머니가 숭늉 그릇을 내려놓았다. “우선 니들 나눠 가진 거 다 돌려놔. 나 아직 안 죽었으니께 내 것이여.”
명호가 팔짱을 풀었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손님에게 말할 때처럼 손바닥을 상 위에 펴 놓았다.
“엄마. 상속은 사망으로 시작돼요. 민법 997조에 그렇게 나와요. 엄마는 7월 29일에 돌아가셨고, 병원에서 사망진단서가 나왔고, 제가 사망신고를 했어요. 주민등록은 말소됐고, 등기는 끝났어요. 지금 엄마 이름으로 된 건 숟가락 하나도 없어요.”
“그 숟가락 지금 내가 들고 있다.”
“그건 형 숟가락이에요. 이 집이 형 거니까.”
명길이 김치를 집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법이 날 묻었냐?” 시어머니가 명호를 쏘아보았다. “니가 날 묻었지.”
“제가 묻었죠. 상주였으니까요.” 명호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엄마, 저 미워하셔도 돼요. 근데 법이 그래요. 엄마가 돌아가신 줄 알고 은행이 돈 내줬고, 등기소가 등기해 줬어요. 저희가 훔친 거 아니에요.”
“형, 엄마가 살아 오셨는데 좋아해야 되는 거 아냐?” 명철이 울먹였다.
“좋지. 좋은데.” 명호가 말끝을 삼켰다. “좋은 거랑 돌려드리는 거는 다른 얘기야.”
시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명길아.”
“예, 엄마.”
“니는 장남이 뭐 허냐.”
명길이 한참 숭늉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일단 진정하시고 아침부터 드세요.”
“벌써 세 그릇 먹었다.”
춘희는 부엌으로 가는 척하며 상을 들었다. 숭늉 그릇이 쟁반 위에서 달그락거렸다. 아무도 춘희를 보지 않았고, 춘희도 아무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시어머니가 문지방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춘희야, 내일 은행 간다. 차 대 놔.”
*
9월 17일 금요일 아침, 연휴가 끝난 면 소재지 은행 앞에는 노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춘희의 경차 뒷자리에서 한월이 갓을 쓴 채 허리를 접고 내렸다. 차 안에서 내내 갓을 벗으라고 했지만 한월은 차사가 갓을 벗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했다. 안전띠도 규정이냐고 물으니, 그건 이승 규정이라 따르겠다고 했다.
번호표 기계가 「대기 번호 37」을 뱉었다. 한월이 종이를 받아 들고 신기하다는 듯 뒤집어 보았다.
“저쪽도 번호표를 씁니다. 다만 저쪽은 지금 대기 번호가 여섯 자리라서요.”
“조용히 혀.” 시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지팡이를 무릎 사이에 세웠다. “여기도 줄 길다.”
37번이 불리자 시어머니는 반닫이에서 꺼내 온 주민등록증을 창구에 내밀었다. 사진 속 시어머니는 지금보다 이십 년 젊었고, 턱은 하나였다. 창구 직원이 웃으며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넣었다가, 화면을 보고 웃음을 거두었다. 마우스를 두 번 눌렀고, 다시 눌렀다. 옆 창구 직원을 불렀다. 둘이 화면을 같이 보았다.
“저, 고객님.” 직원이 화면을 이쪽으로 살짝 돌렸다. 「사망자 정보 확인 · 거래 불가」. “고객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전산상으로는요. 7월에 사망 등록이 되셨고, 예금은 상속인분께 지급됐습니다. 계좌도 해지됐고요.”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들었다. 창구 칸막이 유리 앞에서 지팡이 끝이 부르르 떨었다.
“내가 여기 앉어 있는디 누가 죽어!”
지점장이 뛰어나왔다. 대기석의 노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고, 누군가 “송 여사님 아니셔?” 했고, 누군가 “장례식장 갔었는디” 했다. 한월이 팻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춘희는 시어머니의 지팡이 끝을 손으로 감싸 쥐고 지점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머님이 어젯밤에 오셔서요.”
“어디서요?”
춘희는 한월을 보았다. 한월이 팻말 뒤에서 작게 말했다. “저쪽에서요.”
*
면사무소로 가는 길에 시어머니는 창밖만 보았다. 마을 앞 논에서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였고, 시어머니의 고개가 논을 따라 천천히 돌아갔다. 뒷자리의 한월은 창문을 내리고 바람에 갓끈을 날리며 눈을 감았다.
“장례 때 누가 젤 많이 울었냐.” 시어머니가 창밖을 본 채 물었다.
“막내 도련님이요. 사흘 내내요.”
“그건 알고. 명호는?”
“둘째 도련님은 부조금 들어온 걸 사흘 내내 엑셀로 정리하셨어요.”
“그것도 알고.” 시어머니가 혀를 찼다. “니는?”
“저는 전 부쳤어요. 장례식장 음식이 모자라서요. 문상객이 삼백 명 넘게 왔어요.”
“삼백? 생각보다 적다.” 시어머니가 입을 삐죽였다. “명길이는?”
춘희는 핸들을 쥔 고무장갑을 내려다보았다. 운전할 때도 장갑을 벗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범은 사흘 내내 신발 정리했어요. 문상객 신발을 짝 맞춰서 앞코를 다 문 밖으로 돌려 놓았어요. 아무하고도 말을 안 하고요.”
시어머니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차가 면 소재지 다리를 건넜다.
“어머님, 왜 오셨어요?”
“만원이라 쫓겨났다니께.”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 뭐.”
춘희는 더 묻지 않았다. 뒷자리에서 한월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규정상 사유는 정원 초과 하나뿐입니다. 다만 다들 돌아갈 데를 골라서 가시긴 합니다. 어머님은 대문 앞에서 한 번도 안 망설이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뒷좌석 바닥을 쿵 찧었다. 한월이 입을 다물었다.
면사무소 민원실은 은행보다 조용했다. 가족관계 창구의 젊은 주무관은 사정을 다 듣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가 도로 당겼다.
“사망신고를 취소하는 서식은 없어요.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주무관이 법령집을 넘겼다. “기록이 틀렸으면 고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사망 기록을 지우려면 가정법원 허가를 받아 오셔야 해요. 저희 마음대로는 못 해요.”
“그럼 나 다시 출생신고 혀 줘.”
“어머님, 출생신고는 아기만 돼요.”
“나도 한때는 아기였어.”
“주민등록도 말소돼서요, 어머님은 지금 등본도 못 떼세요.” 주무관이 모니터를 이쪽으로 돌렸다가 얼른 다시 돌렸다. 화면에 시어머니 이름 옆으로 「사망」 두 글자가 떠 있었다. “죄송해요. 보시라고 돌린 게 아니라.”
“봤어. 글씨 크게 써 놨네.”
주무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더니 주무관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받았다. “네, 형님. 네, 지금 오셨어요.” 십 분 뒤 민원실 문이 열리고 명호가 들어왔다. 주무관은 명호의 고향 후배였다.
명호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서류 가방을 든 채 시어머니 앞까지 와서 멈췄다.
“엄마, 법원에 정정 신청하시면 저는 반대 의견 낼 거예요. 이해관계인으로요.”
“반대?”
“정정은 기록이 틀렸을 때 하는 거예요. 엄마 사망은 틀린 게 아니었어요.” 명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제가 병원에서 엄마 손 잡고 있었어요. 의사가 시간 보고 진단서 썼어요. 그게 착오면, 그날 제가 본 건 뭐예요?”
민원실이 조용해졌다. 번호표 기계만 혼자 「띵」 했다.
“니가 손 잡고 있었냐.” 시어머니가 물었다.
“네.”
“손이 차더냐.”
명호가 대답하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주름진 손등에 검버섯이 앉은 손이었다.
“그럼 지금 잡어 봐라. 찬가.”
명호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서류 가방 손잡이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명호는 잡지 않았다. 대신 안경을 벗어 닦았다.
“잡으면 저 소송 못 해요, 엄마.”
춘희는 둘 사이에 서 있지 않았다. 창구 옆 정수기 앞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 시어머니에게 건넸다. 시어머니가 물을 받았고, 명호가 고개를 돌렸고, 한월이 팻말을 품에 안고 천장을 보았다.
*
민원실 구석 텔레비전에서 정오 뉴스가 시작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전국에서 ‘돌아온 사망자’ 신고 잇따라 … 사십구재 마친 고인들 귀가」
화면이 바뀌었다. 부산의 한 아파트 현관에서 상복 입은 딸이 아버지를 끌어안고 울었고, 전주의 장례식장에서는 영정 앞에 영정 속 할머니가 앉아 육개장을 먹었다. 자막이 이어졌다. 「경찰 “사칭 여부 확인 중” … 지문 일치 사례 늘어」.
“저쪽 대기실이 복도까지 찼습니다.” 한월이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다 건너도 마찬가지랍니다. 다들 49일 동안 돌려보냈어요.”
주무관의 책상 전화가 울렸다. 「띵」 소리와 함께 번호표 기계가 또 숫자를 뱉었다. 민원실 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 분이 상복 차림의 아들 손을 잡고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번호표를 뽑으며 말했다. “나 살았다고 신고하러 왔슈.”
시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몇 번이여?”
“삼십팔 번.”
“나는 아까 은행서 삼십칠 번이었어.” 시어머니가 턱을 들었다. “여기서도 내가 먼저여.”
주무관이 법령집을 덮고 이마를 짚었다.
곧 화면 아래로 빨간 띠가 흘렀다. 「속보」. 법무부 장관이 브리핑룸 연단에 올라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장관의 안경알에 연달아 튀었다.
“정부는 돌아오신 분들을 살아 있는 국민으로 대하겠습니다. 사망 기록은 가정법원을 통해 신속히 정정하도록 하고, 재산 문제는 기존 법을 끌어다 쓰는 지침을 다음 주 초까지 내놓겠습니다.”
명호의 손에서 휴대전화가 미끄러져 민원실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이 위로 향한 채 떨어져 형제 단톡방이 그대로 보였다. 맨 아래에 명철의 메시지가 방금 올라와 있었다.
「명철: 형 장관이 엄마 편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