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60자)

뒤집개의 주인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어린이날 오후⁠, 월명동 골목에는 풍선을 든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갔다⁠. 남궁희자는 오후 세 시에 오이소박이를 찍었다⁠. 오이 허리에 칼집을 열십자로 넣고⁠, 부추와 당근을 채 쳐서 속을 버무렸다⁠. 칼집 사이로 속을 밀어 넣는 손이 빨랐다⁠. 화면 속 오이가 하나씩 배가 불러 쟁반 위에 누웠다⁠.

“⁠오이는 속을 너무 많이 넣으믄 터져⁠. 사람도 그려⁠. 속에 든 것이 많으믄 어디로든 터져⁠.⁠”

녹화를 끄자 미용실 원장이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어버이날은 사흘 뒤였다⁠.

“⁠예늘이가 서울서 못 내려온대서 내가 미리 사 왔어⁠. 니 것도 하나 샀어⁠. 성율이도 서울에 있다매⁠.⁠”

“⁠나는 아직 어버이가 아녀⁠. 어버이날은 저그 엄마 아부지 챙기는 날이여⁠.⁠”

“⁠니가 성율이 어버이 아니믄 누가 어버이여⁠?⁠”

원장이 카네이션 하나를 희자 앞치마 끈에 꽂아 주었다⁠. 다홍색 앞치마에 빨간 카네이션이 붙자 색이 서로 싸웠다⁠. 희자가 웃으며 카네이션을 떼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단톡방이었다⁠. 춘엽이 주소 하나를 올리고 아무 이모티콘도 붙이지 않았다⁠. 춘엽이 이모티콘을 안 붙이는 일은 처음이었다⁠.

희자는 돋보기를 쓰고 주소를 눌렀다⁠. 뒤집개TV였다⁠. 「⁠십오만 반찬 할매⁠, 빚 사천이백의 진실⁠」 썸네일 속의 희자는 국자를 들고 웃고 있었다⁠. 석 달 전 첫 영상에서 잘라 낸 얼굴이었다⁠.

영상 속 남자 목소리가 차분했다⁠. 「⁠십오만 구독자 앞에서 매일 반찬 하시는 선생님⁠. 그런데 이 가게에는 대출 사천이백만 원이 있습니다⁠. 이자일은 매달 이십오 일⁠. 남편분 병원비와 가게 냉장고⁠. 광고 수익이 어디로 가는지⁠, 이제 아시겠죠⁠?⁠」 자막이 숫자마다 빨갛게 깜박였다⁠. 댓글이 빠르게 붙었다⁠. 「⁠결국 돈 때문에 찍는 거였네⁠」 「⁠빚 갚으려고 우리 클릭을 쓴 거임⁠?⁠」 「⁠근데 빚이 죄냐⁠」

희자는 진열대 위 묵은지 통을 열고 한 가닥을 집어 입에 넣었다⁠. 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시었다⁠. 사흘 전에 맛볼 때는 시지 않았다⁠.

“⁠희자야⁠, 왜 그려⁠?⁠”

“⁠이자 날짜를 아는 사람이 둘이여⁠.⁠”

희자는 묵은지 통 뚜껑을 닫았다⁠. 원장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희자는 대답하지 않고 앞치마에 꽂힌 카네이션을 떼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단톡방에 춘엽의 글이 올라왔다⁠. 「⁠빚 없는 사람 손 들어 봐⁠. 아무도 없지⁠? 희자 선생 우리 다 빚쟁이여⁠. 기죽지 마⁠」 글 밑으로 손을 드는 곰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낚시 할아버지가 「⁠나 빚 칠천⁠」이라고 썼고⁠, 서예 할머니가 「⁠나 일억⁠」이라고 썼고⁠, 득갑이 아무 말 없이 우는 곰 하나를 보냈다⁠.

*

염득갑은 군산의료원 육 층 병실의 보호자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 화면을 아내에게서 비켜 들고 있었다⁠. 아내는 낮잠에서 막 깨어 침대 머리를 세워 달라고 했다⁠. 득갑이 침대 손잡이를 돌리는 동안 아내가 남편 손의 휴대전화를 보았다⁠.

“⁠희자 씨여⁠?⁠”

“⁠아녀⁠.⁠”

“⁠희자 씨 맞구먼⁠. 국자 들고 있잖여⁠.⁠”

아내가 손을 내밀었다⁠. 득갑은 휴대전화를 넘겨주었다⁠. 아내는 소리를 켜고 뒤집개의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사천이백이라는 숫자에서 한 번⁠, 남편분 병원비라는 말에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다⁠.

“⁠당신 광고에 희자 씨 얼굴 나갔을 때⁠, 희자 씨가 당신헌테 뭐라 혔어⁠?⁠”

“⁠식혜 맛있다고 혔어⁠.⁠”

“⁠그것뿐이여⁠?⁠”

“⁠가만있으라고⁠. 자기가 헌다고⁠.⁠”

아내가 휴대전화를 남편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라믄 우리가 희자 씨헌테 빚진 것이여⁠. 사천이백보다 큰 빚이여⁠.⁠”

득갑은 대답하지 않고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채널을 판 사람들끼리 묶인 은결의 단톡방이었다⁠. 방 이름은 「⁠은결 출연자 공지방⁠」이었고⁠, 대본과 촬영 날짜가 올라오는 방이었다⁠. 맨 아래 새 글이 있었다⁠.

「⁠운영팀 K입니다⁠. 이번 주 협력 채널 이슈로 월명동 관련 질문이 오면 답하지 마시고 운영팀으로 넘겨 주세요⁠. 개인 단톡방에서도 언급 삼가 부탁드립니다⁠.⁠」

득갑은 「⁠협력 채널⁠」이라는 글자를 엄지로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늘봄 동기방에는 춘엽의 「⁠빚 없는 사람 손 들어 봐⁠」가 올라와 있었다⁠. 득갑은 동기방으로 가서 우는 곰을 하나 보냈다⁠. 공지방의 글은 화면을 길게 눌러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다⁠. 아내가 남편의 엄지를 보고 있었다⁠.

*

차예늘은 다음 날 밤 열한 시⁠, 은결 미디어 편집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입사는 다음 달이었지만 류옥채가 급한 편집 몇 개를 맡겼다⁠. 낚시 할아버지 채널의 광고 편이었다⁠. 대본에는 할아버지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제가 무릎 때문에 바다를 못 나갈 뻔했습니다⁠」

공유 서버에서 소스 파일을 찾다가 예늘은 「⁠협력채널⁠」이라는 폴더를 보았다⁠. 폴더 안에 이름이 일곱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뒤집개_월명동⁠」이었다⁠. 예늘은 클릭했다⁠.

안에는 예늘이 닷새 전 올린 「⁠남궁반찬_원본⁠」의 파일들이 잘려 들어가 있었다⁠. 돋보기를 찾는 장면이 열한 개 다 있었다⁠. 하나하나에 북소리가 깔려 있었고⁠, 화면 색이 탁하게 눌려 있었다⁠. 웃음이 사라진 돋보기 장면은 노인이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는 장면이 되어 있었다⁠. 영상 파일들 밑에 문서 하나가 있었다⁠. 「⁠대본_뒤집개_0506⁠」 첫 줄은 이랬다⁠. 「⁠소재⁠: 대출 4⁠,200만⁠. 이자일 25일⁠. 톤⁠: 차분하게⁠. 마지막에 “⁠선생님 응원합니다⁠” 한 줄 넣을 것⁠. 작성 K⁠」

예늘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찍었다⁠. 손이 떨려 두 장이 흔들렸다⁠. 세 번째 장을 찍을 때 편집실 문이 열렸다⁠.

“⁠아⁠, 누나도 여기 들어왔네⁠.⁠”

야구 모자에 회색 점퍼였다⁠. 남자가 편집실 구석의 외장 하드를 집으러 왔다가 예늘의 모니터를 보았다⁠. 남자는 놀라지 않았다⁠. 웃었다⁠.

“⁠그거 누나가 올린 거죠⁠? 화질 좋더라⁠. 길 건너서 찍은 거랑 차원이 달라요⁠.⁠”

“⁠당신⁠, 은결 사람이에요⁠?⁠”

“⁠나는 협력 채널이에요⁠. 회사는 소재 주고⁠, 나는 찍고⁠, 회사는 광고비 주고⁠. 누나랑 똑같아요⁠. 누나도 회사가 주는 소스로 편집하잖아요⁠.⁠”

“⁠할머니들 겁주는 거잖아요⁠.⁠”

“⁠겁은 원래 있어요⁠. 내가 안 해도 누가 해요⁠. 나는 날짜를 맞춰 줄 뿐이에요⁠. 회사가 사러 가기 딱 좋은 날짜⁠.⁠”

강현곤이 외장 하드를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문으로 가다가 멈췄다⁠.

“⁠그 할머니 겉절이 맛있었어요⁠. 통 돌려 드려야 되는데⁠.⁠”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예늘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돋보기를 찾는 희자 선생님 얼굴이 화면 가득 탁한 색으로 멈춰 있었다⁠. 예늘은 돋보기 찾는 얼굴을 열한 번 다 살려 두었던 사람이었다⁠.

*

남궁성율은 같은 날 저녁 일곱 시⁠,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성수동으로 갔다⁠. 은결 미디어 일 층 로비의 경비원이 약속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경비원이 전화를 걸었고⁠, 십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류옥채가 혼자 내려왔다⁠. 성율은 로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 숫자⁠, 나밖에 몰라요⁠.⁠”

류옥채가 로비 의자를 가리켰다⁠. 성율은 앉지 않았다⁠.

“⁠사천이백⁠, 이십오 일⁠. 엄마도 아무한테 말 안 했어요⁠. 동네 사람도 몰라요⁠. 나랑 이사님만 알아요⁠. 그게 뒤집개 영상에 그대로 나왔어요⁠.⁠”

“⁠성율 씨⁠, 저희는 협력 채널의 취재 내용을 하나하나 알지 못합니다⁠.⁠”

“⁠협력 채널이요⁠?⁠”

“⁠광고를 같이 하는 채널들이요⁠. 저희와 일하는 채널은 마흔 곳이 넘어요⁠. 그분들이 어디서 무엇을 취재하는지 저희가 다 관리하지는 않아요⁠.⁠”

류옥채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게 이어졌다⁠. 성율은 고른 목소리를 두 주 동안 전화로 들었다⁠. 국밥집에서⁠, 회사 화장실에서⁠, 밤 열두 시의 원룸에서⁠. 고른 목소리가 한 번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율은 오늘 처음 알아들었다⁠.

“⁠뒤집개가 이사님 협력 채널이에요⁠?⁠”

“⁠성율 씨⁠, 오늘은 들어가세요⁠. 어머님 걱정되시죠⁠. 저도 걱정돼요⁠. 내일 제가 군산으로 연락드릴게요⁠.⁠”

류옥채가 엘리베이터로 돌아갔다⁠. 성율은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경비원이 다가와 나가 달라고 하기 전까지 서 있었다⁠.

로비 회전문을 밀고 나오자 성수동 골목에 저녁 바람이 불었다⁠. 구두 공장 셔터가 하나씩 내려가고 있었다⁠. 성율은 지하철역 쪽으로 걷다가 붕어빵 수레 앞에서 멈췄다⁠. 사흘 전 엄마가 팥을 덜 삶았다고 한 수레였다⁠. 성율은 팥 붕어빵 하나를 사서 반으로 갈랐다⁠. 팥이 오늘도 단단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성율은 휴대전화를 꺼내 엄마에게 문자를 썼다⁠. 「⁠엄마⁠, 뒤집개 영상 봤어요⁠. 그 숫자 내가⁠」까지 쓰고 멈췄다⁠. 지우고 다시 썼다⁠. 「⁠엄마⁠, 내일 내려갈게요⁠. 회사에 휴가 낼게요⁠.⁠」 보냈다⁠. 숫자 1이 금방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는 오이소박이를 담고 있을 시간이었다⁠.

*

밤 열두 시 사십 분⁠, 남궁반찬 셔터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희자는 어버이날 주문 받은 오이소박이 마흔 통을 담고 있었다⁠.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희자가 셔터를 반쯤 올리자 예늘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용산에서 막차를 탔다고 했다⁠. 서류 봉투는 없었다⁠. 노트북 가방 하나뿐이었다⁠.

“⁠선생님⁠.⁠”

“⁠밥 먹었냐⁠?⁠”

“⁠선생님⁠, 제가요⁠.⁠”

“⁠밥부터 먹어⁠.⁠”

희자는 진열대 옆에 접이식 상을 펴고 밥 한 공기와 오이소박이와 멸치볶음을 놓았다⁠. 예늘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희자 앞으로 돌렸다⁠. 흔들린 사진 두 장과 또렷한 사진 한 장⁠. 「⁠협력채널⁠」 「⁠뒤집개_월명동⁠」 「⁠대본_뒤집개_0506⁠」 희자가 돋보기를 쓰고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제가 원본 넘겼어요⁠. 은결 서버에⁠. 정직원 시켜 준다고 해서요⁠. 선생님 돋보기 찾는 거⁠, 그거 다 거기 들어가 있어요⁠. 뒤집개가 그걸로 영상 만들었어요⁠. 뒤집개⁠, 은결 거예요⁠.⁠”

희자는 돋보기를 벗어 상 위에 놓았다⁠. 오이소박이 한 개를 집어 예늘 밥 위에 올렸다⁠.

“⁠먹어⁠.⁠”

“⁠선생님⁠.⁠”

“⁠먹고 말혀⁠. 빈속에 하는 말은 간이 안 맞어⁠.⁠”

예늘이 숟가락을 들었다⁠. 오이소박이를 한 입 베어 물자 국물이 턱으로 흘렀다⁠. 예늘은 울면서 씹었다⁠. “⁠선생님⁠, 저 고소당할 수도 있어요⁠. 회사 서버 사진 찍은 거라서요⁠.⁠”

“⁠고소는 나중 일이고⁠, 오이소박이는 지금 일이여⁠. 국물 흘리지 말고⁠.⁠”

“⁠선생님은 화 안 나세요⁠?⁠”

“⁠화는 났어⁠. 근디 화난 손으로 소박이 담그믄 오이가 다 터져⁠. 마흔 통 남었어⁠.⁠”

예늘이 눈물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밥알이 상 위로 튀었다⁠. 희자는 행주로 밥알을 훔쳤다⁠.

희자는 계산대 위 휴대전화를 집어 빨간 스웨터를 벗기고 류옥채의 번호를 눌렀다⁠. 스피커를 켰다⁠. 밤 한 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류옥채가 받았다⁠. 잠긴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머님⁠.⁠”

“⁠이사님⁠, 희자요⁠. 하나만 물어볼라고⁠.⁠”

“⁠네⁠, 어머님⁠.⁠”

“⁠뒤집개 반찬은 누가 담갔소⁠?⁠”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냉장 진열대 모터가 웅 하고 돌았다가 멎었다⁠. 예늘이 숟가락을 든 채 숨을 참았다⁠. 희자는 휴대전화를 상 한가운데 내려놓고 기다렸다⁠.

“⁠어머님⁠, 내일 내려가겠습니다⁠.⁠”

희자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오이소박이 통 마흔 개가 진열대 위에서 줄을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희자는 마지막 통의 뚜껑을 손바닥으로 눌러 닫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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