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8자)

사천이백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남궁희자는 익산역에서 용산 가는 기차 창가 자리에 앉아 무릎 위의 보자기를 두 손으로 눌러 잡고 있었다⁠. 보자기 안에는 반찬 통이 일곱 개 들어 있었다⁠. 멸치볶음⁠, 열무김치⁠, 고들빼기⁠, 장조림⁠, 깻잎⁠, 오이소박이⁠, 그리고 새우젓 한 통⁠. 새우젓 통은 뚜껑 위에 랩을 두 겹 씌우고 고무줄을 세 번 감았다⁠. 그래도 기차가 논산을 지날 즈음 객실 안에 젓갈 냄새가 슬며시 돌았다⁠.

통로 건너편의 여자가 코를 킁킁거리다 희자를 보았다⁠. 마흔쯤 된 얼굴이었다⁠. 여자가 휴대전화 화면과 희자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몸을 기울였다⁠.

“⁠저기⁠, 혹시⁠… 월명동 선생님 아니세요⁠?⁠”

“⁠아닌디⁠.⁠”

“⁠목소리가 똑같으신데요⁠.⁠”

“⁠군산 사람은 목소리가 다 똑같어⁠.⁠”

여자가 웃으며 휴대전화를 돌려 보여 주었다⁠. 화면 속 희자가 돋보기를 머리에 얹고 돋보기를 찾고 있었다⁠. 희자가 졌다는 얼굴로 손을 들었다⁠.

“⁠맞어⁠. 젓갈 냄새도 나여⁠.⁠”

“⁠저 선생님 영상 보고 장조림 처음 성공했어요⁠.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 주시면 안 돼요⁠?⁠”

희자는 보자기를 옆자리에 내려놓고 위생모가 없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정수리에 묶은 머리가 동그랗게 그대로였다⁠. 여자가 휴대전화를 높이 들었다⁠. 희자는 찍히는 순간 브이를 했다가 내리고⁠, 다시 찍자고 해서 이번에는 주먹을 쥐었다⁠. 여자가 깔깔 웃었다⁠. 기차가 대전을 지나도록 희자는 창밖을 보며 혼자 웃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장조림을 성공했다고 했다⁠.

류옥채가 보낸 문자는 금요일 밤에 왔다⁠. 「⁠어머님⁠, 득갑 선생님 채널에 어머님이 나오시는 옛 영상이 두 개 더 있습니다⁠. 다시는 쓰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드리겠습니다⁠. 직접 받으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희자는 문자를 받은 뒤 아들에게 전화해 월요일에 서울 간다고만 말했다⁠. 아들은 혼자 오지 말라고 했고⁠, 용산역 개찰구 앞에 와 있겠다고 했다⁠.

*

남궁성율의 원룸은 신림역에서 십오 분을 걸어 올라간 언덕 위에 있었다⁠. 엄마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성율이 말릴 틈이 없었다⁠.

냉장고 안에는 생수 네 병⁠, 맥주 두 캔⁠, 반쯤 남은 케첩이 있었다⁠. 엄마가 케첩 통을 들어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손가락 끝에 조금 짜서 혀에 댔다⁠.

“⁠이것이 언제 것이여⁠?⁠”

“⁠몰라요⁠. 작년⁠?⁠”

“⁠시었어⁠. 토마토가 시믄 끝난 것이여⁠.⁠”

엄마는 케첩을 쓰레기통에 넣고 보자기를 풀었다⁠. 반찬 통 일곱 개가 냉장고 칸마다 줄을 맞춰 들어갔다⁠. 엄마가 가방에서 마스킹 테이프와 매직을 꺼내 통마다 날짜를 붙였다⁠. 「⁠5/3 멸치⁠」 「⁠5/3 열무⁠」 새우젓 통에는 「⁠5/3 새우젓⁠. 국 끓일 때 반 숟가락⁠. 한 숟가락 넣으믄 짜서 못 먹음⁠」이라고 길게 썼다⁠.

“⁠엄마⁠, 그걸 다 써요⁠?⁠”

“⁠니가 한 숟가락 넣을 것을 내가 알어⁠.⁠”

성율은 침대 모서리에 앉아 엄마의 등을 보았다⁠. 엄마는 성율의 원룸에 처음 왔다⁠. 이사한 지 네 해였다⁠. 아버지 장례 때는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일이 없었고⁠, 장례 뒤로는 성율이 내려갔다⁠. 엄마는 냉장고 문을 닫고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책상 위의 노트북⁠, 의자 등받이에 걸린 와이셔츠 세 벌⁠, 창문 밖의 다른 집 창문⁠.

“⁠오늘 가서 그냥 듣기만 해요⁠. 확약서만 받고 나와요⁠.⁠”

“⁠듣는 것은 내가 잘혀⁠.⁠”

“⁠엄마는 듣고 나서 말을 더 잘해서 그래요⁠.⁠”

엄마가 웃었다⁠. 성율은 와이셔츠 하나를 집어 입었다⁠. 회사에는 반차를 냈다⁠. 오늘만은 엄마 옆에 있어야 했다⁠. 엄마가 단추를 하나 잘못 끼운 아들의 와이셔츠를 보고 다가와 손가락으로 단추를 풀고 다시 끼웠다⁠. 손끝에서 새우젓 냄새가 났다⁠.

*

류옥채는 성수동 사무실 칠 층 회의실 창가에 서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모자를 보았다⁠. 남궁희자는 다홍색 앞치마 대신 남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희자가 먼저 코를 킁킁거렸다⁠.

“⁠이 건물은 냄새가 하나도 안 나네⁠.⁠”

“⁠환기가 잘돼서요⁠.⁠”

“⁠밥 냄새가 안 나는 데서 일허믄 배가 언제 고픈지 모르겄어⁠.⁠”

류옥채는 웃고 확약서 한 장을 탁자 위에 놓았다⁠. 희자가 돋보기를 꺼내 읽었다⁠. 이번에는 돋보기가 카디건 주머니에 제대로 있었다⁠. 류옥채는 희자가 끝까지 읽는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희자가 확약서를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고맙소⁠.⁠”

“⁠어머님⁠, 오신 김에 하나만 더 말씀드릴게요⁠.⁠”

류옥채는 파일을 열지 않았다⁠. 이번에는 숫자를 외워서 말했다⁠.

“⁠매입가를 오억으로 올리겠습니다⁠. 출연은 한 해로 줄이고⁠, 그다음부터는 어머님이 원하실 때만 나오시면 됩니다⁠. 사천이백만 원⁠, 매달 이십오 일 이자 내시는 대출은 계약 날 저희가 은행에 바로 넣어 드리고요⁠.⁠”

희자가 돋보기를 벗었다⁠. 류옥채는 희자의 손이 탁자 위에서 멈추는 것을 보았다⁠. 국자를 쥐던 손이 쥘 것이 없었다⁠.

“⁠그 숫자를 어디서 들었소⁠?⁠”

류옥채는 대답하지 않고 희자 옆의 성율을 보았다⁠. 성율이 고개를 숙였다⁠. 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들을 보지 않고 류옥채만 보았다⁠.

“⁠이사님은 왜 이 일을 혀요⁠? 남의 집 빚 날짜까지 알아 와서⁠.⁠”

류옥채는 창밖을 한 번 보았다가 희자를 보았다⁠. 이 질문에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오늘은 다른 대답이 나왔다⁠.

“⁠저희 어머니가 이천십구 년에 국수 채널을 하셨어요⁠. 대전에서요⁠. 구독자가 칠만쯤 됐을 때 모르는 사람들이 집 앞에 왔어요⁠. 국수 한 그릇 얻어먹으러 왔다고 했대요⁠. 다섯 명이요⁠. 어머니는 대문을 열어 줬고⁠, 그 사람들은 국수를 먹고 집 안을 찍어서 올렸어요⁠. 어머니는 다음 날 채널을 지우셨어요⁠. 그 뒤로 국수를 안 마셨어요⁠. 마신다는 말 아시죠⁠? 국수는 마시는 거라고⁠, 늘 그러셨거든요⁠.⁠”

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류옥채는 말을 이었다⁠.

“⁠그때 어머니 옆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들도 없었고⁠, 회사도 없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다른 회사 다니고 있었고요⁠. 그래서 이 회사를 만들었어요⁠. 어머님 옆에는 아드님이 있죠⁠. 그래도 아드님 혼자서는 못 막아요⁠. 아드님도 그걸 아세요⁠. 그래서 저한테 숫자를 말씀하신 거예요⁠.⁠”

희자는 탁자 위의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물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사님 어머니 국수는 무슨 국수였소⁠?⁠”

“⁠멸치 국수요⁠. 고명은 김하고 애호박⁠.⁠”

“⁠애호박을 볶아서 올렸소⁠, 데쳐서 올렸소⁠?⁠”

“⁠볶아서요⁠. 새우젓으로 간해서⁠.⁠”

“⁠그라믄 맛있는 국수여⁠.⁠”

희자가 일어났다⁠. 성율도 따라 일어났다⁠. 희자는 의자를 탁자 밑으로 밀어 넣고 류옥채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억은 안 받어요⁠. 국수 이야기는 받고 가요⁠.⁠”

*

강현곤은 전주 원룸의 바닥에 엎드려 노트북으로 다른 채널의 할머니 영상을 보고 있었다⁠. 떡을 써는 할머니였다⁠. 소리를 끄고 보면 손만 보였다⁠. 현곤은 남의 영상을 소리 없이 보는 버릇이 있었다⁠. 소리를 켜면 사람이 들리고⁠, 사람이 들리면 깎을 데가 안 보였다⁠.

방 한구석 작은 냉장고 위에 빈 반찬 통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군산 반찬 가게 할머니가 준 겉절이 통이었다⁠. 비운 지 열흘이 넘었다⁠. 버리려다 두 번 그만두었다⁠. 통이 두꺼웠고 뚜껑이 잘 맞았다⁠. 시장에서 사면 삼천 원은 할 통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K팀장⁠」이었다⁠.

「⁠다음 소재 드립니다⁠. 월명동⁠. 대출 사천이백⁠. 이자일 매달 25일⁠. 남편 병원비와 가게 냉장고⁠. 출처는 묻지 마세요⁠. 이번 주 안에 올려 주시면 협력비 두 배⁠.⁠」

현곤은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 숫자가 너무 정확했다⁠. 지금까지 받은 소재는 「⁠제보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흐린 말이었고⁠, 흐린 말일수록 영상이 잘 됐다⁠. 이번 것은 날짜까지 박혀 있었다⁠. 이 숫자를 아는 사람은 몇 명 안 될 터였다⁠.

현곤은 「⁠넵⁠」을 치다가 지우고 「⁠이거 확실한 거죠⁠?⁠」라고 쳤다⁠. 답이 바로 왔다⁠. 「⁠확실합니다⁠. 가족 쪽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현곤은 엎어 둔 반찬 통을 바로 놓았다가 다시 엎었다⁠. 노트북에 새 프로젝트를 열고 제목 칸에 숫자부터 쳤다⁠. 「⁠십오만 반찬 할매⁠, 빚 사천이백의 진실⁠」 썸네일에는 국자를 든 할머니 사진을 쓰기로 했다⁠. 웃고 있는 사진이 잘 팔렸다⁠.

*

성수동 골목은 구두 공장과 카페가 번갈아 있었다⁠. 남궁성율은 엄마 뒤를 세 걸음 떨어져 따라 걸었다⁠. 엄마는 지하철역 쪽으로 걷다가 붕어빵 수레 앞에서 멈췄다⁠. 오월인데도 붕어빵을 팔았다⁠. 엄마가 팥 붕어빵 세 개를 샀고⁠, 한 개를 반으로 갈라 김이 오르는 속을 들여다보았다⁠.

“⁠엄마⁠.⁠”

“⁠팥을 덜 삶었어⁠. 껍질이 단단혀⁠.⁠”

“⁠엄마⁠, 내가 말했어요⁠. 사월에⁠. 그 사람이 매입가 얘기할 때 빚이 얼마냐고 물어서⁠. 이 정도면 엄마가 팔 거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빚이 없어지면 엄마가 그만둘 거라고⁠.⁠”

엄마가 붕어빵 반쪽을 입에 넣고 씹었다⁠. 다 씹을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니가 내 빚을 남한테 말혔어⁠.⁠”

“⁠미안해요⁠.⁠”

“⁠그것은 괜찮어⁠. 빚은 숨길 것이 아녀⁠. 니 아버지가 진 빚도 아니고 우리가 같이 진 것이여⁠.⁠”

엄마가 나머지 반쪽을 성율 손에 쥐여 주었다⁠.

“⁠나한테는 안 물어보고 남한테는 말혔지⁠. 그것이 짜⁠.⁠”

성율은 붕어빵을 들고 서 있었다⁠. 팥이 손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엄마는 남은 붕어빵 두 개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왔던 길로 몸을 돌렸다⁠.

“⁠어디 가요⁠?⁠”

“⁠두고 온 것이 있어⁠.⁠”

*

차예늘은 은결 미디어 일 층 로비의 회전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손에 입사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다음 달 일 일 입사⁠, 오늘 오후 서명⁠. 회전문 유리 너머 로비 의자에 남색 카디건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붕어빵 봉투를 올려놓고 있었다⁠.

예늘은 돌아서려고 했다⁠. 회전문이 이미 돌아가고 있었고⁠, 예늘의 몸이 로비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예늘아⁠.⁠”

희자 선생님이 일어났다⁠. 예늘은 서류 봉투를 등 뒤로 돌렸다⁠. 늦었다⁠. 선생님의 눈은 봉투에 박힌 은결 로고를 이미 보았다⁠.

“⁠칠 층에서 내려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니 엄마 미용실 거울에 붙은 사진이랑 똑같은 머리를 봤어⁠. 아니겄지⁠, 혔는디⁠.⁠”

“⁠선생님⁠.⁠”

“⁠너 여기서 뭣 허냐⁠?⁠”

로비의 경비원이 이쪽을 보았다⁠. 회전문이 한 바퀴 돌고 멈췄다⁠. 예늘은 엄마가 미용실 불을 끄며 하던 말을 떠올렸다⁠. 남한테 듣기 전에 내 입으로⁠.

“⁠저 여기 들어왔어요⁠, 선생님⁠. 다음 달부터요⁠.⁠”

선생님은 한참 예늘의 얼굴을 보았다⁠. 맛을 보기 전에 냄새부터 맡을 때의 얼굴이었다⁠.

“⁠월급은 주디야⁠?⁠”

“⁠네⁠. 첫 달 치는 미리 준대요⁠.⁠”

“⁠밀린 석 달 치는⁠?⁠”

“⁠그것도 이사님이 받아 주신대요⁠.⁠”

“⁠그 양반이 다 받아 주네⁠.⁠”

예늘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생님 목소리에 화가 없어서 더 들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예늘 손의 서류 봉투를 한 번 보았다⁠. 열어 보라고 하지 않았다⁠.

“⁠잘혔다⁠. 서울서 다시 일허고 싶다 혔잖여⁠.⁠”

예늘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원본 폴더 이야기가 목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선생님이 붕어빵 봉투를 내밀었다⁠. 예늘은 받지 못했다⁠. 선생님은 봉투를 로비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봉투 입구로 김이 한 줄 올라오다가 에어컨 바람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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