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41자)

천 개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설 전날 아침 여섯 시⁠, 대궐떡집 유리문 안쪽에 송화가 앉아 있었다⁠. 계산대 의자였다⁠. 송화는 기계에서 나오는 가래떡을 받아 비닐에 담고 있었다⁠. 상인회장이 계산대 옆을 떠나지 않았다⁠. 송화는 나를 보고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옥비는 대궐떡집 뒷마당에서 쌀 포대를 지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 부엌으로 돌아가 시루 앞에 앉았다⁠. 떡메 하나⁠, 안반 하나⁠, 어깨 둘⁠. 어제 칠백 개를 치고 나서 오른쪽 어깨가 밤새 욱신거렸다⁠. 사람 몸은 토끼 몸보다 어깨가 약하다⁠. 달에서는 공이를 앞발로 쥐고 온몸으로 찧었다⁠. 사람 손으로 떡메를 쥐면 힘이 어깨 한 군데로만 몰린다⁠.

할머니가 부엌 의자에 앉아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주먹 쥔 손등으로 문질렀다⁠.

“⁠천 개는 무리다⁠.⁠”

“⁠할머니가 무리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데요⁠.⁠”

“⁠그러니까 토끼지⁠.⁠”

*

일곱 시에 부엌 뒷문이 열렸다⁠. 꿀떡 집 아주머니가 시루 하나를 이고 서 있었다⁠. 김이 보자기 틈으로 솟았다⁠. 아주머니는 시루를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두드렸다⁠.

“⁠찹쌀 쪄 왔어⁠. 우리 집 솥에서⁠. 니가 치기만 해⁠.⁠”

나는 시루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왜요⁠?⁠”

“⁠니네 줄에서 밀려온 손님 덕에 우리 집이 문 열었잖아⁠. 니네 가게가 카페 되면 그 손님 다 끊겨⁠.⁠”

아주머니 뒤로 맞은편 노인이 시루를 들고 들어왔다⁠. 노인의 시루는 오래되어 테두리에 금이 가 있었고⁠, 철사로 두 번 감겨 있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시루를 내려놓았다⁠. 노인 뒤로 시루떡 집 젊은 사장과 약식 집 부부가 시루를 들고 줄줄이 들어왔다⁠. 부엌 바닥에 시루 다섯 개가 놓였다⁠. 김이 다섯 갈래로 피어올라 부엌 천장에서 하나로 엉켰다⁠.

방앗간 사장이 뒷문에 고개를 들이밀고 외쳤다⁠.

“⁠내가 쌀 빻는 순서 다 바꿨어⁠! 너네 쌀 먼저야⁠!⁠”

“⁠사장님⁠, 찰밥은 안 빻아요⁠.⁠”

“⁠알아⁠! 그냥 하는 말이야⁠!⁠”

할머니가 웃었다⁠. 할머니가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웃음 끝에 기침이 났다⁠.

웃음이 가라앉기 전에 뒷문 밖에서 쿵 소리가 났다⁠. 옥비였다⁠. 대궐떡집 앞치마를 두른 채 쌀 포대 하나를 어깨에 지고 뒷골목을 지나다 부엌 안을 본 것이었다⁠. 옥비는 포대를 내려놓고 문턱을 넘어왔다⁠. 시루 다섯 개를 하나씩 보았다⁠. 코가 빠르게 씰룩였다⁠.

“⁠이 떡메에 쌀을 대지 마십시오⁠.⁠”

옥비가 다섯 집 사람들에게 말했다⁠. 성벽 위에서 외치던 목소리가 아니라 낮고 공손한 목소리였다⁠.

“⁠이 떡을 먹은 사람은 달을 보지 않습니다⁠.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이 식습니다⁠. 여러분 솥에서 찐 쌀이 이 떡메에 닿으면 여러분 떡도 그렇게 됩니다⁠.⁠”

다섯 집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맞은편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총각⁠. 달 봐서 밥 나와⁠?⁠”

“⁠달이 식으면 거기 사는 이들이 얼어 죽습니다⁠.⁠”

“⁠우리 골목은 벌써 얼었어⁠. 셔터 내린 집에 겨울 나 봤어⁠? 전기 끊긴 진열장에 성에 껴⁠.⁠”

노인은 철사 감긴 시루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옥비는 대꾸하지 못했다⁠. 옥비는 하늘을 따지고 있었고⁠, 노인은 골목을 따지고 있었다⁠. 둘 다 언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옥비는 쌀 포대를 다시 지고 뒷문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나를 한 번 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

우리는 장단을 나눴다⁠. 시루를 가져온 집이 제 떡을 뒤집었다⁠. 꿀떡 집 아주머니가 뒤집으면 아주머니가 비명을 질렀고⁠, 맞은편 노인이 뒤집으면 노인이 말없이 손을 뺐다⁠. 약식 집 부부는 둘이 번갈아 뒤집다가 서로 손이 부딪혀 싸웠다⁠.

“⁠당신 손 왜 거기 넣어⁠!⁠”

“⁠당신이 늦게 뺐잖아⁠!⁠”

나는 둘이 싸우는 동안 떡메를 공중에 들고 기다렸다⁠. 어깨가 떨렸다⁠. 둘이 화해하자 내리쳤다⁠.

찹쌀 찰밥은 집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다⁠. 꿀떡 집 쌀은 낱알이 잘고 단맛이 빨리 왔다⁠. 맞은편 노인의 쌀은 낱알이 굵고 짠맛이 먼저 왔다⁠. 노인은 소금을 남보다 한 꼬집 더 넣었다⁠. 약식 집 쌀에는 참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약식 찌던 솥을 씻지 않고 썼기 때문이다⁠. 나는 집마다 떡 귀퉁이를 떼어 혀에 올렸다⁠. 다섯 집의 쌀 맛이 혀 위에서 하나씩 갈렸다⁠. 삼백 년 동안 한 가지 맛도 몰랐던 혀가⁠, 아침 한나절에 다섯 가지 쌀을 가려냈다⁠.

그리고 다섯 집 떡이 전부 같은 끝맛을 냈다⁠. 혀뿌리에 차가운 점 하나⁠. 계수나무 떡메가 닿은 쌀은 누구네 솥에서 쪘든 달떡이 되었다⁠.

나는 떡메를 내리치다가 손잡이를 내려다보았다⁠. 손잡이는 오늘도 서늘했다⁠. 내 떡이 골목의 다섯 솥으로 퍼지고 있었다⁠.

*

정오에 사백 개를 넘겼다⁠. 부엌 라디오에서 귀성길 고속도로가 벌써 막힌다는 소식이 흘렀다⁠. 줄은 종로3가 역 출구까지 이어졌다⁠. 종로경찰서에서 순경 둘이 나와 줄을 인도 안쪽으로 정리했다⁠. 순경 하나가 줄 정리를 하다가 떡을 하나 얻어먹었다⁠. 순경은 떡을 먹고 나서 호루라기를 입에 문 채 한참 하늘을 보지 않았다⁠. 다른 순경이 팔꿈치로 찔렀다⁠.

세 시에 육백 개였다⁠. 다섯 시에 팔백 개였다⁠. 방앗간 사장이 백 개가 넘을 때마다 골목 한가운데에서 외쳤다⁠.

“⁠칠백⁠! 칠백이야⁠!⁠”

“⁠팔백이요⁠, 사장님⁠!⁠”

“⁠팔백⁠! 팔백이야⁠!⁠”

골목 사람들이 따라 외쳤다⁠. 대궐떡집 유리문 안에서 송화가 고개를 들었다⁠. 상인회장은 계산대에 손을 짚고 골목을 내다보았다⁠. 옥비가 쌀 포대를 내려놓고 대궐떡집 문간에 나와 있었다⁠. 옥비는 외치는 사람들 사이로 내 얼굴을 찾았다⁠. 나는 떡메를 들어 올린 채 옥비와 눈이 마주쳤다⁠. 옥비의 손이 허리춤 방울에 가 있었다⁠.

일곱 시 십 분⁠, 맞은편 노인의 시루가 마지막이었다⁠. 노인이 마지막 떡을 뒤집었다⁠. 나는 백 번을 쳤다⁠. 꿀떡 집 아주머니가 떡을 썰어 콩가루를 뿌렸고⁠, 약식 집 부부가 상자에 담았다⁠. 시루떡 집 사장이 상자를 세어 문 앞 손님에게 넘겼다⁠.

“⁠천⁠!⁠”

방앗간 사장이 외쳤다⁠. 골목이 터졌다⁠.

나는 부엌 한가운데서 뛰었다⁠. 고백하자면 일부러 뛴 것이 아니다⁠. 토끼는 기쁘면 뛴다⁠.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비튼다⁠. 사람 몸으로 부엌 바닥에서 뛰어올라 허리를 비틀었고⁠, 머릿수건이 날아가고⁠, 귀가 튀어나오고⁠, 착지하다가 시루 하나를 걷어찼다⁠. 빈 시루가 데굴데굴 굴러 할머니 발 앞에서 멈췄다⁠.

부엌이 조용해졌다⁠. 다섯 집 사람들이 내 귀를 보았다⁠.

“⁠머리띠예요⁠.⁠”

내가 말했다⁠. 꿀떡 집 아주머니가 박수를 쳤다⁠.

“⁠요새 애들 머리띠 잘 나오네⁠!⁠”

다들 따라 박수를 쳤다⁠. 할머니가 바닥의 머릿수건을 주워 내 머리에 던졌다⁠. 창틀의 쑥떡만이 내 귀를 오래 쳐다보았다⁠.

*

상인회장은 여덟 시에 부엌으로 왔다⁠. 다섯 집 사람들이 시루를 챙겨 하나씩 돌아간 뒤였다⁠. 할머니는 부엌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안반을 닦고 있었다⁠. 상인회장은 점퍼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안반 위에 올렸다⁠. 가계약서였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서 종이를 반으로 찢었다⁠.

“⁠배상금 내가 물어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찢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상인회장이 할머니 앞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어머니 앞에 마주 앉는 것이 얼마 만인지⁠, 상인회장은 의자 다리를 두 번이나 고쳐 놓았다⁠.

“⁠엄마⁠. 오늘 골목에 떡 판 집이 몇 집인지 알아요⁠?⁠”

“⁠여섯⁠.⁠”

“⁠일곱이에요⁠. 오늘 오후에 떡볶이 떡 하던 집이 셔터 올렸어요⁠. 줄에서 밀려온 사람들 보고⁠.⁠”

상인회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굳은살 하나 없는 엄지가 화면 위에서 빨랐다⁠. 안반에 남은 콩가루가 상인회장의 점퍼 소매에 묻었는데⁠, 상인회장은 털지도 않았다⁠.

“⁠그 집들 다 상인회 이름으로 대출 받았어요⁠. 진열장 고치고 쌀 사려고⁠. 내가 보증 섰어요⁠. 엄마 가게 줄이 끊기면 그 집들 다 다시 내려가요⁠.⁠”

“⁠그래서⁠?⁠”

“⁠그러니까 골목이 같이 하자고요⁠. 이 사람 떡을 골목 떡으로⁠. 다섯 집 시루를 다 이 사람 떡메로 치게 하고⁠, 옥토끼 이름으로 골목이 같이 팔고⁠. 오늘 해 봤잖아요⁠. 하루 천 개가 됐잖아요⁠.⁠”

할머니가 아들을 오래 보았다⁠.

“⁠니가 언제부터 손떡을 믿었냐⁠?⁠”

“⁠손떡 안 믿어요⁠. 줄을 믿지⁠.⁠”

상인회장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보았다⁠.

“⁠사장님 생각은 어때요⁠?⁠”

나는 사장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귀가 수건 밑에서 꿈틀거렸다⁠. 대답하기 전에 혀뿌리의 차가운 점이 먼저 떠올랐다⁠. 다섯 집 쌀이 전부 같은 끝맛을 내던 아침이 떠올랐다⁠.

“⁠생각해 볼게요⁠.⁠”

“⁠설 쇠고 바로 얘기해요⁠. 대목은 대보름까지 가요⁠.⁠”

상인회장은 일어나다 말고 할머니의 손을 보았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이었다⁠. 상인회장이 무엇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안반 위의 찢어진 종이를 집어 점퍼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할머니는 아들이 나간 문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지 애비 닮아서 미안하단 말을 못 해⁠.⁠”

*

자정이 지나 옥상에 올라갔다⁠. 설날 새벽이었다⁠. 하늘에 달이 없었다⁠. 그믐이었다⁠. 장독대 맨 앞 항아리 위에는 엎어진 사기 그릇이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가 대보름이면 찹쌀을 담는 그릇이었다⁠.

옥비가 담장에 기대 있었다⁠. 대궐떡집 앞치마를 벗고 수비대 흰 옷 차림이었다⁠.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천 개를 팔았다⁠.⁠”

옥비가 말했다⁠. 축하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응⁠. 할머니 가게 지켰어⁠.⁠”

옥비가 허리춤에서 옥 방울을 풀었다⁠. 방울은 하얗게 덮여 있었다⁠. 서리가 테두리를 넘어 방울 몸통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옥비가 방울을 내 귓가로 가져왔다⁠.

“⁠들어 봐라⁠.⁠”

“⁠뭘⁠?⁠”

“⁠궁이다⁠.⁠”

나는 머릿수건을 벗었다⁠. 귀가 솟았다⁠. 방울에 귀를 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옥이 귓바퀴에 닿아 따가웠다⁠. 그러다 아주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절구 소리였다⁠. 계수나무 공이가 절구 바닥을 찧는 소리였다⁠. 삼백 년 동안 내 귀가 듣고 산 소리였다⁠.

나는 소리를 셌다⁠. 방앗간 마당의 절구들은 서로 장단을 어긋나게 찧는다⁠. 어긋난 장단을 하나씩 가르면 몇 개의 절구가 돌고 있는지 셀 수 있다⁠. 방앗간지기는 그렇게 아침마다 절구를 셌다⁠.

“⁠섣달 보름 밤에 내가 떨어질 때⁠, 방앗간 절구가 백스물이었어⁠.⁠”

“⁠지금은⁠?⁠”

나는 다시 셌다⁠. 귀를 방울에 더 바짝 댔다⁠. 처음부터 다시 셌다⁠.

“⁠백열⁠.⁠”

“⁠열 개가 멈췄다⁠.⁠”

옥비가 방울을 거두었다⁠. 내 귀에서 차가운 옥이 떨어지자 귓바퀴가 화끈거렸다⁠.

“⁠쌀알이 안 떨어지는 절구는 공이를 내려놓는다⁠. 공이를 내려놓은 토끼는 방앗간에서 나가 담장 밑에 웅크린다⁠. 담장 밑은 춥다⁠.⁠”

옥비는 담장 너머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일곱 집 부엌 창문 가운데 셋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설날 아침 떡국 떡을 썰고 있는 집들이었다⁠.

“⁠네가 오늘 지킨 게 일곱 집이다⁠. 궁에서 멈춘 절구가 열이다⁠.⁠”

나는 머릿수건을 다시 썼다⁠. 귀를 꾹 눌러 넣었다⁠. 그래도 방울 속 절구 소리가 귓속에서 멎지 않았다⁠. 쿵⁠, 쿵⁠. 쿵⁠. 백열을 세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숫자를 놓지 못했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천 개 ·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