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81자)

쉰 번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옥비는 약속대로 아침 일곱 시에 방울을 안반 옆에 놓았다⁠. 방울은 작은 사기 종지 위에 얹혀 있었다⁠. 종지 바닥에 서리 녹은 물이 고였다⁠. 옥비는 방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팔짱을 꼈다⁠. 수비대장이 성문 앞을 지키는 자세였다⁠.

나는 첫 시루를 안반에 쏟고 떡메를 들었다⁠.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꿀떡 집 아주머니가 뒤집었다⁠. 스물⁠. 서른⁠. 낱알이 반쯤 터지고 반쯤 살아 있었다⁠. 마흔⁠. 떡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쉰⁠. 나는 떡메를 내려놓았다⁠.

아주머니가 떡을 내려다보았다⁠.

“⁠덜 쳤다⁠, 너⁠.⁠”

“⁠오늘은 이렇게 해요⁠.⁠”

떡은 매끈하지 않았다⁠. 표면에 밥알이 오돌토돌 박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탄력이 덜했다⁠. 송화가 있었으면 이걸 반쯤 친 인절미라고 불렀을 것이다⁠. 송화는 여전히 대궐떡집 유리문 안에 있었다⁠.

나는 한 귀퉁이를 떼어 혀에 올렸다⁠. 씹었다⁠. 밥알이 이빨 사이에서 톡톡 터졌다⁠. 단맛이 혀 가운데로 모였다가 퍼졌다⁠. 백 번 친 떡보다 단맛이 빨리 왔고 빨리 갔다⁠. 삼켰다⁠.

혀뿌리에 차가운 점이 남았다⁠.

조금 작았다⁠. 백 번 친 떡의 차가움이 엄지손톱만 했다면⁠, 쉰 번 친 떡의 차가움은 새끼손톱만 했다⁠. 나는 옥비를 보았다⁠. 옥비는 방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쉰 번 친 떡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이 층으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창가에 앉아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접시를 내밀었다⁠.

“⁠할머니⁠, 이거 드셔 보세요⁠. 덜 친 거예요⁠.⁠”

할머니가 떡을 집어 씹었다⁠. 오래 씹었다⁠. 밥알이 씹히는지 턱이 천천히 움직였다⁠.

“⁠덜 쳤네⁠.⁠”

“⁠어때요⁠? 뭐 바라고 싶은 거 안 생겨요⁠? 대보름에 쌀 올리고 싶은 거⁠.⁠”

할머니가 나를 보았다⁠.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웃었다⁠.

“⁠너 왜 그런 걸 묻냐⁠?⁠”

“⁠그냥요⁠.⁠”

“⁠없다⁠. 한번 내려놓은 짐을 누가 다시 지냐⁠?⁠”

할머니는 남은 떡을 마저 먹고 손가락에 묻은 콩가루를 핥았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서 혀가 손가락을 찾아다녔다⁠. 나는 빈 접시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한 번 먹힌 소원은 덜 친 떡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손님들은 쉰 번 친 떡을 먹고도 얼굴이 풀렸다⁠. 조금 덜 풀렸다⁠. 사표를 지운 회사원 대신⁠, 사표를 서랍에 넣어 두는 회사원이 생겼다⁠. 덜 친 떡은 덜 쫄깃했다⁠. 손님 하나가 떡을 씹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보다 밥알이 씹히네요⁠.⁠”

“⁠일부러요⁠. 옛날식이에요⁠.⁠”

내가 둘러댔다⁠.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하나를 더 샀다⁠. 사람들은 옛날식이라는 말에 약했다⁠.

정오에 옥비가 방울을 들어 귀에 대 주었다⁠. 나는 머릿수건을 벗고 셌다⁠. 아흔여섯⁠. 어젯밤 아흔여덟이었다⁠. 둘이 더 멈췄다⁠.

“⁠줄었나⁠?⁠”

옥비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옥비가 스스로 대답했다⁠.

“⁠안 줄었다⁠. 덜 늘었을 뿐이다⁠.⁠”

“⁠덜 늘었으면 된 거잖아⁠.⁠”

“⁠덜 어는 것도 언다⁠.⁠”

옥비는 방울을 종지에 도로 올려놓았다⁠. 나는 떡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쉰 번으로 안 되면 더 줄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 쳤다⁠.

정오가 조금 지나 송화가 대궐떡집 승합차에서 찹쌀 포대를 내려 우리 부엌 뒷문에 놓고 갔다⁠. 상인회장이 시킨 심부름이었다⁠. 송화는 포대를 내려놓고 곧장 돌아서려 했다⁠. 나는 뒷문까지 따라 나갔다⁠.

“⁠송화 씨⁠. 그날 밤 일은⁠…⁠…⁠.⁠”

“⁠찹쌀 열 포대예요⁠. 아빠가 내일 열 포대 더 보낸대요⁠.⁠”

송화는 내 말을 자르고 장갑을 벗었다⁠. 손등이 터 있었다⁠. 송화가 손등을 입김으로 녹이며 말했다⁠.

“⁠아롱 씨는 대보름 지나도 여기 있죠⁠?⁠”

“⁠응⁠.⁠”

“⁠옥비 씨는 가요⁠.⁠”

송화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승합차로 돌아갔다⁠. 운전석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말했다⁠.

“⁠아롱 씨가 떡메를 내주면⁠, 옥비 씨는 혼자 빈손으로 안 올라가도 돼요⁠. 그것만 알아 두세요⁠.⁠”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배기가스 냄새 사이로 송화의 귤 냄새가 잠깐 남았다⁠.

*

오후 한 시⁠, 나는 스무 번만 쳤다⁠.

꿀떡 집 아주머니가 뒤집다 말고 손을 멈췄다⁠. 안반 위의 떡은 떡이 아니었다⁠. 찰밥이 엉겨 붙은 덩어리였다⁠. 낱알이 거의 그대로 살아 있었다⁠. 칼로 썰자 덩어리가 부서졌다⁠. 콩가루를 뿌리자 부서진 틈으로 콩가루가 빨려 들어갔다⁠.

나는 한 조각을 혀에 올렸다⁠. 차가운 점이 아주 작았다⁠. 쌀알 하나만 했다⁠. 나는 웃었다⁠.

손님들은 웃지 않았다⁠. 줄 맨 앞의 할아버지가 떡 상자를 열어 보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인절미여⁠, 주먹밥이여⁠?⁠”

상인회장이 골목 끝에서 뛰어왔다⁠. 손님들 사이를 헤치고 와서 상자를 들여다보더니 내 팔을 붙잡고 부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장님⁠, 이게 떡이에요⁠, 주먹밥이에요⁠?⁠”

“⁠덜 쳤어요⁠.⁠”

“⁠왜요⁠?⁠”

“⁠덜 치면 덜 얼어요⁠.⁠”

상인회장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상인회장의 귀에 나는 떡 장사 대목에 정신이 나간 여자였다⁠.

“⁠무슨 소리예요⁠, 얼어요⁠? 손님들이 사진 찍어 올리면 끝나요⁠. 방송 나간 집이 주먹밥 판다고 하면 대보름 약정이고 뭐고 다 끝나요⁠. 사장님⁠, 제발⁠.⁠”

상인회장이 처음으로 제발이라고 했다⁠. 나는 상자 속 부서진 떡을 보았다⁠. 찰밥 덩어리 사이로 콩가루가 마른 흙처럼 박혀 있었다⁠. 맛이 없었다⁠. 차갑지도 않았고⁠, 맛도 없었다⁠. 소원을 덜 먹는 떡은 배도 덜 불렸다⁠.

상인회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 글이 줄줄이 떠 있었다⁠. 서울 곳곳의 사람들이 떡을 먹고 쓴 후기였다⁠. 사람들은 우리 떡을 이제 「⁠더 바랄 게 없는 떡⁠」이라고 불렀다⁠. 상인회장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먹고 나서 남편 승진 기도 그만뒀어요⁠. 마음이 편해요⁠.⁠」

「⁠시험 앞둔 아들한테 사다 줬는데 애가 공부를 안 해요⁠. 다 될 것 같대요⁠.⁠」

「⁠맛있는데⁠, 먹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요⁠. 이상해요⁠.⁠」

상인회장은 맨 위의 후기만 보라고 화면을 내민 것이었다⁠. 나는 맨 아래 후기를 읽었다⁠. 상인회장은 내가 무엇을 읽는지 보지 않았다⁠.

“⁠이런 집이 주먹밥 팔았다고 소문나면 끝이에요⁠. 아시겠죠⁠?⁠”

나는 다음 시루부터 쉰 번으로 돌아갔다⁠. 스무 번 친 떡 마흔 개는 할머니가 이 층에서 경단처럼 다시 빚어 조청을 발랐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부서진 떡 부스러기는 창틀의 쑥떡 차지였다⁠. 쑥떡은 부스러기를 핥다가 귀가 튀어나온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이건 맛없다⁠.⁠”

“⁠알아⁠.⁠”

“⁠이게 정상이다⁠. 떡이 맛없는 날도 있어야지⁠. 너네 집 떡은 너무 맛있어서 무서워⁠.⁠”

쑥떡은 그렇게 말하고 부스러기를 마저 먹었다⁠. 맛없다면서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

저녁 일곱 시⁠, 마지막 시루를 치고 나서 옥비가 방울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부엌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할머니는 이 층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저녁 뉴스에서 낙원동 떡집 골목이 나왔다⁠. 기자가 골목 어귀에 서서 말했다⁠. 「⁠‘⁠소원이 없어지는 떡⁠’ 열풍에 문 닫았던 떡집 아홉 곳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텔레비전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옥비는 방울을 내 귀에 댔다⁠. 나는 셌다⁠.

“⁠아흔넷⁠.⁠”

“⁠네가 덜 친 날에도 넷이 섰다⁠.⁠”

“⁠어제는 다섯이었잖아⁠.⁠”

“⁠그래서 넷은 괜찮나⁠?⁠”

옥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옥비는 놀라면 코가 멈추고⁠, 화가 나면 코가 빨라진다⁠. 지금은 코가 멈춘 채 목소리만 높았다⁠. 삼백 년 동안 나는 옥비의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달 궁 담장 위에서 옥비는 언제나 숫자만 보고했다⁠. 성문을 지난 쌀알 몇⁠, 담장에 앉은 그을음 몇⁠. 숫자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적은 없었다⁠.

“⁠너는 지금 숫자를 깎고 있다⁠. 다섯을 넷으로⁠, 넷을 셋으로⁠. 그러면서 네 떡은 계속 판다⁠. 아롱⁠, 그건 덜 죽이는 거다⁠. 안 죽이는 게 아니다⁠.⁠”

“⁠그럼 뭘 어떡해⁠? 떡메를 부러뜨려⁠?⁠”

“⁠나한테 줘라⁠.⁠”

옥비가 손을 내밀었다⁠. 섣달 보름 밤 장독대에서 내밀던 손과 같은 손이었다⁠. 나는 계수나무 떡메를 등 뒤로 돌렸다⁠. 섣달 보름 밤과 같은 동작이었다⁠. 한 달 사이에 우리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보름까지 나흘이야⁠. 만 개만 치고 줄게⁠.⁠”

“⁠만 개를 치고 나면 줄 이유가 없어진다⁠. 대보름이 지나면 달은 한 해를 못 버틴다⁠.⁠”

옥비는 손을 거두었다⁠. 방울을 종지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부엌문을 나가다 말고 돌아보았다⁠.

“⁠방울은 두고 간다⁠. 밤새 세어 봐라⁠. 네 숫자를⁠.⁠”

*

자정 무렵 나는 방울을 주머니에 넣고 옥비를 찾으러 나갔다⁠. 방울이 주머니 안에서 허벅지를 차갑게 눌렀다⁠. 밤새 세어 보라는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어 보기 싫었다⁠. 돌려주고 싶었다⁠.

대궐떡집 옥탑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평상 위 전기장판도 꺼져 있었다⁠. 옥비도 송화도 없었다⁠.

나는 골목 한가운데서 머릿수건을 조금 올리고 코를 씰룩였다⁠. 토끼 코는 사람 코보다 멀리 맡는다⁠. 골목에 깔린 시루 김 냄새 사이로 옥비 냄새가 났다⁠. 계수나무 냄새였다⁠. 옥비 냄새 옆에 송화 냄새가 붙어 있었다⁠. 콩가루와 귤 냄새였다⁠. 두 냄새는 종로 큰길을 건너 남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냄새는 청계천에서 끝났다⁠.

물가 산책로에 가로등이 띄엄띄엄 켜져 있었다⁠. 물소리가 낮게 깔렸다⁠. 돌 틈마다 살얼음이 끼어 있어서⁠, 흐르는 물이 얼음 가장자리를 긁으며 사각거렸다⁠. 다리 아래 돌계단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람 모습의 옥비와 송화였다⁠. 송화는 옥비의 패딩 모자를 다시 씌워 주고 있었다⁠. 옥비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다리 기둥 뒤에 멈췄다⁠. 돌아가야 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귀가 수건 밖으로 저절로 비어져 나왔다⁠.

“⁠대보름 지나면 가요⁠?⁠”

송화가 물었다⁠.

“⁠간다⁠.⁠”

“⁠편지에는 그렇게 안 썼잖아요⁠. 편지에는 늘 다음 보름에 또 쓰겠다고 했잖아요⁠.⁠”

“⁠편지에는 지킬 수 있는 말만 썼다⁠.⁠”

송화가 웃었다⁠. 우는 소리와 비슷한 웃음이었다⁠.

“⁠그럼 지금은요⁠?⁠”

옥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송화의 손을 잡았다⁠. 송화의 손은 찬물에 쌀을 씻느라 터서 갈라져 있었다⁠. 옥비는 갈라진 손을 제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둘은 한참 그렇게 앉아 있었다⁠. 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흔들렸다⁠. 송화가 옥비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옥비가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입김이 하나로 섞여 하얗게 올라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귀는 닫히지 않았다⁠. 숨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숨이 같은 박자로 느려지는 소리였다⁠.

나는 기둥 뒤에서 뒷걸음질 쳤다⁠. 조약돌 하나가 발에 밟혀 굴렀다⁠.

주머니가 울었다⁠.

방울이었다⁠. 주머니 안에서 방울이 혼자 울리고 있었다⁠. 맑고 차가운 소리가 다리 밑으로 퍼졌다⁠. 옥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송화가 옥비에게서 떨어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방울을 꺼냈다⁠. 방울은 서리에 덮인 채 손바닥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떨림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늙은 목소리였다⁠. 삼백 년 동안 방앗간 마당 위 높은 단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였다⁠.

「⁠수비대장⁠. 대답하라⁠.⁠」

옥비가 돌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내 손의 방울을 보고⁠, 나를 보았다⁠. 방울에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아롱이 거기 있느냐⁠.⁠」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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