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3자)

사람 손

달에서 쫓겨난 토끼가 차린 떡집 · 차무겸

참나무 떡메는 계수나무 떡메보다 조금 무거웠다⁠. 손잡이가 사람 손 모양으로 닳아 있어서⁠, 내 손가락이 할머니의 손가락 자리에 하나씩 들어갔다⁠. 할머니의 시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나⁠. 세 사람의 손이 같은 자리를 쥐었다⁠.

송화가 나간 뒤 나는 부엌 바닥의 함지 하나를 시루에 쪘다⁠. 김이 오르는 동안 할머니가 이 층에서 내려왔다⁠. 할머니는 비어 있는 안반 옆을 보고⁠, 벽에서 내려 놓은 참나무 떡메를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뒤집어 주세요⁠.⁠”

할머니가 의자를 안반 앞으로 끌어다 앉았다⁠. 소금물에 손을 적셨다⁠. 나는 찰밥을 쏟고 떡메를 들었다⁠.

퍽⁠. 소리가 달랐다⁠. 계수나무 떡메는 맑게 울렸는데 참나무 떡메는 둔하게 떨어졌다⁠. 할머니가 굽은 손가락으로 떡을 끌어다 접었다⁠. 퍽⁠, 척⁠. 할머니 장단은 느렸다⁠. 나는 높이 들고⁠, 한 번 숨을 쉬고⁠, 내리쳤다⁠. 백 번을 쳤다⁠. 어깨가 계수나무 떡메로 칠 때보다 빨리 뜨거워졌다⁠. 사람 떡메는 사람 팔을 그대로 받았다⁠.

떡을 썰어 콩가루를 묻혔다⁠. 한 귀퉁이를 혀에 올렸다⁠.

달았다⁠. 찹쌀의 단맛이 혀 가운데로 모였고⁠, 콩가루가 입천장에 고소하게 붙었다⁠. 소금 간이 단맛 뒤를 받쳤다⁠. 삼켰다⁠. 혀뿌리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차가운 점이 없었다⁠. 혀뿌리가 따뜻했다⁠. 떡이 지나간 자리에 쌀 냄새만 남았다⁠.

“⁠그냥 떡이네요⁠.⁠”

할머니도 한 조각을 먹었다⁠. 오래 씹었다⁠.

“⁠이게 내 떡이다⁠. 예순 해 친 떡⁠.⁠”

할머니는 웃지 않았다⁠. 떡을 삼키고 나서 창틀의 조청 종지를 보았다⁠. 스승에게 놓아 둔 종지였다⁠. 그리고 엎어진 그릇이 있는 옥상 쪽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

아홉 시에 셔터를 올리자 장기 할아버지 셋이 맨 앞에 와 있었다⁠. 손주 대학을 빌던 할아버지가 떡을 받아 먹었다⁠. 씹다가 멈췄다⁠. 하나를 더 먹었다⁠.

“⁠맛은 그대론데⁠. 이상허네⁠.⁠”

할아버지는 떡을 든 채 고개를 들었다⁠. 골목 지붕 사이로 하늘이 좁게 보였다⁠. 낮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낮달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우리 손주 붙어야 하는데⁠.⁠”

다른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냐고 했다⁠. 지난번에 먹고는 다 붙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냐고 했다⁠. 손주를 빌던 할아버지는 대꾸하지 않고 낮달을 향해 두 손을 비볐다⁠. 나는 계산대 뒤에서 할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할아버지가 다시 빌고 있었다⁠.

줄은 짧아지지 않았다⁠. 손님들은 떡을 먹고 맛있다고 했다⁠. 다 된 얼굴은 아니었다⁠. 맛있는 떡을 먹은 얼굴이었다⁠. 몇은 하나를 더 샀다⁠. 할머니가 대궐떡집 가래떡을 먹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먹고 나면 내일 또 생각나는 떡⁠.

*

상인회장은 열 시에 왔다⁠. 손님 하나가 떡 사진을 올리며 「⁠오늘은 그냥 맛있는 떡⁠」이라고 적은 것을 보고 뛰어온 것이었다⁠. 상인회장은 부엌으로 들어오자마자 안반 옆을 보았다⁠. 계수나무 떡메가 없었다⁠.

“⁠사장님⁠. 그 떡메 어디 갔어요⁠?⁠”

“⁠없어요⁠.⁠”

“⁠없다니요⁠?⁠”

“⁠잃어버렸어요⁠.⁠”

송화의 이름은 대지 않았다⁠. 송화는 대라고 했지만 나는 대지 않았다⁠. 상인회장이 내 얼굴을 보다가 안반 위의 떡을 집어 먹었다⁠. 씹었다⁠. 얼굴이 굳었다⁠.

“⁠이거 그 떡 아니잖아요⁠.⁠”

“⁠그 떡은 이제 없어요⁠. 대보름에도요⁠.⁠”

상인회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약정서 사진을 띄웠다⁠.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노란 형광펜 줄이 화면 가득 번져 있었다⁠.

“⁠모레 저녁 여섯 시예요⁠. 만 개⁠. 서울시장이 첫 떡을 받아요⁠. 방송국이 세 군데 와요⁠. 소원이 없어지는 떡이라고 시에서 보도자료까지 냈어요⁠. 그런데 그냥 떡을 내요⁠? 사람들이 먹고 이상하다고 하면⁠, 주먹밥 소리 들었던 거 다시 터지면⁠, 다섯 집 대출이 한꺼번에 돌아와요⁠. 나는 보증 선 거 다 물어야 되고요⁠. 사장님⁠, 그거 알고 이래요⁠?⁠”

“⁠알아요⁠.⁠”

“⁠알면 찾아와요⁠! 그 떡메 어디서 잃어버렸는데요⁠? 내가 찾을게요⁠. 경찰 불러요⁠?⁠”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안반을 내리쳤다⁠. 섣달 보름 다음 날 옥비 앞에서 친 것과 같은 소리였다⁠.

“⁠니 떡 니가 쳐 봐라⁠.⁠”

상인회장이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 지금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에요⁠.⁠”

“⁠니가 언제 떡메 쥐어 봤냐⁠? 기계 들이고 열다섯 해⁠. 니 손으로 친 떡 한 판 먹어 본 적 없다⁠. 남의 떡메 잃어버렸다고 경찰 부를 거면⁠, 니 떡메부터 찾아⁠.⁠”

상인회장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 하나 없는 손이었다⁠. 할머니가 예순 해 동안 빌던 손바닥이었다⁠. 상인회장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부엌을 나갔다⁠.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모레 여섯 시예요⁠, 사장님⁠. 무슨 떡이든⁠.⁠”

*

오후에는 골목 사람들이 차례로 부엌 뒷문을 기웃거렸다⁠. 계수나무 떡메가 없어졌다는 말이 상인회장 입에서 나와 한 시간 만에 골목 끝까지 퍼졌다⁠. 꿀떡 집 아주머니는 파스 붙인 손목을 문지르며 안반 옆 빈자리를 보았다⁠. 약식 집 부부는 처음으로 싸우지 않았다⁠.

맞은편 노인은 말없이 들어와 참나무 떡메로 친 떡 한 조각을 집었다⁠. 씹었다⁠. 철사 감긴 시루 이야기를 할 때처럼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게 원래 이 골목 떡이야⁠. 내가 열일곱에 이 골목 들어왔을 때 집집마다 이 맛이었어⁠.⁠”

“⁠그런데 이걸로 줄이 설까요⁠?⁠”

“⁠몰라⁠. 줄 서던 시절엔 이 맛이었다는 것만 알아⁠.⁠”

노인은 손가락에 묻은 콩가루를 털고 나갔다⁠. 나가다가 문간에서 덧붙였다⁠.

“⁠시루는 내가 철사 한 번 더 감아 놨다⁠. 무슨 떡을 치든 모레 아침 여섯 시에 들고 온다⁠.⁠”

*

밤 열 시⁠, 나는 대궐떡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비는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사람 모습이었다⁠. 무릎 위에 계수나무 떡메를 가로로 올려놓고 있었다⁠. 손잡이에 내가 감은 광목이 그대로 있었다⁠. 송화는 옥탑방 문간에 기대 있었다⁠.

옥비가 나를 보았다⁠. 일어나지 않았다⁠.

“⁠찾으러 왔나⁠?⁠”

“⁠응⁠.⁠”

“⁠안 준다⁠.⁠”

“⁠알아⁠.⁠”

나는 평상 끝에 앉았다⁠. 옥탑 너머로 달이 떠 있었다⁠. 대보름 이틀 전 달이었다⁠. 한쪽이 아주 조금 덜 찼다⁠. 가장자리가 번져 흐렸다⁠.

옥비의 허리춤에서 방울이 울렸다⁠.

옥비가 방울을 풀어 평상 위에 놓았다⁠. 방울은 이제 서리가 아니라 얼음에 덮여 있었다⁠. 얼음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궁주였다⁠.

「⁠수비대장⁠. 아롱⁠. 둘 다 듣거라⁠.⁠」

송화가 문간에서 숨을 멈췄다⁠.

「⁠대보름 달이 지기 전까지 아롱이 제 발로 오르지 않으면⁠, 나는 달빛 길을 닫는다⁠. 땅과 달 사이 길을 영영 닫는다⁠. 떡메를 든 토끼가 땅에 남으면 또 내려가는 토끼가 생긴다⁠. 달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길이 닫히면 수비대장도 다시는 땅에 내려가지 못한다⁠. 보름마다 잎을 떨어뜨리지도 못한다⁠.⁠」

방울이 조용해졌다⁠. 송화가 문간에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옥비가 송화를 돌아보았다⁠. 궁주는 알고 있었다⁠. 여덟 해 동안의 잎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너⁠, 보고했어⁠?⁠”

내가 옥비에게 물었다⁠.

“⁠안 했다⁠.⁠”

“⁠나도 안 했어⁠.⁠”

“⁠궁주는 담장 위 그을음을 처음부터 다 봤다⁠. 아무 말도 안 했을 뿐이다⁠.⁠”

옥비가 떡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광목이 손가락 사이에서 구겨졌다⁠.

*

송화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말했다⁠.

“⁠스무 살 대보름에요⁠. 할머니 아궁이에 편지를 넣고⁠, 연기가 굴뚝으로 올라가는 걸 봤어요⁠. 장독대로 뛰어 올라가서 끝까지 봤어요⁠. 연기가 하늘에 다 풀릴 때까지⁠. 달 바로 밑에서 없어질 때까지⁠.⁠”

“⁠그다음 보름에 잎이 왔고⁠.⁠”

“⁠네⁠. 그 뒤로 여덟 해 동안 한 번도 안 빼먹고 끝까지 봤어요⁠. 끝까지 안 보면 안 갈 것 같았어요⁠.⁠”

옥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본 편지만 담장에 앉았다⁠. 송화 편지는 한 장도 빠진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아궁이에 넣은 종이는 대부분 중간에 흩어졌다⁠.⁠”

나는 송화를 보았다⁠. 그리고 섣달 보름 다음 날 할머니 부엌에서 처음 시루를 올린 날을 떠올렸다⁠. 시룻번으로 틈을 막자 김이 곧게 천장으로 올라가 환풍구로 빨려 들어갔다⁠. 달 궁 절구 곁에서 올라가던 쌀의 열기처럼 곧게⁠.

“⁠옥비야⁠.⁠”

“⁠말해라⁠.⁠”

“⁠달떡이 왜 차가운지 알아⁠? 계수나무 떡메가 쌀을 칠 때 나는 열이 떡 속에 갇혀서야⁠. 달에서는 그 열이 위로 올라가 달을 데우는데⁠, 땅에서는 떡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은 그 열을 먹고 다 된 맛을 봐⁠. 열이 빠져나간 자리가 혀뿌리에 차갑게 남고⁠.⁠”

옥비가 나를 보았다⁠. 코가 멈춰 있었다⁠.

“⁠시루 뚜껑을 열고 김이 한창 오를 때 쳐⁠. 떡 속으로 들어갈 열이 김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사람들은 김을 보고 빌고⁠, 김이 달 밑에서 없어질 때까지 끝까지 봐⁠. 송화가 연기를 본 것처럼⁠. 열은 김을 타고⁠, 소원은 보는 눈을 타고 같이 올라가⁠.⁠”

“⁠떡은⁠?⁠”

“⁠떡은 땅에 남지⁠. 그냥 떡으로⁠.⁠”

*

옥비는 오래 생각했다⁠. 그러더니 평상에서 일어나 송화의 옥탑방 안을 보았다⁠. 송화가 일어나 휴대용 가스버너와 작은 양은 찜솥을 꺼냈다⁠. 나는 주머니에서 젖은 면 보자기를 꺼냈다⁠. 보자기 안에 불린 찹쌀 한 줌이 싸여 있었다⁠. 부엌을 나오면서 함지에서 떠 온 것이었다⁠.

“⁠열 번이다⁠.⁠”

옥비가 떡메를 내밀었다⁠.

“⁠열 번만 쳐라⁠. 열한 번째에 다시 가져간다⁠.⁠”

김이 오르자 나는 찜솥 뚜껑을 열고 찰밥을 송화의 도마 위에 쏟았다⁠. 도마가 안반 노릇을 했다⁠. 김이 도마 위에서 곧게 피어올랐다⁠. 바람이 없는 밤이었다⁠.

“⁠송화 씨⁠. 김 봐요⁠. 빌어요⁠. 끝까지 봐요⁠.⁠”

송화가 김 앞으로 다가갔다⁠. 눈을 들어 김을 따라 올렸다⁠. 김이 옥탑 지붕을 넘어 달 쪽으로 올라갔다⁠. 송화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나는 떡메를 내리쳤다⁠. 퍽⁠. 옥비가 소금물에 손을 적셔 뒤집었다⁠. 퍽⁠, 척⁠. 찐 지 얼마 안 된 찰밥에서 김이 한 번 칠 때마다 왈칵 솟았다⁠. 솟은 김이 송화의 눈을 따라 위로 갔다⁠. 다섯⁠, 여섯⁠. 일곱⁠. 열⁠.

나는 떡메를 옥비에게 돌려주었다⁠. 옥비는 떡메를 받는 대신 평상 위의 방울을 보았다⁠.

방울을 덮은 얼음 위로 물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하나였다⁠. 물방울은 방울의 둥근 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 평상 바닥에 떨어졌다⁠. 얼음 한 귀퉁이가 녹아 연둣빛이 손톱만큼 비쳤다⁠.

옥비가 방울을 들어 귀에 댔다⁠. 나도 머릿수건을 벗고 옥비의 손 옆에 귀를 댔다⁠. 쿵⁠, 쿵⁠. 쿵⁠. 쿵⁠. 어긋난 장단을 하나씩 갈랐다⁠.

“⁠아흔⁠.⁠”

“⁠아까는 여든아홉이었다⁠.⁠”

옥비가 말했다⁠. 하나였다⁠. 송화의 소원 하나가 절구 하나를 다시 돌렸다⁠.

나는 도마 위의 떡을 떼어 혀에 올렸다⁠. 열 번 친 떡이라 밥알이 다 살아 있었다⁠. 삼켰다⁠. 혀뿌리가 따뜻했다⁠.

“⁠대보름 달이 뜰 때 한 번⁠.⁠”

옥비가 떡메를 받아 들며 말했다⁠.

“⁠한 번 빌려준다⁠. 달이 뜨고 나서 방울이 다 녹지 않으면⁠, 너는 그 자리에서 제 발로 달빛 길에 오른다⁠. 떡메를 들고⁠.⁠”

“⁠올라갈게⁠.⁠”

“⁠다시는 못 내려온다⁠.⁠”

“⁠알아⁠.⁠”

송화가 김이 사라진 하늘을 아직 보고 있었다⁠. 무엇을 빌었는지 송화는 말하지 않았다⁠. 옥비도 묻지 않았다⁠. 옥비는 떡메를 무릎에 다시 올려놓고 손잡이의 광목을 손가락으로 펴 주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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