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69자)

청계광장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옥비는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교통카드를 이마에 댔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옥비는 카드를 뒤집어 다시 이마에 댔다⁠.

“⁠거기 아니야⁠. 여기⁠.⁠”

내가 옥비의 손목을 잡아 카드를 단말기에 댔다⁠. 삑 소리가 나자 옥비가 귀를 뒤로 젖혔다⁠. 모자를 씌워 둔 덕에 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모자가 혼자 움찔했다⁠. 뒤에 줄 선 아저씨가 혀를 찼다⁠.

종로3가에서 시청까지는 두 정거장이었다⁠. 주무관이 행사장을 보여 주겠다고 아침에 전화를 했고⁠, 상인회장은 바빠서 나와 옥비를 보냈다⁠. 상인회장은 옥비를 우리 가게 일꾼인 줄 알았다⁠. 대궐떡집에서 쌀을 지고 우리 가게에서 떡을 뒤집으니 헷갈릴 만했다⁠.

열차가 들어오며 바람이 플랫폼을 쓸었다⁠. 옥비는 열차 안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다리를 벌려 버텼다⁠. 수비대장은 흔들리는 성벽 위에서도 손을 짚지 않는다고 했다⁠. 열차가 서자 옥비는 앞으로 세 걸음 미끄러져 낯선 아주머니의 장바구니를 끌어안았다⁠. 아주머니가 옥비의 등을 철썩 때렸다⁠.

안내 방송이 다음 역은 시청이라고 했다⁠. 옥비가 천장을 보고 대답했다⁠.

“⁠알았다⁠.⁠”

열차 안의 사람들이 옥비를 보았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혀를 깨물었다⁠.

*

청계광장은 넓었다⁠. 골목 열한 개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했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인부들이 짚과 생솔가지로 달집을 쌓고 있었다⁠. 키가 이 층 건물만 했다⁠. 광장 둘레에는 「⁠3월 3일 정월 대보름 청계광장 달맞이⁠」 현수막이 줄지어 펄럭였다⁠. 현수막 그림 속에서 보름달 안의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었다⁠.

“⁠저 토끼는 공이를 거꾸로 쥐었다⁠.⁠”

옥비가 현수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보았다⁠. 정말 거꾸로 쥐고 있었다⁠.

주무관이 우리를 달집 앞으로 데려갔다⁠. 달집 둘레에 나무 판을 세우고 새끼줄을 둘러 놓았다⁠. 대보름 저녁⁠, 시민들이 새끼줄에 소원지를 매단다고 했다⁠. 달이 뜨면 달집에 불을 놓고⁠, 소원지가 불길을 타고 올라간다⁠.

“⁠만 명이 소원지 매다는 동안 떡을 나눠 드리는 거죠⁠. 천막 스무 개를 이쪽에 칠 거고요⁠.⁠”

주무관이 광장 남쪽을 가리켰다⁠. 나는 천막이 들어설 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달집을 보았다⁠. 사람들은 소원지를 매달고 떡을 받는다⁠. 떡을 먹는다⁠. 짐이 내려간다⁠. 달이 뜰 때 사람들은 고개를 들까⁠?

달집 가까이 가자 생솔가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송진 냄새였다⁠. 혀끝이 쓴 것처럼 오그라들었다⁠. 짚단을 나르던 인부 하나가 옥비를 보고 손짓을 했다⁠. 옥비는 영문도 모르고 짚단 둘을 받아 어깨에 지고 달집 꼭대기까지 날라 주었다⁠. 인부들이 박수를 쳤다⁠. 옥비는 내려와서 손바닥에 묻은 짚 부스러기를 털며 말했다⁠.

“⁠땅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짐을 맡긴다⁠.⁠”

“⁠너한테 맡긴 거야⁠. 힘세 보여서⁠.⁠”

주무관은 휴대전화로 달집을 찍으며 대보름 저녁에 방송국 세 곳이 생중계를 온다고 했다⁠. 서울시장도 온다고 했다⁠. 시민 만 명이 한꺼번에 떡을 먹는 장면이 저녁 뉴스에 나갈 거라고 했다⁠.

광장 귀퉁이에 미리 소원지를 받는 탁자가 있었다⁠. 행사 전에 써서 넣어 두면 대보름에 대신 매달아 준다고 했다⁠. 탁자 앞에서 패딩을 입은 여자 하나가 소원지를 쓰고 있었다⁠. 나는 어깨너머로 보았다⁠. 「⁠엄마 수술 잘되게 해 주세요⁠」 여자는 소원지를 접어 함에 넣고⁠, 함 위에 손바닥을 한참 얹어 두었다⁠.

옥비가 내 옆에서 함을 보고 있었다⁠. 옥비가 낮게 말했다⁠.

“⁠저 여자가 대보름에 네 떡을 먹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먹고 나면 엄마 수술이 잘될 것 같은 맛이 난다⁠. 그러면 달을 안 본다⁠. 저 소원지는 불에 타서 올라가도 절구에 닿기 전에 흩어진다⁠. 빈 사람이 안 보고 있으면 연기는 길을 잃는다⁠.⁠”

“⁠그런 거⁠, 너 어떻게 알아⁠?⁠”

“⁠송화가 처음 보낸 편지는 송화가 아궁이 앞에서 끝까지 연기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담장에 앉았다⁠. 소원은 보는 눈을 타고 오른다⁠.⁠”

옥비는 그렇게 말하고 모자를 눌러썼다⁠. 광장의 바람이 우리 사이로 지나갔다⁠. 서울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달 궁의 바람보다는 따뜻했다⁠.

*

돌아오는 열차는 한산했다⁠. 옥비는 이번에는 손잡이를 잡았다⁠. 차창에 우리 둘의 얼굴이 비쳤다⁠. 머릿수건을 쓴 여자와 모자를 눌러쓴 남자⁠. 달에서는 같은 담장 안에서 삼백 년을 살았는데⁠, 땅의 열차 창에 나란히 비친 것은 처음이었다⁠.

“⁠송화 씨한테 대보름 지나면 간다고 말했어⁠?⁠”

옥비의 코가 멈췄다⁠.

“⁠편지에 썼다⁠.⁠”

“⁠얼굴 보고는⁠?⁠”

“⁠얼굴 보고 하는 말은 편지보다 어렵다⁠. 땅에 와서 알았다⁠.⁠”

옥비가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열차가 종로3가에 닿을 때까지 옥비는 차창에 비친 제 얼굴만 보았다⁠. 나는 옥비의 옆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옥비가 불쌍했다⁠. 달을 지키러 내려온 토끼가 땅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을 찾아 버렸다⁠.

*

골목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방앗간 이 층 상인회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좁았다⁠. 낡은 소파 하나⁠, 철제 책상 하나⁠, 벽에는 골목 지도가 붙어 있었다⁠. 지도 위 열한 집 가운데 아홉 집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상인회장은 책상 앞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회장님⁠. 만 개⁠, 못 하겠어요⁠.⁠”

상인회장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내가 올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앉아요⁠, 사장님⁠.⁠”

나는 앉지 않았다⁠. 상인회장은 책상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내 하나씩 펼쳤다⁠. 대출 서류였다⁠. 꿀떡 집⁠, 시루떡 집⁠, 떡볶이 떡 집⁠, 송편 집⁠, 백설기 집⁠. 서류마다 보증인 칸에 상인회장의 이름과 도장이 있었다⁠.

“⁠다섯 집이 설 전후로 빚을 내서 문을 열었어요⁠. 진열장⁠, 솥⁠, 쌀⁠. 다 합치면 일억 이천이에요⁠. 이 집들이 대보름 지나고도 장사가 돼야 갚아요⁠.⁠”

상인회장은 다른 서류를 펼쳤다⁠. 서울시 약정서였다⁠. 위약금 조항에 노란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시에서 선금 받았어요⁠. 그 돈으로 찹쌀 서른 가마 들였고요⁠. 방앗간 창고에 쌓여 있어요⁠. 약정 깨면 선금 돌려주고 위약금까지 물어야 돼요⁠. 그러면 상인회가 터지고⁠, 상인회가 터지면 보증 선 나도 터지고⁠, 다섯 집 대출이 한꺼번에 돌아와요⁠.⁠”

“⁠다른 떡을 내면요⁠? 대궐떡집 떡으로⁠.⁠”

“⁠시에서 원하는 건 소원이 없어지는 떡이에요⁠. 방송에 나온 그 떡⁠. 사장님 떡메로 친 떡⁠.⁠”

상인회장이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의외의 말을 했다⁠.

“⁠사장님⁠. 나 이 골목에서 떡 장사 서른 해 했어요⁠. 기계 들인 지 열다섯 해⁠. 손으로 치는 집은 다 망했어요⁠. 우리 엄마도⁠. 나는 엄마 가게가 망하는 걸 보면서 기계 할부를 냈어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이 골목에서 손떡이 다시 줄을 세운 건 사장님이 처음이에요⁠.⁠”

상인회장은 창밖을 보았다⁠. 골목에 시루 김이 깔려 있었다⁠.

“⁠엄마가 요즘 나한테 떡국 끓여 줘요⁠. 세 해 동안 전화도 안 받던 사람이⁠. 나는 그게 사장님 떡 덕인 거 알아요⁠. 그러니까 만 개 쳐요⁠. 쳐 주세요⁠.⁠”

나는 상인회장의 얼굴을 보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얼굴로 바라고 있었다⁠. 내 떡을 먹고 짐을 내려놓은 사람이⁠, 내 떡을 더 치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사무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다 방앗간 창고 문틈으로 찹쌀 가마가 천장까지 쌓인 것을 보았다⁠. 서른 가마였다⁠. 하얀 포대마다 「⁠서울시 달맞이 납품⁠」이라고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

송화는 점심때 오지 않았다⁠. 대궐떡집 유리문 안에서 기계 떡을 썰고 있었다⁠. 내가 유리문 앞을 지나가자 송화는 칼을 내려놓고 등을 돌렸다⁠. 할머니는 요즘 오후마다 이 층에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머니가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웃었다⁠. 두 번째 들었을 때는 웃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 머리맡에 앉아 물었다⁠.

“⁠할머니⁠. 송화 시집가는 거 안 보고 싶어요⁠?⁠”

“⁠지가 알아서 가겠지⁠.⁠”

“⁠회장님 기계 할부 다 갚는 건요⁠?⁠”

“⁠지가 알아서 갚겠지⁠.⁠”

할머니는 돌아누워 다시 눈을 감았다⁠. 예순 해 동안 바라던 사람이 바라는 법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바랄 자리가 다 찼다고 믿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할머니의 손가락이 반쯤 굽은 채 가만히 놓여 있었다⁠.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지 않는다⁠. 옥비가 처음부터 한 말이었다⁠.

*

밤 열한 시⁠, 옥비가 나를 낙원상가 옥상으로 데려갔다⁠. 상가 계단은 악기점들 사이로 이어졌다⁠. 셔터 내린 기타 가게⁠, 피아노 가게⁠, 북 가게를 지나 비상계단을 올랐다⁠. 옥상 문에 걸쇠가 있었는데 옥비가 손가락 하나로 들어 올렸다⁠. 수비대장은 문 따는 법을 안다⁠.

옥상에서는 종로가 내려다보였다⁠. 탑골공원의 검은 나무들⁠, 종로3가 사거리의 불빛⁠, 그리고 우리 골목⁠. 골목은 지붕들 사이에 좁은 틈으로 보였다⁠. 틈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홉 집 부엌의 김이었다⁠.

달은 남쪽 하늘에 떠 있었다⁠. 대보름까지 엿새가 남아 반쪽보다 조금 부푼 달이었다⁠. 흐렸다⁠. 구름이 없는데도 흐렸다⁠. 가장자리가 번져 있었다⁠. 달에서 삼백 년을 산 내 눈에는 보였다⁠. 달이 제 빛을 다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게 지금 달이다⁠.⁠”

옥비가 옥 방울을 풀어 내 손에 올렸다⁠. 방울은 이제 서리에 덮여 연둣빛이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이 얼얼했다⁠. 나는 머릿수건을 벗고 방울에 귀를 댔다⁠. 절구 소리를 셌다⁠. 쿵⁠, 쿵⁠. 쿵⁠. 어긋난 장단을 하나씩 갈랐다⁠.

“⁠아흔여덟⁠.⁠”

“⁠사흘 사이에 다섯이 더 멈췄다⁠.⁠”

옥비가 난간에 팔을 걸쳤다⁠.

“⁠내 수비대 열둘이 담장을 버리고 방앗간에 들어갔다⁠. 공이를 잡으러 간 게 아니다⁠. 방앗간이 그나마 따뜻해서다⁠. 젊은 토끼들이 절구 사이에 몸을 붙이고 잔다⁠. 늙은 토끼들이 자리를 내준다⁠.⁠”

“⁠스승님은⁠?⁠”

옥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늙은 방아꾼 스승은 자리를 내주는 토끼였다⁠. 공이 자루에 무명 끈을 칭칭 감고⁠, 끈이 닳으면 새 끈을 감았다⁠. 젊은 토끼에게 자리를 내주고 담장 밑에 웅크린 스승의 등이 보였다⁠.

나는 방울을 옥비에게 돌려주었다⁠. 방울을 놓은 손바닥에 서리가 녹아 물이 고였다⁠. 혀를 대 보았다⁠. 차가웠다⁠. 내 떡의 끝맛과 같았다⁠.

“⁠옥비야⁠.⁠”

“⁠말해라⁠.⁠”

“⁠떡메를 덜 치면 어때⁠?⁠”

옥비가 나를 보았다⁠.

“⁠백 번 치면 낱알이 하나도 안 남아⁠. 그게 달떡이야⁠. 계수나무가 쌀 속까지 닿아서⁠. 쉰 번만 치면 덜 닿을 거야⁠. 맛은 남고⁠, 다 된 맛은 덜 나고⁠. 사람들이 반쯤은 바라고⁠, 반쯤은 내려놓고⁠.⁠”

“⁠모른다⁠.⁠”

“⁠해 보면 알지⁠.⁠”

“⁠해 보는 동안 절구가 또 선다⁠.⁠”

“⁠안 해 보면 아홉 집이 서⁠.⁠”

옥비는 오래 말이 없었다⁠. 난간에 걸친 팔에 턱을 괴었다⁠. 아래 골목에서 김이 또 한 줄기 올라왔다⁠. 송편 집 부엌이었다⁠. 맨 먼저 셔터를 내리고 맨 나중에 올린 집이었다⁠.

“⁠쉰 번이면 쉰 명이 덜 언다고 장담하나⁠?⁠”

“⁠장담 못 해⁠.⁠”

옥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인다는 끄덕임이 아니었다⁠. 기억해 두겠다는 끄덕임이었다⁠. 옥비가 방울을 허리에 찼다⁠. 방울이 차가운 소리로 한 번 울렸다⁠.

“⁠내일 네 쉰 번을 보겠다⁠. 방울을 안반 옆에 두겠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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