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22자)
가래떡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설 사흘 전 새벽, 방앗간 기계는 다섯 시에 돌기 시작했다. 나는 전날 저녁 불려 둔 멥쌀 두 말을 수레에 싣고 골목 안쪽으로 밀고 갔다. 가래떡은 찹쌀이 아니라 멥쌀로 한다. 불린 멥쌀에 소금을 넣고 방앗간 기계에 두 번 내려야 고운 가루가 된다. 할머니가 그렇게 가르쳤다.
방앗간 앞에는 벌써 쌀 수레가 넷 놓여 있었다. 맞은편 노인의 수레, 꿀떡 집 아주머니의 수레, 대궐떡집 승합차, 그리고 한 해 동안 셔터를 내렸던 골목 끝 시루떡 집의 수레였다. 방앗간 사장이 기계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설 대목이 돌아왔어! 수레가 다섯이야, 다섯!”
방앗간 사장은 귀가 어두워서 기쁜 소식도 싸우듯이 외쳤다. 롤러 사이로 젖은 쌀이 빨려 들어가고, 아래 함지로 하얀 가루가 눈처럼 쏟아졌다. 공중에 쌀가루가 떠다녔다. 나는 재채기를 했다. 머릿수건 밑에서 귀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두 손으로 눌렀다.
쌀가루 냄새는 찐 쌀 냄새와 다르다. 비리고 서늘하고, 혀에 대면 가루가 침에 녹으면서 아주 늦게 단맛이 온다. 나는 손가락에 묻은 가루를 핥다가 방앗간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날로 먹지 마! 배탈 나!”
*
문 연 집은 여섯이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열던 대궐떡집과 맞은편 노인의 가게, 방앗간 옆 약식 집에 할머니 가게와 꿀떡 집, 시루떡 집이 더해졌다. 소원이 없어지는 떡을 사러 온 사람들이 줄에서 밀려나 다른 가게로 흘러들었고, 흘러든 손님을 보고 셔터가 하나씩 올라갔다. 줄은 골목 어귀를 넘어 낙원상가 앞까지 이어졌다. 일산에서 왔다는 사람, 수원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에 오백 개를 쳤다. 천 개는 아직 멀었다.
옥비는 이제 줄 끝에 없었다.
옥비는 대궐떡집에 있었다. 대궐떡집 앞치마를 두르고 쌀 포대를 어깨에 하나씩 지고 승합차에서 가게로 날랐다. 포대 하나가 사십 킬로그램이었다. 옥비는 포대를 두 개씩 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상인회장은 옥비를 사흘 전에 들였다고 했다. 쌀 포대를 지는 옥비를 보고 체대 다니냐고 물었고, 옥비가 수비대장이라고 대답하자 군대 갔다 왔냐고 다시 물었다. 옥비는 정직하게 말했다고 했다.
“나는 아롱의 떡을 막으러 왔다.”
상인회장은 옥비의 어깨를 두드리며 당장 일당을 두 배로 쳐 주었다.
나는 대궐떡집 유리문 너머로 옥비를 보았다. 옥비가 포대를 내려놓다가 나를 보았다. 코가 씰룩였다. 달에서 나를 붙잡은 토끼가 땅에서는 내 맞수의 가게에서 쌀을 지고 있었다. 송화가 옥비 뒤에서 기계 떡을 썰고 있었다. 송화는 나를 보고 칼을 멈췄다가 다시 썰었다.
*
정오에 상인회장이 골목 한가운데에 안반 두 개를 내놓았다. 하나는 대궐떡집 창고에서 꺼낸 새 안반이었고, 하나는 할머니 부엌에서 내가 들고 나온 오목한 안반이었다. 상인회장은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설 대목 떡메치기 대결! 대궐떡집 대 옥토끼 떡집! 손 가래떡 먼저 다 파는 집이 이깁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골목 상인들이 셔터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았다. 낙원상가 악기점 총각이 장구를 메고 나와 안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상인회장이 노린 것은 구경거리였다. 골목에 사람이 모이면 대궐떡집의 기계 떡도 팔린다. 그리고 옥비가 이기면, 소원이 없어지는 떡의 소문도 꺾인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거 해도 돼요?”
“해. 쟤 쌀은 기계로 찐 거고, 니 쌀은 내가 본 거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무릎에 담요를 덮었다. 쑥떡이 담요 위로 올라가 몸을 말았다.
*
찐 멥쌀가루 덩어리가 김을 뿜으며 두 안반에 쏟아졌다. 시루에서 막 나온 설기는 하얗고 성글다. 이걸 떡메로 쳐야 쫄깃해진다. 장구가 울렸다. 덩, 덕쿵.
옥비가 먼저 떡메를 들었다. 대궐떡집의 떡메는 참나무였다. 계수나무 떡메가 아니었다. 옥비는 참나무 떡메를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가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쾅. 안반이 울렸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몸을 움찔했다. 수비대에서 공이를 다루던 팔이었다. 송화가 옥비 옆에서 소금물에 손을 적셔 떡을 뒤집었다.
내 옆에서는 꿀떡 집 아주머니가 뒤집었다. 할머니는 손이 느렸고, 아주머니가 자원했다. 아주머니는 떡메가 올라갈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손! 아이고, 내 손!”
손은 한 번도 찧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정확하게 뒤집었다.
나는 계수나무 떡메를 내렸다. 퍽, 척. 장구 총각이 내 장단에 장구를 맞췄다. 덩, 덕. 퍽, 척. 옥비의 장단이 더 빨랐다. 쾅, 척. 쾅, 척. 두 안반의 소리가 골목 벽에 부딪혀 엉켰다. 장구 총각이 어느 장단을 따라야 할지 몰라 고개를 양쪽으로 번갈아 돌렸다.
옥비가 떡메를 들어 올린 채 나를 보았다.
“너는 느리다. 궁에서도 느렸다.”
“너는 시끄러워. 궁에서도 시끄러웠어.”
“수비대장은 시끄러워야 한다.”
옥비가 내리쳤다. 쾅. 송화가 손을 빼며 옥비를 흘겨보았다. 옥비의 귀가 머리카락 사이에서 움찔했다. 나는 웃다가 떡메를 한 박자 늦게 내렸고, 꿀떡 집 아주머니가 또 비명을 질렀다. 구경꾼들은 그것도 다 장단인 줄 알고 손뼉을 쳤다.
*
백 번을 치고 떡이 매끈해지자 손으로 밀 차례였다. 덩어리를 뚝 떼어 안반 위에서 두 손바닥으로 굴리면 길게 늘어난다. 손바닥에 찬물을 묻혀야 들러붙지 않는다.
옥비가 떡을 굴리기 시작했다. 옥비는 멈추지 않았다. 떡이 안반 끝을 넘어갔다. 송화가 떡 끝을 받쳐 들었다. 떡은 계속 늘어났다. 송화가 뒷걸음질 쳤다. 가래떡 한 줄이 골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맞은편 노인의 가게 셔터 앞까지 뻗었다.
“이봐, 총각! 떡국 끓일 거야, 줄넘기할 거야?”
맞은편 노인이 소리치자 골목이 웃음으로 뒤집혔다. 옥비는 진지했다. 수비대장은 명령받은 일을 끝까지 한다. 상인회장이 이마를 짚었다. 송화가 웃다가 떡을 놓칠 뻔했다.
나는 내 떡을 손가락 굵기로 굴려 한 자 길이씩 끊었다. 할머니가 가르친 길이였다. 떡을 끊을 때마다 김이 손등에서 피어올랐다.
*
손님들이 두 안반 앞에 줄을 지었다. 양쪽 떡을 다 사서 맛보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은 옥토끼 떡을 먹고 나면 얼굴이 풀렸고, 대궐떡을 먹고 나면 하나를 더 집었다. 상인회장은 그걸 보고 웃었다. 우리 가게 떡은 사람들이 한 개를 먹고 내려놓았다. 더 바랄 게 없는 맛이었다. 대궐떡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외치며 두 개, 세 개 집었다. 다음이 궁금한 맛이었다.
줄은 우리 가게 앞이 더 길었다. 사람들은 다 된 맛을 사러 왔다. 사표를 쓰려던 회사원, 시험을 앞둔 학생, 자식 걱정에 잠 못 자는 엄마들. 짐을 내려놓고 싶은 사람들이 서울에는 많았다. 오후 네 시, 우리 가래떡이 먼저 바닥났다.
할머니가 담요를 젖히고 일어나 대궐떡집 안반으로 갔다. 옥비가 굴린 가래떡 한 토막을 집었다. 상인회장이 긴장한 얼굴로 어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씹었다. 한참 씹었다.
“이건 사람 떡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칭찬인지 흉인지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는 내 안반을 돌아보았다.
“니 떡은 다 먹고 나면 끝나. 이건 먹고 나면 내일 또 생각나. 둘 다 떡이야.”
옥비가 떡메를 내려놓고 할머니를 보았다. 옥비는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귀가 머리카락 속에서 꿈틀거렸다.
*
해가 지고 손님이 빠지자 옥비가 대궐떡집 앞치마를 두른 채 우리 가게 뒷문으로 왔다. 손에 옥 방울을 쥐고 있었다. 옥비는 말없이 방울을 내 앞 안반 위에 내려놓았다. 하얀 테가 사흘 전보다 두 배는 두꺼워져 있었다. 방울 밑 나무판에 물기가 동그랗게 번졌다.
“오늘 네 떡을 먹은 사람이 칠백이다. 대궐 떡을 먹은 사람은 오늘 밤에도 달을 본다. 네 떡을 먹은 사람은 안 본다.”
“그 사람들 다 짐 내려놓은 얼굴이었어. 너도 봤잖아.”
“봤다. 짐을 내려놓은 사람은 내일 다시 짐을 지러 가지 않는다. 그래서 빌지도 않는다.”
옥비가 앞치마 끈을 풀었다. 대궐떡집이라는 글씨가 구겨졌다.
“나는 대궐에서 일한다. 대궐 떡이 많이 팔리면 네 떡이 덜 팔린다. 회장 말이 맞다. 땅의 떡이 너를 이긴다.”
“오늘은 내가 이겼는데.”
“오늘은.”
옥비는 방울을 다시 허리에 찼다. 돌아서려다 말고 부엌 창틀에 앉은 쑥떡을 보았다. 옥비는 토끼였고 쑥떡은 고양이였다. 둘은 서로를 오래 노려보았다. 귀가 나와 있지 않아서 나는 둘이 짐승 말로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듣지 못했다. 쑥떡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옥비가 돌아가고 나서 송화가 퇴근길에 들러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이름난 음식 유튜버가 우리 떡을 먹고 찍은 영상이었다. 「소원이 없어지는 떡, 진짜 먹어 봄」이라는 제목 아래로 서울 곳곳에서 단 댓글이 끝없이 내려갔다. 송화가 화면을 끄며 말했다.
“내일은 줄이 종로3가 역까지 갈 거예요.”
*
밤 열 시, 대궐떡집 불이 꺼지자 송화가 옥토끼 부엌 뒷문을 두드렸다. 손에 멥쌀 한 포대를 끌고 있었다. 대궐떡집 창고의 쌀이었다.
“아빠 창고에서 꺼냈어요. 월급에서 빼라고 쪽지 두고 왔어요.”
나는 쌀 포대와 송화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송화는 낮에 아버지 가게에서 옥비 옆에 서서 떡을 뒤집던 사람이었다.
“왜 도와요?”
“할머니 가게잖아요.”
송화가 소매를 걷었다. 송화의 팔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두 줄 나 있었다. 열여섯 살 때 할머니 아궁이에서 데었다고 했다. 송화는 할머니 손떡을 보며 컸고, 아버지 기계 떡을 썰며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새벽 한 시까지 내일 쓸 쌀을 씻었다. 송화는 찬물에 손을 담그고도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나는 송화에게 달의 방앗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람들의 소원이 쌀알이 되어 절구에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스승인 늙은 방아꾼은 공이 자루에 무명 끈을 칭칭 감아 두고, 끈이 닳으면 새 끈을 감았다. 스승은 소원 쌀을 혀에 올려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혀가 맛을 모르니 남의 소원을 탐내지 않는 거다. 맛을 알면 못 찧는다.”
“아롱 씨는 맛을 알아 버렸네요.”
송화가 함지 물을 갈며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옥비 씨가 그러는데, 방울에 서리가 두꺼워졌대요.”
“너한테 그런 말까지 해?”
“편지에는 다 써요. 그 사람도, 나도.”
송화가 쌀을 비볐다. 사각사각 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
오늘 판 떡은 칠백 개였다. 설 전날까지 이틀이 남아 있었다.
새벽 한 시 반, 송화는 빈 쌀 포대를 접어 들고 뒷문으로 나갔다. 나는 쓰레기를 내놓으려고 따라 나갔다. 골목은 캄캄했고, 가로등 하나만 깜빡이고 있었다. 송화가 대궐떡집 창고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창고 셔터 앞에 상인회장이 있었다. 가죽 점퍼를 입고 담배도 없이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상인회장은 송화의 손에 들린 빈 포대를 보았다. 그리고 내 앞치마에 묻은 쌀가루를 보았다.
“송화야.”
상인회장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 쌀, 어디 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