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16자)

소원이 없어지는 떡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카페 사장은 아침 아홉 시에 줄자를 들고 왔다⁠. 귀에 은색 고리를 세 개 단 젊은 남자였다⁠. 남자는 셔터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셔터는 올라가 있었고⁠, 부엌에서는 시루 김이 오르고 있었고⁠, 안반 앞에서 내가 떡메를 들고 있었다⁠.

“⁠여기 비어 있는 가게 아니에요⁠?⁠”

“⁠안 비었어요⁠.⁠”

내가 떡메를 내리쳤다⁠. 퍽⁠. 남자가 줄자를 떨어뜨렸다⁠. 줄자가 혼자 쉭 감기며 남자의 손등을 때렸다⁠.

할머니의 아들은 남자보다 오 분 늦게 왔다⁠. 어제 승합차에서 내리던 가죽 점퍼 차림이었다⁠. 골목 사람들은 아들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낙원동 떡집 골목 상인회장이었다⁠. 상인회장은 줄자를 주워 남자에게 건네며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셔서⁠.⁠”

“⁠내 정신 멀쩡하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손에 열쇠 꾸러미를 쥐고 있었다⁠. 꾸러미에 녹슨 열쇠가 일곱 개 꿰여 있었다⁠.

*

“⁠엄마⁠. 지난달에 엄마 입으로 판다고 했어요⁠. 손 이래 가지고 가게 못 한다고⁠.⁠”

“⁠했지⁠.⁠”

“⁠그럼 왜 이래요⁠?⁠”

“⁠손이 생겼으니까⁠.⁠”

할머니가 열쇠 꾸러미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쇠붙이가 차갑고 무거웠다⁠. 상인회장의 얼굴이 굳었다⁠.

“⁠엄마⁠, 이 사람 누군지나 알아요⁠? 어디서 굴러 온 사람한테 가게를 줘요⁠?⁠”

“⁠옥상에서 굴러 왔다⁠.⁠”

할머니는 부엌 벽에 세워 둔 떡메 하나를 들고 나왔다⁠. 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질질 끌고 나왔다⁠. 참나무 떡메였다⁠. 손잡이가 사람 손 모양으로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할머니는 떡메를 내 계수나무 떡메 옆에 세웠다⁠.

“⁠우리 시어머니가 쓰던 거다⁠. 나는 예순 해 이걸로 쳤다⁠. 이제 니가 쳐라⁠.⁠”

할머니는 허리에 두른 앞치마를 풀었다⁠. 매듭을 푸는 데 한참 걸려서 내가 거들었다⁠. 앞치마는 하얀 광목이었고 한가운데가 쌀풀에 절어 누렇게 굳어 있었다⁠. 할머니가 앞치마를 내 허리에 둘러 주었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서 끈을 묶지 못했다⁠. 끈은 송화가 와서 묶었다⁠. 송화는 점심시간도 아닌데 대궐떡집 앞치마를 두른 채 와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앞치마 끈이 허리를 조이는 순간에 울 뻔했다⁠. 삼백 년 동안 궁에서 받은 것은 공이와 절구와 차례 순서뿐이었다⁠. 누가 내 허리에 무언가를 묶어 준 적은 없었다⁠.

*

상인회장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계약금 받았어요⁠, 엄마⁠. 깨면 두 배로 물어야 돼요⁠.⁠”

“⁠물어⁠.⁠”

“⁠그 돈 기계 할부에 다 넣었다고요⁠!⁠”

골목이 조용해졌다⁠. 맞은편 떡집 노인이 셔터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송화가 아버지를 보았다⁠. 송화는 아버지 앞에서 말을 삼켰다⁠. 입술이 달싹거리기만 했다⁠.

“⁠엄마 가게만 문제가 아니에요⁠. 이 골목 열한 집 중에 여덟 집이 셔터를 내렸어요⁠. 상인회 통장에 남은 돈으로는 겨울 골목 전기세도 못 내요⁠. 카페라도 들어와야 사람이 와요⁠. 떡 사러 오는 사람은 이제 없어요⁠.⁠”

상인회장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할머니도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상인회장의 손을 보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었다⁠. 손톱 밑도 깨끗했다⁠. 대궐떡집의 떡은 기계가 쳤다⁠. 상인회장은 손을 믿지 않았고⁠, 숫자를 믿었다⁠.

“⁠회장님⁠.⁠”

내가 불렀다⁠. 상인회장이 나를 처음 똑바로 보았다⁠.

“⁠이 가게가 떡을 몇 개 팔면 안 팔아도 돼요⁠?⁠”

상인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어머니 앞에서 지는 길을 찾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기는 숫자를 찾는 얼굴이었다⁠.

“⁠엄마 가게 제일 잘될 때 하루 이백 개 팔았어요⁠. 설 전날까지 하루 천 개⁠. 천 개 팔면 계약 깨고 배상금 내가 물어요⁠. 못 팔면 엄마는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가게는 넘기고⁠.⁠”

“⁠천 개⁠.⁠”

할머니가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떡메 손잡이를 쥐었다⁠.

“⁠해요⁠.⁠”

카페 사장이 줄자를 주머니에 넣으며 혀를 찼다⁠. 상인회장은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다 송화의 앞치마를 보았다⁠. 송화의 앞치마에 콩가루가 묻어 있었다⁠.

“⁠너는 가게로 와⁠.⁠”

송화는 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골목 끝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

다음 날 나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루를 세 번 쪘다⁠. 찹쌀 한 말을 불리면 인절미가 백 개 남짓 나온다⁠. 전날 저녁 불려 둔 찹쌀 세 함지가 부엌 바닥에 줄지어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 의자에 앉아 눈으로만 일했다⁠. 내가 시룻번을 두르면 고개를 끄덕였고⁠, 소금을 집으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첫 시루가 끓는 동안 둘째 함지의 물을 빼고⁠, 첫 시루를 안반에 쏟는 동안 둘째 시루를 올렸다⁠. 떡메를 백 번 내리치면 어깨가 뜨거워졌고⁠, 세 판째에는 어깨에서 김이 났다⁠.

뒤집는 손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소금물에 적시고⁠, 떡메가 올라간 사이에 떡 가장자리를 끌어다 가운데로 접었다⁠. 느렸다⁠. 나는 할머니 손이 빠질 때까지 떡메를 공중에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장단이 달 궁의 장단과 달라졌다⁠. 높이 들고⁠, 한 번 숨을 쉬고⁠, 내리친다⁠. 할머니는 그걸 보고 웃었다⁠.

“⁠토끼가 사람 장단을 다 맞추네⁠.⁠”

할머니 창고의 찹쌀 포대가 하나씩 비었다⁠. 아침 열 시에 셔터를 올리자 골목 어귀까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탑골 장기 할아버지들이 소문을 냈고⁠, 그저께 사진을 찍던 대학생들이 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옥비는 줄 끝에 있었다⁠.

옥비는 골판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골판지에 붓펜으로 큼직하게 「⁠이 떡을 먹으면 소원이 없어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글씨 옆에 맞춤법을 고친 자국이 두 군데 있었다⁠. 송화의 글씨였다⁠. 밤사이 송화가 옥비의 팻말을 고쳐 준 것이었다⁠.

“⁠이 떡을 먹지 마십시오⁠. 이 떡은 소원을 먹습니다⁠.⁠”

옥비는 줄을 따라 걸으며 외쳤다⁠. 수비대장이 성벽 위에서 경계를 알리던 목소리였다⁠. 줄 선 사람들이 옥비를 돌아보았다⁠. 한 여자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소원이 없어지는 떡이래⁠.⁠”

“⁠대박⁠. 이거 컨셉이야⁠?⁠”

“⁠아저씨⁠, 사진 한 장만요⁠!⁠”

옥비는 사진이 무엇인지 몰랐다⁠. 여자가 휴대전화를 들이밀자 옥비는 차렷 자세로 굳었다⁠. 찰칵 소리가 나자 귀를 뒤로 젖혔다⁠. 다행히 귀는 머리카락 속에 들어가 있었다⁠. 옥비는 내게로 와서 낮게 말했다⁠.

“⁠저 여자가 내 얼굴을 네모난 거울에 가뒀다⁠.⁠”

“⁠가둔 거 아니야⁠. 자랑하려고 찍은 거야⁠.⁠”

“⁠무엇을 자랑하나⁠?⁠”

“⁠너를⁠.⁠”

옥비의 코가 멈췄다⁠.

*

줄 맨 앞에는 넥타이를 맨 회사원이 서 있었다⁠. 회사원은 떡을 받자마자 한입에 반을 베어 물었다⁠. 우물거리다가 멈췄다⁠. 휴대전화를 꺼내 무엇인가 쓰던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쓰던 글자를 하나씩 지웠다⁠.

“⁠사표 쓰려고 했는데⁠.⁠”

회사원이 혼잣말을 했다⁠.

“⁠이상하네⁠. 다 괜찮은 것 같아요⁠.⁠”

회사원은 나머지 반을 천천히 먹고 회사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손님에게 떡을 건넬 때마다 얼굴을 보았다⁠. 먹고 나면 얼굴이 풀렸다⁠. 다들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맛있다는 얼굴과는 달랐다⁠. 짐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정오에 삼백 개가 다 나갔다⁠. 줄은 줄지 않았다⁠. 떡을 못 산 사람들이 줄에서 빠져나와 옆집 앞에 모였다⁠. 옆집은 한 해 전에 셔터를 내린 꿀떡 집이었다⁠. 셔터에 붙은 「⁠임대⁠」 종이가 바람에 펄럭였다⁠.

오후 두 시⁠, 옆집 셔터가 드르륵 올라갔다⁠. 머리를 질끈 묶은 오십 대 아주머니가 먼지 앉은 진열장을 행주로 훔치며 외쳤다⁠.

“⁠꿀떡⁠! 꿀떡 있어요⁠! 한 시간만 기다려요⁠!⁠”

아주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기도 전에 방앗간으로 뛰어갔다⁠. 골목 안쪽 방앗간에서 기계가 웅웅 돌기 시작했다⁠. 방앗간 사장이 기계 소리보다 크게 고함을 질렀다⁠.

“⁠꿀떡 집이 쌀 빻으러 왔어⁠! 일 년 만에⁠!⁠”

방앗간 사장은 귀가 어두웠다⁠. 기계 소리를 사십 년 들어서라고 했다⁠. 방앗간 사장이 외치는 소리는 골목 끝까지 들렸다⁠. 문 연 집이 셋에서 다섯이 되었다⁠. 할머니 가게와 꿀떡 집⁠. 할머니는 부엌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꼽다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

점심 무렵 옥비가 줄 끝에서 사라졌다⁠. 나는 떡 상자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옥비를 찾으러 나갔다⁠. 옥비는 낙원상가 앞 붕어빵 수레 앞에 있었다⁠. 송화도 같이 있었다⁠. 대궐떡집 앞치마 위에 패딩을 걸친 채였다⁠.

옥비는 붕어빵 틀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레 주인이 반죽을 붓고 팥을 얹고 틀을 덮자 옥비가 한 걸음 물러났다⁠.

“⁠물고기를 반죽으로 빚어 굽는가⁠?⁠”

“⁠붕어빵이에요⁠. 붕어는 안 들어가요⁠.⁠”

송화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옥비는 붕어빵 하나를 받아 들고 머리부터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한입 베어 물자 뜨거운 팥에 혀를 데었는지 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튀어나올 뻔했다⁠. 송화가 재빨리 옥비의 패딩 모자를 씌워 주었다⁠. 처음 만난 지 이틀 된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송화가 옥비에게 물었다⁠.

“⁠편지에 쓴 거⁠, 진짜예요⁠? 달이 식는다는 거⁠.⁠”

옥비는 붕어빵을 든 채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진짜다⁠. 너한테 거짓말을 쓴 적은 없다⁠.⁠”

송화가 고개를 숙였다⁠. 송화의 운동화 코가 아스팔트를 문질렀다⁠. 나는 수레 뒤에서 몸을 돌렸다⁠. 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골목으로 돌아오는 내내 귀가 수건 속에서 꿈틀거렸다⁠.

*

해 질 녘에 옥비가 골판지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소원이 없어지는 떡⁠」은 하루 만에 사람들 입에 붙어 있었다⁠. 줄 선 사람들은 소원이 없어지는 맛이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옥비가 외친 말이 우리 가게의 이름이 되어 있었다⁠.

“⁠네 덕에 줄이 두 배야⁠.⁠”

나는 옥비에게 남은 떡 하나를 내밀었다⁠. 옥비는 받지 않았다⁠.

“⁠웃을 일이 아니다⁠.⁠”

옥비가 허리춤의 옥 방울을 풀어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방울은 엄지손톱만 했다⁠. 맑은 연둣빛이었는데⁠, 가장자리를 따라 하얀 테가 얇게 둘려 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하얀 가루가 묻어났다⁠. 서리였다⁠.

“⁠어제까지 없었다⁠.⁠”

옥비가 말했다⁠.

“⁠달 궁이 식으면 방울이 식는다⁠. 오늘 하루 삼백 명이 네 떡을 먹었다⁠. 삼백 명이 오늘 밤 달을 안 본다⁠. 그만큼 절구에 쌀알이 덜 떨어진다⁠.⁠”

“⁠삼백 명이 다 달을 볼 사람들이었어⁠?⁠”

“⁠모른다⁠. 너도 모른다⁠.⁠”

나는 손바닥의 방울을 내려다보았다⁠. 서리가 체온에 녹아 물방울 하나가 되었다⁠. 물방울은 차가웠다⁠. 첫 떡을 삼킨 날부터 내 혀뿌리에 앉아 있던 차가움과 같았다⁠.

“⁠그래도 천 개 팔 거야⁠. 안 팔면 할머니가 이 가게를 잃어⁠.⁠”

“⁠할머니 하나 때문에 사만을 얼려⁠?⁠”

“⁠사만이 다 언다는 거⁠, 너도 아직 몰라⁠.⁠”

옥비가 방울을 도로 가져갔다⁠. 옥비는 화가 나면 코가 빨라진다⁠. 코가 빠르게 씰룩였다⁠.

*

밤에 나는 할머니 부엌에서 혼자 내일 쓸 찹쌀을 씻었다⁠. 쌀뜨물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할머니는 이 층에서 텔레비전을 켜 둔 채 잠들어 있었다⁠. 저녁 뉴스가 대보름 달맞이 행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청계광장에 달집을 세우고 시민 만 명이 소원지를 매단다고 했다⁠.

쑥떡이 창틀에서 내려와 내 발목에 몸을 비볐다⁠. 나는 머릿수건을 벗었다⁠. 귀가 솟자 쑥떡의 말이 들렸다⁠.

“⁠옆집 꿀떡 아줌마⁠. 작년에 셔터 내리던 날 밤에 저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어⁠. 한참⁠.⁠”

“⁠그래서⁠?⁠”

“⁠아까는 웃더라⁠.⁠”

쑥떡은 할 말만 하고 콩가루 그릇에 코를 박았다⁠. 나는 함지에 손을 넣은 채 창밖을 보았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 지붕들 사이로 하늘이 좁았다⁠. 꿀떡 집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고⁠, 김이 창문을 뿌옇게 덮고 있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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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산없음2026.10.31· 3화

    떡메 한 번에 줄자가 손등을 때리는 장면 최고예요. 상인회장님은 좋은 사람인가요?

    • 차무겸작가2026.10.31

      상인회장도 골목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에요. 방법이 토끼와 다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