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16자)

제 영정 사진에 턱이 두 개라는 시어머니

저승 만원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 피오담

엄춘희는 2027년 9월 15일 추석 아침 아홉 시에 벌써 프라이팬 네 개를 불에 올려 두고 있었다⁠. 세 개에서는 전이 지글거렸고 맨 끝 하나는 비워 두었다⁠. 사십 년 명절을 치르면 무엇이든 꼭 하나가 모자란다는 것을 손이 먼저 안다⁠.

오늘은 상이 둘이었다⁠. 시어머니 송갑수가 지난 7월 29일 아흔으로 세상을 떴고⁠, 49일째가 하필 추석날이었다⁠. 사십구재는 새벽에 절에서 올렸고⁠, 집에서는 차례상 옆에 시어머니 상을 하나 더 놓기로 했다⁠. 막내 시동생 명철은 이 날짜를 듣고 “⁠엄마가 끝까지 일을 몰아서 주시네⁠” 하고 울다 웃었다⁠.

찬장 유리에 춘희가 비쳤다⁠. 통통한 몸에 흰 상복 한복을 입었고⁠, 짧은 곱슬 파마는 기름 김에 눌려 정수리가 납작했다⁠. 손에는 분홍 고무장갑⁠. 상복에 고무장갑이라니 어울리지 않았지만⁠, 춘희는 부엌에 들어서면 장갑부터 꼈고 상이 다 치워지기 전에는 벗지 않았다⁠.

식탁 위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송씨 삼형제(⁠+형수님⁠)⁠」

「⁠명철⁠: 형수님 저희 열한 시 도착⁠!⁠」

「⁠명철⁠: 전은 제가 사 갈까요⁠?⁠」

「⁠명철⁠: 아 전은 집에 많지 참⁠」

「⁠명철⁠: 그럼 치킨 스무 마리 가져갈게요 엄마 치킨 좋아했잖아⁠」

「⁠명호⁠: 사십구재 날에 치킨은 좀 아니지⁠」

「⁠명철⁠: 엄마 마지막으로 드신 게 우리 가게 반반이었어⁠」

「⁠명호⁠: 등기 다 끝났다⁠. 서류 들고 간다⁠」

춘희는 「⁠네 조심히 오세요⁠」를 쳤다⁠. 사십 년째 같은 답이라 자판이 알아서 글자를 띄웠다⁠.

탕국 간은 장독대 맨 뒤 씨간장 독에서 떠 왔다⁠. 백 년 넘게 대를 이어 온 간장이었다⁠. 시어머니가 시집와서 삼십 년⁠, 춘희가 사십 년⁠, 해마다 새 간장을 부어 대를 이었다⁠. 국자를 넣을 때마다 숨을 참는 버릇은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오늘은 한 국자를 뜨려다 반 국자만 떴다⁠. 왜 그랬는지 춘희도 몰랐다⁠.

*

정오가 되자 대청이 꽉 찼다⁠. 병풍 앞에 차례상이 놓였고⁠, 옆의 작은 상 위에 시어머니 영정이 웃고 있었다⁠. 팔순 잔치 때 찍은 사진이었다⁠. 명길이 고르면서 “⁠엄마가 제일 크게 웃은 게 이거라서⁠” 했는데⁠, 크게 웃느라 턱이 두 겹으로 접혀 있었다⁠.

명철은 치킨 상자를 마루 끝에 쌓아 놓더니 반반 한 마리를 시어머니 상에 올리겠다고 버텼다⁠.

“⁠치킨은 상에 못 올려⁠.⁠” 명호가 말렸다⁠.

“⁠홍동백서 어디에 치킨 올리지 말라고 써 있어⁠? 엄마가 좋아하셨다니까⁠.⁠”

“⁠양념이야⁠, 후라이드야⁠?⁠”

“⁠반반⁠.⁠”

“⁠그럼 홍동백서로 치면 양념은 동쪽⁠, 후라이드는 서쪽이네⁠.⁠” 명호가 상자를 들어 마루 끝에 도로 내려놓았다⁠. “⁠둘 다 안 돼⁠.⁠”

절을 할 때 명철은 엎드린 채 한참 어깨를 들썩였다⁠. 둘째 명호는 절을 마치자마자 안경을 고쳐 쓰고 서류 봉투를 열었다⁠.

“⁠정리 끝났습니다⁠. 다들 한 부씩 가지세요⁠.⁠” 명호가 종이를 돌렸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 “⁠논 열두 마지기는 제 앞으로⁠, 엄마 예금 팔천은 명철이⁠, 이 집하고 선산은 형 앞으로 했어요⁠. 협의분할서에 다 도장 받았고요⁠.⁠”

“⁠형이 법무사라 빠르다⁠.⁠” 명철이 코를 풀었다⁠. “⁠엄마 가신 지 한 달 반 만에 끝났어⁠.⁠”

“⁠빨리 해야 세금도 덜 헷갈려⁠.⁠”

장남 명길은 종이를 받아 접더니 술잔부터 찾았다⁠. 춘희는 탕국 그릇을 놓다가 종이를 보았다⁠. 이름이 셋 있었다⁠. 춘희는 탕국 그릇을 반 바퀴 돌려 놓았다⁠. 그릇에 새긴 복(⁠福⁠) 자가 영정을 보게⁠.

*

명호가 얼음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왔을 때 춘희는 남은 녹두전을 채반에 옮기고 있었다⁠.

“⁠형수님⁠, 내년부터 7월 29일에 기제사가 하나 늘어요⁠.⁠” 명호가 냉동실을 열며 말했다⁠. “⁠엄마는 형수님 손맛 아니면 안 드세요⁠. 계속 부탁드릴게요⁠.⁠”

“⁠도련님⁠, 논은요⁠?⁠”

“⁠말씀드렸잖아요⁠. 제 앞으로 했다고⁠.⁠”

“⁠어머님이 논은 큰애 몫이라고 하셨어요⁠. 올봄 모내기 때도 논둑에서 제 손 잡고 그러셨어요⁠.⁠”

명호가 얼음 그릇을 든 채 몸을 돌렸다⁠. 김이 서린 안경 너머로 눈이 한 번 깜박였다⁠.

“⁠형수님⁠. 며느리는 상속인이 아니에요⁠. 민법에 상속 순서가 나와 있는데 자식이 맨 앞이고⁠, 며느리는 거기 없어요⁠. 제가 만든 법이 아니고요⁠.⁠”

“⁠어머님 말씀은요⁠?⁠”

“⁠말로 하신 건 법에 없어요⁠.⁠” 명호가 얼음을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유언은 글로 써야 되고⁠, 글도 형식이 맞아야 돼요⁠. 주소⁠, 날짜⁠, 이름⁠, 도장⁠.⁠”

“⁠도련님은 그런 걸 다 아시네요⁠.⁠”

“⁠직업이니까요⁠.⁠” 명호가 얼음 그릇을 내려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형수님⁠, 저 12월에 딸 시집보내요⁠. 대전 아파트 대출이 아직 반이에요⁠. 저도 사정이 있어요⁠. 형은 이 집 받았잖아요⁠. 형수님도 이 집에 사시는 거고요⁠.⁠”

부엌 문간에 명길이 빈 술잔을 들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랐다⁠. 춘희가 남편을 보았다⁠. 명길은 춘희를 보지 않고 냉장고를 보았다⁠.

“⁠술 좀 더 있나⁠.⁠”

“⁠김치냉장고 아래 칸에요⁠.⁠”

명길이 막걸리 두 병을 꺼내 들고 나갔다⁠. 명호가 따라 나갔다⁠. 춘희는 고무장갑을 손목까지 바짝 당겨 올리고 비워 둔 네 번째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모자란 것은 없었다⁠. 그래도 무엇이든 부쳐야 했다⁠.

*

오후 세 시쯤 대문 밖에서 경운기 소리가 멈췄다⁠. 이장 변덕만이 막걸리 한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예순여섯⁠, 마을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고 제일 늦게 자는 사람이었다⁠. 덕만은 대청에 올라 영정에 절을 두 번 하고⁠, 일어나다 무릎을 짚었다⁠.

“⁠아이고⁠, 형님⁠. 추석에 사십구재라니 끝까지 깔끔하시네⁠.⁠” 덕만이 영정에 대고 말하더니 부엌 앞에 선 춘희를 보았다⁠. “⁠춘희 씨⁠, 고생 많았슈⁠. 사십 년이여⁠, 사십 년⁠.⁠”

“⁠이장님도 오시느라 애쓰셨어요⁠.⁠”

“⁠논은 걱정 말어유⁠. 내년부터 그 논은 내가 잘 지을 테니께⁠.⁠”

춘희가 고무장갑 낀 손을 멈췄다⁠. “⁠이장님이 지으세요⁠?⁠”

“⁠아⁠, 명호가 아무 말 안 혔어⁠? 그게 벌써 다⁠…⁠…⁠.⁠”

“⁠이장님⁠!⁠” 사랑채에서 명호가 막걸리 사발을 들고 뛰어나왔다⁠. “⁠이리 오세요⁠. 형님이 이장님 오시면 드린다고 담금주 꺼내 놨어요⁠.⁠”

덕만이 명호에게 팔을 잡혀 사랑채로 끌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춘희 씨⁠, 그 논 물꼬는 춘희 씨가 제일 잘 알지⁠. 내년 봄에 좀 봐 줘유⁠.⁠”

춘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마을 앞 논 열두 마지기에는 지금 춘희가 5월에 심은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를 낼 때 시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논둑에 서서 줄이 비뚤다고 소리를 질렀고⁠, 해 질 녘에는 춘희 손을 잡고 “⁠이 논은 큰애 몫이여⁠”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춘희와 개구리들뿐이었다⁠.

*

해가 지자 삼 형제는 사랑채에 상을 펴고 마셨다⁠. 구석의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혼자 떠들었다⁠. 「⁠고령 사망자 올해 역대 최다 전망 … 화장장 예약 일주일씩 밀려⁠」⁠. 명철은 세 잔째부터 울었다⁠.

“⁠배달 앱 수수료가 한 마리에 사천 원이야⁠, 형⁠. 내가 닭을 튀기는 거야⁠, 앱을 튀기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 돈으로 카드론 막았잖아⁠.⁠” 명호가 잔을 채웠다⁠.

“⁠막았지⁠. 막으니까 또 구멍이 나⁠.⁠” 명철이 치킨 다리를 들고 흔들었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나 등짝 맞았어⁠.⁠”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너 치킨집 안 했어⁠. 엄마가 기름 냄새 싫어하셨잖아⁠.⁠” 명호가 텔레비전을 턱으로 가리켰다⁠. “⁠봐라⁠. 저승도 요새 자리 없대⁠. 엄마 가실 때 잘 가셨다⁠.⁠”

명길이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껐다⁠. “⁠자자⁠.⁠” 저녁 내내 장남이 한 말은 이 두 글자뿐이었다⁠.

열한 시가 넘자 사랑채가 조용해졌고⁠, 코 고는 소리가 세 갈래로 났다⁠. 춘희는 안방에서 딸 선영과 영상통화를 했다⁠. 서울에서 회사 당직에 걸려 못 내려온 선영이 화면 속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엄마⁠, 이제 할머니 안 계시니까 엄마도 좀 쉬어⁠.⁠”

“⁠쉬긴⁠. 내년부터 기제사가 하나 늘어⁠.⁠”

“⁠아빠는⁠?⁠”

“⁠주무셔⁠.⁠”

선영이 젓가락을 멈췄다⁠.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

“⁠전 냄새를 하도 맡아서 그래⁠.⁠”

*

자정 무렵 춘희는 마당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놋그릇을 닦았다⁠. 놋그릇은 세제로 닦으면 빛이 죽어서 짚 수세미에 기왓가루를 묻혀 문질렀다⁠. 보름달이 감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와 대야 물에 떴다⁠. 장독대 옆에서 누렁이가 턱을 앞발에 괴고 졸았다⁠.

대문이 삐걱 열렸다⁠.

누렁이가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짖지 않았다⁠. 춘희는 놋 탕기를 쥔 채 대문을 보았다⁠.

지팡이 끝이 먼저 문턱을 넘었다⁠. 나무 지팡이가 마당 흙을 두 번 찧었고⁠, 작은 노인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들어왔다⁠. 흰머리를 뒤로 단단히 쪽 찌고 비녀를 질렀다⁠. 초록 한복에 붉은 고름이 달빛을 받아 검붉게 보였다⁠. 칠순 잔치 때 입고⁠, 입관할 때 수의 대신 넣어 달라던 한복이었다⁠. 눈매는 사십 년 동안 춘희가 부엌에서 등으로 느끼던 눈매 그대로였다⁠. 매서웠다⁠.

시어머니는 춘희를 보지 않았다⁠. 마당 한가운데까지 걸어가 지팡이를 짚고 서더니⁠, 남은 손을 들어 대청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 제 영정이 있었다⁠.

“⁠저 사진 누가 골랐냐⁠.⁠”

춘희의 입이 벌어졌다⁠.

“⁠턱이 두 개여⁠.⁠”

놋 탕기가 춘희 손에서 빠져나가 수돗가 시멘트에 떨어졌다⁠. 쨍 소리가 마당을 한 바퀴 돌았고⁠, 탕기는 데굴데굴 굴러 장독대 앞에서 멈췄다⁠.

열린 대문 뒤에 누가 또 있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남자가 나무 팻말 하나를 들고 갓 밑으로 손을 넣어 머리를 긁고 있었다⁠. 팻말에 붓글씨로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정원 초과⁠」⁠.

“⁠저⁠,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남자가 팻말을 고쳐 들었다⁠. “⁠저승차사 한월이라고 합니다⁠. 저쪽이 지금 만원이라서요⁠. 사십구재 마치신 분들을 49일만 댁에 모셔다 드리고 있습니다⁠. 규정상 그렇습니다⁠.⁠”

“⁠규정은 무슨⁠.⁠” 시어머니가 대청 섬돌 앞까지 가서 코를 킁킁거렸다⁠. 상에 남은 탕국 냄새였다⁠. “⁠탕국 간이 왜 이리 싱겁냐⁠. 씨간장 아꼈냐⁠?⁠”

“⁠어⁠, 어머님⁠.⁠”

“⁠어머님은 무슨⁠. 내가 귀신이냐⁠?⁠” 시어머니가 몸을 돌렸다⁠. 달빛 아래 그림자가 물에 탄 먹처럼 옅었다⁠. “⁠내 논은 어디 갔냐⁠.⁠”

춘희는 고무장갑 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앞치마는 두르고 있지 않았다⁠. 상복 치마에 대고 문질렀다⁠.

“⁠둘째 도련님 앞으로 갔어요⁠.⁠”

“⁠명호 앞으로⁠?⁠”

“⁠예금은 막내 도련님이⁠, 이 집하고 선산은 아범이요⁠.⁠”

“⁠너는⁠?⁠”

춘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문 뒤의 차사가 팻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의 고개였다⁠.

춘희가 차사를 보았다⁠. “⁠저기⁠, 들어오세요⁠. 문간에 계시지 말고⁠.⁠”

“⁠아닙니다⁠. 차사는 부르기 전에는 대문 안에 안 들어갑니다⁠. 규정상⁠…⁠…⁠.⁠” 한월이 말을 멈추고 마루 끝의 치킨 상자를 보았다⁠.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저건 무엇입니까⁠?⁠”

“⁠치킨이요⁠. 반반⁠.⁠”

“⁠저승에는 없는 겁니다⁠.⁠”

“⁠들어오세요⁠.⁠”

한월이 문턱을 넘었다⁠. 갓 끝이 대문 처마에 닿아 허리를 반쯤 접어야 했다⁠.

시어머니가 사랑채로 걸어갔다⁠. 아흔 살 무릎이 디딤돌을 오를 때 한 번 삐끗했고⁠, 춘희가 저도 모르게 달려가 팔을 받쳤다⁠. 사십 년 받쳐 온 팔이라 손이 먼저 갔다⁠. 팔은 따뜻했다⁠.

시어머니가 지팡이로 사랑채 마루를 두 번 찧고 미닫이를 두드렸다⁠.

“⁠일어나⁠, 이놈들아⁠!⁠”

코 고는 소리가 하나 끊겼다⁠. 미닫이가 드르륵 열렸다⁠. 안경을 안 쓴 명호가 눈을 비비며 내다보았다⁠. 달빛에 초록 한복이 보였고⁠, 비녀가 보였고⁠, 턱이 두 개인 얼굴이 보였다⁠.

명호는 한참 말이 없었다⁠. 뒤에서 명철이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명길은 아직 코를 골았다⁠.

명호가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처음 나온 말은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엄마는 법적으로 돌아가신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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