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59자)
섣달 보름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떨어지는 동안 나는 떡메를 놓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았다. 삼백 년 동안 손에 쥐고 살던 물건이라 손가락이 저절로 감겼고, 달빛 길이 등 뒤에서 끊어지는 소리가 얼음 갈라지는 소리처럼 귓속을 긁고 지나갔다. 귀가 바람에 뒤로 젖혀졌다. 아래로는 불빛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다. 달에서 내려다볼 때는 쌀가루를 흩뿌린 것 같던 서울이, 가까이 오자 뜨겁고 시끄러웠다.
내가 떨어진 곳은 항아리 뚜껑 위였다. 정확히는 뚜껑을 깨고 항아리 안으로 반쯤 들어갔다. 엉덩이가 차가운 것에 잠겼고, 코가 먼저 알았다. 짰다. 콩 썩은 냄새, 아니 콩이 오래 익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된장 항아리였다.
“뭐냐, 너. 큰 쥐냐?”
담장 위에서 고양이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쑥색 줄무늬에 귀 한쪽이 찢긴 늙은 수컷이었다. 짐승 말이었다. 달토끼는 토끼 모습일 때 짐승 말을 하고, 짐승 말은 짐승 귀에만 들린다. 사람은 우리 말을 코 킁킁대는 소리로 듣는다. 달에서 그렇게 배웠고, 땅에 와서 처음 확인한 사람이 고양이였다.
“토끼다.”
“토끼가 왜 된장에 앉아 있냐?”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항아리에서 엉덩이를 빼고 떡메를 끌어올렸다. 계수나무 떡메는 내 몸보다 길었다. 고양이가 떡메 끝에 코를 대고 킁 하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차갑네. 이거 먹는 거냐?”
“먹으면 이빨 나간다.”
고양이는 흥미를 잃은 얼굴로 담장 위에 다시 엎드렸다. 나중에 할머니가 이 고양이를 쑥떡이라고 불렀다. 털 색이 쑥떡 같다고 붙인 이름인데, 쑥떡은 막상 쑥 들어간 떡은 입에도 안 댔다. 콩고물만 먹었다.
*
옥상에는 항아리가 서른 개쯤 줄지어 있었다. 맨 앞, 가장 큰 항아리 뚜껑 위에 사기 그릇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나는 그릇을 보자마자 발이 굳었다.
달의 쌀은 아무 맛이 없다. 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소원은 달에 닿아 하얀 쌀알이 된다. 우리 달토끼는 쌀알을 절구에 넣고 계수나무 공이로 찧는다. 찧을 때 나는 열이 달을 데운다. 삼백 년 동안 나는 남의 소원을 찧었고, 한 번도 맛을 본 적이 없었다. 혀에 올려도 맹물 같았다.
그러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이상한 쌀이 몇 줌씩 달에 올라왔다. 소원이 아니라 진짜 쌀이었다. 낱알이 통통하고 뽀얬다. 누가 그릇에 담아 하늘에 바친 쌀이 소원에 묻어 올라온 것이었다. 지난 대보름에 나는 낯선 쌀을 몰래 혀에 올렸다. 단맛이 났다. 씹을수록 끈적하게 늘어나는 단맛이었다. 나는 쌀을 모아 몰래 불리고 쪄서 계수나무 떡메로 쳤다. 친 떡을 반은 내가 먹고 반은 동무들에게 나눠 주었다.
들킨 것은 열 달 뒤였다. 궁주는 나를 방앗간에서 끌어내 달빛 길 끝에 세웠다. 죄목은 「땅의 쌀로 떡을 친 죄」였다. 나는 떡메를 끌어안고 버텼고, 수비대가 나를 밀었다.
엎어진 사기 그릇 안쪽에 쌀 몇 톨이 말라붙어 있었다. 통통하고 뽀얀 낱알이었다. 나는 코를 대 보았다. 지난 대보름에 내 혀에 올라온 것과 같은 냄새였다. 그릇 옆 항아리 뚜껑 틈에는 마른 잎 몇 장이 끼어 있었다. 둥글고 잎맥이 가는 계수나무 잎이었다. 달에만 있는 나무의 잎이 서울 옥상에 왜 있는지, 섣달 보름 밤의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거기 누구야!”
옥상 문이 벌컥 열렸다. 하얀 머리에 꽃무늬 누비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손전등과 빗자루를 한꺼번에 들고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내 얼굴을 덮었다. 나는 놀라면 귀부터 선다. 귀가 꼿꼿하게 서는 바람에 할머니 눈에는 내가 더 커 보였을 것이다.
“이게 무슨 토끼가 이렇게 커?”
나는 대답했다. 할머니 귀에는 킁킁 소리로 들렸다. 할머니가 빗자루를 치켜들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숨을 참고 사람 모습을 떠올렸다. 달에서 삼백 년 내려다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등뼈가 늘어나고 앞발이 손가락으로 갈라지는 동안 온몸이 쥐가 난 것처럼 저렸다. 둔갑이 끝나자 나는 흰 무명옷을 입은 여자의 몸으로 장독대 사이에 주저앉아 있었다. 무릎에는 여전히 떡메가 있었다.
할머니는 빗자루를 내리지 않았다. 손전등을 내 머리 위로 올렸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더듬었다. 귀가 그대로였다. 사람 얼굴에 토끼 귀가 하얗게 솟아 있었다.
*
“너냐?”
할머니가 빗자루 끝으로 엎어진 그릇을 가리켰다.
“내 찹쌀 먹은 게 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한참 나를 내려다보다가 빗자루를 항아리에 기대 놓았다. 그리고 조끼 주머니에서 꽃무늬 머릿수건을 꺼내 내 머리에 씌우고, 귀를 꾹꾹 눌러 넣고 뒤에서 매듭을 지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게 불거진 손이었다. 매듭 하나를 묶는 손이 한참 떨렸다.
“우리 시어머니가 그랬다. 대보름에 찹쌀 한 그릇 올려 두면 달토끼가 먹고 떡을 쳐 준다고. 예순 해를 올렸어. 열아홉에 시집와서부터.”
“그 떡, 맛있었어요.”
사람 말이 처음 내 입에서 나왔다. 혀가 낯설게 굴렀다. 할머니가 코로 웃었다.
“먹은 놈이 맛있다고 하네. 염병.”
할머니는 나를 이 층 살림집으로 데려갔다. 방바닥이 뜨거웠다. 나는 발바닥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달에는 뜨거운 바닥이 없다. 할머니는 라디오를 켜 둔 채 부엌에서 숟가락 하나를 들고 왔다. 숟가락에 갈색 조청이 한 숟갈 떠 있었다.
“먹어 봐. 니들 동네엔 이런 거 없지?”
혀에 올리자 단맛이 천천히 퍼졌다. 쌀의 단맛과 달랐다. 엿기름 냄새가 코 뒤로 올라왔고, 끝에 탄 맛이 아주 조금 남았다.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한참 가만히 있었다. 삼백 년 동안 맹물만 혀에 올린 토끼에게 조청 한 숟갈은 너무 길었다. 귀가 수건 밑에서 다시 꿈틀거렸다.
라디오에서 여자 목소리가 서울시가 올해 정월 대보름 달맞이를 청계광장에서 크게 연다고 했다. 할머니는 라디오를 껐다.
“대보름은 무슨. 이 골목은 대보름도 설도 없다. 열한 집에 문 여는 데가 셋이야. 나도 셔터 내린 지 세 해다.”
할머니는 손을 펴 보였다. 열 손가락 마디가 다 굵었다. 손가락이 끝까지 펴지지 않았다.
“떡메를 못 쥐어. 기계 떡은 떡이 아니고.”
방바닥에 엎어 둔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화면에 「송화」 두 글자가 떠 있었다. 할머니는 받지 않고 전화기를 도로 엎었다.
“손녀다. 아침마다 내 숨 붙었나 전화해. 지 애비는 이 가게 팔아먹을 궁리만 하고.”
*
옥상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맑고 차가운 소리였다. 나는 숟가락을 놓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달에서 장독대까지 하얀 빛줄기 하나가 곧게 내려와 있었다. 달빛 길이었다. 빛줄기 끝에 회색 토끼 하나가 내려앉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큰 수컷이었고, 허리에 옥 방울을 차고 있었다. 회색 토끼는 내려앉자마자 몸을 일으켜 사람 모습이 되었다. 서른 남짓 된 남자였다. 수비대의 흰 무명 갑옷을 입은 채였다. 코끝이 쉬지 않고 씰룩거렸다.
옥비였다. 달 궁 수비대장. 열 달 전 방앗간 뒤에서 내 떡을 처음 붙잡은 토끼였다.
“아롱. 떡메를 내놓아라.”
옥비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옥비는 원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궁주의 명이다. 떡메는 궁의 물건이다. 너는 버려도 떡메는 버리지 않는다.”
“나는 버리고?”
“너는 이미 버렸다. 보고 끝.”
옥비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떡메를 등 뒤로 돌렸다.
“여기서 떡 쳐서 먹고살 거야.”
옥비의 코가 멈췄다. 옥비는 놀라면 코가 멈춘다.
“그게 안 된다는 거다. 계수나무 떡메로 땅의 쌀을 치면 달떡이 된다. 달떡을 먹은 사람은 소원이 다 이뤄진 맛을 본다. 다 이뤄진 사람은 달을 보고 빌지 않는다. 소원이 안 올라오면 절구가 선다. 절구가 서면 달이 식는다.”
“떡 몇 개로 달이 식어?”
“오백 년 전에 내려간 토끼가 있었다. 그해 겨울 달토끼 천이 얼었다. 지금 달에는 사만이 산다.”
옥비가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등이 된장 항아리에 닿았다.
“너 하나 배부르자고 사만을 얼릴 거냐?”
“아무도 안 얼어. 떡 좀 판다고.”
옥비가 떡메 손잡이를 잡았다. 나도 잡았다. 우리는 장독대 한가운데서 떡메를 사이에 두고 당겼다. 옥비는 수비대장이라 힘이 셌다. 내 발이 시멘트 바닥을 미끄러졌다. 화가 났다. 화가 나면 나는 발을 구른다. 사람 모습인데도 오른발이 저절로 들렸다가 바닥을 쾅 내리찍었다. 장독 뚜껑들이 덜컥거렸다.
“도둑이야!”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계단참에서 빗자루를 휘두르며 올라왔다. 빗자루가 옥비의 등짝에 철썩 붙었다. 옥비는 떡메를 놓고 고개를 돌렸다. 두 번째 빗자루가 옥비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남의 집 옥상에서 여자를 붙들고 뭐 하는 짓이야, 이놈이!”
“수비대장이다. 궁의 일이다.”
“궁? 무슨 궁? 궁둥이를 확 그냥!”
옥비는 빗자루를 피하려고 뒷걸음질 치다가 옥상 구석 창고 문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쌀 포대를 쌓아 둔 창고였다. 할머니는 망설이지 않았다. 창고 문을 닫고, 걸쇠를 걸고, 자물쇠를 채웠다. 손가락이 굳은 사람 손으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채웠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
창고 안에서 옥비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라. 달이 지면 길이 닫힌다.”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창고 문 앞에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경찰 오면 연다.”
나는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달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달빛 길은 보름 밤, 달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만 열린다. 제 발로 오르는 것만 실어 나르고, 억지로 끌고 오를 수는 없다. 오르는 토끼가 손에 든 물건은 같이 오른다. 옥비가 떡메만 챙겨 혼자 오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옥비는 창고 안에 있었다.
“할머니, 경찰 불렀어요?”
“안 불렀지. 경찰 오면 니 귀도 봐야 할 거 아니냐.”
할머니는 하품을 했다. 하품하는 입에서 하얀 김이 올라갔다. 영하 구 도였다. 창고 안에서 옥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나중에는 사람 주먹이 아니라 토끼 뒷발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쿵, 쿵. 옥비도 화가 나면 발을 구른다.
“아롱.”
옥비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달이 식는 건 사실이다. 너도 방앗간에서 봤다. 해마다 쌀알이 줄었다. 사람들은 이제 달을 덜 본다. 거기에 네 떡까지 퍼지면 버틸 수가 없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앗간 절구에 쌀알이 해마다 얕게 깔리던 것은 나도 알았다. 늙은 방아꾼 스승이 빈 절구를 공이로 쓸며 혀를 차던 소리도 기억했다.
“그래도 나는 지구 쌀 맛을 알아 버렸어.”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장독대 뒤로 해가 오르기 시작했고, 달이 낙원상가 지붕 너머로 내려갔다. 하얀 빛줄기가 끝에서부터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
할머니는 해가 다 뜬 뒤에야 자물쇠를 풀었다. 옥비는 쌀 포대 사이에서 사람 모습으로 나왔다. 머리에 쌀겨가 잔뜩 묻어 있었고 코가 빨갰다. 옥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낮달조차 없었다.
“다음 보름이 언제냐?”
옥비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손가락을 꼽았다.
“섣달 보름 지났으니 설이 보름 남았고, 설 쇠고 보름이면 정월 대보름이지. 한 달이다.”
옥비는 허리춤의 옥 방울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옥 방울은 달 궁의 온기를 따라 데워지고 식는다. 옥비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방울은 아직 맑았다.
“대보름 달이 뜨면 나는 떡메를 들고 오른다. 너도 데려간다.”
“제 발로 오르는 것만 실어 나르는 거, 잊었어?”
“안 잊었다. 그러니 그때까지 네가 떡을 못 치게 하겠다. 떡을 못 치면 너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옥비가 내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놀라지도, 화가 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코만 천천히 씰룩였다.
“한 달 동안 네 옆에 붙어 있겠다.”
할머니가 쌀 창고에서 찹쌀 포대 하나를 끌어냈다. 혼자 끌지 못해 내가 거들었다. 할머니는 포대를 열고 됫박으로 찹쌀을 퍼서 큰 함지에 쏟았다. 하얀 낱알이 함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가 싸락눈 소리 같았다. 나는 코가 저절로 씰룩였다.
“찹쌀은 겨울엔 여덟 시간은 불려야 돼. 물은 두 번 갈고.”
할머니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찹쌀 위로 쏟아지자 뿌연 쌀뜨물이 올라왔다. 나는 소매를 걷고 두 손을 함지에 넣었다. 물이 손목까지 차가웠다. 손바닥 밑에서 쌀알이 서로 비비며 사각거렸다.
장독대 담장 위에서 쑥떡이 하품을 했다. 옥비는 창고 문 앞에 팔짱을 끼고 버티고 있었다. 쌀알이 물을 머금고 부푸는 여덟 시간 동안, 옥비는 창고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