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64자)

만 개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대보름 새벽 다섯 시⁠, 골목 셔터가 열한 개 다 올라갔다⁠.

열한 번째는 방앗간 옆⁠, 다섯 해 전에 문을 닫은 증편 집이었다⁠. 텔레비전에서 골목 소식을 보고 경기도 딸네 집에서 첫 전철을 타고 왔다는 할아버지가 녹슨 셔터를 혼자 밀어 올렸다⁠. 열 번째는 전날 밤에 올라갔다⁠. 골목 사람들은 이제 셔터 올라가는 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방앗간 사장만 기계 앞에서 외쳤다⁠.

“⁠열하나⁠! 열하나야⁠!⁠”

골목 한가운데에 안반 일곱 개가 줄지어 놓였다⁠. 할머니의 오목한 안반⁠, 대궐떡집의 새 안반⁠, 그리고 다섯 집이 다락과 창고에서 꺼내 온 안반들이었다⁠. 떡메도 다락에서 나왔다⁠. 맞은편 노인은 장가갈 때 장인이 물려준 떡메를 꺼냈는데⁠, 머리에 곰팡이가 피어 있어서 밤새 소금물로 닦았다고 했다⁠. 약식 집 부부는 떡메가 하나뿐이라 누가 칠지 정하느라 싸웠다⁠. 증편 집 할아버지는 떡메 대신 다듬이 방망이 두 개를 들고 왔다⁠.

“⁠이걸로 치면 안 되나⁠?⁠”

“⁠안 돼요⁠, 할아버지⁠.⁠”

다듬이 방망이는 콩가루 체를 두드리는 데 쓰였다⁠.

*

나는 할머니의 참나무 떡메를 쥐었다⁠. 계수나무 떡메는 옥비가 대궐떡집 옥탑에서 안고 있었다⁠. 달이 뜰 때까지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여섯 시⁠, 장구 총각이 장구를 쳤다⁠. 덩⁠, 덕쿵⁠. 일곱 안반 위로 일곱 떡메가 올라갔다⁠. 퍽⁠. 일곱 개가 한꺼번에 떨어지자 골목 바닥이 울렸다⁠. 창틀의 쑥떡이 꼬리를 부풀렸다⁠. 나는 머릿수건 매듭을 살짝 풀어 귀 끝을 내놓았다⁠. 쑥떡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네 오늘 골목 무너뜨릴 거냐⁠?⁠”

“⁠오늘 하루만 참아⁠.⁠”

“⁠콩고물 두 배⁠.⁠”

쑥떡은 흥정을 끝내고 할머니 의자 밑으로 들어가 몸을 말았다⁠.

상인회장은 대궐떡집 안반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떡메가 들려 있었다⁠. 대궐떡집 떡메였다⁠. 사흘 전까지 옥비가 쥐던 것이었다⁠. 상인회장은 떡메를 어깨에 올리고 한참 망설였다⁠. 할머니가 의자를 끌고 상인회장의 안반 앞으로 갔다⁠. 소금물에 손을 적셨다⁠.

“⁠엄마가 뒤집어요⁠?⁠”

“⁠그럼 누가 뒤집냐⁠?⁠”

상인회장이 떡메를 내렸다⁠. 떡이 아니라 안반 모서리를 쳤다⁠. 떡메가 튕겨 나가며 상인회장의 손바닥이 얼얼하게 울렸다⁠. 상인회장이 손을 털었다⁠. 구경하던 꿀떡 집 아주머니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회장님⁠! 서른 해 떡 장사가 안반을 쳐요⁠!⁠”

두 번째는 떡을 쳤다⁠. 세 번째는 할머니의 손을 칠 뻔했다⁠. 할머니가 손을 빼며 아들을 노려보았다⁠. 상인회장은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떡메를 더 천천히 들었다⁠. 높이 들고⁠, 한 번 숨을 쉬고⁠, 내리쳤다⁠. 할머니의 장단이었다⁠. 할머니가 굽은 손가락으로 떡을 접었다⁠. 퍽⁠, 척⁠. 퍽⁠, 척⁠.

열 시쯤 상인회장의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상인회장은 물집을 보고 한참 서 있다가 다시 떡메를 쥐었다⁠. 할머니는 아들의 손바닥을 보지 않았다⁠. 떡만 보았다⁠. 다만 뒤집는 손이 조금 빨라졌다⁠.

*

송화는 대궐떡집 안반에서 아버지 옆 칼을 잡았다⁠. 떡을 썰고 콩가루를 묻혔다⁠. 사흘 동안 송화와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점심 무렵 송화가 칼을 내려놓고 내 안반으로 왔다⁠. 손에 귤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어깨⁠.⁠”

송화가 귤을 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소금물 바가지를 집어 꿀떡 집 아주머니 대신 내 떡을 뒤집기 시작했다⁠. 아주머니의 손목은 이미 파스 두 장을 붙이고도 떨리고 있었다⁠. 송화는 말없이 뒤집었다⁠. 송화의 장단은 할머니 장단과 같았다⁠. 할머니 부엌 아궁이 앞에서 자란 손이었다⁠.

“⁠옥비 씨가 그러는데요⁠.⁠”

송화가 떡을 뒤집으며 말했다⁠.

“⁠방울 얼음이 어젯밤보다 두꺼워졌대요⁠. 대보름 아침이라서요⁠. 오늘 밤에 다 결판난대요⁠.⁠”

“⁠알아⁠.⁠”

“⁠올라가면 진짜 못 내려와요⁠?⁠”

나는 떡메를 내렸다⁠. 퍽⁠.

“⁠몰라⁠. 올라가 본 적은 있어도 내려온 건 한 번뿐이라⁠.⁠”

송화가 웃었다⁠. 사흘 만에 처음이었다⁠.

*

오후 네 시⁠, 떡 만 개가 상자에 담겼다⁠. 서른 가마 찹쌀이 열한 집의 솥에서 쪄지고 일곱 안반 위에서 사람 떡메에 맞아 떡이 되었다⁠. 상자는 대궐떡집 승합차와 방앗간 트럭⁠, 약식 집 오토바이에 나뉘어 청계광장으로 갔다⁠.

다섯 시⁠, 광장 남쪽에 천막 스무 개가 쳐져 있었다⁠. 달집이 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검게 솟아 있었다⁠. 새끼줄마다 소원지가 하얗게 매달려 펄럭였다⁠. 사람들이 벌써 광장을 반쯤 채웠다⁠. 방송국 차 세 대가 광장 가장자리에 줄지어 있었다⁠. 사람들 머리 위로 토끼 머리띠가 수백 개 보였다⁠. 아침 방송 뒤로 서울에서 다 팔렸다는 머리띠였다⁠.

맨 가운데 천막에 주무관이 있었다⁠. 주무관은 떡 상자 하나를 열어 하나를 집어 먹었다⁠. 씹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장님⁠. 이게 그 소원이 없어지는 떡이죠⁠? 방송 나간 거⁠.⁠”

상인회장이 내 옆에서 몸을 굳혔다⁠. 나는 상인회장보다 먼저 대답했다⁠.

“⁠아니에요⁠.⁠”

“⁠네⁠?⁠”

“⁠오늘 떡은 소원이 남는 떡이에요⁠. 사람 손으로만 쳤어요⁠. 먹고 나서도 빌 게 남아요⁠.⁠”

상인회장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바닥 물집이 내 팔에 닿았다⁠.

“⁠사장님⁠, 지금 무슨 소리를⁠…⁠… 주무관님⁠, 사장님이 농담을 좋아하셔서⁠. 똑같은 떡입니다⁠. 골목 아홉 집⁠, 아니 열한 집이⁠…⁠…⁠.⁠”

“⁠회장님⁠.⁠”

나는 상인회장의 손을 떼어 냈다⁠. 상인회장의 얼굴은 하얬다⁠. 서른 해 장사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거짓말 하나면 오늘을 넘기고⁠, 넘긴 오늘로 다섯 집의 대출을 넘기는 사람⁠. 상인회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다만 오늘 밤에는 틀렸다⁠.

“⁠주무관님⁠. 보도자료에 소원이 없어지는 떡이라고 쓰셨죠⁠? 오늘 밤 그 떡을 만 명이 먹으면⁠, 저 소원지 만 장이 달에 하나도 안 닿아요⁠.⁠”

주무관이 웃으려다 멈췄다⁠. 나는 달집을 가리켰다⁠.

“⁠대신 달 뜰 때 떡메치기를 해요⁠. 저 앞에서⁠. 시루 뚜껑을 열고 김 위에서 쳐요⁠. 사람들은 김을 보면서 빌고요⁠. 김이 달 밑에서 없어질 때까지 끝까지 보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떡을 드리는 거예요⁠. 소원이 남는 떡을⁠.⁠”

주무관은 안경을 벗어 닦았다⁠. 다시 썼다⁠. 달집과 방송국 차와 토끼 머리띠들을 차례로 보았다⁠.

“⁠달 뜰 때 떡메치기라⁠.⁠”

주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은 좋네요⁠. 시장님 첫 떡 받기 전에 하면 되겠어요⁠.⁠”

상인회장이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할머니가 천막 의자에서 일어나 아들의 앞치마 끈을 잡아당겼다⁠.

“⁠니 손으로 친 떡이다⁠. 니가 나눠 줘라⁠.⁠”

상인회장은 물집 잡힌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떡 상자 하나를 들어 첫 줄의 시민에게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떡을 건넸다⁠.

*

여섯 시 반⁠, 동쪽 빌딩 사이로 달이 떠올랐다⁠.

크고 붉었다⁠. 가장자리가 흐렸다⁠. 광장의 만 명이 달을 보며 환호했다⁠. 달집에 불이 붙었다⁠. 생솔가지가 타닥타닥 터지며 송진 냄새가 광장을 덮었다⁠. 불길이 이 층 높이로 솟았고 소원지들이 불길을 타고 날아올랐다⁠.

달집 앞 안반에 맞은편 노인의 시루가 놓였다⁠. 철사를 세 번 감은 시루였다⁠. 가스 화구 위에서 찰밥이 김을 뿜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토끼 머리띠를 쓴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옥비였다⁠. 머리띠 위로 진짜 귀가 솟아 있었다⁠. 왼쪽 귀가 접혀 있었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광장의 머리띠 수백 개 사이에서 옥비의 귀는 그냥 잘 만든 머리띠였다⁠. 옥비는 계수나무 떡메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손잡이에 광목이 감겨 있었다⁠.

옥비가 떡메를 내밀었다⁠.

“⁠한 번이다⁠.⁠”

“⁠알아⁠.⁠”

나는 떡메를 받았다⁠. 손잡이가 광목 너머로 서늘했다⁠. 옥비가 허리춤의 방울을 풀어 안반 귀퉁이에 놓았다⁠. 방울은 얼음에 통째로 덮여 하얀 돌덩이 같았다⁠.

주무관이 마이크를 들었다⁠. 내가 말한 대로 말했다⁠.

“⁠여러분⁠! 이제 시루 뚜껑을 엽니다⁠. 김이 오르면 김을 보면서 소원을 비세요⁠. 김이 달 밑에서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보세요⁠!⁠”

송화가 시루 뚜껑을 열었다⁠.

김이 솟았다⁠. 하얀 기둥이 곧게 하늘로 올라갔다⁠. 바람이 없었다⁠. 달집 불길 옆으로 김 기둥이 달을 향해 뻗었다⁠. 만 명이 고개를 들었다⁠. 수천 대의 휴대전화 화면이 위로 들렸다가⁠, 하나씩 내려갔다⁠. 사람들은 화면 대신 눈으로 김을 따라갔다⁠.

송화와 할머니가 찰밥을 안반에 쏟았다⁠. 김이 안반 위에서 다시 왈칵 솟았다⁠. 옥비가 소금물에 손을 적셨다⁠.

나는 계수나무 떡메를 들었다⁠. 장구 총각이 장구를 쳤다⁠. 덩⁠.

퍽⁠.

떡메가 떨어지는 순간 김이 한 번 크게 부풀어 올랐다⁠. 옥비가 뒤집었다⁠. 척⁠. 퍽⁠. 김이 또 솟았다⁠. 퍽⁠, 척⁠. 퍽⁠, 척⁠. 떡메가 쌀을 칠 때마다 손잡이를 타고 열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떡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김을 타고 위로 갔다⁠. 나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알았다⁠. 삼백 년 동안 달의 절구에서 공이를 쥐던 손바닥이 알았다⁠.

서른 번⁠. 마흔 번⁠. 어깨가 타올랐다⁠. 천막 앞에서 방앗간 사장이 장구 소리보다 크게 외쳤다⁠. “⁠쉰⁠! 쉰이야⁠!⁠” 귀가 어두워서 장구 총각의 장단은 못 들었지만 떡메 떨어지는 소리는 하나도 빼먹지 않고 셌다⁠. 송화가 내 등 뒤에서 끝까지 보라고 소리쳤다⁠.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김을 보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일흔 번⁠. 여든 번⁠. 상인회장이 첫 줄 천막 앞에서 떡 상자를 든 채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손주를 빌던 장기 할아버지도⁠, 엄마 수술을 빌던 패딩 입은 여자도 광장 어딘가에서 고개를 들고 있을 것이었다⁠.

백 번⁠.

나는 떡메를 내려놓았다⁠.

*

안반 귀퉁이에서 소리가 났다⁠. 얼음 갈라지는 소리였다⁠. 방울을 덮은 얼음에 금이 갔다⁠. 금이 퍼졌다⁠. 얼음이 한 겹 미끄러져 안반 위로 떨어졌다⁠. 또 한 겹⁠. 녹은 물이 안반 나뭇결을 따라 흘렀다⁠. 마지막 얼음 조각이 떨어지자 방울이 드러났다⁠. 연둣빛이었다⁠. 서리 한 점 없었다⁠.

방울이 울렸다⁠. 맑고⁠, 따뜻한 소리였다⁠.

옥비가 방울을 들어 귀에 댔다⁠. 나도 머릿수건을 벗고 귀를 댔다⁠. 광장의 만 명 앞에서 귀가 하얗게 솟았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다들 하늘을 보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절구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어긋난 장단이 너무 많아 가를 수가 없었다⁠. 나는 세다가 그만두었다⁠. 옥비는 끝까지 셌다⁠. 옥비의 코가 멈춰 있었다⁠.

“⁠백서른⁠.⁠”

섣달 보름 밤보다 열이 많았다⁠.

나는 안반 위의 떡을 떼어 혀에 올렸다⁠. 계수나무 떡메로 백 번 친 떡이었다⁠. 달았다⁠. 삼켰다⁠. 혀뿌리가 따뜻했다⁠. 차가운 점이 없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하얀 빛줄기 하나가 달에서 곧게 내려와 달집 앞 안반 옆에 닿았다⁠. 달빛 길이었다⁠. 광장 사람들은 달무리라고 했다⁠. 방송국 카메라들이 빛줄기를 비추었다⁠. 빛줄기 끝이 내 발 앞의 아스팔트를 하얗게 적셨다⁠.

방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롱⁠. 떡메를 들고 올라오너라⁠.⁠」

할머니가 내 앞치마를 붙잡았다⁠. 굽은 손가락이 광목을 움켜쥐었다⁠.

“⁠다녀오너라⁠.⁠”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손을 놓았다⁠.

“⁠달 지기 전에 와⁠. 내일 쌀 불려야 돼⁠.⁠”

나는 계수나무 떡메를 들었다⁠. 옥비가 내 옆으로 왔다⁠. 송화가 옥비의 머리띠를 벗겨 손에 쥐었다⁠. 나는 빛줄기 위로 한 발을 올렸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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