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6자)

빈 그릇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설날 아침⁠, 할머니는 내가 친 가래떡으로 떡국을 끓였다⁠. 굳은 가래떡을 어슷하게 써는 일은 내가 했고⁠, 할머니는 국물 간만 보았다⁠. 사골 국물에 떡이 들어가자 떡이 하얗게 부풀었다⁠. 아홉 시에 상인회장이 송화를 데리고 왔다⁠. 세 해 만에 하는 세배라고 송화가 귓속말로 알려 주었다⁠. 상인회장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며 무릎을 털었다⁠. 할머니는 세뱃돈 대신 떡국 한 그릇을 아들 앞에 밀었다⁠.

상인회장은 말없이 떡국을 먹었다⁠. 국물까지 다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더니⁠, 한참 그릇 바닥을 보았다⁠.

“⁠엄마 떡국 맛이네⁠.⁠”

“⁠니 엄마 떡국 아니다⁠. 쟤 떡이다⁠.⁠”

상인회장이 나를 보았다⁠. 얼굴이 풀려 있었다⁠. 사흘 전 계산기를 두드리던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 상인회장의 얼굴에서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사표를 지운 회사원과 같은 얼굴이었다⁠.

설을 쇠고 이튿날⁠, 나는 상인회장에게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

설 지나고 나흘째 아침⁠, 골목 셔터 아홉이 올라가 있었다⁠. 열한 집 가운데 아홉⁠. 방앗간 앞 시루떡 집⁠, 떡볶이 떡 집에 이어 골목 끝 송편 집과 낙원상가 쪽 모퉁이 백설기 집이 문을 열었다⁠. 아홉 집이 아침마다 제 솥에 찹쌀을 쪄서 시루째 옥토끼 부엌으로 날랐다⁠. 나는 하루 종일 떡메를 쳤다⁠. 떡은 아홉 집 진열장에 「⁠옥토끼 골목 인절미⁠」라는 이름으로 나갔다⁠. 상인회장이 붙인 이름이었다⁠.

여덟 시 반에 방송국 차가 왔다⁠. 아침 생방송이었다⁠. 귀걸이를 크게 단 여자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카메라 두 대가 안반을 겨누었다⁠. 상인회장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장님⁠, 웃어요⁠. 전국에 나가요⁠.⁠”

나는 웃는 법을 몰랐다⁠. 떡메를 쥐고 이빨을 드러냈다⁠. 리포터가 한 걸음 물러났다⁠.

“⁠이분이 바로 소원이 없어지는 떡을 치는 사장님이시죠⁠! 사장님⁠, 비결이 뭔가요⁠?⁠”

“⁠찹쌀을 여덟 시간 불려요⁠.⁠”

“⁠그게 다예요⁠?⁠”

“⁠물은 두 번 갈아요⁠.⁠”

리포터가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나는 떡메를 들었다⁠. 내려치는 순간 안반에 남아 있던 콩가루가 공중으로 확 일어났다⁠. 콩가루가 코로 들어왔다⁠. 재채기가 났다⁠. 귀가 머릿수건 매듭을 끊고 튀어나왔다⁠.

부엌이 얼어붙었다⁠. 카메라 두 대가 내 귀를 비추고 있었다⁠. 리포터가 입을 벌린 채 나를 보았다⁠. 상인회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머리띠⁠!⁠”

리포터가 외쳤다⁠. 방송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말이 되게 만든다⁠.

“⁠가게 이름이 옥토끼라서 머리띠까지 토끼네요⁠! 너무 귀여우시다⁠! 사장님⁠, 귀 한번 움직여 보세요⁠!⁠”

나는 귀를 움직였다⁠. 리포터가 꺅 소리를 질렀다⁠. 카메라 감독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생방송이 나간 뒤로 골목 어귀 문구점에서 토끼 머리띠가 다 팔렸다고 했다⁠. 쑥떡은 창틀에서 이 모든 것을 보며 혀를 찼다⁠. 귀가 나와 있어서 쑥떡의 말이 들렸다⁠.

“⁠토끼가 토끼 흉내를 내네⁠. 세상 말세다⁠.⁠”

방송 차가 떠나자 상인회장이 부엌 의자에 주저앉아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사장님⁠, 그 머리띠 내일부터 계속 하고 계세요⁠. 그게 장사예요⁠.⁠”

“⁠머리띠 아닌데요⁠.⁠”

“⁠알아요⁠, 알아⁠. 그런 말도 계속 하세요⁠. 손님들이 좋아해요⁠.⁠”

상인회장은 아무것도 몰랐고⁠, 그래서 다 맞는 말을 했다⁠.

*

열한 시에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줄 맨 끝에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오자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 「⁠서울특별시 문화정책과 주무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무관은 마흔쯤 되었고 안경알에 김이 서려 있었다⁠.

“⁠아침 방송 보고 왔습니다⁠. 정월 대보름에 청계광장에서 달맞이 행사를 하는데요⁠. 달집 세우고⁠, 시민 만 명이 소원지 매달고⁠. 거기서 시민들한테 떡을 나눠 드리고 싶어요⁠. 소원이 없어지는 떡⁠, 이름이 좋잖아요⁠. 소원지에 소원 쓰고⁠, 떡 먹고⁠.⁠”

“⁠몇 개요⁠?⁠”

“⁠만 개요⁠.⁠”

상인회장이 뒤에서 숨을 들이켰다⁠. 나는 떡메를 내려놓았다⁠. 주무관이 시식용 떡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씹었다⁠. 안경을 벗어 김을 닦으며 웃었다⁠.

“⁠이거 먹고 나면 소원지에 뭘 쓰나 고민되겠네요⁠. 하하⁠.⁠”

주무관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옥비가 대궐떡집 앞에서 쌀 포대를 내려놓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볼게요⁠.⁠”

“⁠생각할 게 뭐 있어요⁠!⁠”

상인회장이 끼어들었다⁠. 주무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주무관님⁠, 상인회장입니다⁠. 골목 아홉 집이 같이 치면 만 개 나옵니다⁠. 계약은 상인회랑 하시죠⁠.⁠”

*

해 질 녘⁠, 마지막 시루를 치고 나서 나는 골목 한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주물렀다⁠. 아홉 집 부엌 창에서 김이 새어 나와 골목 위에 낮게 깔렸다⁠. 김 냄새가 집마다 달라서⁠, 약식 집의 참기름 냄새와 시루떡 집의 팥 냄새가 골목 한가운데서 섞였다⁠. 쑥떡이 담장에서 내려와 내 무릎 옆에 앉았다⁠. 나는 머릿수건을 조금 올려 귀를 꺼냈다⁠.

“⁠너 이 골목 오래 살았지⁠?⁠”

“⁠열네 해⁠.⁠”

“⁠셔터 내려간 거 다 봤어⁠?⁠”

“⁠다 봤지⁠. 송편 집이 맨 먼저⁠. 다음이 백설기 집⁠. 꿀떡 집은 작년 가을⁠. 할매네가 그 전전 해⁠.⁠”

쑥떡은 꼬리로 바닥을 한 번 쓸었다⁠.

“⁠올라가는 것도 다 봤다⁠. 거꾸로 올라가더라⁠. 맨 나중에 내려간 집이 맨 먼저 올라가고⁠, 맨 먼저 내려간 송편 집이 맨 나중⁠.⁠”

“⁠좋아⁠?⁠”

“⁠콩고물이 흔해졌지⁠.⁠”

쑥떡은 그렇게 말하고 내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처음이었다⁠. 고양이는 좋다는 말을 안 한다⁠. 나는 쑥떡의 등을 쓸며 골목 끝을 보았다⁠. 송편 집 셔터 밑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셔터 안에서 누가 시루를 씻는 소리가 들렸다⁠.

*

밤 열 시⁠, 나는 대궐떡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송화가 사는 옥탑방이 거기 있었다⁠. 옥비는 옥탑방 옆 평상에서 잤다⁠. 송화가 내준 전기장판을 평상에 깔고⁠, 밤에는 토끼 모습으로 장판 위에 몸을 말았다⁠. 사람 모습으로 자면 다리가 평상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옥비는 사람 모습으로 평상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붓펜과 골판지가 놓여 있었다⁠. 골판지에는 「⁠서울시는 이 떡을 나누지 마십시오⁠」라고 반쯤 적혀 있었다⁠.

“⁠너 오늘 주무관 따라갔지⁠?⁠”

“⁠따라갔다⁠. 시청까지 걸어갔다⁠. 주무관에게 이 떡을 나누면 만 명이 달을 안 본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웃었다⁠. 마케팅 참 잘하신다고 했다⁠. 마케팅이 무엇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골판지를 집어 들었다⁠. 반으로 접었다⁠. 옥비가 일어났다⁠. 옥비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아롱⁠. 만 개다⁠. 섣달 보름에 절구가 백스물이었다⁠. 지금은 백셋이다⁠. 대보름에 만 명이 네 떡을 먹으면⁠, 대보름 밤에 소원이 안 올라온다⁠. 대보름은 한 해 소원이 제일 많이 올라오는 밤이다⁠. 그 밤에 절구를 못 채우면 한 해를 못 버틴다⁠.⁠”

“⁠만 개 안 치면 아홉 집이 망해⁠.⁠”

“⁠아홉 집과 사만을 같은 저울에 올리나⁠?⁠”

“⁠너는 네 저울만 맞다고 하잖아⁠.⁠”

옥비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나면 나는 발을 구른다⁠. 평상 옆 시멘트 바닥을 쾅 내리찍었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한 번만 더 내 떡 앞에서 그 소리 해⁠. 대보름에 궁주 앞에서 다 말할 거야⁠. 수비대장이 여덟 해 동안 담장의 그을음을 읽고⁠, 계수나무 잎에 답장을 갉아서 땅에 내려보냈다고⁠. 아흔여섯 장⁠.⁠”

옥비의 코가 멈췄다⁠. 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솟았다⁠. 왼쪽 귀가 반으로 접힌 채 떨렸다⁠. 수비대장이 땅의 사람과 글을 주고받으면 궁의 담장을 연 죄가 된다⁠. 옥비는 자리를 잃고⁠, 방앗간 담장 밑으로 쫓겨난다⁠. 나도 알고 옥비도 알았다⁠.

옥탑방 문이 열렸다⁠.

송화가 문간에 서 있었다⁠. 잠옷 위에 패딩을 걸치고⁠, 손에 귤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몰랐다⁠. 송화가 귤을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화가 나면 송화는 말이 깍듯해진다⁠.

“⁠아롱 씨⁠. 궁에 알리세요⁠.⁠”

“⁠송화 씨⁠, 그건⁠…⁠…⁠.⁠”

“⁠대신 저도 할머니한테 말씀드릴게요⁠. 아롱 씨 떡 먹은 사람은 소원이 없어진다는 거⁠. 진짜로 없어진다는 거⁠. 할머니가 예순 해 올린 쌀이 어디로 갔고⁠, 그 쌀로 무슨 떡을 쳤는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송화가 옥비 옆으로 갔다⁠. 옥비의 접힌 귀가 송화의 어깨 높이에 있었다⁠.

“⁠편지에 다 썼어요⁠. 옥비 씨는 여덟 해 동안 한 번도 저한테 아빠 미워하라고 안 했어요⁠. 아롱 씨 떡 먹으면 아빠가 웃는 거⁠, 저도 봤어요⁠. 그런데 그 웃음이 무서워요⁠. 아빠가 아무것도 안 바라는 얼굴로 웃어요⁠.⁠”

송화가 귤을 하나 더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차가웠다⁠.

“⁠가세요⁠. 늦었어요⁠.⁠”

*

옥토끼 부엌에 불이 꺼져 있었다⁠. 이 층도 캄캄했다⁠. 나는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밀었다⁠. 할머니가 장독대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비 조끼 위에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맨 앞 항아리 위의 사기 그릇은 여전히 엎어져 있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손에 쥔 귤이 아직 차가웠다⁠. 껍질을 깠다⁠. 신맛이 혀끝을 찔렀다⁠. 단맛이 늦게 왔다⁠.

“⁠할머니⁠. 대보름이 열흘 남았어요⁠.⁠”

“⁠알아⁠.⁠”

“⁠찹쌀 언제 골라요⁠? 해마다 제일 좋은 걸로 고른다면서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요를 여미며 엎어진 그릇을 보았다⁠. 그릇 옆 항아리 뚜껑 틈에는 송화가 받은 계수나무 잎 한 장이 아직 끼어 있었다⁠.

“⁠올해는 안 올린다⁠.⁠”

할머니가 말했다⁠.

“⁠빌 게 없다⁠.⁠”

귤 조각이 내 입 안에서 멈췄다⁠.

“⁠니 떡 먹고 나서 이상하다⁠. 예순 해 동안 빌 게 많았어⁠. 시어머니 허리 낫게 해 달라⁠, 영감 술 끊게 해 달라⁠, 아들 손에 굳은살 박이게 해 달라⁠, 이 가게 불 한 번만 더 켜게 해 달라⁠. 올해는 하나도 없다⁠. 가게 불은 켜졌고⁠, 아들은 떡국 먹고 웃고⁠. 더 바랄 게 없다⁠.⁠”

할머니는 웃었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짐을 다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나는 엎어진 그릇을 보았다⁠. 열 달 전 대보름⁠, 저 그릇에서 올라온 찹쌀을 내가 혀에 올렸다⁠. 단맛이 났다⁠. 씹을수록 늘어나는 단맛이었다⁠. 시어머니의 허리부터 가게의 불까지⁠, 예순 해 동안 그릇에 담겨 올라온 것은 쌀만이 아니었다⁠. 쌀알마다 할머니의 소원이 묻어 있었다⁠. 내가 맛있다고 혀에 올린 단맛은 할머니가 빌던 것들의 맛이었다⁠.

할머니의 소원을 내 떡이 먹어 치웠다⁠. 할머니의 그릇은 대보름에도 엎어져 있을 것이다⁠. 나를 땅으로 데려온 쌀 한 그릇이 올해부터 올라가지 않는다⁠.

옥상 문이 다시 열렸다⁠. 상인회장이 계단참에 서 있었다⁠. 숨이 차 있었고⁠, 손에 투명한 파일을 들고 있었다⁠. 파일 안에 서울시 로고가 찍힌 종이가 보였다⁠.

“⁠엄마⁠, 아직 안 주무셨어요⁠? 사장님⁠, 잘됐어요⁠.⁠”

상인회장이 파일을 흔들었다⁠. 「⁠정월 대보름 청계광장 달맞이 시민 나눔 떡 납품 약정서⁠」 맨 아래 상인회 이름 옆에 붉은 도장이 선명했다⁠.

“⁠만 개⁠. 방금 찍었어요⁠. 대보름 저녁 여섯 시까지 청계광장으로⁠.⁠”

할머니가 아들을 보고 웃었다⁠. 상인회장도 웃었다⁠. 두 사람 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귤 껍질을 손에 쥔 채 엎어진 그릇만 보았다⁠. 그릇 바닥에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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