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97자)

시룻번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여덟 시간을 불린 찹쌀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뭉개졌다⁠. 할머니는 낱알 하나를 집어 엄지와 검지로 비벼 보더니 됐다고 했다⁠. 우리는 찹쌀을 대소쿠리에 쏟아 물을 뺐다⁠. 소쿠리 밑으로 뿌연 물이 한참 떨어졌다⁠. 달에서는 쌀을 물에 담그지 않는다⁠. 소원은 젖지 않는다⁠.

“⁠물 빠지는 동안 시룻번 해⁠.⁠”

할머니가 밀가루 한 사발에 물을 부어 내 앞에 밀었다⁠. 나는 시룻번이 무엇인지 몰랐다⁠. 할머니는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서 말로만 가르쳤다⁠. 밀가루를 물에 개어 말랑하게 치대고⁠, 길게 밀어 뱀처럼 늘인다⁠. 솥과 시루가 맞닿는 틈에 둘러 붙인다⁠. 틈으로 김이 새면 떡이 설익는다⁠.

나는 반죽을 치댔다⁠. 손바닥에 쩍쩍 들러붙었다⁠. 밀가루 냄새가 고소해서 한 덩이를 떼어 입에 넣었다⁠. 할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그걸 왜 먹어⁠!⁠”

밍밍했다⁠. 혀에 풀처럼 들러붙었고 이빨 사이에 껴서 빠지지 않았다⁠. 나는 혀로 이빨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삼백 년 만에 먹은 두 번째 땅의 맛이 풀 맛이었다⁠.

“⁠그건 떡이 아니라 문풍지 바르는 거다⁠. 먹을 걸 줘도 꼭 안 먹을 걸 먹어⁠.⁠”

*

할머니 부엌에는 가마솥 아궁이 하나와 가스 화구 둘이 있었다⁠. 아궁이는 손님 많던 시절에 쓰던 것이라⁠, 가게를 닫은 뒤로는 보름마다 손녀가 와서 군불이나 땐다고 했다⁠. 할머니가 가스 화구의 손잡이를 돌렸다⁠. 딸깍 소리에 이어 파란 불이 확 일어났다⁠.

귀가 튀어나왔다⁠. 머릿수건 매듭이 툭 풀렸다⁠. 나는 부엌 구석까지 뒷걸음질 쳤고⁠, 등이 쌀통에 부딪혔다⁠. 달에는 불이 없다⁠. 삼백 년 동안 땅의 불은 위에서 점으로만 보았다⁠.

“⁠불 처음 보냐⁠? 불 무서워하는 토끼네⁠.⁠”

창틀에 쑥떡이 앉아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몰랐다⁠. 귀가 나와 있으니 고양이 말이 들렸다⁠.

“⁠시끄러워⁠.⁠”

“⁠토끼가 떡집 한다고⁠? 골목 고양이들 다 웃겠다⁠.⁠”

할머니가 쑥떡을 보고 혀를 찼다⁠. 할머니 귀에는 고양이가 야옹⁠, 내가 킁킁 하는 소리만 들렸을 것이다⁠. 할머니는 수건을 집어 내 머리에 다시 씌워 주었다⁠. 귀를 꾹 눌러 넣자 쑥떡의 말이 뚝 끊기고 야옹 소리만 남았다⁠.

우리는 솥에 물을 붓고 시루를 얹었다⁠. 할머니가 시켜서 나는 시룻번을 솥 테두리에 둘렀다⁠. 시루 밑바닥에는 젖은 면 보자기를 깔고⁠, 물 뺀 찹쌀을 고르게 펴 담았다⁠. 소금은 할머니가 손가락 세 개로 집어 뿌렸다⁠. 불을 올리자 솥이 웅웅 울더니⁠, 시룻번 위로 실 같은 김이 새어 나왔다⁠.

“⁠샌다⁠. 손으로 꾹 눌러⁠.⁠”

김이 손등을 핥고 지나갔다⁠. 뜨거웠다⁠.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시룻번을 꾹꾹 눌러 틈을 막자 김은 시루 위로만 올라갔다⁠. 하얀 김이 곧게 천장으로 올라가 환풍구로 빨려 들어갔다⁠. 달 궁의 절구 곁에서 올라가던 쌀의 열기도 이렇게 곧게 올라갔다⁠. 나는 김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

김이 고르게 오르고 이십 분쯤 지나자 할머니가 소금물 한 바가지를 시루 위에 흩뿌리라고 했다⁠. 찹쌀은 마른 채로 찌면 겉이 굳는다⁠. 중간에 물을 먹여야 속까지 차지게 익는다⁠. 소금물이 찹쌀에 닿자 치익 소리가 났고⁠, 김이 한 번 더 왈칵 올라왔다⁠.

가게 셔터를 누군가 두드렸다⁠.

“⁠할머니⁠! 불 켜져 있어요⁠? 할머니⁠!⁠”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할머니가 눈짓을 했고⁠, 내가 셔터를 반쯤 올렸다⁠. 하얀 위생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허리를 숙여 셔터 밑으로 들어왔다⁠. 앞치마에 「⁠대궐떡집⁠」이라고 박혀 있었다⁠. 여자는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누구세요⁠?⁠”

“⁠내 조카다⁠. 달에서 왔어⁠.⁠”

할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웃었다⁠. 웃다가 시루를 보았다⁠. 웃음이 멈췄다⁠.

“⁠할머니⁠, 떡 쪄요⁠? 손도 못 쓰면서⁠?⁠”

“⁠얘가 친다⁠.⁠”

“⁠송화야⁠, 인사해⁠. 아롱이다⁠.⁠”

송화는 할머니의 손녀였다⁠. 골목 어귀 큰 떡집⁠, 아버지의 대궐떡집에서 막내로 일한다고 했다⁠. 점심시간마다 기계 떡 썰던 칼을 내려놓고 할머니 가게로 뛰어온다고 했다⁠. 송화가 내 손을 보았다⁠. 손등이 김에 데어 빨갰다⁠.

“⁠시룻번은 누가 했어요⁠?⁠”

“⁠나요⁠. 하나 먹었어요⁠.⁠”

송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가게 셔터 밑으로 남자 하나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옥비였다⁠. 옥비는 아침부터 셔터 앞에서 버티다가 소금물 김 냄새를 맡고 들어온 것이었다⁠. 옥비는 할머니를 보자 몸을 움츠렸다⁠. 빗자루가 어디 있는지 먼저 찾는 눈이었다⁠. 그러다 송화와 눈이 마주쳤다⁠.

“⁠송화야⁠. 쟤는 어젯밤 옥상에 든 도둑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옥비는 할머니 말을 듣지 못했다⁠. 송화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코가 멈췄다⁠. 그리고 옥비의 머리 위로 회색 귀 두 개가 툭 튀어나왔다⁠. 오른쪽 귀는 곧았고 왼쪽 귀는 반으로 접혀 있었다⁠.

송화가 손에 든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접힌 귀⁠.⁠”

송화는 전화기를 줍지 않았다⁠.

“⁠편지마다 그려 놓던 거⁠. 왼쪽 귀 접힌 토끼⁠. 옥비 씨예요⁠?⁠”

옥비가 두 손으로 귀를 눌렀다⁠. 귀는 들어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를 보았다⁠. 나는 옥비를 보았다⁠. 옥비는 바닥을 보았다⁠.

“⁠보고할 것 없다⁠.⁠”

*

송화는 스무 살 대보름부터 할머니 아궁이에 편지를 태웠다고 했다⁠. 아버지 일로 속이 터진 밤이었다⁠. 할머니가 대보름에는 달님한테 하소연하는 거라며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펴 주었고⁠, 송화는 편지를 접어 불에 넣었다⁠. 다음 보름 아침⁠, 장독대 쌀 그릇 옆에 마른 잎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잎에는 이빨로 꼭꼭 눌러 새긴 글씨가 있었다⁠. 「⁠연기가 담장에 앉았다⁠. 읽었다⁠. 너희 아버지도 너도 틀리지 않았다⁠. 수비대장⁠.⁠」

“⁠여덟 해예요⁠. 잎을 아흔여섯 장 받았어요⁠.⁠”

송화가 옥비를 쏘아보았다⁠. 옥비는 시선을 피했다⁠. 나는 옥비의 등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달 궁의 담장을 지키는 수비대장이 밤마다 담장에 그을음으로 앉은 땅의 편지를 읽고⁠, 계수나무 잎을 이빨로 갉아 답장을 써 내려보냈다⁠. 궁주가 알면 수비대장 자리가 날아갈 일이었다⁠. 장독대의 마른 잎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아롱⁠. 떡 이야기를 하자⁠.⁠”

옥비가 내 웃음을 끊었다⁠. 할머니가 시루 뚜껑을 열었다⁠. 김이 부엌 천장까지 솟았다⁠. 찹쌀은 반투명하게 익어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

*

할머니가 떡을 치는 두꺼운 나무 판⁠, 안반을 가리켰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닳아 있었다⁠. 할머니 시어머니 때부터 쓰던 판이라고 했다⁠. 송화가 안반에 소금물을 바르고 찰밥을 쏟았다⁠. 하얀 김이 안반 위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계수나무 떡메를 들었다⁠. 손잡이가 서늘했다⁠. 떡메 머리를 소금물 바가지에 적시고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려치기 직전⁠, 옥비가 떡메 자루를 붙잡았다⁠.

“⁠치지 마라⁠.⁠”

“⁠놔⁠.⁠”

“⁠이걸 치면 달떡이다⁠. 먹은 사람은 다시는 달을 안 본다⁠. 너는 지금 사람들한테서 소원을 빼앗는 거다⁠.⁠”

“⁠배부르게 해 주는 거야⁠.⁠”

“⁠배가 부른 거랑 다 이룬 거랑 같으냐⁠?⁠”

우리는 또 떡메를 사이에 두고 버텼다⁠.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안반 모서리를 내리쳤다⁠. 소리가 부엌을 울렸다⁠.

“⁠떡 식는다⁠!⁠”

옥비가 움찔했다⁠.

“⁠붙들 거면 뒤집기나 해⁠! 남의 부엌에서 사내가 멀뚱히 서서 뭐 하는 거야⁠?⁠”

옥비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의 빗자루가 부엌문 옆에 기대 있었다⁠. 옥비는 떡메를 놓았다⁠. 그리고 송화가 내미는 소금물 바가지에 손을 담갔다⁠.

나는 떡메를 내리쳤다⁠. 퍽⁠. 찰밥이 짓이겨지며 낱알이 터졌다⁠. 떡메를 들어 올리자 떡이 끈적하게 딸려 올라왔다⁠. 옥비가 젖은 손으로 떡 가장자리를 접어 가운데로 뒤집었다⁠. 다시 내리쳤다⁠. 옥비가 뒤집었다⁠. 퍽⁠, 척⁠. 퍽⁠, 척⁠.

손이 느리면 떡메에 손이 찧이고⁠, 손이 빠르면 떡이 안반에 들러붙는다⁠. 옥비는 첫 몇 번 손을 늦게 뺐다⁠. 떡메가 옥비의 손끝을 스쳤고⁠, 옥비가 귀를 뒤로 젖혔다⁠. 열 번쯤 지나자 옥비의 손이 장단에 붙었다⁠. 수비대에서 공이 장단을 맞추던 손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떡메를 내렸다⁠. 나를 막으러 내려온 토끼가 내 떡을 제일 잘 뒤집고 있었다⁠.

백 번을 쳤다⁠. 찰밥은 낱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하얀 떡이 되었다⁠. 송화가 떡을 도마에 옮겨 손바닥으로 펴고⁠, 칼에 물을 묻혀 네모나게 썰었다⁠. 할머니가 볶은 콩가루를 체에 내려 떡 위에 뿌렸다⁠.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덮었다⁠.

*

할머니가 맨 먼저 한 조각을 집었다⁠. 씹었다⁠. 한참 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상하다⁠.⁠”

할머니는 창밖을 보았다⁠. 겨울 볕이 셔터 틈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있었다⁠.

“⁠더 바랄 게 없는 맛이다⁠. 예순 해 떡을 했는데 이런 맛은 처음이야⁠.⁠”

송화도 한 조각을 먹었다⁠. 송화는 씹으면서 눈썹을 찌푸렸다가 폈다⁠.

“⁠할머니 떡 맛인데요⁠. 끝이 이상해요⁠. 다 됐다⁠, 하는 맛이에요⁠.⁠”

나도 먹었다⁠. 찹쌀의 단맛이 혀 가운데에 길게 늘어졌고⁠, 콩가루가 입천장에 고소하게 붙었다⁠. 소금 간이 단맛 뒤를 받쳐 주었다⁠. 삼켰다⁠. 혀뿌리에 무엇인가 남았다⁠. 차가웠다⁠. 보름달 아래 방앗간 마당에 맨발로 섰을 때 발바닥에 닿던 차가움이 혀뿌리에 한 점 앉아 있었다⁠.

옥비는 떡을 먹지 않았다⁠. 손에 묻은 떡을 물에 씻어 내며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혀뿌리의 차가운 점을 말하지 않았다⁠.

*

오후 세 시⁠, 가게 앞에 접이식 탁자를 펴고 떡 서른 개를 늘어놓았다⁠. 할머니가 「⁠옥토끼 떡집⁠」이라고 쓴 종이를 골판지에 붙여 탁자 앞에 세웠다⁠. 낡은 간판은 녹이 슬어 글자가 반만 남아 있었다⁠.

탑골공원에서 장기를 두다 나온 할아버지 셋이 먼저 멈췄다⁠. 하나가 떡을 집어 먹고⁠, 말없이 또 하나를 집었다⁠. 다른 할아버지가 지갑을 꺼냈다⁠.

“⁠이 집 문 열었네⁠? 할매 손 다 나았나⁠?⁠”

“⁠조카가 쳐요⁠.⁠”

할아버지들은 서 있는 자리에서 다섯 개씩 먹었다⁠. 할아버지들이 먹는 동안 쑥떡이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와 콩가루를 핥다가 송화한테 엉덩이를 맞았다⁠. 맞은편 떡집 사장이 셔터 앞에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구경했다⁠. 지나가던 대학생 둘이 떡 사진을 찍었다⁠. 한 시간 만에 서른 개가 다 나갔다⁠.

장기 할아버지 하나가 빈 탁자를 보며 말했다⁠.

“⁠나 오늘 아침까지 손주 대학 붙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이거 먹으니까 붙을 것 같어⁠. 이상하지⁠?⁠”

할아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웃으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옥비가 내 옆에서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옥비의 허리춤에서 옥 방울이 아주 작게 울렸다⁠.

맞은편 떡집 사장이 팔짱을 풀고 길을 건너왔다⁠. 깡마른 노인이었고⁠, 손톱 밑이 쌀가루로 하얬다⁠. 노인은 탁자에 떨어진 떡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대 보았다⁠.

“⁠이거 어디 쌀이야⁠? 경기미야⁠?⁠”

“⁠할머니 창고 쌀이에요⁠.⁠”

“⁠우리 쌀도 같은 방앗간에서 빻는데⁠.⁠”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제 가게 셔터를 돌아보았다⁠. 셔터 절반에 「⁠임대 문의⁠」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 골목에 셔터 여덟 개가 내려갔어⁠. 우리 집도 설 쇠면 내린다⁠. 할매네가 이제 와서 열면 뭐 하나⁠?⁠”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도 떡 부스러기가 묻은 손가락을 한 번 더 핥았다⁠.

*

해 질 녘⁠, 골목 어귀에서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멈췄다⁠. 옆구리에 「⁠대궐떡집⁠」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오십 대 중반이었고⁠, 가죽 점퍼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송화가 내 뒤로 반 발짝 숨었다⁠.

남자는 빈 탁자를 보고⁠, 녹슨 간판을 보고⁠, 불 켜진 부엌을 보았다⁠. 그러고는 할머니 앞으로 곧장 걸어갔다⁠.

“⁠엄마⁠.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떡 팔지⁠.⁠”

“⁠이 가게 팔렸어요⁠.⁠”

남자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할머니는 받지 않았다⁠.

“⁠가계약금 받았다고요⁠. 카페 하겠다는 사람이 내일 아침에 실측하러 와요⁠.⁠”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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